엔진 브레이크, 제대로 사용하고 계십니까?
전국에 두 차례 폭설이 내리며, 출퇴근길 극심한 교통 정체를 빚었습니다. 제설 작업이 제 때 이뤄지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마냥 공무원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미끄러운 노면에서 미숙한 조작으로 인해 접촉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많죠. 이처럼 눈만 오면 반복하는 교통 정체와 사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순 없을까요?
글 강준기 기자
사진 각 제조사
이맘때면 항상 등장하는 키워드가 사륜구동 시스템과 윈터 타이어입니다. 일반 타이어 신은 이륜구동 차들이 미끄러운 노면에서 ‘빌빌’거릴 때, 네 바퀴 굴림 SUV가 쉽게 등판하는 영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왜 윈터 타이어를 끼우지 않았냐’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도 많습니다. 물론 타이어의 중요성은 어떤 부품보다도 중요하지만, 조작이 능숙하면 이륜구동+사계절 타이어로도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할 수 있습니다.
사계절 타이어도 눈길에서 달릴 수 있다
일부 고성능차를 빼면, 대부분의 승용차는 사계절 타이어를 신습니다. ‘사계절’이란 표현이 괜히 붙는 건 아닙니다. 통상 타이어 사이드 월(옆면)을 보면 영어로 ‘M+S’라고 써 있어요. Mud(진흙), Snow(눈) 길에서도 달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산봉우리에 눈꽃송이 각인을 새긴 경우도 있죠. 때문에 사계절 타이어의 트레드를 보면 다양한 지형에 대응할 수 있는 패턴이 구역별로 있습니다.
참고로 사계절 타이어 중에서도 겨울철 주행 성능을 조금 더 높인 ‘올웨더 타이어’가 있는데요, 겨울이 올 때마다 윈터 타이어로 바꿔 끼우는 게 수고스러운 분들은 주목할 만합니다.
물론 고무 컴파운드가 부드럽고 트레드 전체가 차가운 노면에 대응하는 윈터 타이어와 비교할 건 아니지만, 눈길에서 아예 쓸모없는 타이어는 아니란 소리입니다. 윈터 타이어가 눈길에 강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안 미끄러지는 건 아닙니다.
대개 눈길 접촉사고 영상을 보면, 십중팔구 제동 상황에서 일어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노면과 타이어간 마찰력이 제대로 안 생기는 눈길에선,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조금만 깊숙이 밟아도 바퀴가 잠깁니다. 내리막에서 사정없이 미끄러지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눈길에선 바퀴가 계속 굴러가도록 해야 합니다.
차 사고 한 번도 안 해본 엔진 브레이크
그렇다면 제동은 어떻게 할까요? 바로 오늘 기사의 핵심, 엔진 브레이크입니다. 눈길에선 브레이크 디스크 로터에 패드를 붙여 얻는 제동력 대신, 엔진 브레이크 비중을 훨씬 높여야 합니다.
엔진 브레이크 사용법은 무척 간단합니다. 주행 중 변속기에 있는 ‘+,-’ 중 – 쪽으로 밀거나 당겨 기어를 한 단씩 낮추면 됩니다. 운전대 뒤쪽에 있는 패들시프터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물고 있는 기어에서 1단씩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러면 엔진 회전수가 치솟고, 엔진에 저항이 생겨 속도가 빠르게 줄어듭니다.
‘+,-’ 모드가 없는 차종은 기어레버 D 아래에 L 모드에 둬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간혹 저단 기어로 내려 엔진 브레이크를 쓰면, 엔진 회전수가 올라가기 때문에 이를 ‘굉음’으로 간주해 차가 고장 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전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엔진 브레이크를 쓰면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고도 속도가 자연스레 줄어듭니다. 따라서 운전자는 브레이크 페달을 아주 조금만 밟아도 됩니다. 특히 사륜 로우 기어 달린 기아 모하비나 쌍용 렉스턴, 지프 랭글러 같은 차는 눈 쌓인 내리막에서 로우 기어+저단 기어를 쓰면 ‘금상첨화’입니다. 차를 사고 변속기의 ‘+,-’ 모드나 운전대 뒤쪽 패들시프터를 단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번 기회에 숙지하는 게 좋습니다.
즉, 눈길에서 엔진 브레이크를 통해 바퀴가 계속 굴러가는 상황을 만들면서 바퀴 잠김 없이 제동력을 이끌어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엔진 브레이크는 꼭 눈길에서만 필요한 건 아닙니다. 평소에 마트 주차장을 내려가거나 언덕길을 내려갈 때도 엔진 브레이크를 적극적으로 쓰면 브레이크 패드를 훨씬 오래 쓸 수 있습니다.
ESC, VDC 등 주행 안정장치를 꺼야한다고?
이번에 폭설이 내리며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유튜브 콘텐츠를 여럿 봤습니다. ‘눈길에서는 자동차의 주행 안정장치를 꺼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행 안정장치는 제조사마다 쓰는 용어가 다른데 ESC, VDC 등이 있습니다. 정말로 끄는 게 안전할까요?
위험한 생각입니다. 이 말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주행 안정장치는 기본적으로 차가 미끄러지거나 주행 궤적을 벗어날 때, 엔진 출력을 제한하거나 각 바퀴에 제동력을 나눠 자세를 유지해주는 시스템입니다. 오히려 마른 노면보다 미끄러운 길에서 더 필요한 장비입니다.
주행 안정장치를 꺼야하는 상황은 눈 쌓인 길에서 출발이 쉽지 않을 때. 통상 자동차는 ‘슬립’으로 간주해 구동력을 제한합니다. 미끄러지는 바퀴를 제어하기 때문에 때문에 탈출이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때, 운전대 왼쪽 아래에 있는 주행 안정장치 ‘OFF’ 버튼을 1초 정도 눌러 TCS(트랙션 컨트롤 시스템)를 해제하면, 출력 제한 없이 운전자가 가속 페달 밟는 양에 따라 바퀴가 계속 구릅니다. 즉, 타이어가 계속 굴러가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마찰열에 의해 눈을 녹이면서 탈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행 안정장치를 해제하면 운전자의 ‘섬세한’ 오른발 조작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행 안정장치 해제는 정말 특수한 상황에서만 써야합니다. 눈 쌓인 노면에 갇히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노면에선 오히려 2단 기어를 넣고 서서히 출발하는 게 좋습니다. 미끄러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속도를 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싸움은 피하는 게 상책이란 말이 있듯이, 폭설이 내릴 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예고 없이 눈을 맞닥뜨릴 때, 엔진 브레이크를 능숙하게 쓰는 드라이버와 그렇지 못 한 드라이버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엔진 브레이크, 다음에 눈이 올 때는 제대로 한 번 써보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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