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정보

충돌시험 '좋음' 등급 車 90km/h 사고에 의외의 결과

따뜻한 우체부 2021. 1. 31. 13:39

가장 높은 안전등급을 받은 차라도 속도를 약간 더 높여서 주행할 경우 충돌 시 훨씬 더 심한 부상을 입을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부나 기관에서 진행하는 자동차 충돌테스트는 차량의 충돌 성능을 다른 차량과 비교하는 데 유용한 측정 기준을 제공해 소비자의 자동차 구입에 도움을 준다.

그런데 이 테스트가 시속 60km 내외의 낮은 속도에서 진행돼 실제 도로 속도의 추가적인 위험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예를 들어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연구소(IIHS)가 시속 64km로 실시한 충돌테스트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차량이 시속 80km에서 동일한 테스트를 수행했을 때 ‘나쁨(poor)’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IIHS는 단순히 고속 주행으로 자동차를 시험하는 것이 모든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IIHS 대변인인 조 영(Joe Young)은 “얼핏 보기엔 충돌테스트 속도를 높이는 것이 좋은 방법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는 “빠른 속도에서 잘 작동하는 데 필요한 구조물을 설계하게 되면 사고 충격을 줄여주는 크럼플 존이 사라져 저속 충돌 사고가 더 위험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IIHS는 고속도로의 속도를 낮은 수준으로 제한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 충돌이 일어날 때 다른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조 대변인은 “현실에선 브레이크를 밟을 시간이 있을 수도 있고, 뒤에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차량과 충돌할 수도 있고, 자신의 차량보다 무게가 덜 나가는 차량을 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컨슈머리포트 자동차 시험센터 운영책임자인 제니퍼 스톡버거(Jennifer Stockburger)는 전방충돌경보(FCW), 자동비상제동(AEB), 차선 이탈경보(LDW), 사각지대감시(BSW)와 같은 첨단 안전시스템은 충돌사고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최소한 충돌 속도는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제니퍼는 연구를 통해 속도가 차량 탑승자의 부상 수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했다. 그는 “안전 시스템이 충돌을 완전히 예방하지는 못하더라도, 충돌 시 차량 속도를 줄이도록 운전자 또는 차량의 초기 반응을 유도하는 데 성공한다면 많은 이점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컨슈머리포트 안전 정책 책임자인 윌리엄 월리스(William Wallace)는 “자동 비상 제동은 고속도로에서 충돌을 방지하거나 완화하는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신차 모델 중 다수는 도심 속도의 자동비상제동이 기본 장착되고 보행자 감지 기능이 탑재되지만, 고속도로 속도 자동비상제동은 보편화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윌리엄은 “자동차 회사는 자동비상제동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IIHS와 충돌테스트 인체 모형 제조업체인 휴머니틱스(Humanetics)의 합동 연구를 통해 진행된 실험에선 비슷한 주행거리와 유지보수 기록이 있는 2010년형 혼다 CR-V SUV 3대를 시속 64km, 시속 80km, 시속 90km로 충돌시켰다.

CR-V는 연식과 크기 면에서 최근 도로 상의 평균 차량을 대표하고 있다. 또한 IIHS가 초기에 이 차량을 평가했을 때 충돌테스트 최고인 ‘좋음’ 등급을 받은 바 있다.

세 가지 테스트 모두 운전자가 주행하는 측면에서 중간 오버랩 충돌을 시뮬레이션 했다. 이는 차량이 장애물이나 다른 차량과 부분적으로 정면충돌할 때 발생하는 상황을 반영한다.

충돌 시험 결과 고속일 경우 차량의 안전 구조가 충격을 흡수할 수 없었고, 그 힘이 차량 내부의 인체모형에 전달됐다. 이에 따라 연구원들 “실제로 시속 80km로 충돌하는 운전자가 시속 64km로 충돌하는 운전자보다 생존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라고 말했다.

가령 시속 64km의 속도로 충돌한 경우 CR-V가 손상되긴 했지만 조수석 컴파트먼트가 변형되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충돌 점수는 ‘좋음’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시속 80km로 충돌하자 상황은 바뀌었다. 탑승했던 인체모형의 오른쪽 다리 부상 외에도 머리와 목 부상 가능성이 높아 '나쁨' 등급을 받은 것이다.

시속 90km로 충돌한 상황에선 결과가 훨씬 더 심각했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인체모형의 머리와 다리가 일부 찌그러졌으며, 에어백이 전개된 상태에서 머리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컨슈머리포트의 제니퍼 스톡버거는 “충돌 방지 기능이 뛰어난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것은 신중한 균형을 이루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크럼플 존과 차량 구조는 차량이 탑승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 충돌의 일부를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변형돼야 한다”라며 “속도는 이 균형을 바꿔버릴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한편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과속의 위험성이 훨씬 더 높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로에 차량이 적어짐에 따라 더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도로교통안전청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일부 도시에서는 평균 22%의 속도가 증가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미국에선 운전량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상반기 동안 주행 1억 마일당 1.25명이 사망했다. 이는 2019년 상반기 1.06명에서 증가한 수준이다.

스톡버거는 “덜 혼잡한 도로를 더 빨리 가기 위한 길로 생각해선 안 된다”라며 “예상치 못한 일이 항상 발생할 수 있으므로 항상 안전하게 운전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박도훈 기자

@thedrive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