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카이엔 쿠페와 함께라면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위기를 벗어난다
본 게시물은 BBC <탑기어> 매거진에 게재된 '픽션'임을 안내 드립니다. 에디터 한 명 한 명이 '재난 상황'이라는 가상의 설정 하에 적합한 생존용 자동차를 선정하고 대피하는 다섯 가지 스토리 중 일부입니다.
전국에 대피령을 내린다는 재난 문자가 날아들었다. 살아남으려면 정부가 지정한 생존자 마을이 있는 무주 구천동으로 향하는 방법뿐이었다. 대한민국에 갈 곳이 거기뿐이라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정부는 도시를 신속하게 비우고 앞으로 8시간 이내에 생존자 마을로 도착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곳에서 배수진을 치고 빗장을 굳게 걸어 잠글 계획인 듯했다. 영화에서는 대피 장소까지 셔틀도 태워주던데 현실은 달랐다. 그럴 여유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한 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서둘러 서울을 빠져나가야 했다. 그야말로 대탈출이 예상됐으니까. 백신을 맞기도 전에 도망자 신세라니. 사실 정확히 무엇으로부터 도망가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무엇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면 차가 필요했고, 그 차는 무조건 빨라야 했다. 목적지가 첩첩산중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장소인 만큼 어느 정도 오프로드도 예상됐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인데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었다. 시승차 열쇠 꾸러미에서 포르쉐 카이엔 쿠페 터보 키를 꺼내 들었다. 반납을 차일피일 미룬 게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이미 가까운 주유소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터. 다행히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목적지인 무주까지 갈 기름은 충분해 보였다.
곧장 고속도로로 향했다. V8 4.0L 트윈터보 엔진이 내뿜는 최고출력 550마력, 최대토크78.6kg·m의 괴력을 앞세워 도로의 모든 차를 따돌릴 기세로 내달렸다. 어찌나 빠른지 다른 차는 정지한 듯 보였다. 2t이 넘는 차체를 끌고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3.9초 만에 도달할 수 있는 차니까 이렇게 빠른 것도 당연했다. 신들린 핸들링 때문에 SUV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었다. 마치 911을 모는 프로 드라이버가 된 느낌이었다.
차가 아까보다 월등히 많아졌다. 요리조리 앞차를 따라잡으며 빠른 속도를 유지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막히는 도로에선 아무리 차가 우사인 볼트라도 소용없었다. 이내 정체가 시작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속도로가 주차장처럼 변했다. 누군가 무모하게 갓길에서 속도를 내다가 끼어드는 차와 큰 사고가 나 2개 차로를 막아섰다. 그 전에 램프까지 있어서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차와 사고 차로를 벗어나려는 차가 복잡하게 뒤엉켜 옴짝달싹 못 했다.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선 양보도 없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무질서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이제 10km 달려왔는데 벌써 2시간을 도로 위에서 버렸다. 남은 시간은 6시간이었다. 고속도로에 마냥 갇혀있을 수만은 없었다. 차 사이를 비집고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일반도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골목으로 우회해서 가까스로 정체를 뚫었다. 운이 좋았다.
눈앞에서 생존자 마을의 철문이 닫히는 상상을 하니 아찔했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쭉 뻗은 직선주로에선 가속 페달을 부서져라 짓이겼다. 가진 힘을 모두 쏟아부어서 단 1초라도 일찍 도착하고 싶었다. 어느새 시속 250km를 넘어섰다. 배기파이프는 울부짖는데 차는 거짓말처럼 안정적이었다. 아직 더 빠르게 달릴 여력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최고시속 289km이다). 하지만 속도를 더 냈다가는 심장이 못 버틸 듯싶었다.
마침내 무주 구천동 이정표가 보였다. 안도하긴 일렀다. 생존자 마을 주소 뒷부분이 잘려서 위치를 정확하게 알기 힘들었다. 이곳을 이 잡듯이 뒤지려면 우선 연료를 보충할 필요가 있었다.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생각보다 금방 주유등이 들어오기도 했다. 무주에는 이미 여기저기 약탈이 자행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불이 나 완전히 타버린 곳도 있었다. 찾아다닌 끝에 발견한 주유소도 상태는 비슷했다. 주유기가 파괴되어 정상적인 방법으로 주유할 수 없었다. 약탈당했다면 아직 기름이 남아있는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다행히 카이엔 쿠페 터보를 먹일 만한 양은 남아있었다. 건물 뒤에서 찾아낸 기름통으로 배부르게 먹였다.
얼마쯤 지났을까? 도로가 끊겼다. 정확히는 더는 아스팔트가 아니었다. 올것이 왔다. 예상했던 오프로드가 나타났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시간이 너무 지체될 게 뻔했다. 명색이 SUV인데 괜찮을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살려면 그래야만 했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부드럽게 다시 출발했다. 이내 ‘쿵’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차체를 세게 쳤다. ‘아차’ 싶었다. 어디 한 부분은 상처가 났을 법한 충격이었다. 반사적으로 포르쉐 관계자의 얼굴이 순간 떠올랐다. 하지만 애써 머릿속에서 그들을 지웠다. 이들에게 마음 쓸 겨를 따위는 없지 않은가.
산을 몇 개나 넘었는지 모른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오프로드 끝에 다시 웅장한 다리 하나가 보였다. 어쩌면 지금까지 잘못된 길을 따라 온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는 호수에 떠 있는 섬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생존자 마을이었다. 이런 곳에 꼭꼭 숨겨놨을 줄이야. 다리 하나로만 육지와 연결된 천혜의 요새 같은 곳이었다. 결국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어쩌면 당분간, 아니 영영 문명과는 안녕일지도 모르니까.
*이런 선택지도 있다
람보르기니 우르스
이런 재난 상황에서는 속도가 생명. 더 빠른 SUV를 찾는다면 람보르기니 우루스가 제격이다. 같은 계열 V8 엔진으로 무려 110마력이나 더 뽑아낸다(최대토크는 8.1kg·m 더 많다).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강력한 성능으로 생존 본능을 지켜낸다.
마세라티 르반떼 트로페오
종합적인 운동 성능은 카이엔 쿠페 터보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최고시속은 우루스와 맞먹는다(시속 304km). 가장 매력적인 점은 몸은 마세라티고 심장은 페라리라는 사실이다. 곧 죽어도 이탈리아 감성만 고집하는 사람한테 어울린다.
글 박지웅
사진 이영석, 김성욱, SUGAR PILL
자동차 전문 매체 <탑기어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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