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땅끝에서 당신의 마음으로 봄을 전송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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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의 땅끝으로 봄을 찾아가는 길에서 만난 진초록 마늘밭. 밭 너머에는 남쪽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봄은 남도의 바다를 건너 이쪽을 딛고 내륙에 올라와있었다.

유난히 겨울 늦추위가 오래 계속되고 있습니다. 도회지에는 때늦은 눈발까지 분분했지요. 더디 오는 봄은 어디쯤에서 기웃거리고 있을까요. 바다를 건너오는 봄을 찾아 남도의 땅 끝까지 가보았습니다. 땅 끝에도 봄 꽃은 아직 단단한 봉우리 안에 갇혀 있고, 동백도 이제서야 한두 송이씩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남쪽 바다 어디쯤 건너오고 있을 봄이 올해는 좀 늦게 도착할 모양입니다. 그래도 바다를 굽어보는 황토 보리밭의 양지바른 둑에서는 봄나물이 나오려는지 발바닥이 간질간질했고, 공기에서도 봄 내음이 묻어났습니다.

전남 해남의 땅 끝. 이른 아침, 뾰족한 토말 탑이 서있는 해안가에서 배낭을 멘 한 사내를 만났습니다. 탑 한쪽 끝에서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고 있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남도 땅을 닷새째 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번 여행이 ‘어떤 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여행에 ‘땅끝’은 참 잘 어울리는 여행지이지 싶었습니다.

“땅끝에 / 왔습니다. / 살아온 날들도 / 함께 왔습니다. / 저녁 / 파도 소리에 / 동백꽃 집니다”-고은의 시 ‘땅 끝’ 전문.

보길도 세연정의 연못을 헤엄치는 거위 두마리가 따스한 봄볕을 만끽하고 있다(사진 왼쪽).보길도 예송리 해안의 갯돌들은 파도에 자그락거리며 ‘봄의 소리’를 들려준다(사진 오른쪽).

그 사내도 시인과 마찬가지로 ‘살아온 날들’을 데리고, 이 땅끝에 와서 섰겠지요. 그의 새 출발에는 땅 끝에서 만난 바다와 그 바다를 만나러 가는 길의 폭신한 흙 길이 힘이 돼줄 것 같았습니다. 새 시작을 위한 곳으로 ‘땅끝’이 제격인 것은, 그곳이 이 땅의 시작이자 곧 끝이란 이유도 있겠지만, 새로 봄의 생명이 시작되는 땅인 까닭도 있을 것입니다.

땅끝에서 바다를 굽어보다가 조금 더 봄에 가까이 가고자, 보길도를 찾아갔습니다. 한달 전쯤 노화도와 보길도가 다리로 연결돼서 보길도 가는 시간이 절반쯤 줄어들었습니다. 노화도에서 내려 보길대교를 건너 도착한 보길도에는 봄 내음이 더 짙었습니다. 해안가를 따라 반짝이는 동백숲에서는 일찍 눈 뜬 동백꽃 붉은 꽃송이가 툭툭 떨어져 있었습니다. 보길도 예송리 해안의 갯돌들은 자그락자그락 봄의 소리를 내고 있었고, 고산 윤선도가 머물렀던 세연정의 흰 깃털의 거위가 봄 눈이 다 풀린 연못 위를 미끄러지듯 유유히 헤엄쳤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봄을 만날 요량이라면, 해남 땅으로 가보시지요. 그곳에서 고개를 내민 봄나물이 발바닥을 간질이고, 아릿아릿한 봄의 향기가 코끝을 스칩니다. 게다가 동백숲과 달마산 기암괴석을 둘러치고 있는 미황사, 그리고 휘어자란 나무를 번쩍 들어다가 세운 대흥사 대웅전의 힘찬 모습도 만날 수 있습니다. 미처 꽃이 다 피지 않았거든 대흥사 부도밭에 돌을 쪼아새긴 꽃문양이나 천불전의 꽃문살과 꽃담만으로도 봄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더 훈훈한 봄기운에 몸을 적시려거든, 더 멀리 완도군의 보길도로 가보시면 어떨까요. 보길도의 세연정에 기대 앉아 연못에 툭툭 떨어진 붉은 동백꽃을 내려다보면, 절로 묵은 겨울을 보내는 기지개가 켜질 겁니다. 누가 뭐래도, 남도 땅은 이제 향긋한 봄입니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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