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7년 전쯤, 인적 드문 산골에서 야밤에 타이어가 펑크 난 적 있었다. 오가는 사람도, 차도 없었다. 하필 전화도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상황, 밖은 매서운 바람이 불어왔다. 어쩔 수 없이 차에 누워 다음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당시 몸을 뉘었던 차종이 왜건이었다. 길어서 짐 싣기 좋은 차라고 생각만 했던 왜건을 새롭게 본 날이었다.
볼보 V90 크로스컨트리는 그날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만들 뿐 아니라 좀 더 면밀히 바라보게 만들었다. 굳이 차박 트렌드를 집어던져놓더라도 널찍한 트렁크 공간과 평평한 바닥, 지형을 넘나드는 주행성능은 한결 옹골차다.
SPA 플랫폼과 전동화 전략에 따른 마일드 하이브리드 B5 시스템을 받아들이면서 매끄럽고 진중한 모습을 찾았다. 뛰어난 가속 성능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손실 없이 지면을 밟아가며 최대토크를 뽑아낸다. 앞, 뒤 모두 고르게 힘이 분산되면서 이질적인 조향 감각도 말끔히 지워냈다.
직선 도로에서 장거리 이동할 땐 상당히 부드러운 승차감이 엉덩이를 받치는 덕분에 지루함이 느껴질 정도다. 가속 페달에 힘을 쥐여주면 큰 무리 없이 추월 가속이 이뤄진다. 단번에 치고 나가긴 살짝 버거운 느낌은 있으나 V90 크로스컨트리는 스포츠 카가 아니다. V90 크로스컨트리를 만든 회사도 볼보라는 걸 잊지 말자.
스웨덴으로 출장을 갔을 때 스웨덴 사람들에게 볼보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 있다. 그들의 대답은 스웨덴 지형에 특화된 승차감을 꼽았다. 스웨덴은 눈 덮여 있는 도로가 많고 눈으로 인해 도로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곳도 많다. 볼보는 그런 스웨덴 지역 특성이 반영돼 울퉁불퉁하고 미끄러운 지형에서도 안정감이 있다는 것이 그들의 대답이었다. 우리나라도 겨울이면 눈이 내리긴 하지만 제설 작업도 잘 이뤄지는 편이고 영동 지방을 제외하면 눈 덮인 도로를 자주 마주할 일도 없다. 그럼에도 승차감이 나쁘지 않다는 건 정비된 도로와 그렇지 않은 도로 양쪽에서 주행성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다듬었단 얘기다.
실제로 V90 크로스컨트리는 전용 서스펜션을 적용하고, 드라이브 모드에 오프로드 모드를 적용해 포괄적인 주행성능을 어필한다. 눈 덮인 비포장도로에서 V90 크로스컨트리를 던져보면 긴 휠베이스가 단점이 될 지형임에도 확실히 통통 튀는 감각이나 울컥거림이 적은 걸 느낀다. 노면 접지에 끈기와 진동 억제의 타협점을 적절히 잡아낸 느낌이랄까?
V90 크로스컨트리의 특징으로 꼽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운전자의 심리적 안정’이다. 의외로 스티어링 휠이나 가속 페달이 헐거운 편인데 아이러니하게 불안하지 않다. 오히려 느긋함이 느껴진다. 속도를 올리고 와인딩 구간을 마주쳐도 전혀 불안감이 들지 않는다. 운전자 핸들링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적절히 차체를 이끌어낸다.
운전자 지원 시스템인 파일럿 어시스트를 논하는 게 이젠 고루할 정도. 여전히 안전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안정감 우선으로 작동한다. 수평 기조의 실내 분위기와 자연친화적인 인테리어도 심리적 안정을 이루는 요소다. 아,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스마트폰 무선 충전 시스템을 들 수 있겠다. 충전 패드 길이가 생각보다 좁고 확고하게 스마트폰을 고정시키지 못해 종종 굴러떨어진다는 것.
새로운 프런트 그릴, 시퀸셜 턴 시그널, 테일 램프 등 연식변경을 통해 달라진 인상도 V90 크로스컨트리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길고 가늘며 날렵하게 다듬어 비율과 디테일 요소 모두 세련된 느낌을 준다.
보닛에서 시작해 후면까지 이어지는 숄더 라인은 볼륨을 키우고 수직으로 뻗었다. 여기에 캐릭터 라인도 수평을 유지한 채 볼륨을 키웠다. 그 덕분에 차체가 커 보이는 효과를 얻었고 실내 공간에 대한 기대감도 키우는 효과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펑퍼짐한 왜건 이미지를 벗기 위해 차체는 20mm 늘려 전체적인 비율도 고려했다.
멀티 플레이어를 목표로 만들어진 왜건에 스페셜 플레이어 능력이 녹아든다면 그 모습이 V90 크로스컨트리가 아닐까 싶다. 취향이 많이 갈리는 디자인 요소를 차치하면 ‘왜건의 무덤 한국’ 인식이 달라질 수도…
김상혁 cardyn@carla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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