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AMG GT 4도어 쿠페, 변종인가 신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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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모습으로 치장한 최신 AMG 쿠페는 예리하고 냉철한 본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아름다움 뒤에 숨은 중독성 강한 매력으로 운전자를 사정없이 유혹할 뿐이다

메르세데스-AMG GT 4도어 쿠페가 세상에 나왔을 때 포르쉐 파나메라를 잡기 위한 뻔한 벤츠라고 생각했다. 다른 AMG 모델에서 이미 선보인 익숙한 파워트레인과 최신 기술을 가득 넣은 라인업 늘리기용 쿠페인 줄 알았다. 300km에 걸쳐 온로드와 F1 서킷을 누비면서 GT 4도어 쿠페를 다시 바라보게 됐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열린 AMG GT 4도어 시승행사. 온종일 차와 함께 하라는 복에 겨운 특명이 떨어졌다. 배정받은 차는 GT 63 S 4매틱 플러스. 첫인상은 크고 우아하다. AMG 배지가 붙었으니 우락부락한 하드코어 스포츠카일지 모른다는 섣부른 추측은 접어두기 바란다. 차는 품위 있고 차분한 이미지가 강하다. 비율 덕분이다. 

GT 4도어 쿠페를 디자인한 비탈리스 엔스는 전체 형상보다도 조화와 균형을 더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말했다.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비율이에요. 앞뒤는 물론 양옆과 높이까지 어느 각도에서 봐도 황금비율이어야 진정한 작품이 탄생하죠. GT 4도어 쿠페는 휠하우스 크기와 유리창 디자인에 특히 신경 썼습니다. 핵심인 C필러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어요. 고성능을 표현하는 부분은 아주 작은 요소만으로도 충분해요. 거대한 그릴과 머슬카처럼 엄청난 심장을 품은듯한 두툼한 보닛 주름이 그렇죠. 우아하면서 잘 달리는 차가 탄생했어요.” 

엔스의 이야기를 들으니 미처 몰랐던 부분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한껏 입을 벌린 파나메리카 그릴과 가로로 길게 이은 앞범퍼 공기흡입구는 거대한 존재감을 완성한다. 헤드램프와 ㄷ자 모양 주간주행등은 단정하게 다듬었다. 도어와 C필러는 최대한 부풀려 덩치를 키웠다. 가느다란 테일램프는 섹시하고 풍만한 뒤태에 방점을 찍는다.

시동버튼을 눌렀다. 12.3인치 와이드 모니터 두 개와 수평형 대시보드, 제트기 프로펠러처럼 생긴 송풍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센터페시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여러 버튼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앙증맞게 생긴 AMG 시프트레버 양쪽에 늘어선 버튼 8개가 단번에 시선을 훔친다. 스티어링휠에는 주행모드와 서스펜션 세팅을 입맛에 맞게 바꿀 수 있는 마법 버튼을 따로 배치했다. 인포테인먼트 조작은 조그셔틀이 아닌 새로운 터치패드를 사용한다. 터치감과 인식률이 뛰어나 한번 손에 익으면 아주 쉽고 편하다.

도어는 앞뒤 모두 프레임을 없애 쿠페 특성을 강조했다. 얼핏 보면 E-클래스나 CLS보다 공간이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 앉으면 그리 답답하지 않다. 무릎 공간이 여유롭고 천장을 움푹 파서 여분의 머리 공간을 확보했다. 트렁크는 455L이고 2열을 모두 접으면 최대 1324L까지 늘어난다. 기본 공간은 포르쉐 파나메라보다 40L 작지만 시트를 모두 접으면 오히려 20L 크다.

시프트레버를 드라이브에 놓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차는 생각만큼 예민하게 튀어 나가지 않았다. 낮은 엔진회전수를 유지하며 차분하게 속도를 올린다. 서킷으로 향하는 200km에 이르는 온로드 구간에서 부드러운 감각이 이어졌다. AMG 특유의 소리는 물론 고속에서도 풍절음과 바닥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에어서스펜션은 도로의 거친 부분을 잘 걸러내 안락한 승차감을 일궈낸다. 업데이트를 거친 드라이브 파일럿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반자율주행 기능을 보여줬다. 운전자가 신경 쓸 부분이 줄어드니 장거리 운전에 부담이 덜하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과 광활한 들판을 배경 삼아 여유롭게 차를 몰았다. 마치 몸과 마음은 S-클래스 뒷좌석에 앉아있는 듯 편했다.

3시간을 달려 서킷 오브 더 아메리카에 도착했다. FIA가 공식 인정한 미국을 대표하는 F1 서킷이다. 고저 차가 크고 20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코너가 연속으로 이어져 F1 서킷 중에서도 난도가 높다. 숨을 고르고 패독에 들어서니 시운전을 마친 GT 63 S 4매틱 플러스가 나란히 서 있었다. 무광 블랙(정확한 명칭은 데지뇨 그라파이트 그레이 망고) 색상 때문에 우아한 첫인상과는 정 반대 분위기를 풍겼다. 차 주위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고 인터쿨러 돌아가는 소리와 거친 배기음이 뒤섞여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 차가 지닌 본성을 확인할 순서입니다. 오로지 운전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해요. 서킷을 오는 동안 경험했던 차의 성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거예요.” 인스트럭터의 말을 들으니 GT 4도어 쿠페의 숨은 본성을 끄집어내고야 말겠다는 욕구가 솟아올랐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트랙에 들어갔다. 주행모드는 스포츠 플러스에 뒀다. AMG 다이내믹 셀렉트는 6가지 모드를 제공한다. 컴포트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인디비쥬얼, 레이스로 나뉜다. 새로 추가한 미끄러운 노면 모드는 접지력이 낮은 조건에서 빛을 발한다. AMG는 파워트레인 변화에 맞춰 모드마다 대대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스포츠 플러스에 두니 잔잔한 움직임과 그랜드 투어러다운 편안한 주행감을 보여주던 GT 4도어 쿠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즉각적인 스로틀 반응과 탁탁거리며 터지는 거친 배기음, 미친 듯한 가속력을 뽐내는 스포츠카로 변신했다. GT 63 S에 얹은 V8 4.0L 트윈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639마력, 최대토크 91.8kg·m에 이르는 엄청난 힘을 뿜어낸다. 같은 엔진을 쓰는 AMG GT R과 E 63 S보다 각각 62마력, 16마력 높은 수치다. 어마어마한 수치 그대로 강하게 운전자를 자극한다. 가속이 이어질수록 몸은 시트 깊숙이 파묻히고 주변 사물은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진다. 멀리 보이던 도로 끝 지점이 단 몇 초 사이에 눈앞에 나타나는 기이한 순간이동 현상도 일어난다.

GT 4도어 쿠페는 터보 래그를 줄이기 위해 터빈 휠 안쪽에 새로운 마찰 방지 볼베어링을 추가했다. 마찰력을 줄여 터빈 회전이 더 원활해지고 배기가스 흐름을 최적화해 E 63 S보다 터보 래그가 크게 줄었다. 실제로 변속기 단수를 빠르게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출력이 지연되는 현상은 찾아볼 수 없다. 스로틀 양에 상관없이 반응은 즉시 나타난다. 2t이 넘어가는 무게를 잊게 할 정도로 날카롭고 흉포하게 움직이면서 트랙을 휘젓는다. 총알처럼 빠르게 코너를 돌아 직선주로를 내달리도록 하는 일등 공신은 섀시다.

기본 뼈대는 E-클래스와 CLS에서 먼저 선보인 MRA 플랫폼이다. 벤츠 중형 세단에 두루 사용하는 범용 플랫폼이고 AMG는 GT 4도어 쿠페 성격에 맞게 몇 가지 부분을 보완했다. 탄탄한 하체 감각을 높이기 위해 바닥에는 알루미늄 소재로 만든 스트럿바를 다이아몬드 구조로 덧붙였다. 뒷좌석 등받이 부분에는 크고 두툼한 탄소섬유 판을 통으로 붙여 강성을 확보했다. 기다란 4도어 쿠페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코너링이 빠르고 민첩하다. 정교한 스티어링 반응과 이상적인 50대 50 무게배분도 환상적인 섀시 컨트롤에 힘을 보탠다.

4매틱 플러스는 똑똑한 네바퀴굴림이다. 운전자가 판단하기 전에 미리 바퀴의 동력을 배분하고 이상적인 주행을 유도한다. 코너 초기에 감속하지 않으면 뒤가 흔들리지만 곧바로 토크를 앞바퀴로 몰아 오버스티어를 줄인다. 자세제어장치를 일부러 끄지 않는 한 통제 불능 상태는 쉽게 오지 않는다. 네바퀴굴림과 짝을 이루는, 뒤차축에 맞물린 전자제어식 록킹 디퍼렌셜도 눈여겨볼 장비다. 안쪽 바퀴의 미끄러짐을 감지하면 동력과 틀어지는 각도를 미리 조정해 최적 접지력을 확보한다. 밀려 나갈 정도로 빠르게 코너에 진입해도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탈출하도록 돕는 GT 4도어 쿠페의 핵심 장비다.

자세제어장치를 끄면 전혀 다른 코너링 감각으로 잊지 못할 운전 재미에 빠져든다. 신나게 차를 잡아 돌릴 수 있는 드리프트 모드 덕분이다. 자동차의 원초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뽑아내는 기능이다. 네바퀴굴림은 모든 동력을 뒤차축으로 몰아넣는다. 힘이 넘치는 상태에서 스로틀을 조금만 열어도 쉽게 꽁무니가 날아간다. 속도에 상관없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차를 라인 바깥으로 내던질 수 있다. 운전자의 기술과 판단력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잘 활용하면 그 어떤 슈퍼카보다 흥미롭고 스릴 넘치는 운전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핸들링은 경쟁차와 비교해 월등히 뛰어난 편은 아니다. 즉각적인 반응에 기대기보다는 긴 휠베이스를 적절히 활용해 균형 있는 핸들링을 구사하는 쪽이 더 낫다. 스포츠 쿠페이자 그랜드 투어러로서 균형을 맞춘 모습이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면서 야수로 돌변한 GT 4도어 쿠페를 조련하면서 5.5km 서킷을 7바퀴 질주했다. 차를 타기 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운전에 집중하라던 인스트럭터의 조언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숨을 고르고 있는 내게 벤츠 관계자가 다가왔다. “머리도 식힐 겸 간단히 서킷 주변을 달려보세요. 63과는 감각이 다른 GT 53 4매틱 플러스를 준비했습니다.” 솔깃한 제안에 주저 없이 키를 들고 차가 서 있는 패독 뒤로 향했다. 차는 조용하게 기지개를 켜고 사뿐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GT 53의 파워트레인은 직렬 6기통 3.0L 터보 엔진과 EQ부스트라고 부르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조화를 이룬다. 전기 파워트레인 덕분에 초반 가속이 요란하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속도를 올릴 때는 지치는 기색 없이 재빠르게 차를 밀어붙인다.

전압을 높인 고효율 배터리와 전기모터가 일궈내는 가속감은 신선하다. 경쾌하게 치고 나가면서 꾸준하게 속도를 올리다 보면 어느새 고속 영역에 도달해 있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차 급과 궁합이 잘 맞고 내연기관보다 세련된 감각을 보인다. 전기모터의 정숙성과 진보한 기술력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고급스러운 GT 4도어 쿠페 성격과 잘 맞았다.

주행모드를 스포츠나 스포츠 플러스에 두면 차는 AMG 본연의 성격을 드러낸다. 시스템 최고출력 435마력, 최대토크 78.5kg·m 힘은 웬만한 대배기량 차보다 훨씬 강력하다. AMG 스피드시프트 TCT 9단 변속기는 정확하고 신속하게 변속하고 라이드 컨트롤 서스펜션은 어떠한 길에서도 당당하게 달리도록 지원한다. 가변 배기 버튼을 누르면 윙 거리는 전기모터 소리만 들리던 실내가 순식간에 비트 넘치는 클럽으로 바뀐다. 주행모드에 따라 변하는 이중적인 성격은 63보다 한 수 위다.

AMG GT 4도어 쿠페는 안락한 주행감과 짜릿한 운전 재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운전자의 감성을 흔든다. 일반도로에서는 플래그십 세단 못지않은 럭셔리카 역할을 해내고, 하드코어 한 F1 서킷에서는 경주차 못지않은 실력으로 무대를 평정했다. 아름다운 외모 속에 감춰진 야성적인 몸짓은 운전자를 단숨에 유혹하고 쉽게 헤어나지 못하도록 잡아 둔다. 반전 매력이 매혹적인 GT 4도어 쿠페는 동급 차 시장을 뒤흔들 태세다. 경쟁차 쪽에서는 내심 나오지 않기를 바라던 차가 나왔다.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보는 일만 남았다.

 

MERCEDES-AMG GT 63 S 4MATIC+

2억4540만원

엔진 V8 3982cc 트윈터보, 639마력, 91.7kg·m

변속기 9단 자동, 4WD

성능 0→100km/h 3.2초, 315km/h

연비 7.2km/L, 257g/km

무게 2045kg

 

MERCEDES-AMG GT 53 4MATIC+

국내 미출시

엔진 V6 2999cc 터보+전기모터, 435마력, 78.5kg·m

변속기 9단 자동, 4WD

성능 0→100km/h 4.5초, 285km/h

연비 10.6km/L, 215g/km

무게 1970kg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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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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