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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으로 일군 세계 최초의 기아차, 기아자동차 브랜드 히스토리(4)

프라이드 국산 최초의 승용차 브리사 단종 이후 위기를 맞은 기아는 ‘원박스카’ 봉고로 승부수를 던져 기사회생했다. 1986년, 정부의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가 풀리면서 기아산업은 다시 승용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0년 사명을 ‘기아자동차’로 바꿨고, 네 가지 카드를 차례차례 꺼내들었다. 프라이드와 콩코드, 스포티지, 세피아 등 차세대 승용차 라인업이다.

프라이드

1987년 기아와 포드, 마쓰다 등 3개 자동차 제조사가 새로운 소형차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주인공은 기아 최초의 해치백, 프라이드. 합작 프로젝트가 낳은 글로벌 전략 소형차로, 세 회사의 장점을 모아 개발비용은 줄이되 시너지는 극대화했다. 마쓰다는 설계를 맡고, 생산은 기아, 판매는 포드가 책임졌다. 기아에겐 봉고 뒤를 잇는 새 주역이었다. 3개 회사는 각자 전략적으로 업무를 분담했다. 가령 소형차 제조기술 뛰어난 마쓰다가 ‘DA’ 플랫폼과 직렬 4기통 엔진을 개발했다. 포드는 전 세계에 걸친 판매조직을 갖췄다. 대량생산 능력도 가장 뛰어났는데, 문제는 비용이었다. 기아가 이 판에 낄 수 있었던 배경이다.

프라이드 신문 광고

물론 브리사와 봉고 사례를 통해 우수한 제조 실력을 인정받은 결과였기도 했다.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포드로서는 미 정부의 ‘일본차 대미수출 자율규제’를 피할 묘안이기도 했다. 덕분에 기아는 포드에 페스티바란 이름으로 이 차를 공급했다. 합작 프로젝트의 결실은 알찼다. 차체는 현대차 엑셀보다 200㎏ 이상 가벼웠다. 그 결과 1.3L 엔진을 얹고도 대관령 고갯마루를 거뜬히 넘었다. 공인연비도 수동 기준 17㎞/L로 뛰어났다. 또한, ‘DA’ 플랫폼은 강성이 제법 높았다. 마쓰다는 이 골격으로 데미오 등을 만들며 16년 동안 활용했고, 포드는 토러스의 V6 3.0L 가솔린 엔진을 얹고 0→시속 100㎞ 가속을 4초대에 끊는 핫 해치를 만들었을 정도다. 국내 소비자의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뛰어난 차체 강성과 작은 몸집 덕분에 굽잇길에서 운전하는 재미가 기대 이상 쏠쏠했으니까.

프라이드

기아차의 첫 중형세단, 콩코드

하지만 프라이드 홀로 경쟁사에 대항할 순 없었다. 이미 현대와 대우는 중‧대형 세단 앞세워 국내 승용차 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했다. 기아는 세단 라인업을 보강하기 위해 마쓰다에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었다. 당시 기아가 점찍은 차종은 마쓰다 626(카펠라). 1970년부터 마쓰다가 생산한 중형세단으로, 포드는 이 차를 텔레스타란 이름으로 판매한 바 있다. 기아는 3세대 마쓰다 626을 라이선스 생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안팎 디자인을 소폭 다듬었다. 그 결실이 콩코드로, 국내 최초의 앞바퀴 굴림(FF) 세단이었다. 뒷바퀴 굴림(FR) 방식인 현대 쏘나타, 대우 로얄 프린스와 뚜렷이 차별화했다.

콩코드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550×1,705×1,405㎜로 브리사보단 크되 경쟁 중형세단보단 작았다. 콩코드는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SOHC 엔진을 품었다. 5단 수동 또는 4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99마력을 냈다. 국내 중형차 최초로 전자제어식 연료분사 시스템을 갖춰 높은 효율을 뽐냈다. 이듬해 1.8L 가솔린 및 LPG 엔진을 더해 1988년 서울올림픽에 투입할 택시에 얹었고, 2.0L 디젤 엔진을 마련해 중형 디젤차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프라이드처럼 탄탄한 섀시도 콩코드의 매력을 높이는 데 한 몫 했다. 또한, 앞뒤에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넣어 쏘나타보다 주행성능이 뛰어났다. 덕분에 콩코드는 경주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1991년엔 길이를 늘이고, 2.0L DOHC 엔진을 얹은 뉴 콩코드를 선보였다. 그러나 경쟁차보다 작은 차체 때문에 쏘나타와 로얄 프린스의 판매량을 넘진 못 했다.

콩코드 후기형

콩코드 광고

국내 최초의 소형 SUV, 스포티지

페스티바(프라이드)의 성공 이후 포드는 두 번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SUV는 트럭 섀시에 차체 얹은 사륜구동차가 대세였다. 반면 포드가 준비하던 코드네임 ‘UW-52’는 오늘날 인기 뜨거운 소형 SUV였다. 포드의 뛰어난 상품기획력을 엿볼 단서였다. 포드는 기아에게 “연간 15만 대 생산해 10만 대를 공급해 달라”고 제안했다. 연간 생산대수가 20만 대도 안 됐던 기아에겐 솔깃한 제안이었다. 조건이 붙었다. 포드는 기아의 지분 50%를 요구했다. 기아는 발끈하자 포드는 공장을 별도 법인화한 뒤 그 주식 절반을 달라고 했다. 결국 합작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스포티지

기아는 청사진으로나마 엿본 소형 SUV를 직접 개발하기로 마음먹는다. 코드네임 ‘NB-7’의 스포티지 프로젝트다. 기아는 1991년 도쿄모터쇼에서 스포티지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세계 최초의 승용형 SUV로, 기아는 양산에 앞서 파리-다카르 랠리에 출전시켜 완주에 성공했다.

다카르랠리에 출전한 스포티지

스포티지는 1993년 정식 데뷔했다. 이후 토요타 RAV4(1994년)와 혼다 CR-V(1995년), 랜드로버 프리랜더(1997년)가 나왔다. 정작 포드는 2000년에서야 이스케이프로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스포티지는 강력한 험로주행 실력만큼 남다른 안전성도 지녔다. 세계 최초로 챙긴 무릎 에어백이 대표적이다.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을 쓰되 뒤 차축에 판스프링 대신 코일 스프링을 끼웠다. 또한, 지상고를 낮춰 승하차가 편했고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었다. 2002년 단종할 때까지 국내에서 약 9만 대, 해외에서 약 45만 대가 팔리며 기아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스포티지 컨버터블

기아의 첫 독자개발 승용차, 세피아

콩코드와 캐피탈 이후 기아는 새로운 세단 개발에 나섰다. 밑바탕으로는 마쓰다 323을 골랐다. 그러나 위기감을 느낀 마쓰다가 공급을 거절하면서 결국 기아는 ‘홀로서기’에 나섰다. 스포티지의 개발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 삼아 처음부터 온전히 자체적으로 설계하기로 결정했다. 총 개발비용은 5,300억 원. 세피아 프로젝트가 싹튼 순간이었다.

세피아

세피아란 이름은 ‘Style Economy Power Hi-tech Ideal Auto’의 앞 글자를 따서 지었다. 안팎 디자인은 물론 골격까지 기아가 개발했다. 1992년 나온 첫 모델엔 마쓰다의 직렬 4기통 1.5L 가솔린 엔진, 1997년 선보인 세피아Ⅱ엔 기아가 독자 개발한 1.8L 가솔린 T8D 심장을 얹었다. 당시 세피아의 라이벌은 현대 엘란트라와 대우 에스페로였다. ‘기술의 기아’답게 세피아는 동급에서 주행성능이 가장 뛰어났다.

 

고회전까지 맹렬히 돌릴 수 있는 1.5L 엔진과 튼튼한 차체 강성이 매력이었다. 일례로, 1995년엔 1세대 카레이서 박정룡이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 호주 대회에 세피아로 출전해 비개조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시장 반응 또한 폭발적이었다. 출시 후 12개월 만에 10만 대 판매를 달성했다. 캐피탈로 겪은 부진을 완벽히 씻어낸 셈이다. 특히 뉴 세피아는 최고출력 139마력을 뿜었고, 최고속도는 시속 196㎞로 국내 시장에서 ‘동급최강’이었다. 아쉽게도 양산까진 이르지 못했지만, 기아는 도쿄모터쇼에 세피아 컨버터블까지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세피아 후기형

1997년엔 2세대 세피아를 앞세워 현대 아반떼, 대우 누비라 등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이처럼 1980~1990년대의 기아는 열정적이었다.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 등 숱한 위기를 ‘기술’로 극복하며 국내 자동차 산업을 이끌었다. 1995년엔 ‘기아의 역작’ 중형차 크레도스를 선보이며 소형-준중형-중형-SUV-미니밴 등의 탄탄한 승용 라인업을 갖췄다. 크레도스 개발로 맺은 로터스와 인연은 엘란 생산, 로버와 엔진 공동개발로 이어졌다.(5부에서 계속)

 

글/강준기(로드테스트) 사진/기아자동차

 

*참고문헌 : <자동차 문화에 시동걸기|황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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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생 올해 30대 합류.’ 아마 올해 들어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사실을 보여준 가장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사람만 빨리 나이를 먹는 게 아니다. 자동차도 4~5세대 정도 진화한 모델은 이제 30년 안팎에 이르는 전통을 쌓아 올렸다. 1990년생이 벌써 30대라는 사실에 놀라듯, 자동차를 보면 눈부신 발전에 입을 다물 수 없다.

1988년 서울올림픽 성화봉송 행사 때의 모습(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경향신문, 1988.09.16))

 

1980년대 중반은 국산 중형 세단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때다. 그때 중형 세단과 지금 중형 세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의 폭이 크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크기도 많이 달라졌다. 당시 중형 세단은 꽤 큰 차라고 여겼는데, 지금 차와 비교하면 준중형 세단 크기에 불과하다. 지금 준중형 세단이 당시 중형 세단 크기이니, 당시 준중형 세단은 더 작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사람이 커지는 속도보다 차가 커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차는 왜 점점 커질까? 30년 동안 사람들의 평균 체형이 커졌으니 차가 커지는 것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새로 나온 차는 경쟁차, 그리고 구형보다 나은 점을 보여줘야 한다. 큰 차체는 곧 넓은 실내를 의미하니, 크기를 장점으로 내세우기 위해 세대를 거듭할수록 차체를 키웠다. 특히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은 큰 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같은 급이라도 이왕이면 더 큰 차를 원하는 욕구가 크다. 이유야 어찌 됐든 과거보다 지금의 차가 더 큰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커졌을까?


기아 콩코드(1987년)

 

1987년 자동차 산업 합리화 조치가 풀리면서 기아자동차는 승용차를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 기아차는 우선 소형차 프라이드와 함께 중형 세단 콩코드를 내놓았다. 이들 중 콩코드는 날렵한 쐐기형에 직선을 강조한 스타일로 역동적인 멋을 풍겼다. 퍼포먼스도 우수했는데 특히 고속도로 주행성능이 호평받았다. 기아차 중형 세단은 콩코드를 시작으로 크레도스, 옵티마, 로체, K5로 착실히 성장해 가고 있다.

2020년형 K5

 

콩코드부터 K5까지, 중형 세단의 진화

콩코드의 길이는 4,550mm로 지금의 K3보다 작았다

콩코드 초기형 모델의 길이는 4,550mm다. 현재 준중형 세단 K3와 비교해보자. K3의 길이는 4,655mm다. 비슷한 크기도 아니고 콩코드가 10.5cm나 짧다. 지금은 단종된 프라이드 세단의 길이가 4,370mm였으니, 30년 전 중형 세단의 크기는 요즘 소형차와 준중형차 중간 정도였다. 당시에는 콩코드도 당당한 중형차였는데, 믿기지 않는다.

단종된 프라이드 세단. 콩코드보다 휠베이스가 길다

실내 공간의 척도가 되는 휠베이스를 보자. 콩코드는 2,520mm, K3는 2,700mm, 프라이드 세단은 2,570mm다. 휠베이스만 놓고 보면 콩코드와의 비교 대상이 준중형 세단이 아니라 소형 세단이다. 그러면 당시 소형 세단은 얼마나 작았다는 말인가. 실제로 87년에 나온 1세대 프라이드의 길이와 휠베이스는 각각 3,565mm, 2,295mm로, 요즘 나오는 경차 모닝(길이 3,595mm, 휠베이스 2,400)보다 작다.

 

과거 중형차보다 큰 K3의 모습

 

폭은 콩코드 1,705mm, K3 1,800mm, 프라이드 세단 1,720mm다. 어림짐작으로 30년 전 중형 세단의 크기가 지금 준중형 세단 정도 되겠거니 했는데, 실제로는 소형 세단에 가깝다. 자동차 크기 변화가 얼마나 큰 폭으로 이뤄졌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반대로 지금 준중형 세단 K3가 얼마나 큰 차인지도 알 수 있다.

콩코드보다 30cm 이상 큰 K5. 30년 세월 동안 매년 1cm 이상 커진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 중형 세단은 도대체 얼마나 클까? K5의 길이는 4,855mm로 콩코드보다 30.5cm, 휠베이스는 2,805mm로 28.5cm 길다. 엄청난 차이다. 거의 1년에 1cm씩 자란 셈이다. 폭도 1,860mm로 10.5cm나 넓다. 요즘 중형 세단은 준대형급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커졌다는데, 과거 중형 세단과 크기를 비교하니 그 말이 실감 난다.


1992년 선보인 기아차의 준중형 세단, 세피아

현재 준중형 세단 K3가 과거 중형 세단보다도 두 체급 정도 더 큰 차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면 과거 준중형 세단은 크기가 어느 정도였을까? 기아차의 첫 준중형 세단은 1989년 나온 캐피탈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캐피탈은 중형 세단 콩코드의 변형 모델이어서 준중형으로 비교하기에는 살짝 무리가 따른다. 오히려 기아차 첫 고유 모델인 세피아가 비교 대상으로 알맞다.

세피아는 날렵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준중형차였다

세피아는 1992년 선보였다. 날렵한 스타일과 준수한 동력 성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플랫폼, 엔진, 디자인 등 모두 국산화한 의미 깊은 차다. 세피아는 스펙트라, 쎄라토, 포르테, K3로 이어지며 기아차 준중형 세단의 계보를 완성해가고 있다

 

도전으로 시작해 개성의 계단을 오르다

1boon.daum.net

세피아의 길이와 폭은 4,335mm와 1,695mm로 각각 4,655mm, 1,800mm인 K3와 비교하면 32cm와 10.5cm 차이 난다. 휠베이스는 각각 2,500mm와 2,700mm로 20cm 차이를 보인다. 콩코드와 K5의 차이가 크듯이, 세피아와 K3의 차이도 만만치 않다. 프라이드 세단과 비교하면 얼추 비슷하다. 프라이드 세단은 길이 4,370mm, 폭 1,720mm, 휠베이스는 2,570mm다. 세피아가 프라이드 세단보다 오히려 살짝 작다.

정리하면 준중형 세단 세피아는 요즘 소형 세단 크기이고, 중형 세단 콩코드는 소형과 준중형 사이에 자리 잡는다(준중형에 조금 더 가까운). 지금 차와 비교해서 한참 작은데 당시에는 어떻게 잘 타고 다녔을까? 요즘에는 준중형차도 작아서 가족차로 타기에는 부족하다는 얘기를 곧잘 한다. 혼자 타는 용도의 첫 차로 준중형차가 적당하고, 가족용 차는 최소한 중형 세단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30년 전만 해도 준중형 세단은 가족차로 충분했다. 아니 그보다 작은 소형차도 가족차 역할을 거뜬히 해냈다.

K5의 실내

사람들의 평균 체형이 커져서 작은 차는 타기 힘들어진 걸까? 연령대에서 키가 가장 큰 20~24세 기준으로 1979년~2015년까지 한국 남성의 신장은 167.7에서 174.2cm로, 여성은 155.5에서 160.9cm로 커졌다. 30년 동안 대략 5~7cm 정도 커진 셈이다. 자동차 안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공간은 키 외에도 다리 길이나 체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신체 치수 변화보다 차 크기 변화의 폭이 훨씬 크다.

과거 대형차보다 더 큰 K5의 뒷좌석

과거에 작은 차에 억지로 구겨 타면서도 만족했었는지, 요즘 차가 필요 이상으로 큰지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요즘 차들은 예전 차들보다 대시보드와 도어 트림 등 실내 곳곳의 내장재가 더 많이 들어가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여유로운 게 나쁘지는 않다는 점이다. 무엇이든 많으면 좋다는 ‘다다익선’에 빗대어 큰 게 좋다는 ‘거거익선’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한국차의 거주성과 안락성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자동차의 급을 새로 정비하지 않는 한 같은 차급에서 과거보다 큰 차를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지금의 추세로 봐서는 준중형차와 중형차가 다시 예전처럼 작아질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인다. 땅덩어리 작은 나라에서 차가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시장에서는 큰 차가 인기를 끈다. 새삼스레 요즘 차들의 크기에 감탄하며, 이젠 준중형차가 작아서 중형차로, 중형차가 작아서 준대형차로 바꾼다는 얘기는 자제하자. 그냥 ‘더 큰 차가 좋아서’라고 솔직해지자. 이미 한국차들은 세계 어느 시장에 내놓아도 동급 중에서 가장 큰 수준(특히 실내)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K-PLAZA 편집팀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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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우리나라 승용차 시장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한 차급은 중형 세단이었다. 지금도 거리로 눈길을 돌려 보면 오가는 차들 속에서 중형 세단을 찾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중형 세단 시장에서 업체들 사이의 경쟁은 SUV가 대세로 떠오른 지금도 치열하고, 한창 인기가 높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회사의 사활을 건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선택받을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은 정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많은 사람이 찾았던 만큼 자동차 업체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며 공들여 만들었고, 기아자동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기아가 지금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형 세단은 큰 역할을 했다.

기아차는 1987년 콩코드로 중형 세단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출처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그렇다면 과연 기아 중형 세단은 어떤 발전과정을 거치며 소비자들에게 매력을 인정받으며 지금에 이르렀을까? 기아차 성장의 기둥 역할을 해 온 지난 세대 모델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콩코드, 역동성의 뿌리를 내리다

콩코드(전기형)

기아의 이름으로 처음 선보인 중형 세단은 콩코드였다. 1981년에 시작된 정부의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가 1987년에 해제되어, 기아는 한동안 중단했던 승용차 생산을 다시 시작했다. 승용차 생산 재개 첫 타자는 수출주력 차종이었던 프라이드였고, 두 번째로 타석에 들어선 차가 바로 1987년에 나온 콩코드였던 것이다.

콩코드

콩코드는 당시 기아의 기술 제휴선이던 일본 마쓰다의 중형 세단인 3세대 카펠라/626을 국내 실정에 맞춰 손질한 모델이었다. 일본에서는 다음 세대 모델이 출시될 무렵이었던 만큼, 마쓰다는 사실상 한 세대 전 모델을 기아에 넘겨준 셈이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경쟁차보다 좀 더 보수적인 스타일과 작은 크기라는 약점을 안고 시장에 나왔다. 승용차 개발 경험이 부족했던 기아로서는 대안을 찾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콩코드(후기형)

그러나 콩코드는 차체가 작고 가벼운 데 비해 엔진 배기량은 당시 국내 중형 세단용 엔진의 표준이라 할 1.8L와 2.0L여서, 가속 성능은 윗급 차들을 넘볼 만큼 뛰어났다. 그리고 일본차 가운데에서도 핸들링 특성이 유럽차에 가까웠던 마쓰다 차에 바탕을 둔 덕분에, 주행감각의 역동성은 동급에서 돋보였다. 이런 특성은 1992년에 2.0L DOHC 엔진이 추가되면서 더욱 빛을 발했고, 그 덕분에 국내 모터스포츠 태동기에 콩코드는 여러 대회에서 상위권을 휩쓸 수 있었다.

콩코드의 광고

기아 중형 세단이 국내 동급 차들과 하나라도 다르거나 뛰어난 장비를 갖춘 것도 콩코드로부터 시작된 전통 중 하나다. 실내 공기배출구에서 나오는 바람 방향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스윙 루버 장치나 국내 오디오 전문 업체에서 개발한 3단 컴포넌트 오디오 시스템, 10방향 조절이 가능한 운전석을 갖춘 것은 콩코드에서 돋보이는 점이었다.

크레도스, 개성과 새로움에 도전하다

크레도스는 '클라루스'란 이름으로 수출되었다

이런 특징은 그 뒤에 나온 기아 중형 세단에 유전자처럼 남았다. 콩코드의 뒤를 이어 나온 크레도스는 콩코드와 달리 시대 흐름에 걸맞은 개념과 설계로 만들어졌는데, 당시 유행이었던 부드러운 곡면 중심의 디자인과 더불어 풍부한 편의장비와 넉넉한 실내공간으로 전반적인 상품성의 경쟁력이 높아졌다.

크레도스의 실내

그럼에도 크레도스에서 가장 돋보이는 특성으로 역동적 핸들링을 꼽는 사람이 많았다. 스포츠카로 유명한 영국 로터스의 계열사인 로터스 엔지니어링이 튜닝한 섀시는 안정감과 민첩성의 균형을 잘 잡아 ‘차를 모는 맛’이 남달랐다. 성능 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L 엔진은 콩코드의 것을 개량했지만, 처음으로 기아가 독자 개발한 1.8L DOHC 엔진을 얹어 엔트리 모델의 성능도 상위 모델에 뒤지지 않았다.

크레도스 2의 왜건형, 파크타운

판매량은 많지 않았지만, 크레도스는 국내 업체가 처음으로 독자 개발한 중형 왜건인 파크타운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또한, 페이스리프트한 크레도스 2에는 영국 로버와 공동개발한 V6 2.0L DOHC 엔진도 올려 주행감각의 고급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크레도스 2 출시에 즈음해 기아차가 어려움에 빠진 탓에, 한동안 기아는 중형 세단 시장에서 활력을 잃고 시장에서 입지가 크게 약해졌다.

옵티마와 로체, 반전을 위해 준비하다

옵티마

새 주인을 만난 기아는 옵티마로 기사회생을 시작했다. 옵티마는 현대와의 플랫폼 공유를 통해 만들어진 첫 중형 세단이었다. 옵티마는 한편으로는 여러 면에서 기아 중형 세단 가운데 개성이 약한 모델이기도 하지만, 선과 각을 살려 날카롭고 단단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으로 차별화해 나름의 개성을 살렸다.

옵티마 리갈

다른 한편으로는 어려운 시기를 겪은 뒤 짧은 시간 사이에 전반적인 제품 경쟁력이 경쟁차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으로 올라선 모델이라는 의미도 있다. 특히 옵티마는 기아가 처음으로 미국 시장에 자체 브랜드로 수출한 중형 세단으로, 품질과 성능 등 여러 면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방향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로체

기아차 중형 세단 계보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로체를 꼽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딱히 개성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었고, 상품성도 탁월하다고 하기 어려운 ‘무난한’ 차였기 때문이다. 사실 무난함은 폭넓은 소비자를 포용하기 위해 필요한 특성이기도 하지만, 어느 하나 두드러지게 좋은 면이 없다면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로체는 특히 디자인 면에서 부정적 영향이 컸지만, 전반적인 상품성 면에서도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만큼 돋보이는 면이 별로 없었다.

로체 이노베이션

물론 로체에게도 반전의 한 방은 있었으니, 페이스리프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로체 이노베이션은 최소한 겉모습으로 느낄 수 있는 차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당시 기아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해 디자인을 브랜드를 대표할 수 있는 자질로 키우기 시작했고, 그 첫 결실이 로체 이노베이션이었다. 완전한 변신은 아니었지만, 로체 이노베이션으로 기아 중형 세단의 이미지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K5, 글로벌 중형 세단으로 도약하다

1세대 K5

디자인과 더불어 상품성을 비롯한 제품 경쟁력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려 시너지를 이끌어낸 것은 뒤이어 나온 K5였다. 국내는 물론 북미와 중국 등 세단 선호도가 높은 시장에서 두루 인정받을 수 있도록 기아가 많은 공을 들인 차이기도 하다. 특히 기아는 K5에서 동급 차들에서 쉽게 돋보이기 어려운 역동성을 디자인을 통해 강렬하게 표현했다. 그 덕분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디자인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사실상 기아차 라인업 전체의 이미지를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 셈이다.

1세대 K5 2.0 T-GDi

출시 당시에는 가솔린, 디젤, 하이브리드, LPI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준비해 폭넓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대응했고, 나중에는 2.0 T-GDi 엔진을 얹은 고성능 모델도 내놓으며 빈틈을 채웠다. 즉 K5는 전체적으로는 중형 세단에 걸맞은 공간과 장비 구성에 세련된 디자인을 겸비함으로써 차의 가치를 높이는 한편,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관점에서 개성을 더함으로써 소비자가 중형 세단을 고를 때 ‘기아’라는 브랜드를 꼭 한 번은 고려하게 만들었다.

2세대 K5(전기형)

1세대 K5의 완성도 높은 디자인은 2세대로 넘어가며 한층 더 숙성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강한 파격이 돋보였던 1세대 디자인을 바탕으로 좀 더 정돈되고 안정된 느낌을 주도록 다듬은 외부, 세대와 성별, 취향을 아우를 수 있도록 차분한 분위기로 바뀐 실내는 차의 가치를 높인다. 특히 이전 세대보다 고급스러워진 내장재와 마무리, 인체공학적 배려 등은 전반적으로 높아진 기아차의 수준을 잘 드러낸다.

현재 판매 중인 더 뉴 K5

지금 국내 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중형 세단과 비교해도, 편의성과 안락함 측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을 찾기 어렵다. 크루즈 컨트롤 하나만으로도 주목받았던 콩코드와 달리, K5는 동급 최초로 선보인 고속도로 주행보조(HDA) 기능을 비롯해 다양한 첨단 주행보조 기술이 드라이브 와이즈라는 이름의 패키지로 적용되어 요즘 시대 중형 세단에 걸맞은 주행 편의성과 안정성을 제공한다. 그러면서도 정돈된 생김새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승차감은 중형 세단의 본질에 충실하다.


현행 K5의 뒷모습. 곧 신형이 나올 예정이다

소비자들이 중형 세단에 기대하는 바는 끊임없이 달라졌고, 아마도 지금이 그와 같은 변화가 가장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머지않아 모습을 드러낼 신형 K5는 그동안 중형 세단을 지켜본 소비자들이 주목할 만한 차다. 소비자들은 30년 넘게 시장에서 경쟁과 노력을 통해 갈고닦은 기아의 중형 세단에 대한 생각과 철학이 얼마나 더 발전했는지 곧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류청희 (자동차 평론가)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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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 1990년대 중반에 선보인 화장품 광고 문구인데, 지금 사용한다 해도 전혀 시대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도발적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 광고 문구 중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수작으로 꼽힌다.

사람은 누구나 향기를 풍긴다. 향수나 화장품, 샴푸, 비누, 세제 등 냄새나는 물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향기가 나지 않을 수 없다. 향기는 좋은 냄새를 뜻한다. 위생 관리가 철저하지 못하거나 땀을 많이 흘릴 때 나오는 좋지 않은 냄새를 향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만족은 물론 상대방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향기를 풍기려고 노력한다. 향기는 꼭 코로 맡는 냄새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풍기는 분위기나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이미지 등을 향기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한다. 향기는 누군가를 대했을 때 받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도 냄새가 난다. 실내에 들어서면 가죽이나 플라스틱 냄새가 나고 바깥에서는 연료가 타는 냄새, 엔진룸에서는 기름 냄새가 난다. 이런 실제 냄새가 아닌 분위기나 이미지를 향기로 표현하기도 한다. 자동차라는 제품에서 범위를 확장해 브랜드도 특정한 향기를 내뿜는다. 브랜드 색깔, 특징 등으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정확하게 규정해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브랜드 하면 딱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이 곧 향기라 할 수 있다. 

브랜드의 향기는 인위적으로 형성되기도 하고, 전통이나 특색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제품을 직접 경험한 고객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특정 이미지가 부각되거나, 차를 보는 사람들의 평가가 대체로 일치하면서 특정 이미지가 굳어지기도 한다. 향기는 불변은 아니어서, 오래도록 같은 향기를 내는가 하면 시대 흐름에 따라 향기가 달라질 때도 있다. 

기아자동차는 1944년 경성정공으로 시작해 1962년부터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자동차 제조 역사만 거의 60여 년에 이른다. 그동안 기아차가 풍기는 향기도 조금씩 달라졌다. 국내 모터리제이션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살펴보자.

 

 

1st 향기: 기술의 기아

 

 

기술의 기아는 20세기 기아차를 대표하는 향기였다. 1974년 소형차 브리사를 내놓을 때는 해외 모델을 들여와 만들었지만, 국산화율이 90%에 이르렀다. 1987년에 선보인 중형 세단 콩코드는 고속도로의 제왕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고속주행 성능이 우수했다. 1992년 선보인 세피아는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플랫폼을 독자 개발했다. 플랫폼까지 국산화한 진정한 최초 고유 모델이다. 1995년에 나온 크레도스는 핸들링이 좋다고 인정받았다. 1996년 선보인 엘란도 로터스로부터 판권을 사와 만들었는데 국산화율이 85%에 달했다. 요즘 말로 하면 이과 냄새 폴폴 풍기는 기술 지향적인 브랜드였다. 역동성을 강조하는 브랜드의 시초를 보면 으레 창업자가 엔지니어 또는 레이서 출신이다. 기아차 창업자도 엔지니어 출신이라 기술을 중시하는 풍조가 일찍부터 자리 잡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2nd 향기: 모험의 기아

 

 

 

 

모험의 기아. 기아차를 보면 유독 특별한 차가 눈에 띈다. 틈새 중의 틈새 또는 소수 마니아를 위한 차, 다른 브랜드에서는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차들이다. 도전 정신과 모험 정신 없이는 만들어 낼 수 없다. 1993년 선보인 스포티지는 SUV의 개념을 도심형으로 바꿔 놓는 시초였다. 1996년 나온 엘란은 요즘에도 국산차 브랜드가 시도하지 못하는 정통 스포츠카에 뚜껑이 열리는 자동차다. 24년 전에 이런 차가 국산차 브랜드로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소문에 의하면 대당 1,500만원씩 손해를 보고 팔았다고 하니, 스포츠카를 보급하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낭만마저 느껴진다. 이후에도 박스카 쏘울, 박스형 경차 레이, 4도어 쿠페 스팅어, 5도어 쿠페형 해치백 K3 GT 등 기아차는 다른 국산 브랜드가 시도하지 않는 차를 꾸준히 내놓았다. 보통의 의사결정으로는 만들기 힘든, ‘기아’이기에 가능한 도전의 산물이다.

 

 

3rd 향기: 디자인 기아

디자인 기아는 기아차가 체질 개선을 위해 의도적으로 향기를 바꾼 사례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피터 슈라이어 등 해외 인재를 영입해 과감하게 디자인을 바꾸는 작업을 시도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전 디자인을 싹 갈아엎어 호랑이코 그릴을 적용하고 직선의 단순화를 실현해 기아차만의 디자인 정체성을 확립하고 수준을 대폭 올렸다. 국산차 브랜드 중에서는 일관되게 확고한 디자인을 보여주며, 가장 세련되고 앞선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4th 향기: RV 기아

 

 

 

RV 기아는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풍기는 진한 향기다. 1980년대 ‘봉고 신화’를 일으키며 ‘다인승차 = 기아’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1998년 등장한 미니밴 카니발은 현재까지 독보적인 국산 미니밴 원톱 자리를 지킨다. 프레임 바디 모하비는 정통 SUV 시장을 지키고, 스포티지와 쏘렌토는 패밀리 SUV로 꾸준한 인기를 이어간다. 니로, 쏘울, 스토닉, 셀토스 등 소형급에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는 등 RV 시장을 주도하며 RV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SUV 전성시대가 오면서 기아차의 SUV의 향기가 더욱 진하게 널리 퍼지고 있다. 

 

 

5th 향기: 프리미엄 기아

 

 

 

 

 

프리미엄 기아는 현재 진행형이면서 앞으로 기아차가 더욱 진하게 풍길 향기다. 고급화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화두다. 소비자들의 눈이 높아지고 희소한 가치를 찾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대중차를 타던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프리미엄 시장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대중차 브랜드인 기아차도 트렌드에 맞춰 고급화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디자인 정체성이 강한 점도 고급화에 유리한 요소다. 별도로 고급차 브랜드를 두지는 않지만, K9이나 K7, 모하비, 스팅어 등 준대형급 이상은 국산 고급차로 인정받는다. 대중차 브랜드 특성상 고급차 브랜드로 완전히 넘어가지는 않겠지만, 준프리미엄 브랜드 지위는 노려볼 만하다. 국산 대중차 브랜드 중에서는 가장 고급화가 잘 된 브랜드라 할 만하다. 

임유신(자동차 칼럼니스트)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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