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미국에서 만난 미국식 럭셔리 SUV, 링컨 에비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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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와인 생산지 나파 밸리에서 링컨의 새로운 7인승 SUV 에비에이터를 만났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꿈같은 만남이었다

“제 임무는 우리의 ‘고요한 비행’ DNA가 모든 요소에 녹아들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링컨 에비에이터의 개발을 총괄한 존 데이비스 수석 엔지니어가 소파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등을 앞으로 숙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2015년부터 에비에이터 개발에 합류했다. 그러니까 그에게 에비에이터는 자식과 같은 존재다.

에비에이터는 트림에 따라 두 종류의 프런트 그릴을 단다. 그랜드 투어링은 가운데 링컨 로고가 파랗고, 블랙 레이블은 검은색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북동쪽으로 100km 남짓 떨어진 나파 밸리. 1800곳 이상의 크고 작은 와이너리가 있는 미국 최대 와인 생산지에서 링컨의 새로운 7인승 SUV가 전 세계 기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비에이터를 만나러 가는 길은 특별했다. 링컨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뒤편에 헬리콥터를 대기시켰다. 나파 밸리에서 가까운 나파 군 공항이 1차 집결지였다. 나파 군 공항에 도착하자 이번엔 새빨간 노틸러스가 우리를 맞았다. 노틸러스 뒷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끝없이 이어진 포도밭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노틸러스 뒷자리가 이렇게 안락했던가?’

시승 행사에서 존 데이비스 엔지니어를 다섯 번쯤 마주쳤다. 첫 만남에서는 가볍게 인사만 건넸다. 두 번째 만났을 땐 저녁 만찬에서였는데, 옆에 앉은 캐나다 기자들이 질문 공세를 퍼붓느라 그를 놔주지 않았다. 세 번째 만났을 땐 작정하고 그를 소파에 주저앉혔다. 그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에비에이터는 2018 LA 오토쇼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노틸러스와 내비게이터 사이를 메우는 7인승 SUV로다. 사실 에비에이터는 링컨에 없던 모델이 아니다. 2002년 링컨은 내비게이터의 아랫급으로 에비에이터를 출시했다. 하지만 링컨이 MK로 시작하는 새로운 작명법을 채택하면서 2005년 생산을 마감하고, 2007년 이름이 MKX로 바뀌었다.

13년 만에 이름을 되찾은 에비에이터는 얼굴은 물론 실내와 파워트레인까지 완전히 달라졌다. 휘발유 모델은 V8 4.6ℓ 엔진이 V6 3.0ℓ 터보 엔진으로 교체됐다. 실린더 두 개를 떼어냈지만 최고출력은 306마력에서 400마력으로 오히려 높아졌다. 새로운 건 이전에 없던 PHEV 모델이 추가됐다는 거다. 링컨은 PHEV 모델에 그랜드 투어링이란 이름을 붙였다. 13.6kWh 배터리를 바닥에 깐 에비에이터 그랜드 투어링은 모터와 엔진이 힘을 합해 최고출력 494마력을 낸다. “먼 거리를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고성능 자동차를 그랜드투어링카라고 합니다. 500마력에 가까운 성능을 내는 에비에이터 PHEV 모델이야말로 그랜드 투어링이란 이름을 붙이기에 적당하죠. 단언컨대 가장 발전된 하이브리드 기술을 품었습니다.” 존 데이비스 엔지니어의 말이다.

두 모델은 겉모습이 거의 비슷하다. 행사장에서 만난 휘발유 모델은 링컨 로고를 형상화한 벌집 모양 그릴을, 그랜드 투어링은 링컨 로고가 양각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그릴을 달았다. 하지만 그릴은 파워트레인이 아닌 트림에 따라 달라진다. 모델에 따라 가운데 링컨 로고의 바탕색은 다르다. 그랜드 투어링은 파란색, 블랙 레이블은 검은색이다. 그랜드 투어링은 옆구리에 새긴 에비에이터란 글자도 파랗게 칠했다. 실내에서 크게 다른 건 없다. 둘 다 같은 섀시를 썼기 때문이다. 바닥에 배터리를 깔지 않은 휘발유 모델은 그 공간을 그냥 빈 채로 뒀다.

“새로운 에비에이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고객 중심의 설계와 디자인을 적용하는 일이었습니다. 링컨이라는 브랜드에 걸맞은 고급스러운 실내와 움직임, 작은 것까지 배려하는 디테일에 초점을 맞췄죠.” 데이비스 엔지니어의 말처럼 에비에이터 곳곳에서 크고 작은 배려를 발견할 수 있다. 스마트키를 지닌 채로 차에 접근하면 헤드램프 아래 웰컴 라이트가 켜지고, 에어 글라이드 서스펜션을 얹은 모델은 차체를 스르륵 낮춰 운전자를 맞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도어를 열면 발 아래 링컨 로고 모양의 퍼들 램프를 쏴준다.

실내는 충분히 여유롭고 고급스럽다. 운전대와 시트, 대시보드도 모자라 도어 안쪽과 센터터널까지 가죽을 넉넉히 둘렀다. 시승차는 천장을 부드러운 알칸타라로 휘감았다. 센터페시아에서 눈에 띄는 건 기어변속 버튼이다. 센터페시아 왼쪽에 세로로 놓여 있던 링컨의 기어변속 버튼이 송풍구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버튼 배치도 세로가 아니라 가로다. 크롬 장식을 두른 버튼에 살짝 손가락을 올리고 아래로 내리면 P, R, N, D로 기어가 바뀐다. 손맛을 주기 위해 레버 끝에 가로로 홈을 팠는데 그래서 누르는 느낌이 한결 좋다. 주차 버튼을 넓게 만든 배려도 눈에 띈다. 기어변속 버튼 아래에는 오디오를 조작하거나 차 안 온도를 조절하고, 열선과 통풍 시트를 켤 수 있는 버튼이 가지런하다. 반들반들한 우드그레인에 둘러싸인 버튼에서 고급감이 물씬 느껴진다. 기어변속 레버를 버튼으로 만든 덕에 센터페시아 아래 수납공간이 생겼다. 바닥에 링컨 로고를 새긴 고무를 깔아 물건이 쉽게 떨어지지 않도록 배려한 것도 흐뭇하다.

센터페시아 디자인이 심플하면서 우아하다. 기어 변속 버튼이 송풍구 아래 가로로 자리를 옮겼다.

몸길이 5m가 넘는 대형 SUV의 큰 장점은 차고 넘치는 수납공간이다. 에비에이터도 예외는 아니다. 센터터널에 500㎖ 페트병을 서로 부딪치지 않고 꽂을 수 있는 컵홀더가 두 개 놓였고, 그 옆에는 접이식 우산 두 개쯤 거뜬히 삼킬 만한 수납공간이 마련됐다. 그 뒤로 티슈 상자를 꿀꺽 삼키고도 남을 센터콘솔이 자리하는데 그 안에 휴대전화 무선충전 패드가 있다. 롤스로이스 컬리넌처럼 옆으로 꽂는 방식이라 공간을 크게 차지하지 않는다. 시승차는 7인승이 아닌 6인승이라 2열 시트 사이에 가죽 시트 대신 커다란 센터콘솔이 놓였다(국내에는 센터콘솔 대신 시트가 달린 7인승 모델이 들어올 예정이다). 앞쪽에 온전한 컵홀더 두 개를 챙긴 센터콘솔은 앞자리 센터콘솔처럼 수납공간이 넉넉하다. 앞쪽 센터콘솔 뒤엔 2~3열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작은 스크린과 송풍구가 달렸다. 리모컨이 없어 팔을 앞으로 쭉 펴 조작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송풍구를 크롬으로 감싼 건 근사하다. 송풍구 아래에는 왼쪽에 C 타입을 포함한 USB 포트 두 개, 오른쪽에 130V 콘센트가 있다.

6인승 모델은 시트 가운데 큼직한 센터콘솔을 챙겼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7인승 모델만 들어온다.

독립 시트가 두 개 달린 덕에 2열 공간은 한층 여유롭다. 2열 시트는 어깨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앞으로 물러나면서 등받이가 접힌다. 3열 시트는 트렁크에 달린 버튼으로 접을 수도 있다. 각각 나눠 접는 것도 가능하다. 3열 공간이 무척 넉넉한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아우디 Q7처럼 어른이 앉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2열까지 시트를 모조리 접으면 광활한 트렁크 공간이 펼쳐진다. 3열 시트 하나만 접어도 세로로 골프백 두 개쯤은 실을 수 있다.

먼저 휘발유 모델의 운전대를 잡았다. 커다란 차체가 매끈하게 움직인다. 크루징하듯 여유롭고 우아한 움직임이다. 포드와 링컨은 노이즈캔슬링 기술을 자동차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브랜드다. 그 덕에 실내는 한없이 고요하다. 엔진 소리가 크게 들이치지 않아 실제 속도를 단박에 체감하기가 어렵다. 난 시속 100km로 여유롭게 달리는 것 같은데 속도계는 어느새 150을 넘고 있다. 휘발유 모델답게 가속은 경쾌하다. 그렇다고 작은 SUV처럼 촐랑대듯 속도를 높이진 않는다. 커다란 몸집에 걸맞게 지그시 속도를 높인다. 구불거리는 산길에서는 뒷바퀴가 슬쩍 방향을 잃고 허둥대기도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다.

에비에이터는 달리는 중에 예상치 못한 구덩이나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을 만나면 이를 먼저 감지해 서스펜션을 조정하는 어댑티브 서스펜션이 처음으로 적용됐다. 에어 글라이드 서스펜션을 얹은 모델은 이 기능을 발휘하는데 앞쪽에 달린 카메라와 12개의 센서가 도로 상황을 끊임없이 감시해 최대 80cm까지 스스로 높이를 조절하고, 댐핑값을 조정한다. 최대한 안락한 승차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다. 운전자는 신경 쓸 게 하나도 없다. 모든 모드에서 가능하기에 따로 모드를 설정할 필요도 없다. 참고로 휘발유 모델에는 노멀과 컨서브, 익사이트, 슬리퍼리, 딥 컨디션의 다섯 가지 주행 모드가 있다. 컨서브는 연료 효율을 높이며 달리는 주행 모드이고, 딥 컨디션은 눈이 쌓인 길에서 유용한 주행 모드다. 그랜드 투어링에는 다섯 가지 주행 모드에 퓨어 EV와 프리저브 EV가 더해졌다. 퓨어 EV는 이름처럼 배터리로만 달릴 수 있도록 강제하는 주행 모드이고, 프리저브 EV는 고속도로에서 에너지를 좀 더 많이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주행 모드다.

개인적으로 휘발유 모델보다 그랜드 투어링의 주행 감각이 더 좋았다. 배터리를 바닥에 깔고 있어 무게중심이 낮아진 덕에 움직임이 한층 안정적이다. 익사이트 모드에선 엔진 소리가 좀 더 사나워져 가속 느낌도 제법 화끈하다. 커다란 SUV가 춤추듯 살랑살랑 옆구리를 흔들며 구불구불한 산길을 신나게 내달린다.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린 스포츠카를 몰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색다른 즐거움이다. 그러다 퓨어 EV로 주행 모드를 바꾸면 언제 그렇게 내달렸냐는 듯 고요하고 매끈해진다. 바퀴 구르는 소리만 나직하게 들릴 뿐 아무 소리도 차 안으로 들이치지 않는 게 생경하다.

“퓨어 EV 모드로 약 35km를 갈 수 있습니다. 배터리를 더 많이 넣으면 주행거리가 길어질 테지만 그만큼 무게가 늘어납니다. 한정된 섀시에 배터리를 넣는 것도 문제죠. 우린 에비에이터 그랜드 투어링에 13.6kWh 배터리가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차는 효율적인 연비만을 위해 PHEV로 만든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성능에 좀 더 초점을 맞추기 위해 배터리를 넣었죠.” 데이비스 엔지니어의 말처럼 그랜드 투어링은 제대로 성능을 보여줬다.

신형 에비에이터는 새로운 파워트레인 말고도 챙긴 게 많다. 스마트폰을 자동차 키처럼 쓸 수 있는 ‘폰 애즈 어 키(Phone as a Key)’는 잠금을 해제하거나 트렁크를 열고 시동을 거는 등의 기본적인 기능 말고도 시트나 운전대 위치 등을 조절할 수 있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방전돼 쓸 수 없을 땐 B 필러 위쪽에 있는 키패드에서 잠금을 해제한 다음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에서 백업 코드를 입력해 시동을 걸 수 있다. 레벨 울티마 3D 오디오 시스템은 천장에 두 개, 앞자리 도어 위아래에 하나 등 모두 28개의 스피커가 생생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만든 경고음도 새롭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귀를 찌르는 ‘삐비비빅’ 소리 대신 첼로와 실로폰이 어우러진 경고음이 울린다. 이 밖에 코 파일럿 360 플러스는 진화된 안전 기술과 준자율주행 기술을 자랑한다. 스스로 차선 가운데로 달릴 뿐 아니라 앞차가 멈추면 따라 멈추고 출발하면 따라 출발하는 스톱 앤 고 시스템도 발휘한다. 후진 브레이크 어시스트는 후진할 때 뒤쪽에 보행자나 장애물을 감지하면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아 완전히 멈춘다.

에비에이터는 럭셔리 대형 SUV가 갖춰야 할 덕목을 고루 챙겼다. 그러면서 달리는 즐거움도 놓치지 않았다. 존 데이비스 엔지니어는 임무를 100%, 아니 150% 완수했다. 에비에이터는 올해 말 국내에 들어온다. 다시 만날 날이 무척 기다려진다.

글_서인수

 

 

CREDIT

EDITOR : 서인수    PHOTO : 포드 링컨 코리아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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