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신진지프에서 쌍용자동차까지 파란만장했던 30여 년 - 국산 4WD의 초석을 마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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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4WD의 대명사로 불러도 좋을 코란도. 1974년 지프 CJ-7을 바탕으로 만든 신진지프에서 출발해 83년 거화, 86년 동아와 88년 쌍용자동차를 거치면서 착실하게 WD 시장을 일구어 왔다. 거화 시절, 이스즈의 디젤 엔진과 승용차보다 두꺼운 강판·프레임을 써서 안전한 차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96년 모델 체인지를 거치면서도 코란도라는 이름은 그대로 이어졌다. 10월 은퇴를 앞둔 코란도의 30여 년 일생은 국내 4WD 역사와도 같다

1955 시발, 최초의 국산차
코란도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시발은 최초의 국산차이고 박스형 SUV의 원조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55년 10월, 해방 10주년을 기념해 경복궁에서 열린 산업박람회를 통해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가 선보인 최초의 국산차다.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는 서울 가회동 부잣집 3형제 최무성·혜성·순성이 1954년 세웠다. 이들은 1946년부터 미군 트럭을 재조립하던 기술을 바탕으로 고유모델을 만들어 국내 자동차공업의 시발점을 마련했다. 폐차된 미군 지프나 트럭 부품을 가져다 조립하고, 차체는 드럼통을 망치로 펴서 만들었다. 하지만 엔진만큼은 숱한 실패 끝에 직접 제작해 얹었다. 2도어 보디에 직렬 4기통 휘발유 엔진과 전진 3단, 후진 1단 트랜스미션을 얹고, 2개의 앞좌석과 벤치형태의 뒷좌석을 달았다.
이 차는 1956년 2월부터 58년 5월까지 522대가 만들어져 택시 등 영업용으로 주로 쓰였다. 5·16 쿠데타로 권좌에 오른 박정희가 1962년 닛산 블루버드 400대를 들여와 ‘새나라’ 택시로 푸는 바람에 시발 제작사는 2년 뒤 문을 닫고 말았다.

1974신진지프, 국내 4WD 역사의 태동
국산 4WD의 본격적인 태동은 1970년대에 이루어진다. 1974년 4월 미국 AMC(America Motor Company) 그룹의 지프 디비전과 신진자동차가 반씩 투자해 세운 신진지프가 주역이다. 신진지프는 1974년 9월 부산 주례공장에서 국내 최초의 4WD ‘신진지프’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다. 지프 CJ-7을 국내에서 조립하는 방식이었다. 직렬 6기통 3.8X 100마력 휘발유 엔진을 얹은 신진지프는 하드톱과 밴, 픽업 등으로 선보여 관공서 및 산업현장, 민간시장에서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3.8X 엔진의 신진지프의 인기는 1973년 시작된 석유파동으로 인해 오래가지 못했다.
좀더 경제적인 엔진이 필요했다. 78년 8월, 신진지프는 직렬 4기통 2.8X 85마력 디젤 엔진(4B A1) 개발에 성공한다. 승용 겸 화물차로 분류된 SR-7·SR-9 훼미리를 비롯해 4인승 하드톱·소프트톱 수퍼스타, 6인승 패트롤·밴 등이 4B A1 디젤 엔진을 얹고 나왔다. 당시 ‘수퍼스타’라고 하면 디젤 엔진을 얹은 지프로 통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4WD SUV=디젤’이라는 국내 시장의 등식도 수퍼스타에서 시작된 것이다.
신진지프는 78년, 1천 대의 지프를 아프리카 리비아에 수출한다. 냉전체제에서 ‘공산권 국가와 거래하는 나라와는 손잡지 않겠다’는 방침을 갖고 있던 AMC는 일방적인 계약파기를 선언한다. ‘지프’(Jeep) 상호도 5년 뒤인 83년까지만 쓸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신진지프는 1979년 3월 신진자동차(주)로 이름을 고치고 독자 메이커로 전환한다.

1983 거화 코란도의 탄생
신진자동차는 1981년 다시 (주)거화(巨和)라는 이름으로 거듭난다. 거화는 AMC의 직렬 6기통 3.8X 휘발유 엔진과 신진지프 시절 만든 4B A1 디젤 엔진을 얹은 9가지 모델을 앞세워 크게 성장한다. 83년에는 훼미리를 고급스럽게 꾸민 훼미리 디럭스를 선보였다. 이때부터 ‘Jeep’ 로고 대신 ‘KORANDO’라는 이름표가 붙는다. AMC와의 계약기간이 끝나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 코란도는 ‘한국인은 할 수 있다’(Korean Can Do)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Korean Do It’, ‘Korean Land Over’, ‘Korean Land Dominator’ 등의 뜻도 담겨 있다. 한국형 네바퀴굴림차 또는 한국 지형에 가장 잘 맞는 4WD라는 의미다.

1985 국산 4WD의 대명사로 자리 잡아
거화는 85년 3월, 새롭게 다듬은 코란도 여섯 모델을 선보인다. 이때까지 나온 코란도 가운데 가장 고급스런 모델이었다. 주력은 여섯 명이 탈 수 있는 3도어 하드톱과 4인승 소프트톱. 이밖에 3인승 3도어 밴과 관공서 납품용으로 만든 5인승 2도어, 9인승 3도어 그리고 앰뷸런스 등이다.
당시 거화는 투박한 지프형이 아닌 승용차 타입을 특히 강조했다. 광고문구에도 승용차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4WD’임을 내세웠다. 선택장비로 파워 스티어링도 마련했다. 필요에 따라 뒷바퀴굴림으로 탈 수 있도록 앞바퀴에 원(WARN)사의 허브록 장치를 달고, 빠른 시동을 위해 순간자동점화장치도 마련했다.
가장 큰 변화는 엔진이었다. 일본 이스즈제 직렬 4기통 1천949cc 105마력 휘발유 엔진(G200Z)과 직렬 4기통 2천238cc 디젤(C223) 두 가지를 얹었다. 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한 디젤 모델은 최고출력 73마력/4천300rpm, 최대토크 14.2kg·m/2천400rpm, 압축비 21.0, 시속 60km 정속주행 연비 11.81km/X를 자랑했다. 최고시속은 110km.
이스즈 디젤 엔진은 신진지프 시절 개발한 4B A1보다 가벼워 차무게를 100kg이나 줄였다. 이 때문에 스티어링 휠의 감각도 한층 부드러워졌다. 또 ㅁ자형 2.5mm 특수강 프레임을 바탕으로 루프와 보닛 1.2mm, 사이드 패널·도어·대시보드 및 플로어 패널은 1.6mm 강판을 써서 강성을 높였다. 당시 승용차의 강판은 0.8mm 안팎이어서 안전성이 큰 이슈로 떠오른 시기였다. 베이지, 파랑, 진초록, 연한 갈색, 회색 등 갖가지 컬러를 쓴 것도 새차의 특징이었다. 이를 계기로 코란도의 인기가 수직 상승하면서 4WD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된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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