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외모 속에 비현실적인 성능을 품고 있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 PERFORMANCE
맥라렌이 궁금했다. 전에 570S 스파이더를 타 본 적이 있었지만 너무 잠깐인지라 제대로 느껴 볼 수 없었다. 이번에 제대로 맥라렌을 탔다. 그것도 720S 스파이더를∙∙∙. 모델명에서 알 수 있듯이 최고출력 720마력짜리 슈퍼카다. 파워 유닛은 V8 4.0ℓ 트윈 터보 엔진이며 최대토크 역시 무려 78.6kg·m다. 이 괴력은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통해 뒷바퀴를 굴린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9초로 3초가 채 되지 않는다. 시속 200km까지는 7.9초, 최고시속은 341km에 달한다. 만약 톱을 열고 달린다면 시속 325km까지 달릴 수 있다. 브로셔에 적힌 수치만 보면 비현실적이라 와 닿지 않는다.
직접 달려보자. 가속력은 폭발적이다. 이 녀석보다 빠른 녀석을 공도에서 만날 일은 없다. 트랙션을 완벽하게 잡아 놓은 선비 세팅이 아니다. 고의적으로 운전자의 실력을 드러내고자 한다. 종종 맥라렌은 감성적이지 못하고 차가 알아서 다해줘 재미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한곗값 근처에서 놀아보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그리고 포르쉐의 전 라인업을 경험해봤는데 맥라렌이 가장 날 것이다. 슈퍼카를 넘어 레이스카다. 엔진 리스폰스만 보더라도 자비가 없다. 터보 엔진인지라 터보랙은 살짝 느껴지지만(집중하지 않으면 눈치챌 수 없다) 엔진 자체의 스로틀 반응 속도는 환상적이다. 여기에 변속기는 박력 터지는 변속 충격을 주는데 스티어링 휠 정렬이 되어 있지 않으면 트랙션이 살짝 흐트러질 정도다. 슈퍼카에 이러한 변속감은 필수적인데 맥라렌은 사나이를 위한 로직을 변속기에 입혔다.
당연하겠지만 고속에서도 힘은 남아돈다. 그 끝을 알 수 없다. 아무리 700마력이든 800마력이든지 간에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가속, 또 가속, 그리고 또 가속을 하면 그 가속력의 기세가 빠지기 마련인데 720S 스파이더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속안정감도 뛰어나 자신 있게 속도를 올릴 수 있다. 차체가 노면에 밀착되는 느낌이 달콤하다. 거듭 말하지만 진짜 빠르다. 이보다 출력이 높은 차들도 많이 타 봤는데 720S 스파이더가 가장 강한 것 같다. 또한, 지난달 시승했던 포르쉐 911 터보 S와 비교해 보자면 결이 다르다. 911 터보 S는 누구든지 빠르게 탈 수 있지만 맥라렌은 운전자를 가린다. 트랙 경험도 많고 드리프트도 할 줄 안다고 해서 섣불리 덤비면 안 된다. 친해질 시간이 필요한 녀석이다.
스티어링 피드백은 빠르고 솔직해 휘젓는 맛이 있다. 코너에 들이대 본다. 주행안정화장치가 활성화되어 있음에도 이른 탈출에는 약간의 슬립을 허용한다. 워낙 무게중심이 낮고 섀시 밸런스가 훌륭해 슬립이 시작하는 순간이 운전자 엉덩이에 아주 천천히 다가와 카운터를 잡기는 수월하다. 한편 코너링 성향은 언더스티어다. 허나 벗어나는 범위가 크지 않아 농도가 연한 언더스티어라 할 수 있다. 이상적인 라인을 그리기 위해서는 진입 속도만 잘 낮추면 누구보다 빠르게 탈출할 수 있다. 엄청난 파워의 후륜구동이지만 리어 타이어 그립이 좋아 코너를 벗어나면서 가속 페달을 조금 일찍 밟아도 리어 트랙션이 유지된다. 게다가 카본 터브 구조의 이점으로 복합코너에서 섀시가 엉키는 일이 없다. 한쪽으로 쏠린 중량을 반대쪽으로 넘기는 리듬이 준수하다.
시승을 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브레이크 시스템이다. 제동 성능은 후에 언급하고 먼저 페달 답력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양산차라고는 믿을 수 없는 본격 레이스카 수준의 답력과 스트로크다. 스트로크가 극단적으로 짧고 답력이 강해 적응하기 힘들다. 익숙해지면 이는 스포츠 드라이빙에 최고의 무기가 된다. 미세한 브레이킹 컨트롤이 가능하다. 물론 브레이킹 퍼포먼스 자체도 훌륭하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은 출력과 섀시를 채찍질하기 충분하다. 브레이크스티어 혹은 노즈다이브 현상을 완벽하게 억제했다. 가변 리어 스포일러가 에어 브레이크 역할까지 하니 아무리 브레이크 페달을 세게 밟아도 뒤가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도 지치지 않으며 코너를 돌면서 브레이킹이 걸려도 차체가 안쪽으로 말리지 않는다. 환상적이다.
격렬하게 달리고 나와 차 모두 쿨링에 들어간다. 인제야 루프를 열어본다. 하드톱이지만 변신 시간이 11초로 짧다. 시속 50km까지는 달리면서 작동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강성 이슈 때문에 고성능 모델 혹은 슈퍼카 오픈톱 모델을 선호하지 않는다. 아무리 트랙이 아닌 공도에서 설렁설렁 탄다고 해도 이 비싼 차를 오랜 시간 소장하고 싶은데 섀시에 스트레스가 많이 가는 건 원하지 않는다. 일례로 같은 모델의 쿠페형과 오픈톱형은 신차 컨디션에서는 딱히 주행감 차이가 크지 않지만 5년 정도 지나니 가벼운 일상적인 주행에도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반면 720S 스파이더는 카본 터브를 베이스로 하다 보니 몇 년이 지나도 이 컨디션을 유지할 것 같다.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슈퍼카 오픈톱 중에서는 가장 뒤틀림이 적었다. 공도에서 섀시 강성을 운운하는 게 웃기지만 개인적으로 앞머리 반응에 뒤가 얼마나 잘 쫓아오는가, 그리고 앞뒤 횡진동 박자가 정박으로 맞아떨어지는지를 보고 판단한다. 720S 스파이더는 잘 쫓아오고 잘 맞아떨어졌다.
# DESIGN
차를 잠시 세우고 시원한 커피 한잔 들이키며 720S 스파이더를 감상한다. 보편적인 미의 기준에서는 벗어나 있는 듯하다. 난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기에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 해서 다 와닿지 않는다. 봐도 봐도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다. 맥라렌이 그러하다.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 디자인한 듯한 인상을 준다. 나쁜 의미가 아니다. 다른 슈퍼카 브랜드 디자인과 차별화가 되어 난 환영이다. 덕분에 도로 위에 존재감이 상당하다. 최근 전기차들이 우주선 소리를 내면서 달리는데 이 녀석은 그냥 우주선 그 자체다.
근사한 버터플라이 도어를 열고 달리느라 구경하지도 못한 실내를 자세히 훑어본다. 카본 터브 구조지만 승하차가 힘겹지 않다. 이전 세대 터브보다 문턱의 높이가 낮아졌다. 엉덩이를 스치는 부분에 가죽이 덧대어져 있어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듯이 타고 내릴 수 있다.
스티어링 휠에는 그 어떤 버튼도 있지 않다. 오직 조향 명령만 내리기 위한 파츠다. 기어 시프터는 양쪽이 하나로 이어져 있어 한 손으로도 기어를 올리고 내릴 수 있다.
디스플레이는 트랙 모드에서 변신하는데 신기하면서 멋있다. 벤틀리에도 로테이팅 디스플레이가 달려 있는데 이런 것 보면 영국차들은 디스플레이를 돌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 CONCLUSION
간만에 남자의 차를 만났다. 터보 엔진이지만 배기 사운드도 답답하지 않다. 고회전 영역으로 가면 하이톤을 내며 변속 시 폭탄이 한 번 터지는데 이 소리가 중독적이다. 최근 노골적인 백프레셔를 위해 양산차에도 ECU를 만지는데 맥라렌의 이 소리는 자연산이다. 하루만 타서 아쉽기도 하도 조금 친해 질만 할 때 헤어졌다.
720S 스파이더를 타면서 계속 로터스가 떠올랐다. 정직하고 꾸밈없고 날카로운 칼 같은 면이 닮았다. 720S 스파이더는 로터스 하이엔드 럭셔리 버전처럼 느껴졌다. 720S 스파이더는 조심스레 만져야 하고 성급하게 진도를 나가도 안 된다. 이런 점이 남자를 홀리게 한다.
자동차 전문 잡지 <모터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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