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재미와 제원은 비례하지 않죠, 미니 J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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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기자를 직업으로 삼으면서 오랫동안 꿈꿔온 ‘스포츠카 로망’을 이뤘다. 700마력짜리 페라리도 몰아보고, 12기통 트윈터보 엔진 얹은 애스턴 마틴으로 굽잇길을 누볐다. ‘으르렁’ 대는 AMG도 종류별로 타봤고. 하지만 경험을 쌓을수록 거대한 몸집과 출력 앞세운 스포츠카는 내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더 정확히는, 재미가 꼭 성능제원과 비례하지 않았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미니, 로드테스트

종합격투기 경기를 보면, 헤비급과 페더급 선수가 소화하는 라운드가 다르다. 강력한 ‘한 방’을 지닌 중량급은 상대적으로 오래 싸우지 못 한다. 반면 경량급은 펀치 힘은 조금 떨어질지언정 화려한 테크닉과 체력으로 승부한다. 스포츠카도 비슷하다. 육중한 무게는 한계가 명확하다. 반면 JCW는 경쾌한 움직임으로 색다른 희열을 추구한다.

미니를 바라보는 두 시선

 

존 쿠퍼(오른쪽) / 마이클 쿠퍼(왼쪽)

미니의 고성능 브랜드 JCW. 출발은 서로 달랐다. JCW는 ‘존 쿠퍼 웍스(John Cooper Works)’의 줄임말로, 영국의 카레이서이자 엔지니어 존 쿠퍼가 수장이다. 1946년 그는 경주차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찰스 쿠퍼와 함께 ‘쿠퍼 카 컴퍼니’를 세웠다. F1 머신을 만들어 잭 브라밤, 스털링 모스, 브루스 맥라렌 등 전설적인 레이서와 함께 우승컵을 쓸어 담았다.

미니는 영국 자동차 업체 모리스의 엔지니어이자 존 쿠퍼와 ‘절친’이었던 알렉 이시고니스가 1959년 개발했다. 당시 1956~1957년 제2차 중동전쟁의 여파로 석유 수급이 불안했다. 작고 경제적인 차가 대세로 떠올랐다. BMW 이세타, 피아트 500 등 ‘버블 카’가 앞다퉈 등장했다. 이시고니스는 1948년 ‘모리스 마이너’라는 소형차를 만들어 유명세를 탔다.

 

알렉 이시고니스

 

1952년 영국의 또 다른 자동차 제조사 오스틴은 모리스를 사들였다. 그리고 ‘BMC(British Motor Coporation)’로 거듭났다. 1957년 BMC 사장 레너드 로드는 알렉 이시고니스에게 독일과 이탈리아의 버블 카에 대항할 소형차 개발을 지시한다. 1948년 모리스의 최대 히트 차종이던 마이너를 설계한 이시고니스는 남는 공간을 더욱 쥐어짜 미니를 완성했다.

가령 엔진을 가로로 얹고 구동계는 최대한 앞쪽에 배치했다. 부가장치는 최소화했다. 심지어 라디에이터는 운전석 쪽 앞바퀴 펜더 안에 붙였다. 그 결과 마이너보다 덩치를 20% 줄이되 더 넉넉한 실내를 확보했다. 출시 당시 이름은 모리스-미니-마이너. 존 쿠퍼는 미니를 보고 또 다른 가능성을 엿봤다. 레이스였다. 물론 이시고니스는 회의적이었다.

 

 

이시고니스도 소문난 자동차 마니아였다. 로터스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해, 직접 ‘이시고니스 라이트웨이트 스페셜’이란 경주 차를 만들어 레이스에 참가할 정도였다. 존 쿠퍼와 가까워진 계기도 레이스였다. 그러나 이시고니스는 “일상 주행에 적합한 이동수단을 목표로 미니를 설계했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쿠퍼는 자신의 상상을 입증할 방법을 찾았다.

랠리 무대에서 빛난 장점

 

 

바로 랠리였다. 1959년 존 쿠퍼는 자사 드라이버 로이 살바도리를 미니에 태워 이탈리아 몬테카를로 랠리에 출전시켰다. 결과는 충격적. 살바도리는 기존 애스턴 마틴 DB4의 기록보다 한 시간이나 빨리 결승선을 통과했다. 작고 실용적인 차가 골리앗을 때려눕혔다. 이를 계기로 고성능 미니가 소량생산 형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니 쿠퍼 S가 주인공이었다.

 

 

 

반짝 쇼는 아니었다. 1960년대 핀란드의 전설적인 레이서 티모 마키넨과 함께 몬테카를로 랠리, 1000 레이크 랠리, 알파인 랠리에서 내리 우승하며 금자탑을 쌓았다. 특히 몬테카를로에선 237대 경주 차 중 35대만 완주했는데, 이 가운데 미니가 3대였다. 비결은 엄청난 출력이 아니었다. 가볍고 견고한 차체가 만든 날쌘 움직임이 코너에서 빛을 발했다.

JCW 만든 마이클 쿠퍼

 

 

1994년, BMW가 영국의 로버 그룹을 삼켰다. 2001년, 40년 넘게 장수하던 미니는 BMW 품에서 2세대로 거듭났다. 이때 존 쿠퍼의 아들 마이클은 새로운 가능성을 내다봤다. 신차를 통해 과거 레이스 무대에서 쌓은 영광을 재현하고 싶었다. 이듬해 JCW를 설립해 미니용 튜닝 키트를 개발했다. 11마력 높이는 ECU와 머플러, 터보차저 등이 대표적이었다.

고객이 JCW 튜닝 프로그램을 이용해도, 제조사 보증은 그대로 받을 수 있었다. 미니와 쿠퍼 가문의 신뢰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심지어 2005년부터는 고객이 미니 공장에서 완성한 JCW를 인도받을 수 있었다. 2007년, BMW 그룹은 JCW 상표권을 사들였고, 이듬해 자회사로 완전히 통합했다. 같은 해 코드네임 ‘MF91’의 JCW 해치가 정식 모델로 나왔다.

 

 

 

 

역사상 가장 빠른 미니였다. 직렬 4기통 1.6L 가솔린 터보 208마력 엔진 얹고, 0→시속 100㎞ 가속을 6.2초에 끊었다. 대단한 성능제원까진 아니었다. 그러나 1,130㎏에 불과한 차체와 6단 수동기어, 브렘보 브레이크가 맞물려 레이싱 카트 연상시킬 운동성능을 구현했다. 드래그 레이스보단 짐카나 경주에 제격이었다.

 

 

이후 JCW는 영역을 꾸준히 확장했다. 중심은 미니 JCW 해치. 이젠 넉넉한 2열 갖춘 클럽맨뿐 컨트리맨에서도 JCW 버전을 고를 수 있다. 가족과 나만의 재미를 동시에 원하는 소비자를 위해 미니가 만들어준 명분이다.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엔진은 306마력으로 ‘껑충’ 뛰었고, 1,700~4,500rpm까지 최대토크 45.9㎏‧m를 줄기차게 뿜어낸다.

오너와 함께 성장하는 자동차

 

 

이젠 대중 브랜드에서도 300마력 대 승용차를 내놓는다. JCW의 출력이 돋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JCW의 가치를 숫자로 판단하긴 이르다. ‘운전자와 함께 성장하는 차’가 JCW의 핵심이다. JCW는 경쟁 제조사와 ‘스펙 싸움’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타이어 한계를 적당히 낮춰 상대적으로 안전하면서 재미있게 갖고 놀 수 있는 세팅을 ‘기본 값’으로 제공한다.

운전자가 이러한 울타리 안에서 능숙하게 요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가면, 고성능 타이어로 한계를 더욱 높이면 된다. 이 같은 선순환을 도울 프로그램도 있다. 미니코리아가 인천 영종도의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비정기적으로 치르는 트랙데이다. JCW 오너만 참여할 수 있다. 참가비는 동반 1인 포함 4만 원인데, 결석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에 가깝다.

 

 

 

 

JCW 트랙데이는 축구장 33개 규모의 전용 서킷에서 ①전문가 이론교육 ②짐카나 ③리버스 턴 및 메뉴버링 ④오버스티어 컨트롤 ⑤트랙 주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JCW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을 판매사가 직접 알려준다는 점에서 값진 의미가 있다. 이 과정을 통해 JCW 오너는 애마의 잠재력을 발견해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전동화 꿈꾸는 JCW의 미래

 

 

JCW는 ‘고카트 필링’의 전동화를 추진해 미니의 전기차 특화 브랜드로 거듭날 계획이다. 첫 스타트는 2022년, JCW 3도어 해치가 ‘GP’ 배지 달고 한정판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JCW GP는 2006년과 2013년, 지난해 각각 나왔던 스페셜 모델. 가장 최근이 JCW GP 3세대로, 2.0L 터보 엔진의 성능을 306마력, 45.9㎏‧m로 높여 3,000대만 팔았다.

전기 JCW는 스파이 샷을 통해 노출되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작고 다부진 차체를 바탕으로, 도심과 굽잇길, 서킷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전기차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특히 전기차도 코너에서 얼마든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계획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알렉 이시고니스와 존 쿠퍼가 이 사실을 접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마도 또 의견이 다르겠지.

 

 

깊이 있는 자동차 뉴스, 로드테스트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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