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BULL'S LEGACY,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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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와 무르시엘라고를 타보진 않았다. 이제 짐작이 간다. 결은 같을 테니.

 

왼손으로 묵직한 시프트 패들을 철커덩 튕기자 울부짖는다. 이것은 박력을 넘어 폭력이다. 터널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오른발에 힘을 준다. 이 포효가 끝나면 기관총을 갈긴다. 나를 제외한 세상은 흑백사진이다. 분당 천원을 흘리지만 괜찮다. 그 이상의 쾌락을 주니까.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냐고? 무슨 영문인지 람보르기니를 타고 있다. 그것도 아벤타도르 S. 이 순간이 길지 않을 거 같으니 열심히 즐겨야겠다. 미리 고백하자면 이 글은 시승기가 아니다. 평범한 군필자, 35세 남자가 25년 만에 쓴 일기다.

TMI로 난 1년간 쉬다 이 업계로 돌아왔다. 이 직업의 축복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람보르기니를 탈 수 있다는 것. 컴백 기념으로 내 자신에게 선물을 줬다. 한낱 월급쟁이가 수 억원 짜리 금속덩어리를 몰고 있다. 아니 이탈리아산 예술품이다. 평소에도 부자들을 부러워했지만 오늘은 더 진하게 부럽다.

연예인들은 늘 이런 시선을 받겠지? 쏟아지는 시선으로 오늘 하루가 행복하다. 지갑은 뚱뚱한데 사는 게 심심하다면 이 녀석을 질러라. 낯선 사람들이 친절하게 눈인사를 건네고 친구들한테 신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생길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짧지만 나에게도 에피소드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공항고속도로 위를 달린다. 슈퍼카를 타면 자연스레 인천공항으로 향한다. 오늘도 마찬가지. 쭉 뻗은 고속도로, 옆 차로 리무진 버스 안에 금발 미녀가 나를 촬영하고 있다. 콕 집어 말하자면 아벤타도르를 찍고 있다.

분명 오늘이 한국에서의 마지막 날이겠지. 애국심으로 가득한 난 결심한다. 그녀에게 대한민국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어주기로. 창문을 내리고 섬섬옥수로 V를 만들어 그녀에게 날린다. 여기에 배경음악으로 귀가 찢어질듯한 하이톤 트럼펫 연주를 깔아주며 난 사라졌다. 아마 인스타그램에 이 장면이 올라와 있을지도 모른다. 해시태그는 #koreanlambo, #handsome.

포토그래퍼와 키득키득 웃으며 추억도 만들었으니 다시 운전에 집중하자. ‘밟는 대로 나간다’는 표현은 앞으로 아벤타도르 밑으로는 금지다. 저회전에서부터 최대토크가 터지는 요즘 터보차와는 질이 다른 가속이다. 터보가 더 화끈한 맛은 있지만 자연흡기는 스로틀이 열린 만큼의 짜릿함을 주는 정직함을 가지고 있다.

더운 날씨에 타이어는 아스팔트에 녹아 붙으며 쫀득한 높은 그립을 만들고 있지만 황소의 힘은 그것을 거부한다. 사륜구동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지만 후륜구동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아냐고? 가속 페달을 무자비하게 밟으면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튀어나간다. 식은땀이 난다.

뱅크각 60° V형 12기통 6.5ℓ 엔진은 8400rpm까지 쥐어 짜 최고출력 740마력, 5500rpm에서 최대토크 70.4kg∙m의 힘을 생산한다. 완전 고회전 엔진이며 직분사 방식이 아니라 MPI다. 이것이 진짜배기 슈퍼카에 들어간 올드스쿨 파워 유닛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금 당장 느껴봐야 할 고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이다. 다음 세대부터는 전기모터가 추가될 테니까.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단 2.9초다. 200km까지는 8.8초, 300km까지는 24.2초다. 드라이빙 모드에 따라 제원보다 더 느리게 혹은 빠르게 느껴진다.

스트라다(Strada), 스포츠(Sport), 코르사(Corsa), 그리고 이고(Ego)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스포츠 외에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발음이 멋있다. 스트라다 모드에서 안정감과 심심함을 느꼈다면 코르사 쪽으로 하나씩 모드를 옮기면 본연의 성격을 보여준다.

이고 모드는 운전자 입맛에 맞춘 값을 저장해두는 것이다. 각 모드가 어쩌고 저쩌고 간에 ‘무지 빠르다’로 결론은 같다. 공차중량이 1575kg. 공도에서 왕놀이 하는 BMW M3 보다 가볍고 약 300마력을 더 가진 셈이다. 비현실적인 가속력을 보여준다.

변속기는 듀얼 클러치가 아닌 싱글 타입이다. 그것도 토크컨버터 방식이 아닌 수동 기반이라 정통 슈퍼카의 향을 느낄 수 있다. 몇 년 전 람보르기니 스테파노 도메니칼리 사장과 오붓한 티타임을 가졌다. 아벤타도르에 싱글 클러치를 고수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듀얼 클러치보다 가볍고 변속충격으로 슈퍼카의 박진감을 전달할 수 있다.” 그의 답변이다. 덧붙여 듀얼 클러치보다 변속 속도도 빠르다고 했다. 이 부분이 아리송했다. 당시 그가 커피를 사는 입장이었기에 속으로만 의심을 품었다. 어찌 듀얼 클러치보다 빠를 수 있지?

이제 그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있다. 직접 타보니, 다운시프트는 빠르고 기어를 올릴 때는 흥분이 가라앉는다. 참고로 그는 페라리 F1팀 감독 출신이다.

자료에는 변속 속도가 0.05초로 되어있다. 다음 기어로 옮기는 시간만을 잰 것이겠지. 운전자가 느리다고 느끼는 건 아마 클러치 결속 속도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수동변속기로 비유하면 클러치를 밟고 손으로 기어는 빨리 넣었는데 클러치를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떼는 것 같다.

클러치 내구성을 위해 한 템포 늦췄을 것이라 추측하기엔 부하가 많이 걸리는 다운시프트가 오히려 빠르다.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유투브에서도 나와 같은 의견이 없어 더더욱 궁금하다. 아벤타도르 처음 탄 내가 잘못 느꼈을 거다. 람보르기니 플래그십 슈퍼카가 이럴 리가 없지. 그래도 언젠가 람보르기니 엔지니어를 만난다면 물어보겠다.

타면 탈수록 이 변속기를 다루는 노하우가 생긴다. 패들시프트를 튕길 때 액셀을 놓으면 변속이 유연해져 한결 낫다. 적응도 했으니 무자비하게 달려본다. 여분의 면허증만 있다면 공도에서도 시속 300km는 쉽게 주파할 수 있다. 고속안정감이 훌륭하니 나 같은 초보도 쉽게 초고속을 점령할 수 있다.

잘 빚어진 차체는 공기를 부드럽게 뚫고 탄탄한 서스펜션은 고르지 못한 노면에서도 그립을 보장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가벼운 앞쪽에 공기흐름을 이용해 엄청난 다운포스를 발생시켜 스티어링 휠로 프런트 그립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몇 시간 탔다고 건방지게 코너링 실력이 궁금하다. 굽이진 길을 찾아 헤매는 황소 한 마리. 난 이러쿵저러쿵 할 능력이 없다. 뉘르부르크링에서 7분대 벽을 깬 것만으로, 더 이상 전진만 하는 무식하고 미련한 소가 아니라는 걸 세상에 증명한 셈이다.

사실 내 차도 아니고 이만한 고출력을 다룰 실력도 없어 차에 주눅 들어 있는 상태다. 살짝 맛만 보기로 하고 코너에 들이댄다. 이게 오버스티어인지 언더스티어인지 모르겠다. 어지간한 속도와 각도로 평가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복합코너에 들어가도 섀시가 뒤엉키지 않는다. 한쪽으로 쏠린 중량을 반대쪽으로 넘기는 리듬이 깔끔하다.

하이퍼카 하드웨어 스펙인 카본 터브와 푸시로드 타입 서스펜션을 사용한 대가다. 여기에 사륜조향 시스템이 달려 코너링 퍼포먼스를 향상시켰다. 사륜조향 시스템은 최근 포르쉐와 BMW가 즐겨 사용한다. 즉 스포츠 드라이빙을 추구한다면 무게를 감수하고 이를 다는 게 낫다는 방증이다.

여하튼 이 시스템 덕분에 운전자는 큰 덩치를 우라칸 정도로 느끼게 해준다. 이 장치는 스티어링 명령에 빠릿빠릿한 순발력과 박자를 갖춰야 이질감이 들지 않는데 람보르기니는 이를 잘 해냈다. 조향이 들어가면 뒷바퀴가 0.005초 만에 반응한다고 한다.

날뛰는 황소라도 채찍질할 브레이크 시스템이 뛰어나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다. 앞뒤 400mm, 380mm 카본 세라믹 디스크 로터에 각각 6피스톤 4피스톤을 물렸다. 노즈다이브나 브레이크스티어 현상을 잘 억제했고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더라도 지치지 않는다. 트랙에서 더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코너 중에 브레이킹이 걸려도 차체가 안으로 말리지 않는다. 완벽한 브레이킹 밸런스를 가졌다.

올림픽대로에 들어서니 서행하기 시작한다. 어울리지 않게 스톱 앤 고가 달려있는데 다시 엔진이 켜질 때마다 주위를 놀라게 한다. 차를 받자마자 정신 없이 타고 다녀 이제야 실내를 둘러본다. 최고급 가죽과 알칸타라로 뒤덮었고 룸미러에 비친 엔진은 날 특별하게 만든다.

옵션이 이것저것 들어갔겠지만 굳이 따질 필요 없다. 애플카플레이만 되면 되지. 근사하게 생긴 시트는 운전자를 잘 잡아주고 편하기까지 하다. A필러가 극단적으로 누워있어 전방시야가 좁아 신호등이 안보일 때가 있다. 찡그린 얼굴을 스티어링 휠 앞으로 내밀고 눈을 치켜드는 반항적인 멋을 얻었다.­

짧지만 진한 데이트가 끝났다. 시저스 도어를 하늘을 향해 올리고 내린다. 아침에도 멋있었지만 페인트에 노을을 더하니 황홀한 자태를 표현한다. 아쉬움도 있지만 후련하다. 높은 몸값 때문에 내가 차를 탄 게 아니라 내가 차를 모시고 다녔다. 이 때문인지 정신적 피로도가 상당했다.

앞서 시승기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촬영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나의 비루한 운전 실력으로 이 녀석을 하루 만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6개월 정도 같이 살아야 아벤타도르에 대해 알 것 같다. 그것도 조금이겠지만. 여하튼 신선한 경험이었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797×2030×1136mm
휠베이스 2700mm
엔진형식 ​​V12, 가솔린
배기량 6498cc
최고출력 ​​740ps
최대토크 70.4kg·m
변속기 ​​​​​​7단 자동
구동방식 AWD
복합연비 ​​​​​5.9km/ℓ
가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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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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