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대한민국 세단의 자존심. 쌍용 체어맨W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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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 끝에 쌍용 체어맨 W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개발단계에서부터 시장의 관심을 불러모았던 체어맨 W는 기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1억200만 원에 달하는 차값이 다소 부담스러운데도 지난 2월 말 데뷔 후 보름 만에 3,000여 대가 넘는 계약 대수를 기록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판매목표인 1만2,000대를 무난히 넘어설 기세다. 이처럼 체어맨의 새 모델에 거는 수요자들의 높은 기대는 아무래도 지난 10년간 체어맨이 쌓아온 명성 때문일 것이다.

체어맨은 쌍용이 우여곡절을 겪는 와중에도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국내 고급차 시장에서 꾸준히 판매되어 왔다. 거기에는 수입차와 국산차의 틈새를 노린 마케팅 전략과 뛰어난 성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과감한 개혁보다 현재의 디자인 잘 손질
구형 체어맨이 메르세데스 벤츠 중형(미디엄) 클래스인 W124의 차체를 약간 키운 모델이라면 체어맨 W의 모태는 1999년 소개된 벤츠 W220이다. 우리에게는 구형 S클래스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모델이다. 당연한 귀결일까?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은 여전히 메르세데스 벤츠를 닮아 있다. 우선 외관은 우람하고 간결하다. 대형 승용차로서 길지도 짧지도 않은 5,110mm의 길이에 평면과 직선 위주로 뽑아낸 라인과 널찍한 휠하우스, 19인치 휠의 압도적인 체구는 쌍용의 자부심을 담은 듯 보였다.

전체적으로 체어맨 W는 과감한 개혁보다 현재의 디자인을 잘 가다듬어 카이런, 액티언, 로디우스 등의 실패 요인인 디자인 측면에서의 ‘처절한 반성’을 통해 시행착오를 극복한 듯하다. 게다가 연령대로 볼 때 다소 보수적인 대형차 오너들의 성향이 이런 쌍용의 전략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운전석에 앉았다. 적당히 딱딱한 시트에 앉는 느낌이 좋다. 시트조절 기능은 매우 다양하고 조절폭도 커서 어떤 체형이라도 드라이빙 포지션을 찾아준다. 현대적이고 우아한 감각이 돋보이는 인테리어 역시 구형과 대조적이다. 센터페시아를 중심으로 완만한 V자 형태로 뻗어나가는 마블그레인 트림은 우아함을 가장 잘 나타내는 요소 중 하나. 여기에 최고급 세단답게 플라스틱으로 노출되어야 할 부분은 질감 좋은 가죽으로 정성스럽게 싸고, 필러나 천장 등 천으로 된 부분 역시 고급 스웨이드(5.0 기본)로 마감했다.

이번에는 뒷좌석에 앉았다. 뒷좌석은 쇼퍼 드리븐카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고 은은한 분위기의 B필러 무드램프(3.6, 5.0 리무진 기본)와 곡선으로 이뤄진 목받이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등받이 안에서 움직이는 마사지 기계(5.0 기본)는 약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적당한 강도로 피곤한 등을 어루만지듯 쓸어 내려갔다. 앞좌석 뒷면에 달린 접이식 책상을 폈다. 노트북을 올려 놓기에 딱 알맞다.

그밖에도 체어맨 W에는 차에 넣을 수 있는 거의 모든 편의장비가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개의 운전석 메모리 스위치는 두 사람의 운전자세는 물론이고 주로 운전하는 사람의 다른 자세까지 기억시킬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또한 후진기어를 넣으면 뒤창에 쳐져 있던 전동식 커튼이 자동으로 내려가 뒷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실내 환경에 따라 바람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는 송풍구는 동반석에 사람이 없으면 운전석 쪽으로 방향을 튼다.

뒷좌석 역시 편의장비가 앞좌석 이상으로 풍부하다. 센터 암레스트에 각종 공조장치와 오디오 스위치가 모여 있는데, 이곳에 달린 작은 액정 모니터를 통해 장비의 상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화장거울과 뒤 암레스트에 마련된 냉장고 등 일본과 한국의 고급차들이 즐겨 쓰는 뒷좌석 편의장비도 충실하다. 이들 장비의 쓰임새와 효용성을 일일이 나열하자면 CF가 아니라 영화 한 편을 찍어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만큼 명차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편의장비를 사용하는 방법은 다소 까다롭다. 운전자가 운전을 하면서 직관적으로 작동시키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어느 영역에서건 뛰어난 승차감 보여
안팎을 둘러보면서 실컷 감탄을 했으니 이제 움직여볼 차례다. 체어맨 W는 6기통인 3.6L와 V8 5.0L 두 종류다. 기자가 시승한 모델은 체어맨 W의 간판인 V8 5.0L. 센터페시아 하단 슬롯에 스마트키를 꽂은 뒤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묵직한 시동음이 들린다.

출발은 그리 민첩하지 않다. 액셀 페달은 약간 딱딱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운전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며 이런 급의 차를 운전하는 데는 오히려 약간 단단한 페달의 답력이 나을 수도 있다. 페달을 끝까지 밟자 초반의 약간 더딘 듯한 느낌은 이내 머릿속에서 잊혀지고 뒤에서 밀어붙이는 힘이 느껴질 만큼 시원한 가속이 이어진다. 체어맨은 7단 자동기어로 뒷바퀴를 굴린다. 지금까지의 자동기어는 킥다운을 할 때 바로 아래 단수로 내려가는 형태였지만 벤츠가 개발한 7단 자동기어는 다음 기어뿐만 아니라 2단 아래로도 변속되어 빠른 가속력을 이끌어 낸다.

제법 붐비는 차들 때문에 시속 200km까지 속도를 내보지 못했으나 추월과 제동성능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탁월했다. 제동 페달을 밟을 때는 순간적으로 반응을 하지 않고 한 번 더 밟아야 제동이 걸리는 기분이었는데, 초보운전자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숙달된 운전자에게는 약간 불안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물론 이것은 페달조정으로 얼마든지 운전자의 취향에 맞게 바꿀 수 있다.

굽이진 도로를 헤쳐 달려보았다. 서스펜션을 부드러운 승차감 위주의 ‘컴포트’에 맞추고 굽이돌아도 차체가 심하게 요동치거나 허둥대지 않는다. 달리기 모드인 ‘스포츠’에 놓으면 좀 더 과감한 드라이빙을 할 수 있다. 그만큼 차체의 강성과 서스펜션의 고속주행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다.

4트로닉도 빼놓을 수 없는 체어맨 W의 장점 중 하나. 풀타임 방식으로 평소 구동력을 앞뒤 40:60으로 분배해 FR(앞 엔진 뒷바퀴굴림) 감각을 살리고 있다. 이미 FR 구동계로도 정평 있는 달리기 실력을 과시하는 쌍용에 네바퀴굴림이라는 날개를 달았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최상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이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일 듯싶다.

한산한 경기도 자유로에 들어서서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ACC)을 작동시켜 보았다. 스티어링 휠 오른쪽에 달린 레버를 눌러 ACC를 작동시킨 상태로 앞차와의 차간거리와 속도를 설정해 놓으면 액셀이나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자동으로 속도가 조절된다. 또한 옆차선에서 주행하는 차까지 감지해 주는 최첨단 방식으로 장애물이 나타났을 경우 시속 10km까지 감속시켜 사고를 방지해 주는 역할도 한다. 다시 자동차가 별로 없는 차선으로 옮기면 자동으로 설정해 놓은 속도까지 올라간다.

손발 움직임이 줄고 긴장감이 풀리면서 하품이 나왔다. 졸음을 쫓기 위해 음성인식 시스템(SDS)으로 라디오를 틀었다. 낮은 볼륨 상태였지만 자동차 곳곳 17군데에 숨겨진 스피커를 통해 멜로디가 속삭이듯 귀를 파고든다. 벤츠 S클래스와 마이바흐에 사용된다는 ‘하만카돈 사운드 시스템’은 역시 달랐다. 편안한 분위기의 실내에서 몸에 착 감기며 편안히 감싸주는 시트에 파묻혀 운전을 하는 기분이란!

체어맨 W는 분명 뒷좌석 승객을 위해 만들어진 차다. 따라서 인테리어 구성과 편의장비 등은 모두 뒷좌석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운전석에서 느끼는 체어맨 W는 운전자를 위한 고급세단에 가깝다. 넘치는 힘으로 부드럽게 달려 운전재미는 조금 떨어지지만 편안함은 그야말로 최상이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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