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디비디비딥! 테슬라 모델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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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 도착하는 경쟁자들을 우아한 날갯짓으로 맞이한다

도어를 열고 주행하면 경고음이 울린다. 여느 차들과 마찬가지로…

테슬라 모델 X를 요약하자면, 전기차회사 테슬라를 대표해온 세단형 모델 S의 뚱보 아니 SUV형 형제차라 할 수 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 차의 의의가 전기 SUV인지 모델 S에 날개를 추가한 차인지 헷갈린다. 모델 X의 가장 큰 특징은 FWD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에서 말하는 FWD는 보통 앞바퀴굴림(Front-Wheel Drive)을 뜻하지만 네바퀴굴림인 모델 X에서는 팔콘 윙 도어(Falcon-Wing Doors)를 말한다. 앞좌석 도어는 경첩이 앞에 달려 옆으로 열리는 일반 방식인데 뒷좌석에는 창문 및 지붕 일부와 함께 위로 열리는 걸윙 도어를 달았다.

리어윙은 펼쳐진 상태로 고장 난 모습이다. 이런!

걸윙도어는 열린 형태가 갈매기 날개 펼친 모습을 닮은 데서 비롯된 명칭이고, 1950년대 벤츠 300SL에 처음 사용한 이래 슈퍼카 등 특별한 차에만 달리는 도어로 통했다. 지붕이 낮고 문턱이 높아 타고 내리기가 고역인 스포츠카는 걸윙 도어가 편하다. 테슬라는 걸윙도어를 SUV 뒷문에 달고 이중 경첩으로 꺾이도록 했다. 이름도 팔콘 윙 도어라고 붙였다. 전동으로 여닫히는 과정이 굉장히 거추장스러워 보이고 옆이나 위로 부딪힐 장애물이 없는지 신경 쓰이지만, 테슬라는 미니밴에 흔한 슬라이딩 도어보다도 좁은 공간 승하차에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장애물이 없으면 옆 공간을 많이 침범하는 듯 보이지만 정말 좁은 공간에서는 이중 경첩이 꺾이는 각도를 이리저리 조절해 작동범위를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지붕이 함께 열리니 차에 오를 때 불편하게 상체를 숙일 필요 없다. 평편한 실내 바닥에 올라선 뒤 의자에 앉는 쾌적한 감각이다. 카시트에 아이를 앉히고 벨트를 채우는 과정도 일반 차보다 훨씬 덜 수고스러울 듯하다. 그런 기쁨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외국의 어떤 모델 X 소유자가 뒷좌석에 아이를 태운 채 팔콘 윙 도어를 열고 주행하는 동영상이 있다(도로가 아닌 안전한 장소에서 천천히 달렸다). 그 장면을 보며 영화 <블랙호크다운> 포스터에 나오는 리틀버드의 터치다운 장면이 떠올랐다. 헬기 외부에 엉덩이만 걸터앉은 채 비행하는 군인의 모습 말이다. 실제 팔콘 윙 도어의 이미지는 SF 영화 속 우주선의 날개와 위아래로 나뉘어 열리는 도어를 합친 쪽에 가깝다.

도어를 닫은 실내 분위기도 그렇다. 팔콘 도어의 지붕 부분, 즉 천장 일부가 투명 창이고 앞유리도 앞좌석 탑승자의 머리 위까지 이어져 비행체에 탑승한 기분이다. 그런데 뒷좌석에 앉아 느끼는 개방감이나 공간감은 의외로 크지 않다. 시승차 내장이 검은색인 탓도 있지만 특이한 도어 구조를 만드느라 기둥들이 두껍고 복잡해진 이유가 크다. 배터리를 내장하느라 바닥이 높아져 차체 부피감 대비 실내공간이 충분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실내바닥이 평편하고 2열 좌석을 하나의 기둥으로 받치는 등 머리를 쓴 구조 덕분에 3열에 성인이 앉아도 그럭저럭 여유로운 2열 공간이 남는다.

모델 X는 5·6·7인승 구성인데 시승차는 6인승(2+2+2). 참고로 2열 좌석 사이에 있는 센터콘솔은 기본장비가 아니다. 센터콘솔이 없으면 3열로 드나들기 편리하겠지만 시트에 별도 팔걸이가 없어 허전할지도 모르겠다. 송풍구는 중앙과 B필러에 마련했는데 뒷좌석 승객이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은 없다. 도어가 위로 열리는 만큼 도어포켓이나 음료 홀더도 없다.

2 열 독립시트는 앞좌석을 복사해서 붙여넣은 것처럼 생겼지만 구조는 특이한 등받이 일체형이다. 등받이 각도를 전동 조절하면 다리 각도가 함께 틀어진다. 3열 승하차를 위해 2열 좌석을 앞으로 미는 버튼은 어깨 쪽에 있는데, 최선을 다해 빠르게 움직인다고 과시하는 듯한 모터 작동음이 따라온다. 앞으로 슬라이딩하면서 각도를 숙이고 1열 좌석이 함께 전진하는 팀플레이를 펼친다.

3열은 급격하게 낮아지는 지붕 선에도 불구하고 쓸만한 머리공간을 확보했지만 뒷유리 주변 기둥이 이마에 닿는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측벽에 여유가 없어 팔을 걸칠 부위도 없다. 그렇지만 배를 압박하며 옹색하게 앉는 자세가 아니라서 2명이 앉기에는 나쁘지 않다. 양쪽 모두 카시트를 설치할 수도 있다. 게다가 3열용 송풍구가 있고 (비록 운전석에서 조절해야 하지만) 열선 기능까지 갖췄다. 접으면 사라지는 시트치고는 호사스럽다.

핸들은 튀어나오지 않지만 누르면 도어가 전동으로 여닫힌다

앞문은 팔콘 윙 도어와 비교해 평범해 보이지만 전동으로 여닫힌다. 모델 S와 달리 도어 손잡이가 바깥으로 튀어나오지는 않고 스위치 역할만 한다. 키를 소지하고 가까이 가면 도어가 자동으로 활짝 열리기도 하는데 길가에 주차한 경우 본의 아니게 지나가던 차들을 놀라게 할 수 있다. 착석한 후 도어를 닫을 때는 손잡이를 향해 팔을 뻗기보다는 스위치를 눌러 전동으로 닫는 방법이 편하다. 롤스로이스와 비슷하지만 도어에 가깝게 배치한 실제 버튼이 아니라 중앙 모니터를 터치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맛이다(브레이크 페달을 밟아도 자동으로 닫힌다).

앞좌석 공간은 높은 포지션과 넓은 앞유리 등 일부 요소를 제외하면 모델 S와 별다르지 않다. 벤츠에서 가져온 스티어링 컬럼 조작부와 윈도 스위치가 있고 라이트 스위치, 시동버튼이 없다(차에 올라 브레이크를 밟으면 출발 준비가 된다). 좁은 후방 시야는 커다란 중앙 화면에 후방 카메라 영상을 띄워 보완할 수 있지만, 사이드미러는 테슬라의 첨단 이미지와 달리 재래식이고 광각 거울이 아니라서 사각지대 경고 기능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진다. 계기판은 차 주변을 지나는 사람이나 모터사이클, 승용차, 트럭 등을 구분한 3D 그래픽을 표현하지만 재미 요소에 그친다. 연석에 바싹 붙여 주차할 때 흰 달걀 같은 차체를 가늠하기 위한 360도 카메라 기능도 있으면 좋겠다.

실내에 노출된 실제 버튼은 극히 적고 주행모드 스위치도 보이지 않지만 중앙 화면의 기능 설정 항목을 이용하면 가속성능이나 조향, 회생제동 수준을 조절할 수 있다. 대체로 ‘표준’은 너무 거세서 내연기관 자동차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충격적이어서 절충용으로 ‘컴포트’를 마련하지 않았나 싶다. 시승한 100D는 정지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이 4.9초, P100D는 3.1초다. 차체 길이 5m가 넘고 폭은 2m이며 지붕이 높고 무게가 2.6t에 달하는데 가속은 스포츠카급이니 마음의 준비 없이 밟았다가는 심신에 충격일 수밖에. 시속 200km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별다른 소리도 없이 가속할 수 있지만 고속에서 급하게 속도를 낮추려고 하면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더딜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가속성능만큼 코너를 도는 느낌도 보통 SUV 혹은 MPV와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이다. 코너에 진입할 때 팔콘 윙 도어를 펼쳐 코너 안쪽과 바깥쪽 바퀴에 공기역학적으로 다운포스를 차등 배분하거나 무게중심을 좌우로 옮기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과하다 싶은 속도로 진입하거나 중간에 속도를 높여도 낮게 깔린 무게중심과 네바퀴굴림을 바탕으로 타이어 신음조차 없이 부드럽게 통과해낸다. 높이 앉은 운전 자세와 괴리가 느껴지는 탓인지 운전 재미를 탐닉할 생각은 들지 않지만 크고 높은 차를 몰 때의 거북함이 없어 가뿐하게 길을 나서게 된다.

승차감은 디자인 시제품처럼 보이는 실내 구성과 어울리지 않을 만큼 완숙하다. 고급스러운 안락함과는 거리가 있고 요철 통과 때 통이 빈 소리가 나기도 하지만 뒷자리까지 별다른 불쾌감이 들지 않도록 잘 챙겼다. 특히 내연기관의 소음·진동이 없으니 장시간 주행해도 피로감이 적다. 에어서스펜션은 매우 낮음부터 매우 높음까지 차고 조절이 가능한데 아무리 높여도 험로에 끌고 들어가고픈 모양새는 나오지 않는다(역시 깨지기 쉬운 달걀 형태라서?). 특히 배터리를 덮은 바닥판을 생각하면 험로 도전보다는 유사시 최저 지상고를 높여 하부 손상 위험을 줄이는 데 의의를 둬야 할 듯하다. 이는 시승차에 한정한 얘기이고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둘러보니 여느 SUV처럼 험하게 타는 이들도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스포츠카급 시선 강탈과 가속성, 미니밴의 거주성과 SUV의 실용성을 갖췄지만 테슬라답게 긴 주행가능 거리와 부분 자율주행 기술도 여전하다. 특히 모델 S와 비교할 때 장점인 모델 X의 실내공간은 자율주행 시대에 맞는 가치다. 차체 결합부위의 거친 마무리를 그대로 노출하거나 단차가 눈에 띄게 어긋난 부분 등 1억원이 넘는 차에 어울리지 않는 완성도도 여전하다. 전통적인 자동차 업체의 제품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그렇기에 이처럼 남다른 시도가 가능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테슬라가 보여주는 새로운 가치에 눈뜨고 나면 허술한 완성도는 핸드메이드의 부작용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게 된다. 내로라하는 자동차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어 주행거리에서 테슬라를 따라잡은 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2015년 나온 모델 X의 매력이 전혀 빛바래지 않아 보이는 이유도 그래서다. 참고로 모델 X P100D는 시속 100km 도달 시간이 3.1초로 빠른 대신 주행가능 거리가 353km로 짧고, 가격도 2억원에 육박한다.

 

민병권 사진 이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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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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