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바람직한 3 약속하는 테슬라 모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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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라는 이름의 험난한 여정이 비로소 모델 3에 이르렀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경로 안내를 종료합니다.” 모델 3을 타고 달리는 내내 안내음이 귓가를 맴돌았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기계 오류가 아니라, 마음의 소리였다. 10분만 몰아봐도 깨달을 수 있다. ‘지난 16년, 테슬라의 여정은 이 차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었구나.’

모델 3 가격은 5369만원부터 시작한다. 서울 거주자가 전기차 보조금을 최대한 받으면 4000만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는 셈이다(물론 올해 보조금은 이미 바닥났고, 지금 주문해도 내년 2분기까지는 목 빼고 기다려야 한다). 모델 S, 모델 X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 가격이다. 반값 테슬라를 손에 넣기 위해, 출시 한참 전부터 전 세계에서 50만명 이상이 (계약금까지 걸고) 긴 줄을 늘어섰다.

엘론 머스크는 (화성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하면서도) 지구를 더 깨끗한 행성으로 만들기 위해 고심한다. 인류가 지구를 떠나기 전까지 도로 위에서 화석 연료를 몰아내려면, 누구나 손 뻗으면 닿을 가격대에 매력적인 전기차가 나와야 한다. 계획은 거창하지만 실현은 쉽지 않다. 저렴한 가격에 빼어난 모델을 출시하기도 쉽지 않지만, 테슬라 같은 스타트업 입장에선 수요에 맞는 생산량 확보도 난제다. 머스크는 폭발적인 주문량을 소화할 생산라인을 마련하느라 생고생을 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전체 승용차 판매량 4위에 오른 모델 3이 이제서야 한국 땅을 밟은 이유도 생산시설 부족에 발목 잡혀서다.

50만 계약자는 모델 3 양산을 자녀 출산 기다리는 아빠 심정으로 기다려왔다. 그들에게 마침내 탄생한 테슬라 막내둥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울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콤팩트한 사이즈 덕에 손안에 쏙 들어오는 조약돌처럼 다부지고 앙증맞다. 그러면서도 헤드램프, 테일램프, 모서리를 둥글린 차체는 형제들과 꼭 닮았다. 엔진·변속기· 연료통·배기시스템이 없어서 실내공간을 앞차축에서 뒤차축까지 맘껏 늘였다. 차축 앞뒤로 남는 공간은 짐공간으로 살뜰히 꾸몄다.

배기 시스템의 빈 자리도 수납공간으로 활용한다

공간을 챙기느라 세단이라기엔 좀 우스꽝스러운 비율을 지녔지만, 막상 실내에 들어서면 웃음기가 싹 가신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낭비한 것은 화석연료만이 아니었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낙낙하고 여유로운 실내 곳곳을 살피다 보면 복잡한 내연기관 부품이 낭비한 공간이 이만저만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실내에는 밖에서 풍기던 앙증맞은 분위기가 전혀 없다. 테슬라 특유의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는 콤팩트 세단에서 더욱 빛났다. 휑한 구석 없이 호젓한듯 알차서 차급을 뛰어넘는 고즈넉한 여유가 넘쳐흐른다. 뱁새눈 뜨고 스티어링휠 너머를 바라봐도 계기판은 없다. 물리 버튼도 찾기 어렵다. 고개를 돌려봐도 윈도 조작 버튼, 비상등 버튼, 도어 열림 버튼이 보이는 게 고작이다. 보기에는 말끔하지만 터치스크린으로 사이드미러와 스티어링휠을 조정하는 일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운전석 시야는 MPV만큼이나 좋다. 대시보드가 어찌나 낮은지 상단이 운전자 무릎 위 10cm 높이에 머문다. 짧고 가파른 보닛도 시야에 걸리는 법이 없다. 탁 트인 운전석에 앉아 달리면 스페이스 캡슐이라도 탄 듯 묘한 기분에 사로 잡힌다. 속 시원한 와이드 터치스크린 좌측에는 계기판을 대신하는 주행정보 패널이 자리잡았다. 우측은 다른 형제에 들어간 세로형 디스플레이와 같은 레이아웃이다. 뒷좌석 공간은 적당히 여유롭다. 그러나 키가 180cm 이상이라면 다소 답답할 수 있다. 루프에서 트렁크 리드까지 뒤로 탁 트인 선루프 덕에 시각적 개방감은 훌륭하다.

전기차 주행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매끄럽고 조용하고 토크를 즉각적으로 분출한다. 게다가 모델 3은 괴기스러울 정도로 빠르다. 저렴한 가격을 전면에 내세운 싱글모터 모델 3조차 BMW 340i, AMG C 43과 비슷한 가속력을 낸다. 퍼포먼스 모델 (시승차)은 숨이 멎을 정도로 빠르다.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페라리 458 이탈리아와 같고, BMW M3 보다는 0.5초나 앞선다.

컵홀더 뒤쪽에 카드를 터치하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출발 준비 상태가 된다

가속페달을 짓이기면 아무런 준비 동작 없이 대기를 찌른다. 마치 자석에 이끌려 가는 바늘에 올라탄 듯한 가속감이다. 가속과 동시에 뇌가 짓눌린 물풍선처럼 납작해지고 심장은 대책 없이 녹아내린다. 구토를 유발할 정도로 빠르지만 다루기 까다롭지는 않다. 막대한 힘이 선형적으로 차올라 예측하기 쉽다. 코너를 돌아나가는 실력도 놀랍다. 좁든 넓든 코너 각도와 모양에 구애 없이 머리를 척척 집어넣는다. 자세제어 장치 개입이 적어서 운전이 더욱 즐겁다.

든든한 섀시가 주는 팽팽한 감각이 운전 재미를 더욱 북돋운다. 승차감은 모델 S보다 단단하지만 둔탁한 충격이 올라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독일 스포츠 세단처럼 다이내믹한 감각과 고급스러운 감성을 황금비율로 배합했다. 실내는 옅은 숨소리도 가리지 못할 정도로 고요하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지 않는 이상, 롤스로이스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다붓하다.

모델 X 앞유리와 모델 3 뒷유리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스포츠 주행을 하면 미드십 슈퍼카만큼이나 핸들링이 뛰어나다. 엔진을 아무리 납작하게 만들고 차체 중심 부근에 낮게 단들, 스케이트보드 플랫폼보다 바람직한 무게중심을 갖기는 어렵다. 듀얼모터와 동등한 힘을 내는 엔진이라면 더더욱. 모델 3 퍼포먼스는 1회 충전으로 415km를 소화한다. 최고시속은 261km에 달하고, 0→시속 100km 가속을 3.4초 만에 마친다. 합리적인 스탠더드 레인지는 1회 충전으로 352km를 달릴 수 있다. 최고시속은 225km, 0→시속 100km 도달 시간 5.6초다. 그 중간 가격대로 가장 긴 주행거리(446km)를 약속하는 롱 레인지 트림도 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경로 안내를 종료합니다.” 테슬라가 전기차 시대를 향해 출발한 지도 어느덧 16년이 지났다. 배터리 기술 발전, 기술 가격 하락, 제조 노하우 축적, 시장 인식 개선…. 강산이 한두 번 바뀔 시간 동안 전기차를 둘러싼 많은 요소가 변했고, 테슬라는 언제든 변혁의 선봉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마침내 얼리어답터나 환경운동가가 아니라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대중성 겸비한 테슬라가 나왔다. 모델 3은 마니아와 대중을 두루 만족시킬 전기차다. 테슬라가 그동안 기울인 모든 노력이 모델 3을 내놓기 위한 것이었고, 그럴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김성래 사진 이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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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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