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모닝·마티즈 등 경차 찾는 손님뿐…1만㎞ 뛴 수입차 두 달째 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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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한애란] “중고차는 싸니까 불경기에 잘 팔리지 않느냐고요? 모르는 소리예요.”

19일 오후 서울 성수동 SK엔카 중앙매매센터. 벤츠부터 마티즈까지 100여 대의 중고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 회사 김지태 실장은 “신차가 팔려야 좋은 중고차가 시장에 나와 거래가 활발한데, 요즘엔 나오는 차가 없으니 팔리는 차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 빈자리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이와 달리 한 달 넘게 팔리지 않은 장기 체류 중고차들도 적지 않다. 중고차는 원래 한 달 안에 팔려야 수지가 맞기 때문에 이런 차는 업체로서는 골칫거리다. 이곳에서 자리를 지키는 중고차들은 각각 불경기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장 안쪽에 있는 아우디 A4 카브리올레는 2007년식에 주행거리도 1만㎞밖에 안 됐다. 차를 좋아하는 젊은 남성이 리스로 구입했지만 1년 만에 리스를 중도해지했다. 비싼 수입차를 샀다가 리스료를 부담하지 못해 중도해지하거나 차를 뺏기는 사례는 요즘 비일비재하다. 차에는 5150만원이라는 시세표가 붙어 있다. 신차(7120만원)보다 2000만원 정도 싸지만 두 달째 팔리지 않고 있다. 요즘엔 신용등급 1, 2등급이 아니면 할부나 리스를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젊은 감각의 수입차는 도통 팔리지 않는다. 맞은편에 있는 진주색 뉴체어맨은 종로 낙원상가에서 악기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타던 2005년식 모델이다. 주로 부인이 '모임용'으로 이용하며 애지중지해 왔지만 경기가 나빠지자 퇴출 대상이 됐다. 투싼·아반떼·카니발까지 집에 차가 4대나 있는데, 그중 가장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10월에 팔았으면 2300만원짜리인데, 부인의 반대로 시간 끌다가 결국 이날 2100만원에 팔려 왔다. 요즘 같은 시기엔 이런 대형차 찾는 사람이 없어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미 그 바로 옆에 또 다른 검은색 뉴체어맨 한 대가 한 달 반 넘게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서 있다. 악기점 사장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인 투싼도 곧 팔 계획이라고 한다.

그 뒤에 있는 카렌스2는 의정부를 거쳐 여기로 왔다. 이 차는 의정부시의 한 중고차 딜러가 원 주인에게 700만원을 주고 사서 광택까지 냈었다. 하지만 팔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최근 기름값이 떨어지면서 LPG차에 대한 수요가 확 줄었다. 다급해진 딜러는 현금 확보를 위해 이 차를 엔카에 670만원에 넘겼다.

매장 안에서 유독 돋보이는 차가 있다. 다른 차와 달리 임시번호판을 달고 있는 스타렉스다. 이른바 '밀어내기' 차다. 대리점이 판매목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구입한 뒤 바로 중고차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스타렉스는 자영업자들이 주로 사기 때문에 경기가 나쁘면 직격탄을 맞는다. 스타렉스가 신차로 팔리기도 전에 중고차 신세가 된 이유다.

그나마 이날 들어온 아반떼 투어링은 가능성이 있다. 13만㎞나 뛴 1996년식이지만 요즘엔 이런 차가 오히려 대형차나 수입차보다 잘 팔린다. 예전엔 연식이 오래된 중고차는 마진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업체들이 다루길 꺼려 왔다. 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면서 아예 100만원 정도의 싼 중고차는 찾는 사람이 종종 있다는 것. 그 옆에 있는 하늘색 뉴 모닝도 마찬가지. 올 4월엔 신차 가격(1030만원)보다 중고차 가격이 20만원 이상 비쌌던 차다. 그땐 매물로 내놓으면 1시간 안에 팔려나가곤 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모닝도 판매가 줄면서 예전처럼 신차 주문 뒤 5~6개월씩 기다리진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970만원이라는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매장을 들른 50대 부부는 모닝과 마티즈만 유심히 살폈다.

오후 내내 한산했던 매장이 오후 6시쯤 활기를 띠었다. 하늘색 모닝이 결국 팔려나가 흰색 번호판을 바꿔 달았다. 이 차를 산 이태훈(36·회사원)씨는 “등록세 면제,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 등 혜택이 있어서 경차를 사게 됐다”고 말했다. 김지태 실장은 “요즘 나가는 차는 준중형차와 경차뿐”이라고 말했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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