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미니멀 라이프를 위하여, 볼보 XC40 R-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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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맥시멀리스트다. 한 번 손에 쥔 물건은 쉽게 놓는 법이 없다. 내 드림카 리스트에 줄 서 있는 차만 봐도 성향이 뻔히 보인다. 차는 커야 하고 피스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전기차는 끔찍히 싫어한다. 이런 내 생각은 깊게 박힌 든든한 말뚝처럼 견고했고, 바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정확히 따지면 요즘이 아니라 XC40을 시승한 이후다.

XC40은 볼보 설립 이후 90년 만에 만든 첫 번째 콤팩트 SUV다. 첫 작품이라 부족한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미 왜건과 SUV 분야에서 도가 튼 브랜드였던 터라 그럴듯한 첫 작품을 만들어냈다. 우려와 달리 SUV 열풍과 높은 완성도에 힘입어 XC40은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갔다. 계약서를 쓰더라도 족히 몇 개월은 기다려야 손에 넣을 수 있을 정도였다(지금도 그렇다). 2018년 글로벌 시장에 첫발을 디딘 XC40은 한 번의 변화를 거쳤다. 화장법만 살짝 고치는 여느 브랜드와는 다르다. 속을 완전히 바꿨다. 볼보는 전동화 파워트레인 전략에 따라 과감하게 순수 내연기관을 들어내고 전기모터가 붙은 마일드 하이브리드 심장을 넣었다. 파격적인 변화다.

바뀐 심장 덕분에 뜀박질 실력이 좋아졌다. 과거 직렬 4기통 2.0L 터보 가솔린을 품은T4는 최고출력이 190마력이었는데, 마일드 하이브리드인 B4는 197마력(최대토크 30.6kg·m) 힘으로 네 바퀴를 굴린다. 가속 시 48V 배터리가 14마력으로 엔진을 보조하는 까닭에 체감상 힘의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T4와 마찬가지로 터보차저를 품었지만,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덕분에 터보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8단 자동변속기와 엔진의 궁합도 좋다. DCT처럼 빠르진 않지만 일반 토크컨버터 변속기와 비교하면 성능이 훌륭하다. 변속 과정에서 버벅거리는 일도 거의 없다. XC40은 기본기가 탄탄한 콤팩트 SUV다. 경쟁 모델인 아우디Q3, 폭스바겐 티록, 벤츠 GLA보다 나은 선택이다. 서스펜션은 살짝 단단하게 조율했는데, 노면에 거칠게 대응하지 않는다. 브레이크는 말할 필요도 없다. 안전과 타협이 없다는 볼보의 정신이 그대로 느껴진다. 한순간도 자신이 맡은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부분이 완벽하지는 않다. 걸걸한 엔진 소음도 거슬린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잘 만든 디젤 엔진과 비슷한 정도로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문제는 이 소리가 실내까지 파고든다는 점이다. 콤팩트 SUV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여기에 불만 하나 더. 작은 차체에 마일드 하이브리드라는 요소를 더했지만, 연료를 들이키는 양이 그리 적은 편이 아니다.

이제 외모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에 시승한 XC40은 모멘텀과 인스크립션 중간에 있는 R-디자인이다. 일반 트림과 달리 R-디자인 전용 블랙 그릴과 전용 휠로 스포티하게 다듬은 외모가 특징이다. 솔직히 디자인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다. 요즘 볼보 디자인은 맛있게 익은 제철 과일 같다.

R-디자인 실내에는 100% 재활용 가능한 오렌지 컬러 펠트 소재로 젊은 감성을 더했다. 시트는 가죽과 알칸타라 조합이다. 2열은 루프와 C필러가 낮게 떨어지는 형태가 아니어서 평균 키 성인 남성이 앉아도 공간이 부족하지 않다. 시트 각도는 너무 곧추세운 느낌이다.

XC40은 미니멀리스트에게 제격이지 않을까 싶다. 부족함 없는 공간과 경쾌한 달리기 실력,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외모 등 모든 부분이 그럴싸하다. 아,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을 뻔했다. 가격은 절대 미니멀하지 않다.

 허인학

사진 이영석

자동차 전문 매체 <탑기어 코리아>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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