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바람 시린 바닷가로 탐조여행을 떠나자 - 새, 겨울바다를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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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겨울을 나기 위해 먼길을 날아 우리나라를 찾았고 사람들은 그 새를 보러 겨울바다로 향한다. 새들은 자신들에게 씌워진 조류독감의 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추수가 끝난 논에서 먹이를 찾거나 군무를 펼치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겨울 철새들의 천국 충남 서산의 천수만을 찾아 아름다운 새들의 모습과 겨울바다의 고요를 즐겼다

새가 보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평소 새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환경이나 생태를 고민한 적도 많지 않으니 다분히 충동적이다. 그나마 이유라고 생각되는 한 가지는 언젠가 자유로에서 만났던 새들의 평화로운 비행모습 정도. 겨울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철새 여행을 부추겼을 것이다.
봄이 오면 꽃을 찾고 가을이 되면 단풍을 보러 길을 떠나듯, 여름과 겨울의 발걸음은 바다를 향하게 된다. 둘 중 더 마음이 끌리는 쪽은 겨울바다. 북적임과 소란스러움이 없는 것이 첫 번째, 을씨년스러움과 고즈넉함이라는 야누스의 얼굴이 두 번째 매력이다. 철 지난 바닷가의 한가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싱숭생숭하다가도 해넘이의 노을을 만나면 한없이 차분해진다.

철새들의 낙원, 천수만
고등학교 때 우리나라는 대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유난히 침략과 전쟁이 많았다고 배웠다. 얼지 않는 항구를 확보해 바다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와 한반도를 통해 대륙으로 뻗어 가려는 일본,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다. 이는 계절에 따라 먼길을 떠나는 철새들에게도 고스란히 들어맞는다.
겨울 철새는 겨울을 나기 위해 러시아 등지에서 우리나라를 찾고 여름 철새는 동남아나 오스트레일리아 등 남쪽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우리나라에 온다. 겨울 철새들의 고향은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캄챠카 반도 혹은 아무르강 근처. 아시아 대륙의 극한지역인 이런 곳들은 봄과 여름에는 새들의 번식지로 아주 좋지만 겨울에는 영하 수십℃ 아래로 기온이 떨어지면서 완전히 얼어붙은 땅이 되고 만다. 그래서 이곳의 새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다.
철새를 만나러 가는 길은 험했다. 길이야 서해안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렸지만,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조류독감(정확한 명칭은 ‘조류 인플루엔자’) 소식 탓이다. 일단 걸리면 치사율이 70∼80%라니 신경 쓰이지 않을 리가 없다. 그래도 여행을 강행한 것은 ‘나는 예외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사람이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될 확률은 0%에 가깝다는 정보 덕분이다.
천수만을 향한다. 서울에서 가까울뿐더러 300여 종, 40만 마리의 새들이 찾는 철새들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뉴스 끝자락의 영상뉴스나 신문의 지면을 장식하는 가창오리의 군무(群舞)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천수만에 자리잡은 간월암 역시 발걸음을 잡아끌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홍성나들목으로 빠져나가면 이내 천수만을 만나게 된다. 천수만은 충남 서산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은 안면도와 육지 사이의 바다. 길이가 200km에 이르는 좁고 긴 만이다. 천수만(淺水灣)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심이 얕아 큰 배들은 다닐 수 없다. 대신 갯벌이 넓다.
철새를 볼 수 있는 곳은 엄밀히 말하면 천수만이 아니라 간월호와 부남호다. 간월호와 부남호는 천수만의 북쪽 끄트머리를 막아 만든 담수호다. 홍성군 서부면 궁리와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를 이어 간월호가 생겼고 여기서 다시 태안군 남면 당암리를 연결해 부남호를 만들었다
간월도리에서 간월호라는 이름을 따왔고, 부석면+남면에서 부남호를 만들었다 한다. 남아 있던 바닷물을 오랜 시간에 걸쳐 빼내 이제는 완전한 담수호가 되었다.
담수호만 생긴 것은 아니다. 4천700만 평이라는 넓은 땅도 생겼다. 예전 대통령 선거 때 150만 명이 모였다는 여의도 광장보다 400배 정도 큰 넓이다. 경비행기로 볍씨를 뿌리는 이 너른 논에 추수가 끝나고 남은 나락은 새들에게 중요한 먹이가 된다. 요새는 대형 콤바인으로 작업하면서 낟알이 남아나지 않아 서산시에서 낟알을 남겨 놓으면 보상한다고 한다. 철새는 절로 날라 오는 것도, 공짜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새, 새, 새……
새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이 없는 이에게도 천수만이 유명한 것은 가창오리의 군무 때문이다. 가창오리는 ‘멸종위기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의해 보호받는 종으로 개체수가 그리 많지 않다. 가창오리의 정식이름은 ‘바이칼 오리’(baikal teal). 하지만 이들의 고향인 러시아의 조류학자들도 기껏해야 열댓 마리를 볼 수 있을 뿐이란다. 하지만 천수만에 해가 지면 수십만 마리가 날아오르는 장관을 볼 수 있다.
겨울해가 빨리 지는 것을 걱정해 서두른 덕인지 간월호에 도착해도 시간이 여유롭다. 가창오리는 야행성이라 낮에 쉬고 밤에 먹이를 찾아 날아오른다. 그래서 탐조버스로 간월호를 둘러보기로 했다. 시간이 남으면 간월암까지 다녀올 생각이다.
탐조버스에 올라 간척지에 들어섰다. 추수가 끝나 퀭한 논을 짙은 갈색의 기러기들이 덮고 있다. 탐조 가이드에 따르면 기러기는 식물성 먹이만 먹기 때문에 배설물이 알카리성이다. 그래서 기러기가 많이 오는 이듬해는 땅이 기름져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더구나 성격마저 가족적이라고 하니 행동이나 성격이나 여러모로 익조(益鳥)인 셈이다.
논 가운데를 지나 물가로 왔다. 간월호를 끼고 도는데 갖은 새들이 평화롭게 쉬거나 먹이를 먹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내려 새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탐조대를 만들어 놓아 정해진 곳에서만 볼 수 있다. 탐조대라고 해서 별 것은 아니다. 새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사람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볏짚으로 커다란 벽을 만들고 거기에 구멍을 내 새들을 볼 수 있도록 한 정도다.
새에 대해 잘 모르니 크기와 색만 비슷하면 같은 새로 보여 답답하다. 가이드에게 일일이 물어 새의 이름을 알아내지만 다시 보면 ‘이 새가 그 새던고?’ 싶어 가슴을 친다.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은 왜가리. 황새목에 속해 생긴 것은 황새처럼 잘 생겼지만 하는 짓은 참 미련하다. 미련한 먹보의 상징인 돼지도 위의 80%가 차면 구정물통을 발로 찬다는데, 이 녀석은 실컷 먹고 토하고 또 먹는다. 더구나 원래는 여름 철새로 가을이면 남쪽으로 내려가야 되지만 먹을 것이 많아 그냥 머물면서 텃새화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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