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차갑고 푸른 산하 - 태백·삼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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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태백과 삼척은 한 지역이었다. 태백산맥의 산중에 들어앉은 '하늘 아래 첫 도시' 태백은 한때 '한국의 루르 지방'이라 할만큼 규모가 큰 탄광도시였으나 이제 그 흔적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선탄장이 아직 남아 그 역사성을 보여준다. 고개를 넘으면 삼척의 시리고 푸른 바다가 반긴다. 아스라하게 이어지는 바다는 굽이마다 다른 풍광을 보여주었다

하필이면 가장 추운 날, 가장 추운 곳으로 떠난다. 겨울에는 아무리 추워도 동해로 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은 내심 겨울바다를 보고 싶었던 때문이다. 이번에는 태백과 삼척을 하나로 묶어보기로 했다. 한때 탄광지대로 이름높았던 태백이나 동굴관광도시를 내세우는 삼척이나 사실 막막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가장 겨울다운 풍경이 거기 있을 것 같았다. 높은 산악지대를 넘으면 바로 바다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본디 태백과 삼척은 한 지역이었다. 삼척은 강원도에서 가장 큰 지역이었으나 1980년 북쪽의 북평읍을 동해시에 떼어주고 이듬해에는 서남쪽의 황지읍과 장성읍을 떼어내 태백시로 독립시켜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겨울나무는 스스로 잎을 모두 떼어냈지만 머지않아 다시 무성할 것이다. 자, 겨울 속으로 출발이다.

사북, 고한 지나면 ‘하늘 아래 첫 도시’ 태백
서울 쪽에서 태백으로 가는 길은 영동고속도로를 끝까지 타고 동해까지 가서 태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과, 중앙고속도로로 갈아 탄 다음 제천에서 빠져 영월을 거쳐 태백으로 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앞의 길이 조금 편할 수는 있겠지만 거리가 휠씬 더 멀다. 가는 길에 영월, 태백을 지나 삼척으로 들어가고, 오는 길에 동해를 거쳐오면 보다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오가는 길이 같지 않다는 데서 길의 단조로움도 줄여준다.
이상하게도 서해 남부 쪽으로는 대설주의보가 내리는데, 강원도 동해 쪽으로는 눈발도 구경할 수 없었다. 눈꽃을 보고도 싶었으나 교통을 생각하면 차라리 다행이기도 하다. 눈을 대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다. 눈 대신 하늘은 시리도록 푸른빛을 안겨주었다. 사진을 찍기에는 춥지만 착한 날씨다.
어느새 영월 부근이다. 차창으로 스쳐가는 겨울산은 정말 쓸쓸하고 삭막했다. 사북, 고한 표지가 이어서 지나가는 이곳은 정선. 아우라지의 고장이라는 표지가 바람에 날려 가는 종이처럼 부질없어 보였다. 이른바 ‘사북사태’라는 1980년 격동의 현장으로 기억되는 사북에는 더 이상 거친 탄가루가 날리지 않았다. 카지노 강원랜드를 가리키는 표지가 여기서 또 저기서 나타났다 사라지고 이따금씩 전당포 간판이 보이는 골목이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매서운 추위에 학교 갔다 오는 아이들의 어깨가 좁아 보였다.
철로 차단기 앞에서 차는 몇 번이나 멈춰 섰다. 겨울의 철로는 차디차다
햇살이 부딪쳐 얼음처럼 차갑게 쨍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관사 처마 끝의 고드름은 예리하게 무엇인가를 노리는 듯 보였다.
태백산맥의 산중에 들어앉은 ‘하늘 아래 첫 도시’ 태백에 들어섰다. 한때 국내 석탄 생산의 30%를 차지해 ‘한국의 루르 지방’이라 불리던 곳.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산굽이를 돌아가는 철길이 그 기억을 더듬고 있을 뿐이다. 지나는 길에 낙동강의 발원지라는 황지연못을 찾았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도 이곳 태백에 있는데 멀고 먼 낙동강의 발원지까지 품고 있다니 무언가 신비스런 느낌이 들었다.
황지연못은 외딴 곳에 있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동네 한가운데에 있었다(물론 동네가 나중에 들어선 것이겠지만). 아담하게 꾸며진 공원 안에 그저 보통의 연못처럼 자리하고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야말로 명경지수(明鏡止水)다. 물이 깨끗하기가 이루 비할 데가 없다. 그야말로 물의 원천인 것이다.

근대문화유산, 철암역 선판장에서
1930년대 말부터 형성된 탄광마을 철암의 내력을 고스란히 지녀온 철암역사는 외벽의 붉은 벽돌이 허물어지는 바람에 새로 단장을 하고 있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을 역사는 한적하기 이를 데 없었고, 거리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식당이며 구멍가게, 미용실, 호프집 등이 늘어선 거리의 가게건물 중 절반 이상은 비어 있고, 그나마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얼마 있지 않아 차선확장공사가 시작되면 모두 철거될 것이기 때문이다.
80년대의 호황을 끝으로 90년대 들어 대부분의 군소탄광이 모두 폐광하면서 철암의 인구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도시는 활기를 잃기 시작했다. 철암지역 최대의 탄광이었던 강원산업이 폐광한 것이 93년. 지금은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철암분소 하나만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런데 꽤 부산한 움직임이 보인다. 최근 고유가로 연탄 사용이 늘어나면서 탄광이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것. 산자락에 가득 쌓아놓은 정부 비축분 석탄을 꺼내고 있는가 하면 지하 막장에서도 새로 석탄을 캐내고 있다. 이렇게 캐낸 석탄은 화차에 실어 동해 발전소로 가고, 대형 덤프트럭에 실려 연탄공장 등지로 간다. 철로는 묵호항까지 이어지는데 1930년대 말 장성탄광에서 채굴한 석탄을 반출하기 위해 묵호항과 철암을 잇는 철도가 처음 가설되었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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