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베이비 페라리' 현대 투스카니 V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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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한 성능도, 뒷바퀴 굴리는 묘미도 없지만 상관없다. 이 차는 '베이비 페라리'란 별명이 아깝지 않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스포츠카가 나오는구나.’ 가슴이 뛰었다. V6 엔진 얹은 국산 스포츠카라니, 최고시속 222km로 달릴 수 있다니! TV 티저 광고 속 투스카니는 어린 자동차 마니아의 가슴을 두드리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2001년 9월, 마침내 투스카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가슴이 차디차게 식어버렸다. 바보처럼 큼직한 눈망울(헤드램프)이 한없이 순해 보였으니까. 빠르면 뭐 해? 어항 속에서 뻐끔거리게 생겼는데.

 

아이러니다. 가장 못생겨 보이던 초대 모델이 지금은 가장 예뻐 보인다

그러나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멍청한 표정이 보면 볼수록 정이 갔다. 개성도 또렷했다. 세계 시장에 내놓기에 부끄럽지 않았다. 현대차의 노림수다. 투스카니 개발 프로젝트 ‘GK’를 첫 가동하던 1999년 6월, 현대차는 미쓰비시 그늘을 벗어나 독자 개발에 열 올리고 있었다. 플랫폼부터 직접 만든 EF 쏘나타, 그랜저 XG, 그리고 아반떼 XD를 연달아 내놨다. 투스카니는 그런 현대차의 행보를 널릴 알릴 임무를 띤 스포츠카다. 요즘 말로 ‘헤일로카’다. 조금 붕어 같아 보이긴 해도 투스카니 만의 스타일로 빚어냈다.

성공이었다. 뻐끔거리는 얼굴은 쿠페 스타일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외모뿐만은 아니다. 작은 차체에 올린 V6 2.7L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 조합은 스포츠카라고 부르기에 손색없는 성능을 뽐냈다. 괜히 영국 <탑기어> TV쇼에서 투스카니를 ‘베이비 페라리’라고 불렀겠는가. 우리나라에선 스포츠카 문화를 꽃피웠고, 해외에선 저렴한 ‘펀카’로 인기를 끌며 현대차 이미지를 견인했다. 2008년 단종까지 국내외 누적 판매고는 29만6882대. 이중 91.1%가 모두 해외 판매다. 투스카니는 헤일로카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투스카니 전용 엠블럼을 달고 스포츠카다운 디테일을 기교를 담았다

어느덧 등장 후 20년이 지난 오늘날, 이제는 올드카로 변모한 투스카니를 직접 마주했다. 세월이 무색하다. 높이 133cm에 불과한 차체는 여전히 날렵하다. 길쭉한 보닛과 아찔하게 누운 쿠페 윤곽까지. 세월이 지나도 스포츠카는 스포츠카다. 눈으로만 보면 현대 벨로스터 N보다 훨씬 빨라 보인다. 국산차 최초로 17인치 휠을 달았던 그때는 얼마나 강렬했을까.

 

무게가 단 7.5kg에 불과한 17인치 단조 휠 / 보닛 안쪽이 파란색이다. 놀랍게도 출고 색깔은 은색이라고

시승차는 2001년식 초기형 투스카니 엘리사 수동. 음? 그때 그 모양이 아니라고? 맞다. 이 차는 20년 동안 무려 13번 주인을 바꾸며 수많은 개조를 거쳤다. 앞모습은 2004년 첫 부분변경 거쳤을 때의 모습, 뒷모습은 2006년 두 번째 부분변경 때의 모습이다. 색깔도 그렇다. 트렁크 안쪽은 은색인데, 엔진룸 안쪽은 파란색이고, 바깥엔 흰색 페인트를 둘렀다. 젊은이들의 스포츠카로 달려온 20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었다. 그래도 중기형에 들어간 17인치 경량 단조 휠까지 신은 모습을 보니 주인들의 애정을 듬뿍 받은 모양이다. 무게가 단 7.5kg에 불과한 무척 귀한 휠이다.

 

높이가 납작한 운전석 / 레카로 시트로 유명한 카이퍼와 협업으로 만들었다는 버킷시트

‘진짜 낮네!’ 운전석에 앉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스티어링휠 잡고 앉은 자세는 시트 높이가 낮고 보닛도 저만치 뻗어 있어 뒷바퀴굴림 본격 스포츠카 부럽지 않다. 엉덩이와 허리를 바짝 죄는 버킷 시트와 깃발처럼 문짝에 뿌리내린 사이드미러 역시 마찬가지. 레카로 시트로 유명한 카이퍼와 협업으로 만들었다는 버킷시트는 모양도, 착좌감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배기 튜닝을 해놓아 소리가 저음으로 웅웅거린다

시동을 걸자, V6 엔진이 우렁차게 기지개를 켠다. 투스카니 2.7L 델타 엔진 배기음은 원래 좋기로 유명했는데, 시승차는 배기 튜닝을 해놓아 소리가 더 웅장하다. 낮은 rpm에서 저음으로 ‘웅웅’거리니, 괜히 감성 마력이 차오른다. 개인적으론 6기통 엔진의 시원한 음색을 들려주는 순정 배기 소리가 더 낫지만.

1단 기어를 집어넣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딴딴하다. 역시 튜닝 때문이다. 원래 투스카니 엘리사는 장거리 여행이 가능한 GT 성격이 짙었다. 시승차는 독일 튜닝 업체 ‘아이박’의 다운스프링과 순정 댐퍼(독일 삭스와 함께 개발한 댐퍼다)를 조합했다. 덕분에 순정보다 하체가 잔뜩 긴장을 머금었다. 마치 경주차처럼 노면 충격을 고스란히 전한다. 스티어링휠 잡은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간다.

 

변속기를 조작하는 감각이 구형 SLR 카메라 셔터처럼 기계적이고 예스럽다

변속기도 그렇다. 옛날 트럭 변속기처럼 움직임에 무거운 저항이 걸리는데, 레버 이동 거리는 또 짧다. 진짜 경주차 변속기 같다. 클러치를 힘껏 눌러 묵직한 시프트레버를 철컥철컥 옮기는 감각이 구형 SLR 카메라 셔터처럼 기계적이고 예스럽다. 참고로 오늘날 닛산 자회사로 변모한 일본 아이치기기공업에서 납품받은 변속기다.

 

빠르다. 사실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1.3t 덩치에 최고출력 175마력은 충분하다. 더욱이 빠른 가속에 집중해 기어비를 촘촘히 나눈 변속기까지 맞물려 가속이 제법 매콤하다. 자연흡기 6기통 엔진의 고회전 소리가 귀를 파고들기 시작하면 기분만큼은 이미 고성능 스포츠카다. 투스카니는 제원상 시속 100km까지 8.5초 만에 가속하고, 최고시속 220km로 달릴 수 있다.

예상외로 고속 안정감도 좋다. 그럴만하다. 투스카니 개발팀은 당시 ‘차체 강성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보기에만 좋았던 티뷰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였다. 아반떼 XD 플랫폼을 밑바탕 삼았지만, 우물 정(井) 모양 서브프레임과 스트럿바(서스펜션 마운트 사이를 잇는 뼈대)를 더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인 결과, 비틀림 강성이 2만3942Nm/deg에 달한다. 최신 신차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치다. 아니, 괜히 베이비 페라리가 아니라니깐.

코너에서도 마찬가지다. 납작한 무게 중심과 단단한 튜닝 스프링, 탄탄한 차체 강성이 어우러져 든든하게 쏠림을 억제하며 코너를 돌아나간다.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타이어를 달고 출고했던 처음엔 얼마나 빠르게 달릴 수 있었을까. 잠깐, 너무 좋은 얘기만 했나? 튜닝 스프링 승차감은 아주 아주 별로였다. 노면 소음도 시끄럽다. 누군가 이 차로 장거리를 달리라고 한다면 차라리 버스를 타겠다. GT는 무슨.

 

현대 투스카니. 갑자기 구하기도 어려운 6기통 투스카니를 시승한 이유는 별것 없다. 그리워서다. 저렴한 가격에 운전 재미와 스포츠카 감각을 만끽할 수 있는 차. 투스카니 후속이라 불리는 벨로스터 N은 엄청나게 빠르고 재밌지만, 그래도 핫해치다. 정통 스포츠카를 표방했던 투스카니만의 맛과 V6 엔진 감성은 어디에도 없다. 직접 타보니 더더욱 그렇다. 다시 한번 이토록 저렴한 스포츠카가 나온다면 꼭 사고 말 테다. 나만 그런가?

 윤지수

사진 이영석

 


투스카니에 얽힌 시시콜콜 이야기

 

뉘르부르크링 24시에서 올린 쾌거

때는 바야흐로 2007년 6월, 뉘르부르크링 24시 레이스에 투스카니가 참전했다. 느려터진 투스카니가 얼마나 빨랐겠냐고 놀라지 마시라 총 99바퀴를 달려 SP 4-5 클래스(2000cc 이상 3000cc 이하) 2위, 전체 클래스 13위를 기록했다. 랩타임 최고기록은 9분 51초 367이다.

 

값비싼 재료를 섞었다

오디오 시스템이 놀랍다. 미국 하만카돈 트래픽 프로 헤드 유닛과 JBL 스피커를 조합했다. 포르쉐 911에 들어가던 바로 그 유닛이다! 그뿐인가?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타이어, 독일 삭스와 협업한 전용 서스펜션, 대응 토크가 높은 아이치기기공업제 변속기가 달렸다.

 

헛바람 뺐어요

투스카니는 처음 나왔을 때 언론은 ‘디자인이 단순하다’고 평했다. 전작이었던 티뷰론이 우락부락 근육질이었던 까닭이다. 왜 이토록 말끔한 스타일로 빚었을까? 투스카니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티뷰론은 브랜드 첫 스포츠카라 시각적 허풍이 있었다. 투스카니는 그런 허세를 모두 없앴다.”

자동차 전문 매체 <탑기어 코리아>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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