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춘풍추상, 메르세데스-벤츠 GLE 350 e 쿠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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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 눈에 불을 켜고 GLE 350 e 쿠페를 살펴봤다. 단점은 없을까? 역시 벤츠일까? 사람들은 차를 평가할 때 유독 메르세데스-벤츠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 “벤츠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라든가 “벤츠는 다를 거야” 라며 기준을 높게 잡는다. 혹독한 시집살이가 따로 없다. 1886년 칼 벤츠가 지금 자동차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만들어내면서 자동차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그렇다. 벤츠는 늘 고급스러운 세단, 최신 기술을 잔뜩 집어넣은 차만 만들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이 생각은 그대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GLE 라인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300 d부터 400 d, 450, AMG 53, AMG 63까지 갖췄고, 최근에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350 e까지 추가했다. 모든 파워트레인을 욱여 넣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300 d는 실망스러웠다. 벤츠가 맞나 싶을 정도로 편의 장비에 인색하고, 4기통 디젤 엔진의 느낌도 좋은 점수를 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반대로 직렬 6기통 심장을 품은 450은 부정적인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350 e는 어떨까?

제원에 적힌 내용만 보면 그다지 신선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직렬 4기통 터보 가솔린과 전기모터의 만남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미 다른 브랜드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큰 덩치에 비해 엔진 배기량도 작아 보였다. 보디빌더가 어린이용 자전거를 타는 느낌이랄까? 자, 여기까지는 제원표만 보고 한 얘기다.

GLE 350 e는 머릿속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 놓았다. 211마력을 내는 심장과 100kW짜리 전기모터의 힘이 나쁘지 않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그럴듯한 뜀박질 실력을 보여준다. 스포츠 모드에 두거나 가속 페달을 미친 듯이 밟지만 않는다면, 배터리양이 충분하고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엔진이 쉽게 깨어나지 않는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순수 전기 주행거리와 배터리 효율을 높인 3세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술을 넣었는데, 덕분에 기름을 한 방울도 쓰지 않고 66km를 달릴 수 있다(WLTP 기준 96km). 변속기는 전기모터에 맞춰 개발한 하이브리드 전용 9단 자동변속기다. 일반 GLE와 다르게 컴포트, 에코, 오프로드 외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용인 배터리 레벨, 전기 모드도 있다. 회생제동으로 주행 시 발생하는 전기도 알뜰하게 긁어모으는데, 패들시프트를 이용해서 D 오토와 D+, D, D-, D-- 다섯 가지 설정으로 단계를 조절할 수 있다.

사실 정숙성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가솔린 엔진이라 해도 4기통은 어쩔 수 없이 소음이 약간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GLE 350 e는 완전히 다르다. 심장이 뛰는 상황에서 한 톨의 소음도 실내로 파고들지 않는다. 마치 조용한 숲속을 혼자 걷는 듯한 느낌이다. 엔진과 전기모터가 배턴을 주고받는 과정도 매끄럽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계기판을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어떤 유닛으로 바퀴를 굴리는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다. 이 부분만 따지면 경쟁 모델인 X5보다 한 수 위다.

승차감은 어떨까? 키가 껑충한데도 불구하고 다루기 쉬우면서 요람을 타고 있는 듯하다. GLE 350 e에는 댐핑조절 시스템을 포함한 에어매틱 패키지를 적용했다. 노면, 무게, 속도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스스로 댐퍼를 조절하고, 고속 주행 시에는 스르륵 차체를 내리기도 한다.

외모는 일반 GLE와 다르지 않다. 다른 그림 찾기놀이를 해도 될 정도다. 멀티빔 LED 헤드램프와 근육질 펜더, AMG 다이아몬드 그릴, 싱글 루버 등 모든 부분이 같다. 다른 점이라고는 팬더에 붙은 EQ 파워 배지와 충전구 정도다. 낮게 떨어지는 루프 라인에는 쿠페 모델다운 스포티한 이미지가 드러난다. 엉덩이와 테일램프는…. 개인적으로는 꼭 저런 디자인이어야 했나 싶다.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만약 내가 GLE 350 e를 산다면 쿠페가 아닌 일반 SUV 모델을 선택하겠다.

실내는 역시 벤츠다. 기다란 와이드 스크린을 중심으로 최신 벤츠 구성을 유지했다. 계기판에는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띄울 수 있고, 중앙 스크린을 통해서도 조작이 가능하다. 모든 부분을 고급스러운 소재로 덮지는 않았지만 조립 품질은 훌륭하다. 다만, 여러 기능을 조작할 수 있는 터치패드와 친해지기가 쉽지 않다. 공간에 대한 불만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2열은 키가 180cm 넘는 성인 남성이 앉아도 불편하지 않은 수준이고, 짐공간 역시 넉넉하다.

나름 엄격하게 바라본 GLE 350 e 쿠페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가 분명하다. 환경을 생각하는 파워트레인과 벤츠 특유의 고급스러움, 플래그십 세단 못지않은 승차감까지. 사람들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머리 싸매고 만든 흔적이 드러난다.

 

 허인학

사진 이영석

자동차 전문 매체 <탑기어 코리아>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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