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태조 능에 억새풀이 무성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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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시는 역사가 숨쉬는 도시다. 고구려 유적의 보고인 아차산을 비롯해 조선 왕조 500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동구릉이 있다.

동구릉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부터 제24대 헌종의 경릉에 이르기까지 9릉 17위의 왕과 왕후 능이다. 그 아홉 능을 하나하나 손꼽아가며 둘러보면 마치 <조선왕조실록>을 펼쳐 보는 듯한, 흥망성쇠를 거듭한 한 왕조의 부침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우거진 숲과 잘 단장된 능역, 능역을 가로지르며 개울물이 흐르고 산새들 울음소리가 깊은 숲을 방불케 하는 동구릉은 구리시민에게는 더없이 좋은 쉼터이기도 하다.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과 달리 그들의 모습은 여유있고 한가롭다. 유모차를 끌며 산책하는 젊은 부부의 모습에서나, 커플 운동복을 입고 느릿느릿 걷는 노부부의 모습은 동구릉에 잠든 그 역사의 부침을 잠시 잊게 한다.

동구릉에서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곳은 역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이다. 산책로를 따라가면 먼저 수릉과 현릉을 만나는데, 그 곳의 말끔하게 손질된 봉분과 달리 건원릉 앞에 서면 깜짝 놀란다. 마치 돌보지 않은 무덤처럼 봉분에 잡초가 무성해서다. 알고 보면 그 것은 잡초가 아니라 억새이고, 건원릉에 억새풀이 무성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조선 건국이라는 대업을 이룩했으나 피비린내나는 왕자의 난을 지켜본 태조는 한양을 떠나 고향인 함흥으로 돌아갔다. 방원(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문안을 위해 함흥의 태조에게 차사를 보냈으나 그 때마다 돌아오지 않았다. ‘심부름을 보냈는데 감감무소식인 사람’을 일컬어 ‘함흥차사’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옴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야사에 따르면 태종이 차사를 보낼 때마다 태종에게 몹시 화가 난 이성계가 이를 모조리 죽였다고 하는데, 어쨌든 이는 태종과 태조의 갈등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세상을 뜨기 전 태조는 자신의 고향인 함흥땅에 묻히기를 원했으나 아들 태종은 그 말을 거역하고 이 곳을 태조의 능지로 잡았다. 대신 고향땅의 흙과 풀 아래 잠들고 싶어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고향에서 가져온 흙과 억새로 봉분을 덮었다고 한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봉분의 억새풀을 바라보고 있자니 저 곳에 잠든 태조는 아들의 이런 배려를 기특하다 여겼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억새가 무성한 건원릉을 뒤로 하고 나서면 조선 최장수 왕이자 최고 재위 기록을 남겼던 21대 영조와 정순왕후의 원릉(元陵)이 걸음을 잡는다. 영조(1694~1776)는 52년간 왕위에 있었고, 83세까지 장수한 왕이다. 오래 왕위에 있었던 만큼 탕평책과 균역법, 현재 복원중인 청계천 준설 등 치적도 많지만, 무수리였던 숙빈 최 씨의 소생이라는 탄생부터 시작해 경종 독살설에 휘말리며 왕위에 올라 사도세자의 죽음까지 드라마틱한 사건을 많이 남겼다. 영조와 나란히 잠들어 있는 계비 정순왕후(1745~1805) 또한 15세에 영조의 계비로 들어와 사도세자의 죽음에 한 몫했고 조선을 떠들썩하게 만들며 피바람을 몰고 왔던 왕비다.

동구릉에서 가장 깊은 안쪽에 자리잡은 왕릉은 14대 선조(1552∼1608)와 그의 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목릉(穆陵)이다.

이 밖에 현릉(顯陵 : 5대 문종과 그의 비 현덕왕후), 휘릉(徽陵 :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숭릉(崇陵 : 18대 현종과 그의 비 명성왕후), 혜릉(惠陵 : 20대 경종의 비 단의왕후), 수릉(綏陵 : 23대 순조의 세자인 추존왕 익종과 그의 비 신정왕후), 경릉(景陵 : 24대 헌종과 그의 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 등이 자리해 모두 9릉 17위가 모셔져 있다.

동구릉은 조선왕조 전 시기에 걸쳐 조성됐는데, 동구릉이라고 부른 건 수릉이 아홉 번째 조성되던 1855년(철종 6년) 이후의 일이며, 그 이전에는 동오릉, 동칠릉이라 불렀다.

*맛집
동구릉 주변에 여러 맛집이 있다. 왕릉 주변에 가면 유독 갈비집이 많은데, 이 곳도 소풍갈비(031-563-6208)가 눈에 띈다. 동구릉 능역을 흘러내려온 물줄기가 만든 개울물이 식당 앞을 흐른다. 숯불을 이용한 소, 돼지갈비와 갈비탕을 선보인다. 깔끔한 밑반찬이 입맛을 돋운다.

*가는 요령
중부고속도로 구리 IC로 구리시에 진입, 북쪽 인창동으로 빠져나간다. 서울에서는 서울외곽순환도로 구리 IC에서 빠져 퇴계원 방향 43번 국도를 타고 500m 가면 동구릉주차장이다. 혹은 내부순환 - 북부간선도로 - 구리시에서 퇴계원 방향 43번 국도를 타고 500m 가면 된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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