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F1 전설적 영웅 J.M. 판지오 84세로 세상 떠나 - 국내 랠리카, 새천년에 남북 산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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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에서 자동차 경주 개최(2000년). 대회명은 통일염원 금강산 자동차질주. 7월 1일부터 4일간 서울과 강원도 평창, 금강산 일대 545.24km에서 펼쳐진 이 대회에서 오병진·구완희 조가 우승컵을 안았다. 북한 금강산 일대에 처음으로 대회 후원사 광고판이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2. 스파이커 60HP 레이서 경주차, 고든 베네트 레이스에서 우승(1903년). 세계 최초의 6기통 엔진으로 네바퀴굴림 방식을 도입한 차였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네 바퀴에 브레이크를 단 것도 이 차가 처음이다. 5,073cc 엔진을 얹고 있었지만 레이스를 하기에는 힘이 부족해 배기량을 8,680cc로 늘였다. 이 때문에 모델을 60/80HP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3. N. 만셀(사진), 프랑스 GP에서 F1 윌리엄즈팀 드라이버로 출전(1994년). 92년 F1 챔피언이 되자 윌리엄즈팀을 떠나 미국 인디카 레이스에 뛰어든 만셀은 93년 챔피언이 되었다. A. 프로스트(윌리엄즈)가 93년 말에 은퇴하자 만셀 복귀가 논의되었고 94년 5월 산마리노에서 A. 세나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뒤에는 F1의 인기회복을 위해서도 만셀을 불러와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된 것.

4.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 경기 개최. 미국의 단일 모터스포츠로는 인디 500에 버금가는 행사다. 올해로 84회째를 맞이하는 이 대회의 결승은 매년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열린다. 코스는 파이크스 피크 산의 해발 2,861m 지점에서 골인지점인 4,300m까지 달려 올라간다. 백두산의 1.5배가 넘는 높이기 때문에 차에 산소통을 준비해야 할 만큼 힘든 레이스다.

5. L. 테리, 1904년에 이어 브라시에 96HP를 몰고 우승, 2연패를 이루었다(경주거리 512km, 평균시속 77.87km). 이 경주를 끝으로 최초의 국제 자동차 경주로 기록된 고든 베네트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주관단체인 프랑스자동차클럽이 대항전 성격을 지닌 국제 자동차 경주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제9전 미국 클리블랜드 GP, CART 사상 첫 야간 레이스로 펼쳐졌다(2003년).

6. M. 하우톤(사진), 페라리 머신으로 F1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우승(1958년). F1 5회 챔피언 J.M. 판지오(마세라티)는 4위, 미국 오픈휠 스타 T. 루트만(마세라티)은 10위로 피니시 라인 골인. 존 포스, 미국 캔자스에서 열린 드래그레이스(NHRA) 퍼니카 부문에서 4.9초대 벽을 경신한 첫 번째 드라이버(1996년). 기록은 4.889초.

7. 인도네시아 랠리에 아시아태평양 랠리 선수권전(APRC) 처음으로 포드가 워크스팀으로 참가(1995년). 90년대 들어 세계 모터스포츠의 중심이 점차 아시아지역으로 옮겨오면서 메이커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아시아지역이 커다란 시장으로 성장한 까닭이다. WRC에만 주력하던 토요타가 세미 워크스팀으로 APRC에 출사표를 던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10. 윌리엄즈팀의 W. 힐(사진), F1 영국 GP에서 아버지 그레이엄 힐이 이루지 못한 ‘고국에서의 그랑프리 우승’의 꿈을 실현(1994년). 그레이엄은 모터스포츠에서 활약한 명드라이버였다. F1 세계에서 18년 동안 활약한 그는 14회나 우승했으나 모국에서는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그레이엄은 현역에서 은퇴한 몇 달 뒤인 75년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아들 힐이 15세 때의 일이다.

11. 맥라렌 D. 쿨사드(사진), F1 영국 GP에서 98년 산마리노 이후 1년 2개월 만에 우승(1999년). 12만의 관중은 영국 드라이버 쿨사드의 승리에 감격하고 환호했다. C. 피티팔디는 CART 데뷔 5년 만에 첫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1999년). 그의 혈통은 위대한 드라이버인 숙부 E. 피티팔디와 이어진다. 하지만 F1에서 3년을 뛰고, 95년부터 CART로 넘어와서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

12. CART 제10전 캐나다 토론토 레이스에서 본고장 영웅 P. 트레이시(사진)가 압도했다(2003년). 그리드 선두에서 출발해 112주의 전 레이스를 앞서 시즌 4승을 거머쥐었다. 93년 이후 홈타운에서 거둔 첫승. 포사이스팀 메인 스폰서 플레이어즈 담배회사로는 가슴 저린 승리였다. 94년 스폰서로 시리즈에 참가한 이후 캐나다 레이스에서 거둔 첫 번째 우승이었다.

13. J. 빌르너브(사진), F1 영국 GP에서 폴투윈(1997년). 시즌 4승째, 윌리엄즈팀의 데뷔 100승째였다

현재(2006년 모나코 GP 기준) 113승으로 페라리(184승), 맥라렌(148승)에 이어 컨스트럭터즈 최다승 랭킹 3위를 달리고 있다. 이날 르노 엔진은 영국 GP에서 참전 20주년을 맞아 200승을 기록했다.

15. 강원도 태백시에 위치한 태백준용 서킷이 첫 삽을 뜨고 본격적인 건설에 들어갔다(2000년). 98년 기획된 이래 2년 만에 인허가, 부지확보, 그 외 서킷 건설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마무리한 한국모터사이클연맹(KMF)은 2002년에 서킷을 완공했다. 2.5km의 길이로 설계됐고 관람석 및 200m 길이의 4층 피트빌딩 내 VIP룸, 프레스룸, 첨단 관제실 등을 갖추었다.

16. 영국 GP에서 F1 출장 71전째의 J. 허버트(사진), 고국의 실버스톤에서 정상 등극(1995년). 64년에 태어난 87년 영국 F3 챔피언을 따고, 일본 F3000, 르망 24시간을 거쳤다. 89년 베네톤 소속으로 F1 데뷔, 90년과 91년에는 로터스에서 F1 그랑프리 참전, 92년부터 로터스에서 전 경기에 출전했다. 94년에는 14전째 리지에, 마지막 2전은 베네톤에서 뛰었다.

17. F1의 전설적 영웅 후안 마뉴엘 판지오(사진)가 84세로 세상을 떠났다(1995년). 사망원인은 신장병. 94년 산마리노에서 요절한 세나가 가장 존경했던 판지오는 사랑하는 후배를 뒤따라갔다. 일생을 독신으로 지낸 그는 메넴 대통령을 비롯한 아르헨티나 국민의 애도 속에 고향에 묻혔다. GT챔피언십 시리즈 4전이 국내 모터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MBC를 통해 TV로 생중계되었다(2003년).

18. E. 에릭슨과 A. 맥레이를 앞세운 현대팀이 WRC 9전 뉴질랜드 랠리에서 F2 클래스 원투승을 거두었다(1999년). 에릭슨은 스웨덴의 베테랑이고, 영국 출신 맥레이는 95년 WRC 챔피언 콜린 맥레이의 동생이다.

23. 페라리 R. 바리첼로(사진), F1 독일에서 출전 125전 만에 첫승 트로피를 안았다(2000년). P. 트레이시는 30.645초로 97년 밀워키 이후 3년 만에 폴포지션의 영광을 맛보았고 미시건 예선기록을 세웠다(2000년). 그 전에는 치프 가내시의 바서가 세운 96년의 30.682초가 최고기록. 하지만 결승 레이스 승리의 여신은 J. 몬토야에게 미소를 던졌다. 2위 M. 안드레티와의 시차는 0.040초.

25. 강원도 평창군에서 국내 첫 공인 랠리인 해피 700 평창 코리아 랠리 챔피언십 개최(1999년). 평창군청을 기종점으로 하는 총거리 299.06km, 15개 SS 75.78km 구간에서 펼쳐졌다. 49대의 경주차가 출전한 이 대회에서 박정룡과 호주 출신 코드라이버 D. 롱 조가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평창 랠리는 스폰서가 나서지 않아 대회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만 레이스를 마쳤다.

26. 안토니오 아스카리,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알파로메오 P2가 충돌해 병원으로 이동하던 중 사망(1925년). 사고 당시 7살이었던 아들 알베르토 아스카리(사진)는 1940년부터 카레이스에 출전했다. 그 역시 이태리 몬자에서 스포츠카 테스트 중 트랙 장벽을 들이받는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아버지에 이어 36세의 나이로 서킷에서 세상을 등진 것이다.

28. 에머슨 피티팔디, CART 미시건 레이스에서 자신의 첫 우승(1985년). 하지만 96년 미시건 레이스에서 팬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준 사고가 일어났다. 2주째. 2코너에서 G. 무어를 추월할 때 타이어가 접촉하면서 그의 펜스키 머신이 스핀 콘크리트벽에 부딪쳤다. 피티팔디는 혼자 콕피트에서 탈출했지만 후송 뒤 검진결과 척추부상으로 판명되었다. 그는 그 길로 은퇴를 선언했다.

30. 베네톤의 M. 슈마허, F1 독일 GP 역사상 최초의 독일인 우승(1995년). PPI의 C. 다마타가 데뷔 2년째 32전 만에 쟁취한 첫 우승의 감격에 눈시울을 붉혔다(2000년). 덕분에 C. 웰스가 이끄는 PPI 역시 팀 창단 이후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다. 2위는 M. 안드레티, 손가락 골절상을 입은 J. 드페랑이 표창대 끝자리를 차지했다.

31. F1 페라리팀, 제9전 독일 GP에서 59전 만에 우승(1994년). 폴포지션을 잡은 것은 페라리팀의 G. 베르거(사진)였다. 페라리팀으로는 4년 전인 90년, 포르투갈에서 N. 만셀이 예선 1위를 차지한 뒤 60전 만의 일었다. 폴포지션에서 떠난 페라리팀의 G. 베르거는 자신의 9승째와 팀에 104번째 F1 그랑프리 승리를 선사했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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