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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인 '시발자동차'



<기획시리즈> 한국 자동차의 어제와 오늘 ①

우리나라는 GDP순위 13위를 기록할 만큼 성장했다.그 원동력에 자동차 산업이 있다.자동차 산업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2.8%를 차지하는 거대 산업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지난해 생산 409만대로 세계 5위, 내수 122만대로 세계 13위를 기록했다.앞으로 세계 4대 자동차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친환경 미래자동차 개발, 노사 안정을 통한 생산성 향상, 핵심 부품 산업 기반 강화, 정부 지원 강화 등의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


■ 최초의 자동차 '시발' =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시초는 1940년대 말부터 시작된 부품공업과 정비업, 부분적인 차체 수리 및 재생산업이었다.1950년 한국전쟁은, 수공업적 방식이긴 하지만 우리 손으로 직접 자동차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각종 군용 중고차량, 미군 불하차량, 중고부품 등이 상대적으로 풍부해짐에 따라 중고차 재생 또는 조립업체가 생겨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는 1903년 고종황제 어차로 수입된 미국산 포드A형이다.또 최초의 국산차는 1955년 서울에서 정비업을 하던 최무성, 혜성, 순성씨 삼형제가 만든 '시발(始發)자동차'이다.이 차는 1963년까지 2,200여대를 생산했고 1962년 새나라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경쟁력을 잃고 생산을 중단했다.

새나라 자동차는 조립공장을 설립, 근대적 자동차 산업의 기반이 되었다.1955년 설립된 신진공업사는 1965년 새나라 자동차를 인수, 이듬해에 신진자동차로 개칭하고 일본 도요타자동차와 기술제휴를 맺어 ‘코로나’와 ‘퍼블리카’를 생산했다.같은 해 설립된 아시아 자동차는 70년대 초부터 ‘피아트 124’를 출시했다.또 1955년 설립된 경성정공이 1962년 기아산업으로 개칭하고 최초의 3륜트럭 ‘K-360','T-1500'을 선보였다.1967년 자동차 산업에 합류한 현대자동차는 포드와 기술제휴로 ‘코티나’와 ‘포드20M’ 을 생산했다.


■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 = 현대자동차는 1974년에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를 생산했다.1975년, 현대자동차가 종합 자동차공장을 완공함으로써 한국 자동차산업은 근대적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이는 이전 공장들이 최종 조립라인만을 설치했던 것에 비해 엔진, 프레스, 차체, 도장, 조립공장 등 여러 개의 단위공장을 집약한 종합자동차조립공장이라는 특징을 지녔다.

‘포니’는 우리나라의 주력 생산차종이었으며 국산고유모델이었기에 수출산업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또 현대자동차가 1985년, 30만대 규모의 단일모델 전용공장을 완공한 이후 ‘포니’5대를 에콰도르에 수출했다.이어 중동,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 총 1천여대를 수출했다.'포니‘는 첫 수출 7년만인 1983년 10만대를 돌파한 후 1988년에는 단일브랜드로 100만대 수출에 성공했다.

1986년, 기아는 ‘프라이드’, 현대는 ‘포니’에 이은 ‘엑셀’과 ‘프레스토’로 대우는 ‘르망’을 내세워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1988년에는 총 57만1600여대를 수출하게 된다.

이로써 국제 경쟁단위의 생산규모 확충과 내수 및 수출의 안정적 기반에 힘입어 본격적인 자동차산업의 발전단계로 진입했다.우리나라는 대량 수출이후 기술의 자립화와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이루어졌고 1996년에는 280만대 생산에 돌입, 세계 5위의 생산대국으로 올라섰다.


IMF로 인해 경제불황이었던 1998년, 국내 자동차산업 역시 시련을 겪었다.그러나 원만한 구조조정을 통해 성공적인 재편이 이루어졌고 해외 현지생산거점의 확보를 통해 국제적 지위를 꾸준히 향상시켜 나가고 있다.


■ 외국자동차 메이커 국내 입성 = 2000년 프랑스 르노그룹이 삼성자동차를 인수하고 2002년에는 GM이 대우자동차를 공식 인수함에 따라 선진 자동차메이커가 국내로 진출하게 되었다.2005년에는 쌍용자동차가 중국 상하이자동차로 계열 편입되었다.이를 계기로 현대‧기아 등 토착업체 중심에서 미국 GM과 프랑스 르노, 중국 상하이 등 외국계 BMW, 도요타 등 수입차 업체의 국내 시장쉐어(market share)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이에 맞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글로벌 생산체제를 구축했다.2001년 중국 및 인도에 현지공장 준공을 시작, 2005년 현대자동차가 세계 최대 시장을 가진 미국 앨라바마 현지공장을 준공하여 해외생산체제에 돌입했다.또 2007년 동유럽 슬로바키아 현지공장을 준공함으로써 세계 3대 시장인 미국과 아시아, 유럽에 생산거점을 확보해 놓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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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 간 위화감, 과소비, 외화낭비의 상징물처럼 여기던 수입차가 지방에서도 대중화 양상을 보이는 등 건국 60년 동안 ‘새옹지마’식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1948년 쓸 만한 자동차가 거의 없을 정도의 불모지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자동차시장은 국산차 독주시대를 거쳐 전 세계 글로벌 브랜드의 각축장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특히 사치품의 대명사로 여기던 수입차가 대중 브랜드로 변모하고 있으며 수도권에 밀집됐던 수입차시장이 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와 함께 10억원에 육박하는 초고가 브랜드들이 내수시장에서 활발히 팔리고 있는 등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변화들이 이어지고 있다.

수입차가 국내에 대중판매를 시작한 것은 1987년이었다. 당시 영업을 개시한 브랜드는 벤츠, 아우디, 폴크스바겐, 볼보, BMW 등. 이들은 국내 자동차산업을 위축시키며 외화를 낭비하고 사치벽을 조장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에 고초를 겪었다. 그 해 판매실적 역시 벤츠 10대가 전부였다.

88년 들어 푸조, 사브, 포드, 피아트, 르노 등이 수입차 판매에 가세하면서 판매량이 263대로 늘었다. 이후 판매량은 89년 1293대, 90년 2325대로 시장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90년대 중반까지도 수입차는 길 가는 행인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거나 일부 주유소로부터 주유를 거부당할 정도로 ‘왕따’를 당했다.

1997년 외환위기와 세계화를 거치면서 수입차 역시 우리나라 내수시장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5만3390대가 팔렸으며 국내 승용차시장 5%를 점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3만3449대가 팔려 내수점유율 6%까지 올라섰으며 2010년에는 10%마저 넘어설 태세다.

특히 혼다와 푸조, 사브, 폴크스바겐 등 대중차가 날개 단 듯 팔려 나가면서 ‘수입차=고급차’라는 등식이 깨지고 있다. 또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최고급 브랜드로 여기던 벤츠, BMW, 렉서스 등도 더 이상 최상위층의 상징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기본사양 가격이 6억8000만∼7억8000만원인 롤스로이스는 2004년 한국에 들어온 이후 30여대가 팔려 나갔다. 이달 초에는 7억5000만원짜리인 팬텀 쿠페가 출시됐다. 특히 기본사양에 엠블럼이나 손잡이를 순금으로 맞춰 달라는 주문마저 접수되고 있다.

2004년 들어온 7억8000만원짜리 마이바흐 역시 이제까지 44대 팔려 나갔다.

또한 서울 특히 강남권에만 집중됐던 수입차 업체들의 딜러망이나 전시장도 수도권을 넘어 지방으로 퍼져 가고 있다.

푸조의 공식 수입원인 한불모터스는 올 들어 부산과 강원 원주, 전북 전주에 새 전시장을 개장했다. 아우디 코리아도 연내 광주와 전주에 전시장을 추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크라이슬러 코리아는 올 초 충북 청주에 새 전시장을 마련했고 GM코리아는 연내 2곳의 지방 전시장을 추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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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안 희 기자 = 개인 업자가 드럼통을 펴 자동차를 만들던 시절에서 세계 5위에 등극하기까지 눈부시게 성장해 온 국내 자동차 업계가 53년에 이르는 발자취를 정리해 자료를 냈다.

업계는 자료를 통해 2015년에 세계 시장 점유율을 11%로 끌어올리고 친환경ㆍ미래형 자동차를 조기 상용화하기로 하는 등 여러가지 비전도 제시했다.

◇차 생산 53년..`괄목상대' = 한국자동차공업협회가 13일 낸 `한국 자동차산업 발자취와 비전'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국산차 1호는 1955년 개인 정비업자가 미군용 차량 엔진과 차축 등을 이용해 만든 `시발(始發)자동차'이다.

이 차는 드럼통 등을 펴 차체를 만드는 등 `재활용 조립차'의 성격이 짙었고 생산 방식도 수공업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자동차 산업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해 나갔다.

1962년 새나라자동차의 부평공장 준공을 계기로 근대적 자동차산업이 도입됐고 1973년 기아산업이 컨베이어 시스템을 갖춘 일관조립공장을 세우면서 국산 엔진과 소형승용차가 본격 생산되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1974년 고유모델 `포니'를 개발해 2년 뒤 첫 해외수출에 성공했으며 1985년에는 30만대 규모의 단일모델 전용공장을 완공해 국제경쟁 단위의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했다.

자동차 산업은 외환위기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2006∼2007년을 기준으로 제조업 생산의 12%, 고용의 9%, 총 수출의 13%를 기록하는 등 한국 경제의 주력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작년까지 누적 자동차 생산대수는 5천527만대. 일렬로 세우면 지구를 6바퀴 이상 돌만한 길이다.

지난해 자동차 생산 대수는 409만여대로 일본, 미국, 중국, 독일에 이어 세계 5위의 생산국으로 성장했고 수출량만 놓고 보면 일본, 프랑스, 독일에 이어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성장은 계속된다" = 협회는 2015년에 글로벌 생산 760만대를 달성하고 지난해 현재 7.2%였던 세계시장 점유율을 11.0%까지 확대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친환경 및 미래형 자동차 분야에서 기술 수준을 높여 주도권을 잡고 상생의 노사문화를 정착하며 고부가가치 차량을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협회측은 강조했다.

또, 이미 체결된 자유무역협정을 적극 활용해 조달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고 글로벌화된 대규모 부품업체를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친환경 자동차 기술 개발을 위해 미국과 일본, 유럽 정부가 연간 수천억원씩을 지원하는 점을 감안할 때 매년 2천억원씩 10년간 지속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협회측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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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서 가장 오래된 트럭..1945년산 (거창=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경남 거창군 김동열씨가 자신 소유로 도내서 가장 오래된 1945년산 GMC덤프트럭(경남 7누4481)과 사진을 찍었다.<<지방기사 참조, 거창군 제공>> shchi@yna.co.kr

경남기네스 등재예정 거창 GMC덤프트럭

(거창=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이 차 아니면 일을 못해요. 지금도 잘달리고 산길엔 딱입니다".

경남서 가장 오래된 1945년산 GMC덤프트럭(경남 7누4481)을 가진 김동열(58.거창군 김천리)씨는 이 차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김씨에게 이 차는 벌목나무를 수집해 제재소에 운반하는 천직에 없어서는 안될 아주 소중한 도구이자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준 은인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래된탓이라 고장나면 부품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 김씨는 인근 시군의 폐차장 등을 찾아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을 구하고 그것도 여의치않으면 직접 만들어 고장난 곳을 수리한다.

거친 산길을 다녀 흙탕물로 범벅이된 차체를 씻는 것도 김씨의 주요 일과중 하나이다.

하늘색인 이 차는 7천255cc로 경유를 연료로 사용하며 운전석과 조수석을 포함해 3인석으로 돼 있지만 실제 2인석으로 적재함과 차체 프레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모두 교환됐거나 개조된 상태.

계기판 고장으로 지금까지의 주행거리는 알 수 없지만 김씨의 손길때문에 특별한 고장없이 잘달리고 있다.

김씨는 일제시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차를 1993년 11월 당시 300여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이 차는 정확한 이력은 알 수 없으며 1981년 서울 홍모씨가 서울7나 8789번으로 최초등록해 사용했으며 이후 2명의 소유자를 더 거쳤다.

이 차는 경남도에서 발간예정인 경남기네스의 유력한 등재 후보로 올라있다.

김씨는 "이 차에 대해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 멈춰서는 시간까지 팔지 않고 운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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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한애란.박종근] 2008년. 스스로 주차를 하고, 알아서 속도를 조절하는 자동차가 나오는 시대다. 에어컨과 파워스티어링은 기본이고 경차에도 후방주차센서까지 달려 나온다.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 자동차를 비롯한 세상 모든 물건이 진화하고 있다. 이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다. 진화 대신 퇴행을 스스로 택한 사람들. 이른바 '올드카 매니어'들이다. 이들은 낡고 불편하고 오래돼서 자동차가 좋다고 한다. 천천히 남들보다 뒤처져서 달리는 게 더 멋있다고 한다. 남과는 조금 다른 그들의 '자동차론'을 들어봤다.

◇나의 비틀스, 그리고 비틀=진공관 오디오 매니어인 이동훈(39)씨가 올드카에 빠진 건 13년 전. 그룹 비틀스의 '애비 로드(ABBEY ROAD)' 앨범을 LP로 듣고 있다가 우연히 앨범재킷 사진 구석에 나온 작은 차를 발견했다. 폴크스바겐 비틀이었다.

“저 차를 갖고 싶다.” 처음으로 오디오가 아닌 자동차가 갖고 싶어졌다. 수소문 끝에 멕시코에서 한정 생산된 2000년식 남색 올드비틀을 구했다. 그는 “올드비틀을 운전하면서 비틀스의 '컴 투게더(Come Together)'를 듣는 기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올드비틀은 공랭식 엔진이 차 뒤쪽에 달려 있다. 물이 아닌 공기를 이용해 엔진의 열을 식히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털털털'하는 오토바이 같은 소리가 난다. 에어컨은 없다. 창문은 수동이기 때문에 더울 땐 빨리 손잡이를 돌려 창문을 여는 기술도 필요하다. 히터도 약해서 겨울엔 무릎담요가 필수품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그가 비틀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버튼만 누르면 다 되는 디지털 세상이지만 올드카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남아 있죠.” 자동변속기나 자동문, 에어컨 같은 편의장치는 오히려 올드카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최근에 옆면이 흰색인 '백테타이어'를 만들기 위해 8시간에 걸쳐 타이어에 페인트를 칠하기도 했다. 차 뒤를 장식하기 위해 가죽트렁크도 장만했다. 비틀을 꾸미고 닦고 관리하는 게 그의 즐거움이다.

“비틀은 1930년대 가장 진보적인 소형차였습니다. 70년이 지난 지금 그 디자인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

◇남에겐 고물, 나에겐 보물=“20년쯤 뒤에 일곱 살 난 딸이 시집갈 때 웨딩카로 쓸 겁니다. 그때까지 열심히 조이고 닦고 아껴야죠.” 포니·프레스토·그랜저를 소유한 김수현(35)씨의 작은 소망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점찍어둔 차는 바로 86년식 그랜저.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나온 최초의 그랜저다.

김씨가 어린 시절 동경하던 그 차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어느 집 앞에 주차돼 있는 걸 보고 다짜고짜 그 집 주인에게 팔라고 했다. 몰고 돌아오는 길에 서버려 견인차에 끌려가는 신세가 되기도 했지만 김씨의 복원 작업 덕분에 그랜저는 이제 쌩쌩하다. “당시 판매가격이 1950만원의 고급차예요. 아파트 한 채 값보다도 비쌌죠. 크루즈컨트롤과 에어컨, 파워스티어링과 전동시트, CD플레이어까지 달려 있죠. 요즘 차 못지 않아요.”

각진 디자인 때문에 '각그랜저'로 불리는 차 안에 남들이 모르는 이런 첨단사양이 장착돼 있다는 것도 재미를 주는 요소다.

20대에 김씨는 자동차 튜닝에 빠진 적이 있었다. 고성능의 스포츠카도 동경했었다. 하지만 이젠 생각이 달라졌다. “옛 모델을 순정 그대로 살리는 게 곧 역사를 만드는 것”이라는 것다.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가치다. 올드카를 몰면서 또 다른 취미가 생겼다. 전국 어디로 여행을 가도 그 지역의 폐차장을 꼭 들른다. 굴러다니는 폐부품 중에 쓸만한 것이 있는지 보기 위해서다. 그냥 두면 고철덩어리일 뿐이지만 그에겐 '보물'이다.

◇추억을 싣고 달리는 식구=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린 그해에 황영권(32)씨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때 가족은 생애 첫 차를 장만했다. 진회색의 스텔라였다. 아버지는 차를 애지중지했다. 손재주가 있어 손수 차를 정비하곤 했다. 그 옆에서 함께 차를 만지고 뜯고 하면서 차와 정이 들었다. “집에 쭉 있었고 계속 봐온 차입니다. 무엇보다 가족의 역사가 담긴 또 하나의 식구죠.”

20년 지기인 차이지만 다루긴 조심스럽다. 황씨는 스텔라를 몰 땐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운전하고 다른 차가 끼어들면 늘 양보한다. 자칫 무리하다가 차도 운전자도 고생하기 때문이다. 출퇴근용 세컨드카를 따로 마련한 것도 2005년 사고 때문이다.

“출근하다가 뒤에서 요즘 나오는 신차가 와서 살짝 박았어요. 그 차는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한데 제 차는 범퍼가 내려 앉았죠.” 수소문 끝에 대구에서 부품을 구하긴 했지만, 작업방식이 요즘 차보다 복잡했다. 정비소는 수리비를 신차의 두배인 50만원을 불렀다. 가해자도 놀랐고, 황씨도 황당했다. 그 이후부터 사고는 사절, 무조건 안전운전이 철칙이다.

요즘 10대, 20대들은 스텔라를 모른다. 엠블럼도 요즘 현대차와 달리 'HD'라고 쓰여 있어 외제차냐는 질문도 가끔 받는다. 어르신들은 정말 반가워한다. 지난해엔 동호회원들과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수입차 한 대가 계속 따라왔다. 서해안고속도로의 휴게소에서 만난 그 수입차 오너, “경부선을 타고 가다 너무 반가워서 쫓아왔더니 서해안까지 왔다”며 웃었다. 주말마다 스텔라를 점검하는 게 황씨의 낙이다. 딱 한 번 사고 나서 견인한 거 외엔 차가 갑자기 선 적은 없다. 더 이상 수리를 못하거나, 달리지 못할 때까지 황씨는 스텔라를 '퍼스트카'로 삼을 생각이다.

◇국산차 역사 담은 타임머신=“포니1을 거의 다 복원했습니다. 곧 달릴 수 있어요.” 이일혁(48)씨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찌그러지고 문짝이 떨어져 나간 79년식 포니1을 2년 가까이 걸려 되살려냈기 때문이다. 그에게 포니1은 단순한 올드카가 아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이명상(세라믹 전문업체 운영)씨가 개발한 점화플러그가 장착된 최초의 국산 고유의 차다. 그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10여 년 전부터 옛날 차를 뒤적거리다가 올드카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철강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차가 여러 대 있다. 그중 좋아하는 차는 81년식 코티나 마크Ⅴ. 포드의 부품을 수입해 현대차가 조립한 차다. 조립도 엉성하고 엠블럼도 현대차 대신 포드 마크가 붙어 있지만 그게 오히려 매력이다. “번호판을 붙인 코티나 마크Ⅴ는 전국에 두 대밖에 안 남았어요. 나머지는 번호판이 없는 영화촬영용이죠.” 번호가 있고 없고는 그에게 중요하다. 있으면 살아있는 차이지만 없으면 죽은 차이기 때문이다. 차는 박물관이 아닌 도로를 달려야만 진짜 차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리나라에 한 대밖에 없는 56년식 노란색 뷰익 센추리도 여전히 도로를 달린다. 엔진이 고장 났지만 수리 끝에 그가 살려냈다.

그에게 올드카는 일종의 타임머신이다. “그 차를 타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우리 나이 남자들이 놀 데가 없잖아요. 그런데 올드카를 취미로 삼으면 가족과 함께 야외로 드라이브를 다닐 수 있으니, 이런 건전한 놀이문화가 없죠.”

올드카, 아직도 달린다

◇현대 포니1

1976년 생산을 시작한 최초의 국산 고유모델. 이탈리아 디자이너 주지아로가 디자인했다. 경제적인 데다 내구성이 좋아 국내에 '마이카 시대'를 열었다. 왜건과 픽업트럭 등 가지치기 모델도 나왔다. 후계자인 '포니2'는 1982~1990년 생산됐다.  

◇대우 로얄살롱

대우차의 로얄시리즈 중 하나. 호주 홀덴의 코모도어를 들여온 모델이다. 1980~1991년 생산된 2000㏄ 엔진의 중형차로 1980년대 초반 '부의 상징'으로 통했다.

◇현대 스텔라

1983년부터 1997년까지 현대차가 생산한 후륜 구동방식 중형차. 포니와 마찬가지로 디자인은 주지아로가 맡았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유지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쌍용 칼리스타

1992년 쌍용에서 OEM 방식으로 제작한 클래식 로드스터. 2년 동안 국내에서 판매된 차는 18대에 불과하다.  

◇닛산 휘가로

1991년 일본 닛산자동차가 생산한 복고풍의 쿠페형 차. 한 해 동안 2만 대 한정 생산돼 인기를 끌었다. 트렁크 부분까지 접히는 캔버스톱을 단 게 특징이다.




올드카 올 가이드

올드카의 매력에 빠지기는 쉽다. 하지만 정작 올드카를 사려고 마음 먹으면 고려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올드카를 사기 전에 알아둘 것들을 몇 가지 정리해봤다.

보관=요즘 차에 비해 올드카는 눈·비에 매우 취약하다. 또 누군가가 살짝 건드려서 사이드미러라도 부러지면 낭패다. 때문에 최고급차는 비를 맞혀도 올드카는 차고에 보관하는 게 올드카 매니어들이다. 하지만 외국처럼 몇 대씩 보관할 차고가 있는 집은 많지 않은 게 현실. 이 때문에 여러 대의 올드카를 갖고 있는 경우엔 전문 보관소에 맡기기도 한다. 한 달에 20만원 정도씩 주고 차를 보관하는 것이다. 비용 때문에 어렵다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보관하는 것도 방법이다.

수리=올드카 매니어 중엔 좀처럼 여성운전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기계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올드카를 몰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 대부분 올드카 매니어들은 기본 정비 정도는 직접 한다. 전자장치로 중무장한 요즘 차와 달리 올드카는 구조가 비교적 간단해서 직접 정비도 가능하다고 한다. 외국엔 차량복원을 전문으로 하는 '리스토어숍'도 있지만 우리나라엔 올드카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는 없다. 대신 오랫동안 정비를 해온 업체를 이용한다. 첨단장비로 진단·수리하는 요즘 차들과는 달리 올드카는 경험으로 수리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품=20년 이상된 올드카의 부품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법적으로 완성차업체는 자동차를 생산한 뒤 8년 동안만 부품을 공급하면 되기 때문에 생산업체에도 부품이 없는 경우가 많다. 사고라도 나면 부품을 찾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 해야 한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발전기·시동모터·연료펌프 등 중요 부품은 차에 갖고 다니는 게 좋다. 국산차보다 수입차가 부품을 구하기 더 힘들다. 해외사이트에서 주문해야 하는데, 부품값보다 운송비용이 더 드는 경우도 많다.

운전법=일반차를 몰 듯이 올드카를 운전하면 차가 오래 못 간다. 소중한 차가 폐차장으로 가게 하지 않으려면 급발진·급가속·급정거 금지는 기본.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도 금물이다. 운전에만 집중해 조심스레 차를 몰아야 한다. 따라서 출퇴근용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시간에 쫓겨 급하게 운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유를 갖는 게 올드카 운전의 첫째 조건이다.

보험=보험은 올드카 오너들의 골칫거리다. 보험사에서 대부분 자기차량손해(자차)보험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보험문제를 생각하면 역시 조심운전이 최선의 길이다.

동호회=최근엔 올드카 관련 동호회가 활성화돼 있다. 정기모임을 통해 친목을 도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동호회원인 기술자들로부터 도움과 조언도 받을 수 있다. 클래식카뱅크(cafe.daum.net/classiccarbank)와 올드카코리아(cafe.daum.net/classiccars)가 대표적이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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