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자동차역사' 카테고리의 글 목록 (13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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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전직 대통령 의전차 및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소방차 등 자동차 유물 8건을 등록문화재로 17일 등록 예고했다.

사진은 미국 카이저사에서 1965년에 제작한 업무용 지프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속도로 건설현장 시찰용으로 사용한 우리나라 경제 재건운동의 상징적인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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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르망 24시를 3연패 한 D-타입의 후속 E-타입은 재규어의 이름을 한껏 드높인 모델이다.
1950년대 C-타입과 D-타입으로 주가를 한껏 올린 재규어는 차기 모델에 정성을 기울인다. 재규어 뿐만 아니라 클래식 스포츠카 중에서 가장 뛰어난 모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E-타입은 그런 재규어의 노력이 집대성 되어 탄생했다.

196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데뷔한 E-타입은 그 스타일링만으로도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전형적인 롱노즈 숏테크, 흐르는 듯한 실루엣, 깊은 눈매의 헤드램프, 넘실대는 보닛 라인, 절제된 크롬 장식까지 E-타입은 고급스러움과 스포티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가로지르는 한줄기 크롬 라인 등은 90년대 말 선보였던 XK8까지 최근의 재규어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간 E-타입은 1년 만에 1만 대가 넘게 팔려나가는 성공을 거두었다.

E-타입은 많은 부분이 르망 3연패를 달성한 D-타입과 연결된다. DOHC 헤드와 트리플 캬브레터가 적용된 직렬 6기통 3.8리터 XK 엔진은 최신 모델인 XK 150S의 것을 개량해 올렸으며, 네바퀴 디스크 브레이크와 랙 & 피니언 스티어링 등 최신 기술이 적용되었다. 0→100km/h 가속 시간은 7초 이하로 당시로서는 매우 빠른 순발력을 자랑했고, 최고속도도 240km/h를 넘어섰다.

섀시 역시 최신 기술이 적용되었다. 모노코크 구조를 기본으로, 앞뒤 서브 프레임을 적용한 E-타입의 섀시는 후에 나온 포드 GT40과 람보르기니 미우라도 비슷한 방식을 적용했을 정도로 앞선 방식이었다. 또 앞뒤 모두 적용된 독립식 서스펜션은 뛰어난 핸들링으로 나타났다.

64년부터는 직렬 6기통 엔진이 3.8에서 4.2리터로 업그레이드된다. 출력은 265마력으로 동일하지만 최대 토크는 35.9kg.m에서 39.1kg.m으로 높아져 북미 시장에서 더욱 환영받았다. 4단 MT도 모든 기어에 싱크로메시가 적용되어 시프트 필링이 한결 좋아졌다.
실내의 재질도 검은색 비닐에서 알루미늄으로 바뀌어 보다 스포티해졌으며, 마호가니 재질의 스티어링 휠은 클래식 분위기가 물씬했다(시리즈 III는 가죽으로 변경).

65년에는 주력인 미국 시장을 위해 2+2 쿠페가 더해졌다. 휠베이스를 조금 늘리고 작은 좌석 두 개를 더한 것. 또 편한 승하차를 위해 도어의 길이도 같이 늘였다. 따라서 차체 중량이 90kg 늘어났으며, 보그워너의 3단 AT가 처음 선보였다. 그러나 E-타입의 이런 변화를 매니아들은 달가워하지 않았고, 'XKE 세단' 또는 '2+2 가족 쿠페'라는 비난까지 들었다.

60년대 후반은 강화되는 미국 배기 가스 규정에 때문에 각 모델들의 출력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E-타입도 마찬가지. 출력과 토크가 각각 246마력, 36.4kg.m으로 줄어들었으며, 시그널 램프와 테일 라이트도 안전 규정에 따라 조금씩 위치가 변경되었다. 이렇게 약간의 변화를 거친 시리즈 II은 데뷔한 69년 총 6,847대가 팔려나갔다.

1971년 E-타입 중에서 가장 고성능을 자랑하는 V12 엔진의 시리즈 III가 선보인다. V12 엔진은 로드스터와 쿠페, 그리고 2+2 보디에 올라갔다. 인테이크를 확대하는 등 재규어의 최신 기술이 집약된 이 V12 엔진의 배기량은 5.3리터, 272마력의 출력은 기존의 직렬 6기통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한결 여유롭고 고급스러운 주행 성능을 제공했다. SOHC 헤드를 적용한 이유는 코스트와 저속 토크를 생각해서이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의 V12가 고회전에 힘이 몰려있다면, 재규어의 V12는 부드러움과 유연함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AT도 로드스터에 처음으로 쓰였다. 시리즈 III E-타입은 그릴과 휠아치의 크기가 좀 더 커지는 스타일링의 변화도 있었다. 시리즈 III는 0→100km/h 가속을 6.4초 만에 끊을 정도로 최고 수준의 가속력을 자랑했다.

단 18대만 제작된 스페셜 버전 ‘라이트웨이트 E-타입’은 레이스에도 투입되어 1963년 세브링과 라구나 세카에서 클래스 우승을 차지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지만 전작인 D-타입만큼의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E-타입이 활약하던 시절 포드는 페라리를 잡기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 때였고, GT40과 페라리 경주차가 미드십인데 반해 FR 레이아웃에서 오는 불리함도 있었다. 시리즈 III E-타입은 70년대 중반 SCCA의 B 클래스에서 출전해 챔피언십을 따내기도 했다.

데뷔 이후 15년 동안 E-타입은 7번의 크고 작은 변화를 거치며 7만대가 넘게 팔려나갔다. 앞서 얘기한 대로 시리즈 I은 쿠페와 로드스터, 4.2리터의 배기량 업을 거쳤으며, 1968년 나타난 시리즈 II는 미국 규정에 의해 출력이 줄어들고 약간의 스타일링 변화가 있었다. V12 엔진의 시리즈 III는 초기 모델인 시리즈 I과 함께 가장 멋진 E-타입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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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최고의 베스트 셀링카는 시빅(Civic)이다. 1972년에 처음 발표된 후 1996년 6번의 풀모델 체인지를 거친 오늘의 혼다를 있게 한 대표모델이다.'
국가 : 일본
설립연도 : 1962
설립자 : 소이치로 혼다
Homepage : http://www.honda.co.jp
피스톤링 제조업자였던 혼다 소이치로는 2차대전 중 그의 공장이 모두 파괴되자 1946년 10월, 12명의 종업원들과 함께 모터사이클 엔진을 제조하기 시작하여 1962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모터사이클 업체로 거듭났다.

혼다 최초의 4바퀴 자동차는 356cc의 4기통 엔진을 얹은 소형 트럭으로 그 후 같은 배기량의 스포츠카 S360을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차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모델로 9,000rpm에서 33마력의 놀라운 힘을 발휘했으며, 트렌스미션에는 5단 기어박스를 장착했다.

이 후, 1,363cc의 S500과 606cc의 S600이 유럽에 최초로 소개되었다. 스포츠카로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한 혼다는 본격적으로 승용차 제작에 들어간다. 최초의 4인승 세단인 354cc의 N360에 오토메틱 트렌스미션을 장착하는 등 당시 소형차에는 적용하지 않았던 시스템이 장착되었다. 다만, 일본의 자동차 세금제도 상 360cc 이하에 세제 혜택이 많았던 탓에 다이하쯔나 미쯔비시 등과 같이 소배기량 엔진에 집중되어 있었다.

최고의 베스트 셀링카 '시빅'
혼다 최고의 베스트 셀링카는 시빅(Civic)이다. 1972년에 처음 발표된 후 1996년 6번의 풀모델 체인지를 거친 오늘의 혼다를 있게 한 대표모델이다.

1,169cc 4기통 엔진 장착을 시작으로 곧 1,238cc, 1,335cc, 1,488cc로 배기량을 늘려갔으며 1974년부터 발표된 CVCC 엔진은 연료과 배기오염을 저감시키는데 기여해 당시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엔진이 튼튼한 차, 연료가 적게 먹는 차로 유명한 시빅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소형차에 시빅이 있다면 그 다음으로 유명한 모델이 중형급 어코드(Accord)이다. 1981년에 탄생하여 1993년에 5세대 모델을 선보인 어코드는 미국 자동차 도둑이 가장 선호하는 차로 선정되었을 만큼 그 성능이나 인기면에서 믿음이 가는 차임에 틀림없다.

1981년 본격적으로 해외진출을 감행한 혼다는 미국에 생산라인을 두고 현지생산을 시작했으며, 1986년에는 어큐라(Acura)라는 럭셔리 브랜드를 따로 만들어 소형차뿐만 아닌 스포츠카와 대형 세단 제작에도 남다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입증시켰다.
현재 어큐라 브랜드의 이름으로 판매되는 대표적인 모델은 최초의 알루미늄 보디 양산차인 NSX와 우리나라에서 아카디아란 이름으로 판매되었던 레전드(Legend) 등이 있다.
1946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 혼다기술연구소 설립. 최초의 모터싸이클 A형 생산
1947 혼다기술연구소를 계승해 혼다기연공업주식회사 설립
1955 일본 내 모터싸이클 생산대수 제 1위
1959 만섬 TT 레이스에 처음 출전하여 125cc 클래스에서 팀 메이커 상 수상
1961 만섬 TT 레이스 125cc, 250cc 클래스에서 1위에서 5위까지 독점
1962 제 9회 전일본자동차쇼(도쿄모터쇼의 전신)에서 S360, T360, S500을 발표. 스즈카 써킷에서 제 1회 전일본 선수권 로드 레이스 대회 개최(50cc, 125cc, 250cc, 350cc 클래스에서 우승)
1963 한국 기아산업에 50cc 모페트 부품의 녹다운 수출 개시. 혼다 주조주식회사 설립
1964 F1 레이스 출전을 선언. 스즈카 써킷에서 제 2회 자동차 레이스 개최. S600이 1위에서 6위까지 독점
1965 F1 월드챔피언십에서 연간 통산 6위
1966 세계 GP 레이스에 출전해 5개 클래스 전 종목에서 메이커 챔피언 획득(세계 최초의 5개 종목 완전 제패)
1967 혼다 수퍼커브 생산누계 500만대 달성
1971 저공해 CVCC 엔진 발표
1972 시빅(Civic) 발표
1973 혼다 소이치로 명예 퇴임
1974 CVCC 엔진 탑재 수출차가 EPA(미국 환경보호청)의 배출가스 테스트에 합격
1975 시빅 CVCC, MOTOR FAN 誌 주최 ’74 Car of the year 수상
1977 어코드(Accord) EX-5, MOTOR FAN 誌 주최 ’76 Car of the year 수상
1981 미국 공장 설립. 한국 대림공업과 제휴 발표
1982 TT 레이스, F1 클래스에서 우승(이후 1997년까지 16연승). F1 윌리엄즈社와 제휴
1986 고급 지향의 뉴 브랜드 어큐라(Acura) 탄생.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1, 2, 3, 5, 6위 획득(이후 1989년까지 4연패)
1987 세계 최초로 모터싸이클 생산 누계 5,000만대 달성
1989 세계 최초의 FF차용 구동력 제어 시스템인 TCS 발표. 시카고 오토쇼에서 NSX 발표
1990 로버그룹과 자본 제휴
1991 혼다 엔진, F1 브라질 GP에서 통산 60승 달성
혼다
어코드

(1976 ~ , 일본)
혼다
스포켓 컨셉트

(2000 ~ , 일본)
혼다
인사이트

(2000 ~ ,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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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는 이탈리안 레드로 통하는 정열적인 붉은색 스포츠카의 대명사다. 독특한 실루엣과 이탈리안 레드 컬러, 그리고 고성능 엔진을 상징하는 특유의 사운드 등은 현재까지도 페라리를 스포츠카의 왕자로 군림하게 할 자격이 충분하다. 창업자 엔초 페라리의 열정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페라리 전 모델에 스며 있으며, 최근 들어 F1의 노하우를 집적한 새로운 모델들을 속속 등장 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자동차 마니아들은 극단적인 운동 성능을 자랑하는 고성능 스포츠카를 동경한다. 완벽한 무게 배분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핸들링, 상상을 초월하는 하이퍼(Hyper) 퍼포먼스, 이런 출력을 떠받치는 강력한 섀시, 노면을 짓누르는 단단한 서스펜션,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희소성 등. 이 모든 것이 결합하여 한 대의 머신이 탄생한다.

100년이 넘는 자동차 역사상 무수히 많은 자동차 메이커들이 우후죽순 생겼다가 사라졌지만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초지일관하며 정통성을 유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스포츠카의 고유한 특성을 시대에 맞게 개발하고, 타 메이커들이 시도하지 않는 분야를 개척하는 모험심, 세상과 좀처럼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가 강하게 베어 있는 스포츠카 메이커가 바로 이탈리아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페라리다.

창업자 엔초 페라리
페라리의 창업자 엔초 페라리는 1898년 2월 18일 이탈리아의 북부의 작은 도시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엔초의 아버지는 당시 모데나를 통틀어 30대도 채 안되는 자동차가 보급된 시절, 철도 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덕택에 그의 집 마당에는 드디옹 부통이 있을 만큼 부유했다. 당연히 엔초는 자동차를 남들보다 일찍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엔초와 형을 데리고 종종 자동차 경주를 보러 다닐 만큼 자동차에 열정이 많은 사람으로 엔초를 둘러싼 환경이 그를 자동차의 대가로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세계 1차 대전이 한참인 1918년 엔초 페라리는 튜린에서 테스트 드라이버로 일을 했으며, 얼마 후 밀란에 있는 CMN(Costruzioni Meccaniche Nazionali)에서 레이싱 드라이버와 테스트 드라이버를 겸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자동차에 입문하게 된다. 같은 해 힐 클라임 대회에서 드라이버로 직접 출전하여 모터스포츠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엔초는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아쉽게 2위를 차지하면서 세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듬해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파 로메오로 이적하게 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다. 알파 로메오 팀에서 1939까지 레이싱 디비전 디렉터로 일하게 되면서 많은 레이싱 기술과 경험을 축하게 된다.

알파 로메오에 몸담고 있던 시절인 1929년 그는 모데나에서 체계적인 레이싱 팀이자 페라리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설립하면서 공식적으로 레이싱에 투입, 마침내 1933년에 레이싱을 수행하는 알파 로메오 엔지니어링 레이싱 디비전에 스쿠데리아를 흡수한다. 알파 로메오와의 불화로 인해 엔초는 새로운 팀인 알파 코르세(Alfa Corse)를 설립하며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해체시킨다. 1939년 알파 로메오와 결별한 엔초는 옛 스쿠데리아 페라리 본부에 그라인딩 머신 등을 제조하는 아우토 아비오 콘스트루지오(Auto Avio Construzioni)를 설립한다. 알파 로메오와 결별 당시 이뤄진 약정으로 향후 4년 동안 레이싱 관련 분야에 페라리란 이름을 사용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싱에 대한 엔초의 열정은 멈추지 않아서 1940년 전쟁 전 마지막 밀레 밀리아(Mile Miglia)에 참가하기 위해 제작된 815, 8기통 1,500cc 컨버터블을 출시한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레이싱은 중단되었으며, 1943년 마라넬로의 새로운 공장으로 옮겨 그라인딩 머신을 계속해서 생산했다. 그러나 이듬해 비운이 겹쳐 공장이 폭격을 맞게 된다. 그러나 엔초의 열정으로 공장은 곧 재건되고, 전쟁 말기에 4년간 사용하지 못했던 페라리라는 이름을 되찾아 회사 이름을 페라리로 변경하고, 1947년에 알파 로메오에서 함께 일을 했던 엔지니어인 조아치노 콜롬보와 함께 레이싱 뿐 아니라 도로용 스포츠카로도 손색이 없이 개발된 V12 1.5리터 72마력 엔진을 얹은 페라리 브랜드를 사용한 첫 모델인 티포 125S를 페라리라는 회사명을 붙인 최초의 모델을 선보였다.

엔초 자신이 직접 운전해 공장문을 나섰던 이 모델은 1947년 5월 11일 프랑코 코르테제(Franco Cortese)를 레이서로 피아첸자(Piacenza) 서킷에 출전, 당시 레이스에 참가한 유일한 V12 모델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로부터 2주 후, 125S는 로마 그랑프리에서 페라리에게 첫 우승을 안겨주었으며 페라리의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페라리는 레이스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1947년을 회사의 창립 시점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이후 페라리는 역사적인 명차를 계속 선보이며 레이스 기록을 갱신하면서 전세계의 모터스포츠카 마니아들의 우상으로 자리 잡는다.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1960년대까지 250 시리즈를 선보이며 자동차 황금기를 맞으면서 페라리의 명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1960년대 후반 페라리의 독주에 람보르기니가 강력한 도전장을 내놓자 페라리는 이를 제압하기 위해 512BB로 전면전을 펼린다.

1969년 피아트 그룹이 50% 지분으로 파트너로 참여한 이후에도 엔초 페라리는 페라리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새로운 모델들을 선보이게 된다.
이후 288GTO, 1980년대에 테스타로사, 1987년에 발표된 엔초의 유작인 F40이 선보이고,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자동차 개발에 대한 열의를 보여 왔던 엔초 페라리는 1988년 8월 14일 90세의 나이로 자동차와 레이스에 바친 한 평생을 마감한다. 그 후에 소개된 F50이 선보이고, 엔초 페라리가 세상을 뜬 지 14년 후, 페라리는 F1 기술을 이용한 첨단 장비로 무장된, 페라리 역사상 가장 빠르고 비싼 도로용 GT를 출시했다. V12 5,998cc 엔진에 최고 출력 660마력, 최고속도 350km/h, 0→100km/h 도달 시간 3.6초. 페라리는 이 차의 놀라운 성능과 엔초를 업적을 높이 평가하기 위해 엔초 페라리 명하고 349대 한정 판매했다.
현재 페라리는 엔초 페라리, 575 마라넬로, 지난 1월 북미국제오토쇼에서 데뷔한 612 스카글리에티 등 V12 엔진을 탑재한 모델과 V8 엔진의 360 시리즈를 판매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공로를 달리는 페라리 중 가장 빠른 엔초 페라리와 최근에 등장한 456M GT의 후속 모델 612 스카글리에티에 대해 알아본다.


Enzo Ferrari
2002년 파리 모터쇼에서 선보인 페라리의 기함으로 F50의 후속 모델이다. 그러나 모델명은 창업자 엔초 페라리의 이름을 사용한 모델명 다음에 메이커 이름을 붙여, 전형적인 메이커명 다음에 자연스럽게 오는 모델명의 형식을 타파하여, 페라리의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집념을 보여준 모델이다.

스타일링은 F50까지의 페라리와는 사뭇 다른, 미래지향적인 스타일링으로 보디 디자인은 켄 오쿠야마가 지휘하는 피닌파리나 일본 디자인 센터에서 맡았다.
F140 V12 엔진의 배기량은 5,998cc로 65。의 뱅크 앵글과 기통당 4밸브 구조로 되어있다. 압축비는 11.2:1로서 최고의 자연흡기 엔진답게 상당히 높게 설정되어 있으며, 보어와 스트로크는 각각 92mm, 75.2mm로 전형적인 오버스퀘어 타입이다. 또 가변밸브타이밍의 도움을 받아 최고회전수는 8,200rpm까지 상승한다.
엔초 페라리에 탑재된 최신형 V12 엔진의 출력은 7,800rpm에서 660마력, 최대토크는 5,500rpm에서 67.0kg·m. 특히, 67.0kg·m의 80%에 이르는 54.1kg·m이 3,000rpm에서 발산된다.

페라리는 엔초 페라리로 하여금 최고의 핸들링과 고속 안정성을 위해 에어로 다이내믹에 각별히 힘을 기울였다. 엔초 페라리의 속도에 따른 다운포스는 200km/h 일 때 344kg, 300km/h에서 775kg의 다운포스가 생성되며 300km/h 이상의 속도에서는 앞 뒤 스포일러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350km/h에서 다운포스는 585kg으로 감소한다. 이 수치는 다른 수퍼카들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우수한 수치이다.
거대한 디퓨저 역시 다운포스 향상에 한몫하는 부분이다. F1 머신을 연상시키는 프론트 엔드는 단지 스타일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밑의 노즈 채널을 설치하여 공기 흐름을 한쌍의 디퓨저로 유도해 그라운드 이펙트 효과를 최대한으로 이끌어 낸다.
서스펜션은 푸시로드 타입의 더블 위시본, 19인치 휠과 조합된 브릿지스톤의 RE050A 스쿠데리아는 앞 245/35ZR 19, 뒤 345/35ZR 19로 엔초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타이어를 장착한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는 엔초를 위해 브렘보가 특별히 개발한 것으로 기존의 스틸 제품보다 12.5kg 가볍다.
강력한 엔진과 짝을 이루는 트랜스미션은 시퀀셜 F1 트랜스미션으로 변속 시간이 0.015초에 불과하다. 엔초 페라리의 트랜드 미션은 전자유압식 클러치로 움직이는 6단 매뉴얼 트랜스미션을 베이스로 했으며, 스티어링 컬럼 뒤의 패들로 변속할 수 있다.

엔초의 공차 중량은 1,255kg. 페라리가 밝힌 엔초의 0→100km/h 가속 시간은 각각 3.65초. 0→200km/h 가속 9.5초, 최고속도는 350km/h를 넘어선다.

또 엔초 페라리는 자사의 피오라노 트랙 1주 랩타임 기록이 F50보다 5초나 빠를 정도로 놀라운 퍼포먼스를 자랑한다. 엔초 페라리는 F50과 마찬가지로 349대만 생산된다.

612 Scaglietti
지난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통해 456M GT의 후속 모델로 화려화게 데뷔한 스카글리에티는 1935에 선보인 375MM에서 모티브를 얻어 전통적인 페라리 모델 명명법에 따른 6리터 12기통을 의미하며, 보디워크를 맡은 카로체리아 스카글리에티의 이름을 덧붙였다.

456M GT의 기본적인 보디라인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클래식한 분위기를 곳곳에 삽입한 스타일링이다. 격자형 그릴은 50~60년대 자동차 황금기 시대에 크게 유행 했던 모습을 현대판으로 재해석 했으며, 혁신적인 모습보다는 안정적인 디자인에 초점을 맞췄다.

페라리 유일의 2+2 구조를 가진 456M GT의 후속 모델인 만큼 612 스카글리에티 역시 럭셔리 GT의 레이아웃을 이어갔다.


456보다 커진 몸집으로 좀 더 넓은 거주 공간을 확보했으며 동시에 무게 배분을 위해 대형 V12 엔진을 프론트 액슬 뒤로 배치했다. GT를 지향하는 만큼 각종 짐을 넉넉히 넣을 수 있도록 456M GT의 190리터 보다 확대된 240리터의 트렁크 공간을 자랑한다.
커진 차체 크기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을 적용하여 무게를 최소한으로 억제시켰다.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은 456M GT에 비해 강성이 60%나 증가했지만, 무게는 오히려 60kg 감소했다고 한다.

엔진은 575M마라넬로의 뱅크앵글 65。의 V12 5.7리터 엔진을 압축비를 높이고, 흡배기 매니폴드와 ECU를 정교하게 튜닝하여 최대출력은 25마력 상승한 540ps/7,250rpm, 토크는 60.0kgm로 575M과 동일하다. 트랜스미션은 6단 매뉴얼 트랜스미션과 패들 시프트 기능이 추가된 오토매틱 트랜스미션 2종류가 있으며, 시퀀셜 6단 F1 시스템은 소프트웨어를 개선하여 이전보다 부드러운 변속을 보장한다.

0→100km/h 가속은 456M GT보다 0.3초 단축한 4.2초, 최고속도는 320km/h에 이른다.
서스펜션은 액티브 댐핑 시스템이 포함된 더블 위시본으로 전모델과 동일하고, 여기에 페라리 최초로 적용된 주행안정화 장치인 CST가 추가된다.
고성능 GT 답게 사치스런 인테리어를 자랑하며 최고급 보스 오디오 시스템으로 탑승자의 귀를 즐겁게 해 준다.

출처 : 카튜닝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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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GT
Miura
Islero
Countach
LM 002
Diablo
Murcielago
Gallardo
페라리를 타도하기 위한 불굴의 집념
Automobili LAMBORGHINI S.p.A.

스포츠카하면 주저 하지 않고 이탈리안 레드의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를 연상한다.
람보르기는 무작정 페라리를 이기기 위해 한 사람에 의해 탄생했지만 그 후 선의의 경쟁을 통해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을 일진보 시켰고, 더불어 많은 메이커에 자극을 주게 되었다. 타도 페라리를 외치며 탄생한 람보르기니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알아보자.

이탈리아인에게는 '벤데타(Vendetta)’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중세부터 뿌리 깊게 내려져 있다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피의 복수’나 ‘상호 복수’를 뜻하는 이 말은 부당한 도전을 받았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끝장을 보고 마는 라틴민족의 기질과 지중해의 변덕스런 날씨 환경으로 형성된 독특한 민족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포츠카 메이커들은 이런 ‘벤데타’를 계기로 탄생하게 된다. 알파 로메오에서 쫓겨난 엔초 페라리가 알파 로메오를 타도하겠다는 일념으로 페라리를 만들었고, 페라리에서 일하던 조아키노 콜롬보가 엔초와 대판 싸워 라이벌인 마세라티로 옮겨 페라리 타도에 앞장서게 되었으며, 오늘의 주인공인 페루초 람보르기니 역시 엔초 페라리에게 선의의 충고를 부당하게 무시당했다고 여겨 페라리와 견줄 수 있는 람보르기니를 탄생시킨 것으로 이는 이탈리안식 사고와 이탈리안식 자동차 만들기가 합쳐서 결국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명문 메이커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트랙터에서 수퍼 스포츠카
람보르기니의 창업자 페루초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는 1916년 4월 이탈리아의 볼로냐 근처의 작은 마을 레나초에서 농업을 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부터 기계와 과학기술 등에 관심을 보였던 페루초는 볼로냐에서 기술학교를 수료하고 세계 2차 대전 중 그리스 로도스섬에 배속되어 자동차 정비주임으로써 많은 노하우를 쌓는다.
종전 후 그는 고향으로 복귀한 후 전쟁 중 낡은 군용 트럭을 개조하여 트랙터로 만들어 팔기 시작한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은 전후 국가 재건을 위해 많은 수의 상용차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페루초는 많은 수익을 남길 수 있었다. 이 사업으로 센토에 작업장을 사들여 1948년부터 본격적으로 람보르기니 트랙터를 생산하게 된다. 1959년에는 트랙터뿐 아니라 연소기와 에어 컨디셔너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페루초의 열정으로 사업은 날로 번창해 그가 하고 싶었던 헬리콥터 생산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못하여 중단하게 된다. 하지만 페루초는 어린 시절 꿈꾸었던 일들을 하나 둘씩 성취하게 된다.
페루초가 본격적으로 자동차에 뛰어 든 것은 피아트 토폴리오나 1100(밀레 첸트)을 직접 튜닝하여 출력을 높이는 일에 몰두 하다, 1947년 배기량 500cc 토폴리오를 700cc로 튜닝 하여 밀레밀리아에 출전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이탈리아 자동차들은 SV 엔진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OHV 헤드를 장착한 것은 이탈리아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 트랙터 사업이 더욱 번창 하면서 자동차 일에 전념할 수 없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페라리는 아무나 탈 수 있는 스포츠카는 아니었다. 부를 축적한 페루초는 페라리를 비롯하여 마세라티, 오스카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기계 분야에 지대한 관심과 직접 튜닝을 했던 페루초는 페라리의 몇 가지 문제점을 엔초에게 건의 했지만 거절당한 것에 ‘타도 페라리’를 외치며 모든 면에서 페라리를 뛰어 넘는 스포츠카를 만들기 위해 스포츠카 전문 메이커를 설립하게 된다.


350GT 1964
1963년 프로토타입으로 선보인 350GTV를 다듬어 탄생한 람보르기니의 첫 번째 양산차. 제네바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여 전 세계 스포츠카 시장에 람보르기니의 이름을 알린 의미 있는 모델이다. V12 3.5리터 엔진에 ZF 5단 매뉴얼 트랜스미션을 매칭시켰으며, 최고출력은 280마력, 1966년까지 120대만 생산됐다. 최고속도는 250km/h, 0→100km/h 가속은 6.8초.
독립 서스펜션과 LSD를 채택했으며, 단 2대만 생산된 320마력의 350GTS도 선보였다. 350GT는 400GT로 이어졌다.

Miura 1966
스페인의 유명한 황소 이름을 딴 미우라는 지금도 카 마니아들 세계에서는 전설적인 스포츠카로 손꼽힌다. 마르첼로 간디니의 전위적인 디자인과 컴팩트한 V12 3.9리터 엔진을 미드십에 장착하고 제네바 모터쇼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1969년까지 475대만 만들어 졌으며, 로드스터 버전이 쇼카로 선보이기도 했다. 미드십에 탑재된 V12 엔진은 최고출력 350ps/7,000rpm, 최대토크 37.6kg·m/5,100rpm으로 0→100km/h 가속은 6.7초, 최고속도는 280km/h에 육박하여 당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Islero 1968
본격적인 GT를 위해 탄생한 이슬레로 400GT는 1968년 알루미늄 보디에 DOHC V12 엔진과 독립식 서스펜션과 디스크 브레이크,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무장하고 제네바 모터쇼에서 소개됐다.
1969년까지 125대만 생산되었으며, V12 3.9리터 엔진의 최고출력은 320마력, 0→100km/h 가속은 6.2초, 최고속도는 265km/h의 발군의 실력을 과시했다.
이슬레로 400 GTS는 1970년까지 100대만 생산됐다.

Countach 1973
1974년 제네바 모터쇼에 데뷔한 카운타크는 마르첼로 간디니가 람보르기니를 위해 2번째 디자인한 모델이다. 튜뷸러 스페이스 프레임, 걸윙 도어, 세미 롤 다운 사이드 윈도우 등 스펙터클한 스타일링으로 미우라의 뒤를 잇는 강력한 스포츠카로 당시로선 무척 혁신적인 모델이었다.
미우라의 V12, 3.9리터 엔진을 베이스로 카운타크 LP400 경우, 최고출력 374ps/8,000rpm, 최대토크 37.1kg·m/5,000rpm으로 0→100km/h 가속은 6.8초, 0→1km 가속은 14.4초, 최고속도는309km/h.

LM 002 1986
1981년에 등장한 LM 001 후속 모델로 AM 제너럴 허머와 같은 전천후 SUV로 중동의 부호들을 타켓으로 개발했다.
엔진은 파올로 스탄자니가 설계한 카운타크의 V12 5.2리터 455마력 엔진을 탑재하여 3톤이 넘는 차체 중량을 0→100km/h 가속 7.8초, 최고속도 210km/h에 이르렀다. 특히 4WD 시스템은 앞·뒤 토크를 25~75%까지 자동으로 분배하여 최적의 구동력을 발휘하며, 카운타크의 브레이크 시스템을 적용하여 안정성을 확보했다. LM 002는 301대가 생산됐고, 일부는 사우디아라비 군에 납품됐다.

Diablo 1990
카운타크 후속 모델로 개발된 디아블로는 1990년에 첫 선을 보였다. 미우라와 같이 황소 이름을 따서 사용했으며, 스타일링 역시 마르첼로 간디니의 손길이 묻어 있으며 당시 람보르기니를 인수한 크라이슬러에서 수정을 가하여 탄생하게 된다. 초기 디아블로는 V12 5.7리터 엔진을 사용했으나, 배기량을 6.0리터로 확대한 550마력의 디아블로도 선보인다. VT 6.0은 최고출력 492ps/7,000rpm, 최대토크 59.0kg·m/5,200rpm으로 0→100km/h 가속은 3.95초, 최고속도는 335km/h. 1998년까지 800여대가 생산됐다.

Murcielago 2001
모회사가 크라이슬러에서 아우디로 바뀌면서 여러 곳에서 스타일링 설계를 경쟁하게 하여 탄생된 디아블로의 후속 모델이다. 350GT에서부터 이어온 뱅크각 60도, V12 엔진 레이아웃을 계승하면서 3단계 가변 흡기 시스템, 드라이 섬프 윤활 방식 등을 채택하여 강력한 퍼포먼스를 자랑한다. V12 엔진의 출력은 580마력, 66.2kg·m의 최대토크는 5,400rpm에서 발휘되지만 2,000rpm에서 55.3kg·m의 토크가 나올 만큼 저속에서 풍부한 힘을 낸다. 0→100km/h 가속은 3.8초, 최고속도는 330km/h.

Gallardo 2003
코드명 L140으로 알려진 베이비 람보르기니 갈라르도가 지난 제네바 모터쇼에서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1988년 V8 엔진의 잘파 이후 V12 엔진 차만 만들어왔었던 람보르기니는 그동안 V8 엔진을 얹은 엔트리 스포츠카 라인업으로 판매 볼륨을 높여나가는 페라리를 따라가고자 애썼다. 아우디의 기술이 대폭 들어간 갈라르도는 새로운 500마력의 V10 엔진과 AWD 시스템으로 최고출력 500ps/7,800rpm, 최대토크는 52.0kg·m/ 4,500rpm. 0→100km/h 가속 4.1초, 최고속도는 309km/h에 달한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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