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는 이탈리안 레드로 통하는 정열적인 붉은색 스포츠카의 대명사다. 독특한 실루엣과 이탈리안 레드 컬러, 그리고 고성능 엔진을 상징하는 특유의 사운드 등은 현재까지도 페라리를 스포츠카의 왕자로 군림하게 할 자격이 충분하다. 창업자 엔초 페라리의 열정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페라리 전 모델에 스며 있으며, 최근 들어 F1의 노하우를 집적한 새로운 모델들을 속속 등장 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자동차 마니아들은 극단적인 운동 성능을 자랑하는 고성능 스포츠카를 동경한다. 완벽한 무게 배분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핸들링, 상상을 초월하는 하이퍼(Hyper) 퍼포먼스, 이런 출력을 떠받치는 강력한 섀시, 노면을 짓누르는 단단한 서스펜션,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희소성 등. 이 모든 것이 결합하여 한 대의 머신이 탄생한다.
100년이 넘는 자동차 역사상 무수히 많은 자동차 메이커들이 우후죽순 생겼다가 사라졌지만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초지일관하며 정통성을 유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스포츠카의 고유한 특성을 시대에 맞게 개발하고, 타 메이커들이 시도하지 않는 분야를 개척하는 모험심, 세상과 좀처럼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가 강하게 베어 있는 스포츠카 메이커가 바로 이탈리아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페라리다.
창업자 엔초 페라리
페라리의 창업자 엔초 페라리는 1898년 2월 18일 이탈리아의 북부의 작은 도시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엔초의 아버지는 당시 모데나를 통틀어 30대도 채 안되는 자동차가 보급된 시절, 철도 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덕택에 그의 집 마당에는 드디옹 부통이 있을 만큼 부유했다. 당연히 엔초는 자동차를 남들보다 일찍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엔초와 형을 데리고 종종 자동차 경주를 보러 다닐 만큼 자동차에 열정이 많은 사람으로 엔초를 둘러싼 환경이 그를 자동차의 대가로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세계 1차 대전이 한참인 1918년 엔초 페라리는 튜린에서 테스트 드라이버로 일을 했으며, 얼마 후 밀란에 있는 CMN(Costruzioni Meccaniche Nazionali)에서 레이싱 드라이버와 테스트 드라이버를 겸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자동차에 입문하게 된다. 같은 해 힐 클라임 대회에서 드라이버로 직접 출전하여 모터스포츠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엔초는 타르가 플로리오에서 아쉽게 2위를 차지하면서 세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듬해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파 로메오로 이적하게 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다. 알파 로메오 팀에서 1939까지 레이싱 디비전 디렉터로 일하게 되면서 많은 레이싱 기술과 경험을 축하게 된다.
알파 로메오에 몸담고 있던 시절인 1929년 그는 모데나에서 체계적인 레이싱 팀이자 페라리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설립하면서 공식적으로 레이싱에 투입, 마침내 1933년에 레이싱을 수행하는 알파 로메오 엔지니어링 레이싱 디비전에 스쿠데리아를 흡수한다. 알파 로메오와의 불화로 인해 엔초는 새로운 팀인 알파 코르세(Alfa Corse)를 설립하며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해체시킨다. 1939년 알파 로메오와 결별한 엔초는 옛 스쿠데리아 페라리 본부에 그라인딩 머신 등을 제조하는 아우토 아비오 콘스트루지오(Auto Avio Construzioni)를 설립한다. 알파 로메오와 결별 당시 이뤄진 약정으로 향후 4년 동안 레이싱 관련 분야에 페라리란 이름을 사용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싱에 대한 엔초의 열정은 멈추지 않아서 1940년 전쟁 전 마지막 밀레 밀리아(Mile Miglia)에 참가하기 위해 제작된 815, 8기통 1,500cc 컨버터블을 출시한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레이싱은 중단되었으며, 1943년 마라넬로의 새로운 공장으로 옮겨 그라인딩 머신을 계속해서 생산했다. 그러나 이듬해 비운이 겹쳐 공장이 폭격을 맞게 된다. 그러나 엔초의 열정으로 공장은 곧 재건되고, 전쟁 말기에 4년간 사용하지 못했던 페라리라는 이름을 되찾아 회사 이름을 페라리로 변경하고, 1947년에 알파 로메오에서 함께 일을 했던 엔지니어인 조아치노 콜롬보와 함께 레이싱 뿐 아니라 도로용 스포츠카로도 손색이 없이 개발된 V12 1.5리터 72마력 엔진을 얹은 페라리 브랜드를 사용한 첫 모델인 티포 125S를 페라리라는 회사명을 붙인 최초의 모델을 선보였다.
엔초 자신이 직접 운전해 공장문을 나섰던 이 모델은 1947년 5월 11일 프랑코 코르테제(Franco Cortese)를 레이서로 피아첸자(Piacenza) 서킷에 출전, 당시 레이스에 참가한 유일한 V12 모델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로부터 2주 후, 125S는 로마 그랑프리에서 페라리에게 첫 우승을 안겨주었으며 페라리의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페라리는 레이스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1947년을 회사의 창립 시점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이후 페라리는 역사적인 명차를 계속 선보이며 레이스 기록을 갱신하면서 전세계의 모터스포츠카 마니아들의 우상으로 자리 잡는다.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1960년대까지 250 시리즈를 선보이며 자동차 황금기를 맞으면서 페라리의 명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1960년대 후반 페라리의 독주에 람보르기니가 강력한 도전장을 내놓자 페라리는 이를 제압하기 위해 512BB로 전면전을 펼린다.
1969년 피아트 그룹이 50% 지분으로 파트너로 참여한 이후에도 엔초 페라리는 페라리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새로운 모델들을 선보이게 된다.
이후 288GTO, 1980년대에 테스타로사, 1987년에 발표된 엔초의 유작인 F40이 선보이고,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자동차 개발에 대한 열의를 보여 왔던 엔초 페라리는 1988년 8월 14일 90세의 나이로 자동차와 레이스에 바친 한 평생을 마감한다. 그 후에 소개된 F50이 선보이고, 엔초 페라리가 세상을 뜬 지 14년 후, 페라리는 F1 기술을 이용한 첨단 장비로 무장된, 페라리 역사상 가장 빠르고 비싼 도로용 GT를 출시했다. V12 5,998cc 엔진에 최고 출력 660마력, 최고속도 350km/h, 0→100km/h 도달 시간 3.6초. 페라리는 이 차의 놀라운 성능과 엔초를 업적을 높이 평가하기 위해 엔초 페라리 명하고 349대 한정 판매했다.
현재 페라리는 엔초 페라리, 575 마라넬로, 지난 1월 북미국제오토쇼에서 데뷔한 612 스카글리에티 등 V12 엔진을 탑재한 모델과 V8 엔진의 360 시리즈를 판매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공로를 달리는 페라리 중 가장 빠른 엔초 페라리와 최근에 등장한 456M GT의 후속 모델 612 스카글리에티에 대해 알아본다.
Enzo Ferrari
2002년 파리 모터쇼에서 선보인 페라리의 기함으로 F50의 후속 모델이다. 그러나 모델명은 창업자 엔초 페라리의 이름을 사용한 모델명 다음에 메이커 이름을 붙여, 전형적인 메이커명 다음에 자연스럽게 오는 모델명의 형식을 타파하여, 페라리의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집념을 보여준 모델이다.
스타일링은 F50까지의 페라리와는 사뭇 다른, 미래지향적인 스타일링으로 보디 디자인은 켄 오쿠야마가 지휘하는 피닌파리나 일본 디자인 센터에서 맡았다.
F140 V12 엔진의 배기량은 5,998cc로 65。의 뱅크 앵글과 기통당 4밸브 구조로 되어있다. 압축비는 11.2:1로서 최고의 자연흡기 엔진답게 상당히 높게 설정되어 있으며, 보어와 스트로크는 각각 92mm, 75.2mm로 전형적인 오버스퀘어 타입이다. 또 가변밸브타이밍의 도움을 받아 최고회전수는 8,200rpm까지 상승한다.
엔초 페라리에 탑재된 최신형 V12 엔진의 출력은 7,800rpm에서 660마력, 최대토크는 5,500rpm에서 67.0kg·m. 특히, 67.0kg·m의 80%에 이르는 54.1kg·m이 3,000rpm에서 발산된다.
페라리는 엔초 페라리로 하여금 최고의 핸들링과 고속 안정성을 위해 에어로 다이내믹에 각별히 힘을 기울였다. 엔초 페라리의 속도에 따른 다운포스는 200km/h 일 때 344kg, 300km/h에서 775kg의 다운포스가 생성되며 300km/h 이상의 속도에서는 앞 뒤 스포일러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350km/h에서 다운포스는 585kg으로 감소한다. 이 수치는 다른 수퍼카들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우수한 수치이다.
거대한 디퓨저 역시 다운포스 향상에 한몫하는 부분이다. F1 머신을 연상시키는 프론트 엔드는 단지 스타일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밑의 노즈 채널을 설치하여 공기 흐름을 한쌍의 디퓨저로 유도해 그라운드 이펙트 효과를 최대한으로 이끌어 낸다.
서스펜션은 푸시로드 타입의 더블 위시본, 19인치 휠과 조합된 브릿지스톤의 RE050A 스쿠데리아는 앞 245/35ZR 19, 뒤 345/35ZR 19로 엔초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타이어를 장착한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는 엔초를 위해 브렘보가 특별히 개발한 것으로 기존의 스틸 제품보다 12.5kg 가볍다.
강력한 엔진과 짝을 이루는 트랜스미션은 시퀀셜 F1 트랜스미션으로 변속 시간이 0.015초에 불과하다. 엔초 페라리의 트랜드 미션은 전자유압식 클러치로 움직이는 6단 매뉴얼 트랜스미션을 베이스로 했으며, 스티어링 컬럼 뒤의 패들로 변속할 수 있다.
엔초의 공차 중량은 1,255kg. 페라리가 밝힌 엔초의 0→100km/h 가속 시간은 각각 3.65초. 0→200km/h 가속 9.5초, 최고속도는 350km/h를 넘어선다.
또 엔초 페라리는 자사의 피오라노 트랙 1주 랩타임 기록이 F50보다 5초나 빠를 정도로 놀라운 퍼포먼스를 자랑한다. 엔초 페라리는 F50과 마찬가지로 349대만 생산된다.
612 Scaglietti
지난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통해 456M GT의 후속 모델로 화려화게 데뷔한 스카글리에티는 1935에 선보인 375MM에서 모티브를 얻어 전통적인 페라리 모델 명명법에 따른 6리터 12기통을 의미하며, 보디워크를 맡은 카로체리아 스카글리에티의 이름을 덧붙였다.
456M GT의 기본적인 보디라인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클래식한 분위기를 곳곳에 삽입한 스타일링이다. 격자형 그릴은 50~60년대 자동차 황금기 시대에 크게 유행 했던 모습을 현대판으로 재해석 했으며, 혁신적인 모습보다는 안정적인 디자인에 초점을 맞췄다.
페라리 유일의 2+2 구조를 가진 456M GT의 후속 모델인 만큼 612 스카글리에티 역시 럭셔리 GT의 레이아웃을 이어갔다.
456보다 커진 몸집으로 좀 더 넓은 거주 공간을 확보했으며 동시에 무게 배분을 위해 대형 V12 엔진을 프론트 액슬 뒤로 배치했다. GT를 지향하는 만큼 각종 짐을 넉넉히 넣을 수 있도록 456M GT의 190리터 보다 확대된 240리터의 트렁크 공간을 자랑한다.
커진 차체 크기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을 적용하여 무게를 최소한으로 억제시켰다.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은 456M GT에 비해 강성이 60%나 증가했지만, 무게는 오히려 60kg 감소했다고 한다.
엔진은 575M마라넬로의 뱅크앵글 65。의 V12 5.7리터 엔진을 압축비를 높이고, 흡배기 매니폴드와 ECU를 정교하게 튜닝하여 최대출력은 25마력 상승한 540ps/7,250rpm, 토크는 60.0kgm로 575M과 동일하다. 트랜스미션은 6단 매뉴얼 트랜스미션과 패들 시프트 기능이 추가된 오토매틱 트랜스미션 2종류가 있으며, 시퀀셜 6단 F1 시스템은 소프트웨어를 개선하여 이전보다 부드러운 변속을 보장한다.
0→100km/h 가속은 456M GT보다 0.3초 단축한 4.2초, 최고속도는 320km/h에 이른다.
서스펜션은 액티브 댐핑 시스템이 포함된 더블 위시본으로 전모델과 동일하고, 여기에 페라리 최초로 적용된 주행안정화 장치인 CST가 추가된다.
고성능 GT 답게 사치스런 인테리어를 자랑하며 최고급 보스 오디오 시스템으로 탑승자의 귀를 즐겁게 해 준다.
출처 : 카튜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