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자동차역사' 카테고리의 글 목록 (14 Page)

달력

5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세계 자동차 제주 박물관

제주도 자동차 박물관이라면, '왜 제주에 자동차?'라는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4월 제주도에 자동차박물관이 실제로 들어섰다. 한 은퇴 기업인이 사재(私財)를 털어 전 세계 자동차들을 전시해 놓은 '세계 자동차 제주 박물관'이 바로 그 곳이다. 자동차회사가 아닌 개인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이 우선 놀랍다.

188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27개 나라 70여 대의 자동차를 전시, 세계 자동차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꾸몄다. 규모는 1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만큼 그리 크지 않지만, 차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관광·휴양의 도시에서 만나는 클래식카들이 한층 반가울지 모르겠다.

양 날개처럼 펼쳐지는 도어를 지닌 1950년대 벤츠의 명 스포츠카 300SL이 로비에 전시돼 있으며, 자동차 대중화를 알린 1910년대 포드 T형, 엘비스 프레슬리가 즐겨 탔다는 1960년대 캐딜락 엘도라도 컨터버블 등 쉽게 볼 수 없는 클래식카들이 전시관에 가득하다.

중문관광단지에서 차로 10분 이내 거리에 있어서 제주를 찾은 김에 한번 들러볼 만하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이라서인지, 볼거리에 비해 관람료는 다소 비싼 편이다. 초등학생 이하는 5000원, 중·고생은 6000원, 성인은 8000원.



세계 자동차 제주 박물관의 전시관 내부. /최원석 기자



세계 자동차 제주 박물관의 전시관 내부. /최원석 기자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

[인터뷰365 황두진] 1934년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뮌헨에서 이런 연설을 한다.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5년 안으로 모든 국민이 속도제한 없이 달릴 수 있는 국민자동차를 만들겠으며 또한 아우토반을 만들어 위대한 독일의 힘을 전 세계에 보이겠습니다 "

그해 가을 오스트리아의 자동차 기술자인 ‘퍼디난드 포르쉐’는 히틀러에게 메모 한장을 건네받는다. 그 메모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1. 어른 두 명과 어린이 세 명이 탈 수 있는 자동차

2. 650kg 이상 무게가 나가지 않는 작고 탄탄한 자동차


3. 연료 1 리터당 최소 10km 이상을 달릴 수 있는 자동차

4. 최고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를 낼수 있는 자동차

5. 가격은 1천 마르크를 넘기지 말것.

그리고 2년이 지난 1936년 2월 26일. 무게를 줄이고 속도를 내기 위해서 자동차를 깎다 보니 딱정벌레 처럼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생긴 자동차가 생산을 시작한다. 이 차에는 히틀러가 대중에게 약속한 대로 Volkswagen (폭스바겐:독일어로 국민차)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독일의 국민차였던 폭스바겐이 세계인들과 만나게 된 계기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으로 귀환하는 군인들이 전리품으로 폭스바겐을 미국으로 가져갔고, 미국의 한 기자가 이 차의 디자인을 보고 Beetle (비틀:딱정벌레) 라는 이름으로 기사를 쓴 후, 비틀은 이 자동차의 애칭이 되었다.

결국 이렇게 독일의 국민차로 생산되기 시작한 폭스바겐은 1978년 까지 약 2,000 만대 이상의 자동차를 생산하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고, 독일 기술력의 자부심이 되었다. 그리고 1998년 <뉴 비틀>이 다시 등장하며 폭스바겐에 대한 사랑은 세기를 넘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
휘발유 자동차가 탄생한 1886년 이후 자동차 제작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새로운 메커니즘과 전자장비가 발전을 이끌고 갖가지 가변기구로 성능과 효율을 높였다. 신소재 사용도 증가 추세. 수입차 비중이 높아진 덕분에 국내에서도 자동차 기술을 선도하는 첨단모델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지금 내 옆에 달리고 있는 최신 자동차 기술 동향에 관한 보고서

Aluminum Frame Audi ASF
자동차에 알루미늄이 사용된 지는 오래되었다. 클래식 스포츠카 중 적지 않은 수가 경량화를 위해 알루미늄 보디를 가졌고, F1에서는 로터스가 1962년 알루미늄 모노코크를 처음 사용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제작에 한정된 이야기. 값이 비싼 데다 프레스나 용접 가공이 스틸에 비해 까다로운 탓이다.
알루미늄 양산차 제작에 처음 도전한 메이커는 혼다와 아우디였다. 혼다는 1990년 알루미늄제 미드십 스포츠카 NSX를 선보였고 아우디는 승용세단 최초라는 기록을 남겼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등장한 컨셉트카 ASF(Audi Space Frame)는 알루미늄 세단 A8을 위한 서막이었다. ASF는 대형세단의 무게증가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특효약인데다 기술을 통한 진보라는 아우디의 이상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94년 최초의 알루미늄 세단 A8이 등장했고 지금은 2세대다.
알루미늄은 스틸에 비해 프레스 성형이 힘들기 때문에 일부는 수압성형하고 복잡한 파트는 주조(casting)로 만들어 입체적으로 조립해 프레임을 완성한다. 주조 파트의 비율은 1세대 22%에서 2세대는 34%로 높아졌고, 가짓수는 50개에서 29개로 줄여 강성이 60%나 향상되었다. 조립에는 미그 용접과 레이저 용접, 리벳 등이 사용된다. 그 덕분에 지금의 A8은 12기통 엔진을 얹고도 2톤을 넘지 않는다.
아우디의 네카줄름 공장은 2002년 알루미늄 프레임 생산 20만 대를 돌파했다(A2와 A8). 하지만 소형차인 A2는 가격 경쟁력 높이기 위해 다음 세대부터 스틸을 사용할 예정. 그럼에도 아우디의 알루미늄 사용량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Gasoline Direct Injection Audi/VW FSI
휘발유 직분사 엔진을 양산차에 처음 쓴 메이커는 미쓰비시였다. 하지만 지금은 FSI(Fuel Straight Injection)가 직분사 휘발유 엔진의 대명사가 되었다. 수많은 기술혁신 관련 상을 휩쓸었을 뿐만 아니라 르망 24시간을 제패함으로써 성능과 연비, 내구성 등 모든 면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직분사 시스템은 빠르게 발전하는 디젤 엔진에 대한 휘발유 엔진의 대응책이었다. 태생적으로 뛰어난 연비에 출력과 유연성까지 갖춘 직분사 디젤이 유럽 승용차 시장에서 휘발유 엔진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나의 단점을 버리고 라이벌의 장점을 배워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법. 휘발유 엔진은 직분사의 비기를 터득해 환골탈태에 성공했다.
공기를 빨아들여 압축한 뒤 연소실에 연료를 직접 분사하는 방식이 디젤 직분사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 압축비가 높지 않아 스파크 플러그로 연소를 유도하고, 연료압이 그리 높지 않는 점이 다르다
아우디의 초기 FSI는 출력과 연비가 개선되었지만 불완전 연소로 인해 탄화수소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피스톤 윗부분을 오목하게 다듬고 흡기 포트를 가공해 와류 발생을 늘림으로서 공연비 16:1의 희박연소가 가능해졌다. 2개의 연료펌프를 사용해 30~110바의 압력을 만들어낸다.
아우디는 직분사 기술의 목표를 연비 개선과 배기개스 감소에만 맞추지 않았다. RS4에 사용되는 V8 4.2ℓ DOHC와 A3, A4, A6 그리고 폭스바겐 골프 GTI에 사용되는 터보 유닛(TFSI)이 그 증거다. RS4의 V8은 12.5의 고압축비와 고회전, 직분사 기술을 버무려 420마력, 43.9kg·m의 강력한 힘을 만들어낸다. 직렬 4기통 2.0 터보는 최고출력이 200~220마력. 터보 엔진으로는 상당히 높은 10.5의 압축비 덕분에 연비도 뛰어나다. 200마력의 A4 2.0TFSI 수동형의 연비는 13km/ℓ(EU 복합)에 이른다.

Steering by Wire BMW AFS
차의 방향을 바꾸는 스티어링 계통에서는 바이 와이어 시스템이 가장 최신기술이다. 드로틀 바이 와이어는 일반화되어 있고, 브레이크 시스템 역시 페달 입력과 별도로 엔진 제어장치의 판단에 따라 모터를 구동해 브레이크를 제어하는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 반면에 스티어링 부문에서는 BMW의 5시리즈(2003년)를 통해 선보인 액티브 프론트 스티어링(AFS)이 최초다.
이전까지 가변 기어비는 중립 부근과 양쪽 끝 부분의 기어비에 차이를 두는 정도. 하지만 AFS는 스티어링 휠과 피니언 기어 사이에 기어박스를 조합하고, 모터를 달아 운전상황에 따라 적극적으로 기어비를 제어한다. 드라이버의 조작에 비례해 모터를 정방향 혹은 역방향으로 움직여 기어를 회전시키면 스티어링 기어비를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시속 120km 이하에서는 감속비를 줄여 스티어링 조작에 비해 앞바퀴 타각이 커지고, 그 이상의 속도에서는 반대로 앞바퀴가 조금만 움직여 안정감을 높이는 원리다. 저속에서 빠른 조작을 위해 기어비를 줄이면 고속에서 민감해지고, 고속 안정성을 중시하면 저속 와인딩에서 스티어링 휠을 이리저리 많이 움직여야 한다. AFS는 이런 문제점을 단번에 해결해 준다.
운전자의 뜻을 우선하는 유럽차의 특성대로 BMW는 운전자가 개입해야 AFS 시스템이 작동한다. 즉 스티어링이 중립인 상황에서 좌우 바퀴의 마찰력이 극단적으로 다를 경우 직진을 유지하기 위해 AFS는 카운터스티어를 해야 한다. 이에 반해 도요타는 자동으로 앞바퀴 각도가 바뀌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자동차생산은 1962년 새나라자동차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1970년대 고유 국산차 개발, 1988년 생산 100만 대 달성, 1990년대 독자기술 개발에 성공해 현재 생산은 세계 6위, 2004년 200만 대를 넘어선 수출은 세계 5위를 자랑한다. 자동차 보유대수도 이미 1997년에 1천만 대를 넘어서 2004년 현재 국민 3.2명 당 1명 꼴로 자동차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발차 이후 1962년 새나라자동차가 일본 닛산의 블루버드를 부분조립상태로 생산하면서 국내 자동차 생산이 본격화되었다. 재일교포 박노정 씨가 경기도 부평에 연산 6천 대의 규모로 설립한 새나라자동차 공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뒷바퀴굴림 방식의‘새나라’ 는 직렬 4기통 1.2X 엔진을 얹었고 최고출력 55마력을 내는 유선형 스타일의 4도어 세단으로 시발차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능과 승차감을 보여주었다. 새나라자동차는 특혜시비에 휘말리며 1년만에 사라지기까지 2천722대가 판매되었다. 이밖에도 1960년대에는 신진자동차공업, 아시아자동차공업, 기아산업, 현대자동차 등의 자동차회사가 설립되어 초창기 한국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이끌어갔다.

자동차생산 세계 6위, 내수는 2003년부터 침체
1970년대의 고유 국산차 개발 단계를 거쳐, 수출기반 확립 시기라고 할 수 있는 1988년에는 처음으로 자동차생산이 100만 대를 넘어섰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독자기술 개발 단계에 들어가 1993년 200만 대, 2000년 300만 대를 생산했다. 2004년에는 승용차 312만3천 대, 상용차 34만7천 대가 생산되어 총 생산대수 346만9천 대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재 한국은 세계 자동차생산 점유율 5.4%로 미국, 일본, 독일, 중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를 자랑하는 자동차강국으로 성장했다.
1955∼2004년까지 50년간 누적 생산대수는 4천352만7천 대로 승용차 3천518만1천 대(80.8%), 상용차가 834만6천 대(19.2%)가 생산되었다. 이들 자동차를 일렬로 세우면 총 20만8천930km로 지구를 5.2바퀴 돌 수 있는 거리다. 한편 2004년까지 업체별 누적 생산대수를 보면 현대가 2천257만6천 대(51.9%)로 1위, 기아가 1천196만2천 대(27.5%)로 2위, GM대우(대우포함)가 699만6천 대(16.1%)를 생산해 3위를 차지했다.
내수판매는 1980년대 중반 자동차의 대중화가 시작된 이래 1991년 처음으로 100만 대를 돌파했다. 이후 성장을 거듭하던 내수시장은 1996년 164만 대를 정점으로 IMF와 함께 찾아온 극심한 경기 침체에 휘말리며 한동안 침체를 보였다
1999년 이후 다시 회복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2003년부터 다시 3년 연속 내수부진을 보이고 있다. 2004년의 내수판매 대수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1996년의 66.5% 수준에 불과하다. 이와 함께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국내 내수규모의 순위도 2002년(162만2천268대) 9위, 2003년(131만8천312대) 11위, 2004년(109만4천652대) 13위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1955년 이래 2004년까지 우리나라의 누적 내수판매 대수는 2천369만5천 대. 이 중 승용차가 1천682만4천 대(71.0%), 상용차는 687만1천 대(29.0%)로 나타났다. 승용차의 비중이 70%를 넘어서고 있는 것은 점점 선진국형으로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승용차 비중은 1980년대 44%에서 1990년대 65.6%, 2000년대 73.9%로 점점 올라가고 있다.
한편 총 생산 대수 중 내수판매의 비중은 54%로 나타났다. 업체별 누적 내수판매 대수는 현대 1천111만 대(46.9%), 기아 694만4천 대(29.3%), GM대우(대우포함) 341만1천 대(14.4%)를 기록했다. 2004년 2만3천345대(내수점유율 2.1%)를 팔아 최대치를 기록한 수입차는 1987년 수입차시장 개방 이후 모두 11만4천311대가 팔렸다. 이 중 독일차가 5만220대로 총 수입차 판매 대수의 43.9%를 차지했다.

1996년 이후 수출 호조 이어지고, 차 보유 크게 늘어나
1976년 현대자동차는 고유모델 포니 5대를 에콰도르에 수출하면서 자동차수출의 포문을 열었다. 이후 1980년대 중반 미국에 진출하면서 1988년에 수출대수 60만 대를 기록하는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루었다. 현대 엑셀은 1987년 미국 수입 소형차 판매 1위로 올라설 만큼 인기를 끌어 수출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정체기를 맞다가 다시 꾸준히 수출이 늘어나 1996년 드디어 수출 100만 대를 돌파했다. 그해 기아 세피아가 인도네시아에서 국민차로 선정되고, 대우는 소형차 라노스를 발표하면서 루마니아 로데 공장을 가동하는 등 수출에 활기가 넘쳤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

번호판 변천사

자동차역사 2007. 12. 23. 23:51
자동차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번호판을 달고 있다. 그래서 번호판의 규격과 디자인은 언제나 오너 드라이버들의 관심 사항이다. 지난 10월말 건교부가 새 번호판의 모양을 확정짓자 또다시 번호판에 대한 논쟁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매번 바뀔 때마다 이슈가 되고 있는 번호판. 우리나라 자동차 번호판의 변천사를 알아보자

번호판은 자동차의 주민등록증이다. 간단한 번호판 하나로 자동차의 용도와 형식, 차주인의 주소지 등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번호판은 차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래서 차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번호판의 모양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10월말 건설교통부에서 새 번호판의 모양과 크기를 확정짓자 번호판이 또다시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번호판의 역사는 100년 전으로 훌쩍 거슬러 올라간다. 번호판은 1904년 초 승합자동차 회사였던 오리이 자동차상회가 자동차 영업을 시작하면서 처음 만들어졌다. 전국에 9개 노선을 허가받은 오리이 자동차상회는 등록한 도시의 이름과 경찰에서 교부한 숫자를 적어 달았다. 검은 색 철판에 흰 글씨로 쓴 이 번호판은 자동차의 앞에만 달면 되었다.
이후 번호판은 지역명과 숫자가 계속 유지되는 가운데 여러 차례 변화를 겪다가 차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자가용과 관용, 외교용 등으로 용도를 나누고, 네 자리 숫자로 바뀌게 된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초록색 번호판이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이다. 윗부분에 자동차 주인 주소지의 시·도와 차의 종류에 따른 숫자를 적고, 아래에는 용도에 따른 한글 기호와 네 자리의 일련번호를 적는 방식이다. 영업용 자동차는 노란색으로 구분해 한눈에 자동차의 용도를 알아차리게 했다. 하지만 이 번호판은 지역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부의 상징으로 여기는 서울 강남구의 자동차 번호판을 얻기 위해 강남구로 사람들이 몰리는 등 지역간 구분을 하게 하는 잣대가 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2004년 1월 번호판에 지역 표기를 뺀 새 번호판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큰 크기와 촌스럽다는 이유로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세련된 디자인의 번호판을 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져가자 건교부는 올해 2월 새 번호판을 만들어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국민 여론을 수렴해 디자인 공모전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작에 들어간 이번 번호판은 이전의 것보다 가로 길이가 길어지고 세로 길이는 짧아진(520mm×110mm) 유럽형 번호판의 형태로,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경찰 순찰차에 시범적으로 있는 새 번호판은 자동차의 범퍼 디자인이 바뀌는 내년 11월부터 보급된다. 내년부터 달기로 확정된 번호판은 시범 번호판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글씨 크기와 두께, 바탕색 등이 조정되며, 구형 범퍼에 달 수 있는 크기(335mm×170mm)의 번호판도 만들어진다. 글·한지연 기자

최초의 번호판
번호판을 처음 단 나라는 프랑스다. 1893년 8월 파리 경찰은 시속 3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차에 주인의 이름과 주소, 등록번호를 적은 철판을 달게 했는데, 이것이 최초의 번호판이다. 1900년대에 들어서며 유럽 전역에서 번호판을 달게 되었다.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번호판은 러셀백작의 ‘네피어’에 달았던 A1으로 1973년 자선 경매에서 비싼 값에 팔리기도 했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