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기아 쏘울 - 네모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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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쏘울이 예쁘고 독특한 스타일로 된장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비싸고 독특한 신상품만 찾는 된장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쏘울의 매력은 무엇일까?

나는 재즈 바이올리니스트다. 매일 밤 서울 강남의 한 재즈바에서 바이올린을 켠다. 뭐 처음부터 재즈를 하려던 것은 아니다. 나도 학부시절에는 멋진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뛰어난 실력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너무 많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현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바이올린을 켠다.

물론 이렇게 일 할 수 있는 것도 내 뛰어난 미모 덕분이다. 낮에는 남자들이 휘파람을 불어대고, 밤에는 바의 손님들이 전화번호를 물어온다. 예쁘다는 것은 참 피곤하다. 물론 현대 의학의 힘을 빌리기는 했지만 원래 예뻤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나는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헬스와 수영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피부관리를 받는다. 또 직업에 걸맞고 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옷차림을 위해 이태리, 프랑스제만 입는다. 특히 슈즈가 중요하다. 하나를 사더라도 최고만 고집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두를 신고 도시를 걸을 때면 캣워크로 런웨이를 활보하는 모델이 된 기분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프로페셔널리즘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으냐고? 천만에 재즈바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남친에게 떼를 쓰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된장녀’, ‘신상녀’라고 부르며 입방아 찧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난 계속 이렇게 신상품으로 내 자신을 표현하면서 살 것이다.


된장녀, 쏘울을 탐하다
그런데 얼마 전 가슴을 뛰게 만드는 신상(신상품) 하나를 발견했다. 아스팔트 위에서 만난 이 신상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스타일에 화려함까지 지니고 있다. 바로 기아 쏘울이다. 내 머릿속에 그려 놓은 자동차의 틀을 깨어버린 네모반듯한 스타일은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다. 쏘울을 처음 본 순간 내 최고급 신상 구두만큼이나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난 눈에 띄는 신상은 꼭 사야 하는 타입이다. 남친을 끌고 기아 영업소로 달려갔다.

BMW M5와 폭스바겐 투아렉 V10 TDI를 굴리는 남친은 차를 좋아한다. 온갖 명품을 둘러도 싼 티가 나는 그이지만 차에 있어서만큼은 안목이 높은 편이다. 그런 남친에게 국산차 쏘울은 눈에 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쏘울의 디자인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박스형이라서 실내가 넓겠는걸. 그리고 외관 치장을 너무 많이 한 느낌이지만 그런대로 잘 어울려. 그런데 18인치 휠은 너무 오버한 경향이 있어. 차의 크기에 맞지 않게 너무 커.”

내가 보아도 쏘울은 독특하다. 자와 각도기를 대고 그은 것처럼 네모반듯한 차는 처음이다. 아참! 차는 원래 네모 아닌가? 잘 모르겠다. 기하학적인 문양이 들어간 클리어 타입의 헤드라이트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마치 크리스털 주얼리를 보는 듯하다. 꽃모양으로 잘라낸 18인치의 검은색 휠(시승차는 17인치였다)은 디테일을 살린 명품 구두이다. 큼지막한 사이드 유리도 마음에 든다. 특히 A필러를 검은색으로 칠해 선팅을 짙게 하면 A필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보디 전체를 휘감아 도는 용문양의 스티커. 개성을 한껏 표출한 드래곤 타투는 쏘울의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낸다.

더욱이 쏘울은 다양한 방법으로 개성적인 외관을 만들 수 있다. 바닐라 쉐이크, 칵테일 오렌지, 녹차 라떼 등 톡톡 튀는 색깔이 많다. 또 여러 가지 보디키트와 데코레이션 키트를 붙여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 수 있다.


외관은 굿, 실내는 노굿
영업소에 들르기 전에 시승을 신청해 놓기를 잘했다. 이 차를 타고 도시를 달리는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즐거워진다. 사람들의 시선이 약간은 부담스럽지만 어차피 예쁜 나는 늘 겪어왔던 일이다.

도어를 열고 시트에 앉으니 타고 내리기가 편하다. 세단은 너무 낮고 SUV는 너무 높았는데 미니스커트를 주로 입는 나에게 딱 맞는 높이다. 시트의 크기는 적당하지만 약간 단단한 느낌이다. 2열 무릎공간도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는 준중형 세단들보다 넓고 헤드룸도 한 뼘 이상 남을 정도로 넉넉하다. 뒷좌석을 접으면 평평한 바닥을 만들 수 있어 큰 첼로도 쉽게 넣을 수 있다.

센터콘솔이 없는 것이 아쉽지만 그 대신 운전석에 암레스트를 달아 놓았다. SUV를 따라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동반석에는 없다. 센터페시아는 다섯 개의 다이얼과 버튼으로 정리했다. 특히 지그재그 모양의 라이트를 넣어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하지만 실내 내장은 플라스틱 재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져 약간 싼 티가 나는 것이 아쉽다.

실내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라이팅 스피커이다. 음악에 맞춰 스피커에서 라이트가 점멸하며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음악을 청각이 아닌 시각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나처럼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뮤지션에게는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다. 오디오도 센터스피커와 외장 앰프, 서브 우퍼까지 달려 있다.

시트가 약간 높아 시야가 좋고 다리와 페달의 각도를 편하게 할 수 있다. A필러를 직각에 가깝게 세우면서 위쪽 시야가 약간 답답한 감도 있다.


달리기 성능? 이쁘니까 참아야 하나…
자, 그럼 런웨이를 활보하듯 쏘울로 도시를 달려 보자! 시내에 들어서니 예상대로 사람들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신호대기에서는 고개를 내밀고,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뒤돌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도도하게 시선을 즐겨야 한다.

그런데 차가 진짜 캣워크처럼 약간 통통거린다. 지난달에 출시한 포르테에 들어가는 앞 더블 위시본, 뒤 토션빔 서스펜션으로 주행성능을 높인 세팅이란다. 남친은 “이 차는 키가 커서 무른 서스펜션을 사용하면 좌우 롤각이 커진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위가 높기 때문에  서스펜션이 무르면 코너에서 원심력을 더 받아 차체 쏠림현상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쏘울은 웬만한 SUV만큼이나 키가 크지만 코너에서의 쏠림현상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도시를 벗어나 교외에 접어들고 액셀러레이터에 힘을 가했다. 그런데 차의 반응이 여간 굼뜬 것이 아니다. 차의 속도는 겨우 시속 80km를 넘어서고 있는데, 엔진소리는 이미 시속 150km는 달리는 것 같다. 더욱이 시속 100km를 넘어가면 A필러에서 바람소리가 크게 들린다. 나 같은 뮤지션에게는 이런 소음이 정말 큰 스트레스이다. 더욱이 센터스피커와 외장 앰프, 서브우퍼까지 단 오디오는 엔진과 바람소리 때문에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남친은 엔진룸의 방음대책이 미흡해 엔진음이 크고, 박스형으로 차체를 만들어 에어로다이내믹에 약하기 때문에 바람소리가 큰 것이라고 말한다. 또 차체가 바람을 많이 안고 달리기 때문에 무게가 거의 비슷한 포르테(1,187kg, 14.1km/L)보다 연비가 더 떨어진다. 스타일을 살리기 위해 각을 살린 것이, 예뻐지기 위해 광대뼈를 깎은 나와 비슷한 케이스이다.

달리는 즐거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rpm을 4,000 이상으로 높이면 엔진이 꽤 빠르게 반응한다. 하지만 그만큼의 소음은 감수해야 한다. 또 쏘울의 4단 자동 트랜스미션은 수동기능이 없이 L 모드와 2단뿐이다. 임의적으로 다이내믹한 주행감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쏘울의 차체로는 직렬 4기통 1.6L 휘발유 엔진으로는 큰 달리는 즐거움을 얻기 힘들 것 같다. 직렬 4기통 1.6L 디젤이나 2.0L 휘발유 엔진 정도는 되어야 그나마 주행성에 대한 불만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차값으로 최소 240만 원을 더 내야 한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외모가 예쁜 것으로 먹고 산다고. 뭐 틀리지 않다. 지금도 오케스트라 단원을 꿈꾸지만 그다지 노력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쏘울은 나와 닮은 점이 많다. 확연히 눈에 띄는 스타일이지만 실내는 싼 티 나고 시끄럽다. 기아는 쏘울이 세계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꿈꾸지만 좀 더 내실을 다져야 할 것 같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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