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아프기 때문에 기억해야 할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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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배낭을 꾸리게 만든다. 바람부는 대로 발길을 재촉하다 문득 멈춰서게 되는 곳. 그 곳은 아무래도 영광보다 아픔이 묻어나는, 슬픔의 역사가 배어 있는 곳이다.

인천은 우리 근대사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다. 우리 근대사는 일제 강점기 식민통치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역사다. 식민지 수탈의 근거지가 됐던 항구도시 인천에는 골목골목 아직도 근대의 시간이 숨쉬고 있다.

맥아더 동상으로 유명한 인천 송학동의 자유공원. 이 공원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 옆에는 이국풍의 흰 건물이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잡는다. 인천항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이 곳에 자리한 이 근대식 건축물은 옛 ‘제물포구락부’다(구락부(俱樂部)는 영어 클럽(club)을 일본식 발음으로 표기한 것). 19세기말 인천항을 통해 물밀 듯이 밀려들던 서구 열강의 외교관과 무역상들의 사교장이었다.

1876년 일본에 의해 강압적으로 체결된 강화도조약으로 쇄국의 빗장이 풀리면서 우리의 근대역사는 시작된다. 1883년 개항을 맞은 인천에는 새 시장을 개척하려는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을 위한 사교클럽으로 1901년 6월 문을 연 제물포구락부에는 러시아·미국·영국·일본·청국·독일·네덜란드 등 11개국 100여 명의 제물포 거주 외국인들이 드나들며 저녁마다 화려한 파티를 열곤 했다. 한 마디로 남의 나라 땅에 힘으로 밀고 들어와 조계지(租界·치외법권이 허용되는 외국인 거주지)를 그어가며 조선진출과 주권침략의 음모를 다진 그들만의 축제를 벌였던 것이다.

이들과 함께 유입된 각 나라의 문물은 인천의 근대문화를 형성했고, 인천은 세계 각국의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가 됐다. 지금도 남아 있는 그 때의 건축물들은 다문화가 공존했던 당시 인천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1914년 인천에 설치된 각국의 조계가 철폐되면서 조계에 머무르던 외국인들도 속속 귀국했다. 이와 함께 외국인들의 사교무대였던 제물포구락부는 일본제국 재향군인회 인천연합회에 이관돼 ‘정방각(精芳閣)’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됐고, 그 후 1934년에는 일본부인회, 광복 후에는 미군장교클럽, 6·25 전쟁중에는 인민군 대대본부 등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근대사의 영욕을 대변했다. 이후 시의회·교육청·문화원·박물관 등으로 쓰이던 이 건축물은 2007년 6월부터 역사체험을 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박물관’으로 변모했다.

높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고풍스런 분위기를 주는 검은색 마룻바닥, 홀 한쪽에 마련된 바 등 옛 제물포구락부 실내에 들어서면 당시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각국의 언어가 소란스럽게 오가고, 경쾌한 무도곡과 낭자한 웃음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오는 듯하다. 그 때문인지 전시된 소장품을 바라보는 마음은 신기함보다 씁쓸함이다.

실내에 설치된 50인치 PDP TV를 통해 당시의 기록영상물 등을 보며 가상역사 체험도 할 수 있다. 개관시간은 매주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료는 없다. 032-765-0261

옛 제물포구락부에서 나와 중구청쪽으로 내려오면 근대건축물탐방거리로 이어진다. 일본 조계지였던 구역이다. 일본 제일은행 지점은 후기 르네상스풍의 작은 돔을 올려 꾸민 외양이 독특하다. 모래, 자갈, 석회를 제외한 나머지 건축재료를 일본에서 가져와 만들었다. 일본 58은행은 발코니와 지붕창을 갖춰 프랑스 분위기가 짙은 건물이다. 광복 이후 조흥은행이 인천지점으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중구요식업조합 건물로 쓰이고 있다. 송학동에서 만석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세운 화강석과 벽돌을 혼용한 아치형의 홍예문은 1906년 일본 공병대가 각국 지계와 측후소쪽으로 진출을 꾀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 밖에 답동성당, 인천우체국,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 등의 근대 건축물은 100여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가슴 아린 그 시간 속으로 나그네를 이끈다.

*맛집
차이나타운을 찾으면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 전통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신포재래시장엔 1930년부터 ‘닭전’으로 이름날 만큼 닭강정으로 유명한 먹자골목이 있다. 화평동으로 가면 냉면골목이 기다린다. 이 곳에 가면 세 번 놀란다고 한다. 냉면집이 많은 데서 한 번 놀라고, 어마어마하게 큰 냉면그릇에 놀라고, 계산하고 나올 때 싼 값(3,500원)에 놀란다는 것이다. 일명 세숫대야 냉면으로 잘 알려진 화평동 냉면골목은 동구 화평동 화평철교에서 인천극장쪽으로 언덕길을 가다 보면 보인다.

*가는 요령
경인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 종점(인천항)에서 월미도 방향으로 약 15분 거리에 차이나타운이 위치하고 있다. 경인고속도로 끝 지점에서 직진해 인하대병원 → 정석빌딩 → 우회전 → 옹진군청 → 삼익아파트 앞에서 유턴 → 인천경찰청 → 차이나타운&자유공원광장&제물포구락부 등. 이 곳에서는 차를 한 곳에 주차해 놓고 도보관광을 하는 게 좋다.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국철(1호선) 인천행을 타고 인천역에서 내려 도보 1분 거리.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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