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이태리 몬자 - 올 F1 개최지 중 유일한 고속 서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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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자 서킷은 F1 그랑프리 캘린더에 남은 마지막 고속 코스이다. 몬자를 고속 서킷으로 만든 데는 이태리인들의 자존심도 한몫 했다. 몬자는 설계자가 의식적으로 레이아웃을 고쳤다기보다 도로를 중심으로 지형지물을 철저히 이용한 서킷이다. 고속 서킷이다보니 유독 사고가 많았으며 폰 트립스, 요헨 린트, R. 페테르손 등이 목숨을 잃었다

독특한 분위기와 성격을 자랑하는 유럽 최고(最古)의 서킷 몬자(1주 5.793km). 녹음이 우거진 왕립공원의 서킷은 F1 그랑프리 캘린더에 남은 마지막 고속 코스이다. 몬자를 고속 서킷으로 만든 데는 이태리인들의 자존심도 한몫 했다. 이태리는 차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고 모터스포츠에 대한 긍지가 강한 나라였음에도 1920년대까지 제대로 된 레이스 전용 서킷이 없었다.
이미 1900년대 초반 브룩랜즈와 인디애나폴리스에 고속 서킷을 지었던 영국 및 미국과 비교해 모터스포츠 중심국가였던 이태리의 자존심이 형편없이 구겨져 있던 때였다. 이런 연유로 이태리인들은 몬자 서킷에서 브룩랜즈나 인디애나 모터스피드웨이보다 빠른 기록이 쏟아지기를 바랬고, 이 열망은 고속 서킷의 건설로 이어졌다.
또한 란치아, 피아트 등 자동차 생산업체들의 모임인 밀라노 오토모빌 클럽이 건설을 주도한 것도 몬자를 고속 서킷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제조업체들은 서킷을 레이스 전용트랙 외에 양산차 개발을 위한 테스트 장소로 쓰기를 원했기 때문에 스피드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기본틀을 잡았다.

서킷 레이아웃
몬자는 설계자가 의식적으로 레이아웃을 고쳤다기보다 도로를 중심으로 지형지물을 철저히 이용한 서킷이다. 이미 있던 길을 포장해서 레이스 전용 서킷으로 고쳤다는 이야기다. 이런 경우는 구간에 따라 안전지대가 부족하거나 레이스 전용 서킷에서 볼 수 있는 스톱&고(Stop&Go) 구간이 거의 없었다. 이에 따라 경주차의 속도를 의도적으로 줄이기 위해 만든 군데군데에 감속구간인 시케인을 마련했다.
출발 후 만나게 되는 첫 코너에서는 코스 폭이 좁아 혼전과 사고의 위험이 일어난다. 드라이버들은 시속 70∼80km로 연석을 타고 지나가는데, 바로 전 직선구간에서 적절히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거나 경주차가 균형을 잃게 되면 코스를 가로지르게 되어 페널티를 받게 된다.
바로 이어지는 그란데(Grande)는 몬자에서 가장 빠른 구간으로 시속 290km에 이른다. 그란데를 지나 등장하는 바리안테 델라 로지아(Variante della Roggia)에서는 정확한 감속과 가속이 중요하다. 특히 코너 입구에서 브레이크 포인트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경주차의 속도는 코너입구에서 시속 335km, 중간지점에서 시속 115km, 그리고 탈출할 때 시속 220km에 이르게 된다. M. 슈마허는 지난 2001년 몬자 서킷 테스트 중 이곳에서 시속 195km로 장벽을 들이받아 경주차와 함께 뒤집혀 대형사고를 당할 뻔했다.
헤어핀인 레스모스(Lesmos) 코너에서는 가속 포인트가 중요하다. 경주차의 균형을 유지하며 코너에서 뒷바퀴가 완전히 빠져나가면 가속한다. 반면 앞바퀴의 그립이 충분한 상태에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오버스티어 현상이 일어나 코스아웃이 되기 쉽다. 몬자의 마지막 코너인 파라볼리카(Parabolica)까지의 직선구간과 시케인은 다른 구간에 비해 쉽다. 델 비아로네(del Vialone)를 지나 등장하는 바리안테 아스카리(Variante Ascari)는 좌우 콤비네이션의 시케인으로 기어 2, 3단으로 통과한다.
한편 경사진 파라볼리카는 시속 165km로 그다지 빠른 코너는 아니다. 하지만 다음 직선구간에서 추월하려는 드라이버들은 이 코너에서 최소한 앞 경주차의 바로 뒤에 따라 붙어주어야 하는데, 코너의 성격상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예선에서 조금이라도 지체한다면 직선구간에서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해 시간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다.
원년 우승 드라이버는 이태리계 G. 파리나. 그는 알파로메오 158을 타고 영국에 이어서 4전 스위스와 최종전 몬자 우승까지 휩쓸어 F1 첫 월드 챔피언에 올랐다. 하지만 51년 이후에는 A. 아스카리와 J. M. 판지오에 가려 오랫동안 빛을 볼 수 없었다.
아스카리는 51년에 몬자를 포함해 여섯 번 표창대 정상에 우뚝 서서 전성시대를 열었다. 12회의 우승기록을 세운 52년은 최고의 황금기였다. 특히 제7전 몬자는 5연승으로 챔피언을 굳힌 아스카리의 자축연과도 같았다. 독일전부터 세 경기 연속 폴포지션(PP)을 따낸 그는 시리즈 최종전을 폴투윈으로 마쳐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하지만 아스카리는 55년 몬자 서킷에서 36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했다. 이태리 몬자에서 스포츠카 테스트 드라이브 도중 트랙 장벽을 들이받는 불의의 사고를 낸 것이다.
50년 후반부터 몬자 서킷의 주인공은 S. 모스. 56년 판지오의 몬자 GP 4연승에 제동을 건 그는 다음해인 57년 영국의 반월팀으로 이적했다. 그해 몬자를 포함해 3승을 올린 그의 성적은 빼어난 것이었다. 59년과 60년에 그는 팀을 옮겨 다니며 F1에 참가했다. 그 중 쿠퍼팀에 가장 오래 머물며 2승을 올렸다. 59년 몬자도 그 중 하나다.
61년 몬자 그랑프리는 실망스러운 레이스였다. 영국팀이 안전을 이유로 출전을 거부했기 때문. 페라리가 떼지어 출전했고, P. 힐이 표창대 정상에 올랐지만 빛 바랜 승리였다. 이듬해에는 어느 팀도 몬자의 뱅크 트랙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폰 트립스와 힐의 타이틀을 결정할 중대한 레이스에서 비극이 일어났다. 독일 스타 트립스와 12명의 관중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70년에도 몬자에서 또 하나의 참극이 벌어졌다. 선두를 달리던 요헨 린트가 연습 도중 경주차 기계고장으로 생을 마쳤다. 그의 나이 겨우 28세. 로터스가 불참한 가운데 경기는 진행되었고, C. 레가조니가 데뷔 5전 만에 승리를 거두었다. 70년대에 로터스와 마치팀을 오가며 3승을 챙긴 R. 페테르손도 78년 몬자에서 사고로 숨을 거둬 F1계는 충격과 슬픔에 잠겼다.
한편 F1 사상 최고 명승부로 꼽히는 71년 이태리 GP는 지금도 모터스포츠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경기 결과 1∼5위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시간 차이는 단 0.61초였다. 1, 2위는 0.01초 차이여서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었다. 승리의 여신은 BRM을 몬 P. 게틴의 손을 들어주었다. 게틴은 그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를 거두었다.
80년대에는 A. 프로스트(81, 85, 89년)와 N. 피켓(83, 86, 87년)이 이태리 그랑프리 우승컵을 세 차례씩 나눠가졌다. 그러나 90년대에는 혼전을 벌였다. 91년 시즌에 M. 슈마허는 몬자에서 5위로 첫 득점에 성공했다. 22세인 독일의 새별은 기성세대의 뒤나 따라다닐 인물이 아니었다. 마침내 슈마허는 96년에 소속팀 페라리의 홈그라운드인 몬자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그 뒤로 4승을 더해 이태리전 최다승 드라이버로 기록되었다.
2000년대 몬자의 최고의 영웅은 J. P. 몬토야. 미국 테러사태의 충격속에 치러진 2001년에 그는 R. 바리첼로의 맹추격을 받으면서 먼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해 F1 데뷔 15전 만에 첫 우승을 거두었다. R. 바리첼로와 R. 슈마허가 뒤를 이었다. 이듬해 공식예선에서 시속 259.827km로 17년 만에 F1 평균시속 신기록을 세웠다. 85년 영국 GP에서 윌리엄즈의 K. 로즈베르그가 세운 시속 259.005km 이후 처음이었다. 그리고 2005년에는 강호 F. 알론소의 추격을 뿌리치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F. 알론소가 이태리 그랑프리에서 첫승을 기록했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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