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1950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771차례 치러져 - F1, 57년 역사의 결정적 장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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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세계에서 지난 57년 동안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모터스포츠 팬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감동적인 스토리도 많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불미스런 일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까지 치러진 771회 그랑프리 중 팬들의 관심을 끌었던 10개 대회의 순간들을 영화 작품 소개형식으로 구성했다
글·김병헌 차장 사진

Scene1
제7전 독일 GP
제작연도 1957년 8월 4일
무대 뉘르부르크링 서킷
주연 M. 호손, J.M. 판지오
조연 P. 콜린스
관람 포인트 레이스 중반 1코너 사우스 커브에서 펼쳐진 3대의 경주차 대결

예선 1위 J.M. 판지오는 본선에서 스타트가 순조롭지 않아 M. 호손과 P. 콜린스의 뒤로 처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첫 바퀴에서 자신이 1년 전에 작성한 뉘르부르크링 서킷 코스 레코드 9분 41초 6을 7초 가량 단축시키면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3랩에서는 선두까지 앞질러 버렸다. 그는 연료보충과 타이어 교환을 위한 피트스톱 작전도 미리 짰다.
페라리 드라이버들은 계속 달릴 듯했다. 총 22랩을 달리는 독일 GP에서 판지오는 11랩째 2위보다 27.8초 앞서 있었다. 피트스톱을 하고도 선두를 탈환하는 데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일은 생각대로 안 될 때가 더 많은 법. 피트 작업이 늦어져 무려 1분을 허비했다. 판지오에게 승리의 여신은 등을 돌린 듯했다. 그는 트랙으로 돌아온 후 몇 랩째 숨을 고르며 달렸다.
레이스가 종반에 접어들면서 판지오의 스피드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한참 앞에서 달리고 있는 호손과 콜린스의 랩타임보다 8∼9초 앞선 기록이 나왔다. 관중들은 역사적인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레이스에 몰입했다. 페라리 머신들이 눈에 들어오자 그랜드스탠드의 관객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수십m 뒤에 판지오가 나타났기 때문. 코스 레코드는 9분 17초 4. 관중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2대의 페라리와 1대의 마세라티가 굉음을 울리며 스탠드 앞을 지나간 후 첫 번째 사우스 커브에서 판지오는 콜린스의 트랜스미션 뒤에 코를 붙이고 있었다. 순간 코너를 돌면서 판지오의 경주차가 코스를 벗어나는 듯했다. 안쪽으로 파고든 판지오는 흙을 밟았고, 잔돌이 튀어 올라 콜린스의 고글을 깨뜨렸다. 호손은 그들보다 앞서 달리고 있었지만 맹렬하게 쫓아오는 판지오를 보고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마지막 랩을 맞이한 후 트랙을 반쯤 돌았을 때 판지오는 페라리 머신들을 뒤로 제치고 당당히 앞서 나갔다. 그리고 레이스는 막을 내렸다. 그날 판지오는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레이스를 펼쳤고, 마지막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다섯 번째 월드 챔피언에 오른 날이기도 했다.

Scene2
제4전 프랑스 GP
제작연도 1961년 7월 2일
무대 랭스 서킷
주연 G. 바게티, D. 거니
조연 J. 보니어
관람 포인트 피니시 라인 100m 가량 남긴 지점에서 슬립스트림 주법으로 역전승

레이스가 시작되자 P. 힐과 W. 폰 트립스가 선두에 서서 대열을 이끌었다. 둘은 부담 없이 앞장서서 달렸고, 뒤따르는 R. 긴더에게는 S. 모스를 방어하라는 특명이 내려졌다. 모스는 페라리 소속이 아닌 드라이버로는 유일하게 우승권에 들었다. 잠시 후 모스가 긴더를 제치고 3위에 올랐지만 그 이상의 성적은 힘들어 보였다. 관중의 시선은 5위 다툼에 모아졌다. J. 클라크, I. 아일랜드, G. 힐, G. 바게티 등이 꼬리를 물고 달렸다. 누구 하나가 실수를 하면 모두가 엉켜 버릴 것 같은 숨막히는 상황이었다.
바게티가 버겁게 경주차들을 헤치고 5위로 올라섰을 때 선두권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폰 트립스는 경주차의 라디에이터에 구멍이 나 피트에 오래 머무르는 바람에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몇 랩 뒤에 힐이 헤어핀에서 스핀 후 트랙에 복귀하다가 모스와 부딪쳤다. 다행히 경주차에 큰 피해가 없어 10위 자리에 복귀했다. 선두를 달리던 긴더의 경주차는 엔진오일을 모두 태우고 정지했다.
페라리 군단이 전멸하고 비공식적으로 출전한 바게티만 남았다. 바게티는 챔피언십과 관계없는 시라큐스 레이스에서 페라리 156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경험 많은 포르쉐 드라이버 D. 거니와 J. 보니어에 맞서 당당히 싸우고 있었다. 결국 바게티가 우승하며 페라리는 명예를 지켰다.
당시 <오토스포트> 기자였던 G. 그랜트는 그 때의 긴박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마지막랩 틸로이 커브에서 거니가 약간 앞서 나가더니 결승선을 약 100m 남긴 지점에서 거니 뒤에 붙어 있던 바게티가 슬립스트림 주법으로 가속을 살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습니다."

Scene3
제9전 이태리 GP
제작연도 1971년 9월 5일
무대 몬자 서킷
주연 P. 게틴, R. 피터슨, F. 세베르,
M. 해일우드
조연 H. 갠리
관람 포인트 최종랩 마지막 코너에서 승부수 던진 P. 게틴

레이스 리더는 쉴새 없이 바뀌고 또 바뀌었다. 10여 대가 뭉친 선두 그룹에서 누가 우승할지 점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7랩을 남겨둔 상황에서 운명의 여신은 선두 C. 아몬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헬멧의 바이저에 붙였다가 더러워지면 제거하는 비닐커버를 떼어내는 순간 바이저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아몬은 거센 바람 때문에 앞을 잘 볼 수 없어 선두를 내어 주고 말았다.
그때 게틴은 선두그룹의 뒤에서 달리고 있었다. 선두에 피터슨이 서고 바로 뒤에 세베르, 해일우드, 게틴이 기차놀이하듯 가까이 붙어 달렸다. 이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종착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레이스가 막바지로 치달으며 경쟁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서킷 중간쯤 있는 레스모 코너에서 세베르가 피터슨을 추월, 선두로 올라섰다. 게틴 역시 해일우드를 제치고 3위가 되었다. 그들은 마지막 코너인 파라볼리카로 몰려들었다.
게틴은 마지막 코너에서 결판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무모한 방법이지만 2위인 피터슨을 추월하기 위해 풀밭으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스핀하지 않고 피터슨을 추월했다. 그러나 파라볼리카를 돌아 나가기에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뒤늦게 풀브레이킹을 시도했으나 타이어에서 연기를 내며 미끄러졌다. 양 옆에서는 세베르와 피터슨이 접촉을 피하며 코너를 돌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결국 게틴, 피터슨, 세베르, 해일우드, 갠리가 피니시라인을 무리지어 통과했다. 우승자 게틴과 5위 갠리가 결승선을 통과한 시차는 0.61초에 지나지 않았다. 1위 게틴과 2위 피터슨의 시차는 0.01초.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간발의 차다. 이 기록은 F1 역사상 가장 짧은 1, 2위간 시차로 남아 있다.

Scene4
제9전 영국 GP
제작연도 1973년 7월 14일
무대 실버스톤 서킷
주연 P. 레브슨, R. 페테르손
조연 D. 흄
관람 포인트 중반전부터 펼친 4대의 머신의 숨막히는 레이스

R. 페테르손, J 헌트, D. 흄, P. 레브슨이 치열한 접전을 벌인 1973년 영국 GP는 맥라렌-포드를 몬 레브슨의 첫 승 무대였다. 선두 레브슨과 2위 페테르손의 시차는 2.8초. 1∼4위 드라이버가 거의 동시에 피니시 라인을 통과해 실버스톤 서킷을 찾은 관중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경기를 앞두고 도박사들은 71년 월드 챔피언 J. 스튜어트에게 돈을 걸었다. 그러나 미국 드라이버 P. 레브슨은 자신에게 100파운드를 걸었다. R. 피터슨이 28대의 경주차 대열을 이끈 레이스 초반에 참극이 벌어질 뻔했다. 제1주가 끝날 무렵 맥라렌의 젊은 기사 J. 쉑터가 사고를 일으켰기 때문.
재출발에서 로터스의 페테르손이 N. 라우다, J. 스튜어트, E. 피티팔디, 흄과 레브슨을 앞질렀다. 30주 가량 남긴 상황에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페테르손이 고전했다. 2주가 지나지 않아 레브슨이 앞질러 나갔다. 선두를 잡았으나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2위 이하 드라이버들과의 시차는 겨우 1∼2초 밖에 나지 않았다. 바로 뒤에서는 페테르손, 흄, 헌트가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후 몇 차례 순위 변화가 있었다.
최종랩 마지막 코너에서 2∼4위 트리오는 한 덩어리로 보였다. 페테르손이 밖으로 나갔다가 쉑터의 사고를 재현하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다. 흄이 페테르손의 실수를 이용하려고 안쪽을 파고들었다. 헌트는 듀오를 앞지르려고 덤볐다. 하지만 페테르손, 흄, 헌트는 아슬아슬한 시차로 순위를 지켰다. 헌트와 흄은 0.4초, 페테르손과 흄은 0.2초 차이였다. 선두 레브슨은 겨우 2.8초 차이로 표창대 정상을 밟았다.

Scene5
제3전 남아공 GP
제작연도 1978년 3월 4일
무대 키알라미 서킷
주연 R. 페테르손, P. 드파예
조연 J. 와트손
관람 포인트 5년 만에 첫 승을 노리는 드파예와 페테르손의 추격전

폴포지션은 브라함의 N. 라우다가 차지했으나 같은 열에 섰던 로터스의 M. 안드레티가 번개 같은 스타트로 앞서 나갔다. 그러나 L. 쉑터, R. 파트레제 순으로 선두가 바뀌었다. 다음 타자는 P. 드파예. 2위 그룹과 상당한 거리를 띄운 채 선두를 유지했다. R. 페테르손은 트랜스미션 이상으로 6열에서 출발했다. 주목할 만한 실력을 보이면서 침착하게 6위까지 올랐지만 우승을 바라보기는 힘들었다. 팀동료 M. 안드레티가 완벽하게 회복된 로터스로 드파예를 밀어붙여 또다시 선두탈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안드레티의 엔진 역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경주차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연료를 너무 아낀 탓이다.
하지만 로터스는 우승을 포기하지 않았다. 페테르손은 아직도 꾸준히 달리는 반면 드파예의 경주차는 연기를 길게 뿜으며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마지막랩, 페테르손은 흔들림 없는 추격을 계속했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드파예가 데뷔 5년 만에 첫 승을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페테르손이 역전극을 펼쳐 부활의 노래를 부를 것인가에 모아졌다.
눈 깜짝할 사이 페테르손은 드파예의 오른쪽 꼬리를 무는가 싶더니 휠을 부딪치며 승리를 향한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마지막 코너에 접어들면서 티렐 경주차가 옆으로 조금 흔들렸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끼어 든 검은색 로터스는 불과 0.466초 차이로 체커기를 먼저 받았다. 페테르손은 이 경기에서 부활의 신화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같은 해 이태리 GP에서의 스타트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Scene6
제2전 포르투갈 GP
제작연도 1985년 4월 21일
무대 에스토릴 서킷
주연 A. 세나
조연 A. 프로스트, M. 알보레토
관람 포인트 A. 세나의 팀 동료 E. 데안젤리스의 화려한 교란작전

폴포지션은 세나가 잡았다. 숨막히게 아름다운 드라마를 연출하는 예선 질주는 뒷날 그의 상표로 통했다
스타트와 함께 선두에 나서 뒤차와의 간격을 벌려나갔다. 서킷에는 쉬지 않고 폭우가 쏟아졌다. 하지만 A. 세나는 전혀 흔들림 없이 매끈한 달리기를 이어갔다. 뒤따르는 라이벌들은 여기저기서 미끄러지고 충돌했다. 번들거리는 검정 로터스에 살짝 솟아오른 노란 형광 헬멧은 세나의 타이어가 일으킨 구름 같은 물보라에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머지않아 그의 상표가 된 노란 헬멧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끌어주듯 까다로운 서킷을 유연하게 돌아갔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그의 속도가 아니었다. 그 속도에 도달하는 그의 테크닉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나중에 그가 지적한 순간 이외에는 실수를 하는 기미마저 보이지 않았다.
세나 뒤에서는 불꽃 튀는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로터스팀 동료 E. 데안젤리스는 맥라렌의 A. 프로스트와 페라리의 M. 알보레토를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치열한 접전으로 경기 조건이 얼마나 험악했던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세나의 테크닉은 더욱 빛났다. 중반에 접어들어 프로스트는 데안젤리스의 교란작전에 분통이 터졌다. 그러다가 피트 앞의 직선코스에서 물웅덩이를 쳤다. 당장 수막현상이 일어나 머신이 미끄러졌다. 당시 수중전의 명수로 통하던 프로스트는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가며 장벽을 들이받았다.
경기 2시간이 지나 67주(68주 예정)에 피니시 체커기가 나왔다. 데뷔 후 첫 승리를 눈앞에 두고 세나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빗속에서 상반신을 들어올리고 두 팔을 번쩍 든 채 피니시라인을 돌파했다. 세나는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했다.
“위험천만이었다. 뒤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때는 프로스트처럼 직선코스에서 스핀할 뻔했다. 84년 모나코보다 격렬한 수중전이었다”

Scene7
제16전 호주 GP
제작연도 1986년 10월 26일
무대 애들레이드 서킷
주연 N. 피켓, A. 프로스트
조연 N. 만셀
관람 포인트 N. 만셀의 머신 트러블로 프로스트와 피켓 경쟁으로 좁혀진 종반의 혈투

1986년 F1 그랑프리에서 85년도 챔프 맥라렌 포르쉐팀의 알랭 프로스트가 연속 우승했다. 최다 득점팀에게 주는 컨스트럭터즈 타이틀은 윌리엄즈 혼다가 차지했다. 호주 그랑프리에서 프로스트는 1위로 시즌 4승째를 기록하면서 72점으로 윌리엄즈 혼다팀의 나이젤 만셀을 2점차로 누르고 연속 우승했다. 2년 연속 우승은 1959∼60년의 잭 브라밤 이후 21년 만의 일이다.
1986년 F1 레이스는 예상대로 윌리엄즈 혼다팀의 압도적인 우세 속에 진행되었다.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은 일찌감치 윌리엄즈 혼다팀의 차지가 되었으나 드라이버 챔피언은 윌리엄즈 혼다의 나이젤 만셀과 넬슨 피켓, 맥라렌 TAG 포르쉐의 알랭 프로스트가 치열한 3파전을 벌여왔다. 최종전을 앞둔 세 드라이버의 종합 유효 득점은 만셀 70점(우승 5회), 프로스트 64점(우승 3회), 피켓 63점(우승 4회)으로 만셀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었다. 프로스트나 피켓이 우승해도 만셀은 3위 입상으로 4점만 더하면 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
레이스는 1위 입상으로 9점(2위는 6점)을 얻어야 역전 우승이 가능한 프로스트와 피켓의 수위 다툼으로 시작되었다. 느긋한 만셀은 시종 3, 4번째로 달렸다. 그러나 행운은 85년 챔피언 프로스트에게 돌아갔다. 총 82주(1주 3.28km) 레이스에서 종반에 접어든 64주째에서 만셀의 경주차는 타이어가 터져 아깝게 레이스를 중단, 점수를 얻을 수 없게 되어 첫 우승의 꿈이 날아갔다.
그 뒤 레이스는 프로스트, 피켓의 종합우승을 건 볼만한 경주가 되었다. 연속 우승을 노리는 프로스트, 81년과 83년 우승(그 당시 브라밤팀 소속)에 이어 세 번째 챔피언을 노리는 피켓의 볼만한 선두다툼은 마지막까지 이어졌으나 프로스트가 82주 309.878km를 1시간 54분 20초 388(평균시속 162.609km)로 피켓을 4.205초 앞서 1위로 골인했다.

Scene8
제17전 유럽 GP
제작연도 1997년 10월 26일
무대 스페인 제레즈 서킷
주연 M. 슈마허, J. 빌르너브
조연 D. 쿨사드
관람 포인트 48랩에서 일어난 M. 슈마허와 J. 빌르너브의 충돌사고

유럽 그랑프리는 95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한 M. 하키넨보다 2년 만에 드라이버즈 왕좌에 도전한 슈마허와 빌르너브의 충돌이 관심을 모았다. 47주에 선두를 달리던 슈마허가 48주에 들어와 뒤집기를 시도하는 빌르너브를 들이받았다. 당시 상황을 되짚어 보면 48주째 드라이삭 헤어핀에서 선두 슈마허의 인사이드를 빌르너브가 파고들었다. 약 600m의 짧은 직선코스를 가속으로 추격하는 빌르너브. 왠지 인사이드를 비운 채 코너에 들어가던 페라리의 품으로 윌리엄즈가 뛰어든 것이다. 순간 슈마허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우발접촉? 고의충돌? 두 머신이 접촉하기 전부터 슈마허의 페이스가 0.2초씩 처졌다. 빌르너브는 2주 전 단번에 1.6초까지 시차를 압축. 그때 과연 슈마허가 빌르너브를 따돌릴 여력이 있었을까? 아무튼 빌르너브는 위기를 모면하고 첫 챔피언 타이틀을 잡았다.
앞서 말한 대로 경기심사위원회가 경기 중 사고로 넘어간 48주의 충돌 사건은 F1계 안팎의 거센 반발로 11월 11일 영국 슬로에서 열린 FIA 세계평의회에 넘어갔다. 재심결과 슈마허의 고의충돌로 판정, 시즌 총득점 몰수의 처벌이 내려졌다. 다만 컨스트럭터즈 점수는 그대로 인정되어 페라리는 워크스 2위를 지켰다. 무득점으로 끝난 슈마허와는 달리 3위로 4점을 보탠 빌르너브가 세계 챔피언의 영예를 누렸다. 캐나다인으로 첫 타이틀 획득, CART 월드 시리즈에 이은 더블 타이틀이다. 게다가 F1 데뷔 2년째의 챔피언으로 F1이 시작된 50년대를 제외하면 최단기 정상정복 기록이다.
한편 윌리엄즈와 맥라렌의 승부조작설도 심판대에 올랐다. 두 팀이 합동작전을 펴 페라리의 슈마허를 침몰시키고 그 대가로 빌르너브가 맥라렌 듀오에게 원투승을 안겨주었다는 담합 또는 음모설. 그러나 판정은 무혐의였다.

Scene9
제12전 헝가리 GP
제작연도 1998년 8월 16일
무대 헝가로링 서킷
주연 M. 슈마허, R. 브라운
조연 M. 하키넨
관람 포인트 3스톱으로 바꾼 페라리의 승부수에 농락(?)당한 하키넨과 맥라렌

레이스가 시작되자 M. 하키넨의 자신감은 더욱 굳어졌다. 충실한 팀 동료 D. 쿨사드가 2그리드에 포진해 후방을 지켰다. 타이틀전의 라이벌 M. 슈마허는 3위로 밀려났다. 만사는 맥라렌의 작전계획대로 진행된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제 레이스는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그랑프리 전문가들과 관중들은 하나같이 맥라렌 듀오가 레이스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페라리의 브라운은 머릿속에서 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슈마허에게도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제1차 피트스톱 뒤 R. 브라운은 슈마허에게 지시했다. 레이스 전에 짜놓은 2스톱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모험일 수밖에 없는 3스톱 작전에 운명을 걸기로 했다. 대신 예선과 마찬가지로 랩타임을 최대한 단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슈마허는 3스톱 작전과 전속질주에 나섰다.
작전에 따라 슈마허가 일찍 피트인하자, 맥라렌이 덩달아 쿨사드를 일찍 불러들였다. 이때 맥라렌은 페라리의 덫에 걸렸다. 페라리의 번개 피트작전으로 슈마허는 쿨사드를 꺾고 2위로 올라섰다. 이후 가벼운 연료를 싣고 달리면서 하키넨을 바짝 뒤쫓았다. 하키넨이 2차 피트스톱에서 나왔을 때 슈마허는 이미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뒤이어 하키넨은 또 다시 곤경에 빠졌다. 머신 서스펜션에 돌이 하나 박혀 스피드를 마음대로 낼 수 없었다. 순위는 점차 떨어졌고, 끝내 6위로 레이스를 마감했다. 쿨사드가 2위, 윌리엄즈 소속 J. 빌르너브가 3위 체커기를 받았다. 페라리팀 로즈 브라운의 작전에 말려들어 헝가리 그랑프리 우승을 놓친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키넨과 맥라렌을 강타했다.

Scene10
제11전 영국 GP
제작연도 2003년 7월 20일
무대 영국 실버스톤 서킷
주연 R. 바리첼로, K. 라이코넨
조연 트랙에 뛰어든 관중
관람 포인트 트랙에 뛰어든 관중 때문에 레이스 판도 변화 발생

결승 레이스에서 정체불명의 남자가 트랙에 뛰어들어 항의소동을 벌이는 바람에 혼란에 빠졌다. 그 때문에 R. 바리첼로는 최고의 날을 망칠 뻔했다. 스타트와 동시에 J. 트룰리가 선두로 치고 나갔지만 워밍업에서 트룰리에 막혀 타이어 공기압이 낮아진 바리첼로는 K. 라이코넨에게도 밀려났다. 라이코넨은 트룰리의 슬립스트림을 타고 2위로 1코너 콥스로 들어갔다.
4주째 그리드 12위에서 9위로 뛰어오른 쿨사드의 머신이 말썽을 부렸다. 콕핏을 에워싸고 있는 충전제가 콥스 출구의 고속 코너에 흩뿌려졌다. 세이프티카가 들어왔고, 쿨사드는 충전제를 갈기 위해 피트로 들어갔다. 7주째 재출발에서 트룰리는 침착하게 선두를 지켰다. 라이코넨, 바리첼로, R. 슈마허, M. 슈마허, 몬토야, 알론소와 다마타가 뒤를 이었다.
뒤이어 10주째 애비 코너 바깥을 찌르며 바리첼로가 라이코넨을 따돌렸다. 행어 직선코스에서 다시 문제의 항의자가 트랙에 뛰어들었다. 세이프티카가 나오자 거의 모든 드라이버가 서둘러 피트로 들어갔다. 몬토야, M. 슈마허와 알론소 등은 피트 서비스 순서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빼앗겼다.
그러자 1차 세이프티카 때 피트에 들어갔던 토요타 듀오 다마타와 파니스가 원투체제를 갖추었다. 쿨사드가 3위로 올라왔다. 제30주에 다마타가 피트인하고 라이코넨이 선두에 나섰다. 몬토야가 피트인한 사이 바리첼로가 2위로 뛰어올랐다. 선두 라이코넨과는 10초, 3위 몬토야와는 3초차였다. 라이코넨이 35주째 피트인하면서 바리첼로에게 선두를 허용했다. 바리첼로는 거리를 벌린 뒤 38주에 마지막 피트스톱 후 트랙에 나왔을 때 라이코넨에게 뒤졌다.
바리첼로는 애비 코너에서 바깥쪽으로 추월을 시도했으나 실패, 초고속 브리지 벤드에서 재공격에 들어갔다. 라이코넨이 외곽을 방어하다가 잔디밭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그 순간 바리첼로가 뚫고 나가 5.4초차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2002년 미국 GP에서 팀오더라는 승부조작으로 우승한 뒤 처음 올라선 표창대 정상이었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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