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자동차여행' 카테고리의 글 목록 (13 Page)

달력

5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광덕산 임도는 오프로드라고 말하기 미안할 정도로 오르기가 쉽다. 바닥 평탄이 잘돼 있고 폭도 넓다. 하지만 흙을 밟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프로드 투어에 소개할 가치가 충분하다. 자연이 선사하는 즐거움이 오프로딩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올해의 마지막 오프로드 투어인 12월호를 준비하면서 뭔가 특별하면서도 겨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비주얼을 만들고 싶었다. ‘커맨더에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해볼까? 아냐! 정신 나간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거야.’ 눈이라도 내렸으면 좋으련만 2007년의 마지막 ‘오프로드 투어’를 떠난 11월 1일은 겨울 냄새가 조금도 나지 않는 만추의 계절이었다.
‘차라리 가을을 담자! 지난 10월호는 여름 분위기였고, 11월호는 황량한 군부대 전술도로였잖아. 그래 가을이야. 요즘 단풍이 절정이잖아.’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가을 정취를 담아야 하는 당위성을 부여하고 겨울 분위기는 2008년 1월호로 미뤘다.
‘그럼 만추의 계절은 어디가 제일 좋을까?' 지난달 마감을 마치고 지도를 뒤적거리며 찾아놓은 오프로드 코스들을 훑었다. 단풍을 많이 보려면 산이어야 하니 등고선이 촘촘한 곳을 중점적으로 찾았다. 한참을 그렇게 지도를 뒤적거리다 충남 아산과 공주 사이에 형광펜으로 길게 그어 놓은 임도가 눈에 들어왔다. 중간에는 ‘광덕산’이라 적혀 있고 그 밑에는 ‘산세가 수려한 광덕산 자락에는……’이라며 화려한 문구로 광덕산을 칭송해 놓았다. 또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에는 ‘차령산맥이 만들어 낸 100대 명산 중 하나’라고 소개됐다.

타이어로 밟기 미안한 자연환경
‘산세가 수려한 100대 명산 중 하나라고? 직접 확인해 보지 뭐.’ 그렇게 마음먹고 지프 커맨더를 경부고속도로에 올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달의 오프로드는 한 폭의 수묵담채화를 감상한 느낌이었다. 어쩜 그리도 경치가 좋은지, 14.3km의 화폭 또는 병풍 속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광덕산 임도를 타기 위해서는 ‘외암리 민속마을’까지 간 후 아스팔트-시멘트길을 타고 ‘엘림랜드 관광농원’ 푯말을 따라 약 5km 정도 올라야 한다. 그러면 비포장 길의 광덕산 임도가 시작된다.
광덕산 임도는 초입부터 화려하고 현란한 자연이 펼쳐진다. 파랗고 하얀 하늘 밑으로 빨강과 노랑으로 채색된 광덕산은 팔레트에 갓 짜놓은 물감처럼 총천연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이어진 임도를 타이어로 밟는 것이 미술 작품에 낙서를 하는 것처럼 미안할 정도였다.
커맨더를 최대한 천천히 몰았다. 길이 험해서가 아니라 조금 더 자연경관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제대로 단풍구경을 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쩌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기를 쓰고 단풍구경을 떠나는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15분 정도를 그렇게 천천히 오르니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배방면 수철리 4.6km’, 오른쪽은 ‘송악면 거산리 14.3km’라고 적혀 있다. 뒤춤에 꽂힌 지도를 꺼내 보니 왼쪽은 망경산, 오른쪽이 광덕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스티어링 휠을 광덕산 쪽으로 돌리니 경사가 약간 더 급해졌다.
여느 임도와 마찬가지로 광덕산 임도는 길이 꼬불꼬불하다. 하지만 바닥을 평평하게 잘 다져놓았고 코너가 급한 곳이나 경사가 심한 곳은 시멘트를 깔아 도시형 SUV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실제로 반대편에서 쉽게 넘어오는 기아 스포티지를 보기도 했다.
광덕산 임도는 오프로드라 말하기 미안할 정도로 쉽다. 하지만 14.3km나 되는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동안 자연이 만들어낸 채색을 만끽하며 길을 즐겼고, 정상에서는 송악저수지 뒤로 첩첩산중이 아련하게 이어진 그림을 보았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서산으로 넘어가는 붉은 태양빛을 받은 단풍이 더욱 빨간 빛을 띠면서 가을의 끝물에서도 존재적 가치를 입증하듯 아름다운 색채를 뽐냈다.
‘오프로드 투어’는 지난 5월호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많은 곳을 다녔지만 이번 광덕산 임도는 아름답다고 손꼽을 수 있는 코스 중 하나였다. 오프로드의 난이도가 낮은 것이 흠이지만, 애초 ‘오프로드 투어’는 어려운 코스를 힘들게 헤쳐 나가는 챌린지식이 아닌 땅을 밟을 수 있고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기획 의도로 만들어진 만큼 광덕산 임도도 기획 의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충남 아산시 광덕산 임도
위치: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천안 나들목을 나와 좌회전해 아산방향 21번 도로를 타고 아산까지 간다. 여기서 송악 39번 도로를 타고 5km 정도 가면 ‘외암리 민속마을’ 간판이 보인다. 이 간판을 따라 ‘외암리 민속마을’로 빠지면 ‘엘림랜드 관광농원’ 푯말이 보이고 이 푯말을 따라 가면 광덕산 임도에 닿는다.
코스 길이: 14.3km
난 이 도: ★☆☆☆☆
총 평: 광덕산 임도에서는 속도를 내면 안 된다. 길이 험해서가 아니라 자연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길은 어느 SUV라도 쉽게 오를 수 있을 만큼 평탄하고, 경사도 급하지 않다. 그저 14.3km 동안 자연 경관을 즐기면 된다. 오프로드 대신 트레킹을 즐겨도 좋다. 길 중간 중간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도 있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
남녘의 최북단 항구가 있는 고성을 찾았다. 그곳에서 강 하구와 바다가 만들어낸 천혜의 호수와 소박하고 아늑한, 그리고 동해의 활기를 보여주는 항구들을 만났다

이번 여행지의 주는 ‘항구’다. 사실 운치 있고 낭만이 넘치는 겨울 바다를 온전히 보여줄까 생각도 했지만, 뜨듯한 아랫목에 거북목을 한 채 무기력해 있을 독자들을 생각해 활기찬 항구의 모습이 더 좋겠다 싶었다. 그래도 못내 아쉬울 독자들을 위해 고성의 최대 볼거리로 알려진 화진포도 찾았다. 동해의 수많은 항구 도시 가운데 기자에게 선택받은 곳은 남녘의 최북단 항구가 있는 ‘고성.’ 서울에서 출발하는지라 설악산의 진부령을 먼저 밟았다. 남쪽의 대관령과 북쪽의 추가령을 포함에 3대 영(嶺)으로 불리는 진부령은 약 60km 고갯길을 품고 있다. 2차선으로 잘 닦여져 있어 목숨이 간들간들한 차도 날씨만 곱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옴니버스처럼 펼쳐지는 숲과 고갯길 굽이굽이로 보이는 동해를 보노라면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인다.

강과 바다가 만난 곳, 화진포호
BMW 335i의 스티어링 휠을 부지런히 돌려 약 3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고성의 명소 ‘화진포호.’ 아마 ‘겨울 바다’를 찾는 사람은 많아도 ‘겨울 호수’를 굳이 찾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기자 역시 겨울 호수(정확히는 초겨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일까. 지역 주민 몇몇을 제외하고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다. 사실 늦은 점심을 찾아 몇 바퀴를 뱅뱅 돌고 나서야 그곳이 화진포호인지 알았다(호수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넓었으므로). 제때 먹을 것을 넣어주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죽을 것처럼 빌빌거리는 기자가 끼니를 미루고 넋을 놓았을 만큼 화진포호의 경관은 빼어났다. 고성은 유명세를 떨치는 거대한(?) 여행지나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남한땅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관광지인 속초시 옆에 옹색하게 붙어 있고, 그나마도 미시령 터널이 뚫려 서울에서 곧바로 속초로 가는 당일 여행객들이 늘어나 고성을 찾는 이가 더욱 줄었다.

하지만 고성이 아직 고성임을 당당히 말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 화진포호가 제대로 한몫하고 있기 때문. 여행정보지를 뒤져보니 화진포는 ‘겨울이면 넓은 갈대밭 위에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날아든다’고 나온다. 하지만 아직 시기가 이른 탓인가? ‘갈대’는 널렸지만 ‘철새’는 정체 모를(?) 새 몇 마리만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강 하구와 바다가 만난 화진포호의 둘레는 무려 16km. 온통 갈대밭과 솔밭이다. 뭔가 대단한 비경이 숨겨져 있을 것 같아 조금 더 시간을 쏟았지만 사실 어디에 이르나 풍경은 비슷하다. 하지만 고성을 찾을 계획이라면 이 ‘비슷비슷함’을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사진 좀 찍는다고 우쭐대는 친구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만큼 카메라 셔터를 대충 눌러도 작품이 된다. 특히 해질녘의 화진포호는 잔잔한 호수의 석양과 적당히 물든 갈대숲으로, 아름다운 로맨스가 저절로 그리워진다. 이러고 있다간 독수공방 신세 한탄이라도 털어놓을 것 같아 335i의 기념사진 한방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시곗바늘이 3시에 가까웠다. 여행이고 뭐고 배곯아 죽겠다 싶어 식당을 찾는데, 사진기자가 청천 날벼락 같은 소리를 던진다.

“박 기자, ‘김일성 별장’ 들렀다 가자.”
“저……, 밥집부터 먼저 들르면 안 될까요?”
“다시 올 시간 없어. 몇 안 되는 관광진데, 빼놓을 순 없잖아.”
울며 겨자 먹기로 들른 김일성 별장(화진포 성)에는 관광버스에서 내린 외지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원래 이곳은 한국전쟁 이전 김일성과 그 가족들이 하계휴양지로 사용했던 곳이다. 당시에는 지하 2층, 지하 1층 건물이었으나 전쟁 중 훼손돼 1964년 현재의 건물로 재건축되었고, 1999년 7월부터는 ‘안보전시관’으로 개수해 관광객을 받고 있다. 별장을 오르는 계단에는 이곳에서 찍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릴 적 사진이 게시되어 있는데, 누군가의 심술이 얼굴 부분을 뜯어 놓았다. 별장 안은 재현된 ‘김일성 집무실’, ‘침실’, ‘응접실’ 외에 특이한 것은 없다.

하지만 뜻밖의 횡재가 기다리고 있다. 2층 창을 열어보니 눈앞에 펼쳐지는 화진포해수욕장의 전망이 그야말로 일품. 호숫가 이승만 별장이나 송림 가운데 자리한 이기붕 별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풍경이다. 화진포해수욕장은 남한의 마지막 해변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가을동화’, ‘파이란’ 등의 작품에 죽음을 상징하는 장면들이 촬영되기도 했다.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 주인공들이 마지막 숨 쉴 곳을 찾아 떠났던 곳도 바로 이곳. 좁고 길게 이어진 해변을 연인과 거닌다면 순수한 백사장과 파도, 낭만적인 등대가 한몫 거들지 싶다.

철장 안의 작고 아늑한 항 ‘초도항’
가까스로 배를 채우고 해안 길을 따라 올라간 곳은 ‘초도항.’ 항구라고 하면 정박해 있는 배 사이나 항구 구석에 둥둥 떠다니는 쓰레기를 보기 십상인데 이곳은 얕은 물밑 정도는 훤히 보일 만큼 깨끗하다. 게다가 벅적하고 활기찬 여느 큰 포구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소박함과 아늑함이 있다. 해지는 풍경이 절경이라는 말에 큰 기대를 하고 찾았지만 일진이 꼬이려는지 하늘이 우중충하다. 그러고 보니 부둣가에 민가는 물론 그 흔한 횟집 하나 없고, 불빛도 찾아보기 어렵다. 시원찮은 하늘빛을 삼아서라도 풍경을 담아보려 카메라를 움직이는데 저만치서 두 군인이 걸어온다.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다시 한 번 보는데 ‘역시나’다. 생각해보니 고성 항구 대부분은 군부대와 철책으로 둘러싸인 최전방 지대. 오는 내내 가시철조망이었다.

“이곳은 군사보호구역으로 사진을 찍으면 안 됩니다.”
‘어떻게 찍은 사진인데 뺏길쏘냐?’ 싶어 경계태세에 들어가니 직접 사진검사까지 한다. 다행히 이런저런 요령으로 무사히 넘어갔지만 그 사이 해는 완전히 저물어 버렸다. 분통하고 억울해 먹은 밥이 체하려고 할 때쯤, 335i를 힐끗 본 군인이 잡지명을 묻는다. <자동차생활>이라는 대답에 명함 한 장 받아들고 그대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본지 기자생활 이래 최고로 뿌듯한 순간이었다). 어쨌든 차비는 건졌지만 버스는 떠났으니 우리도 항을 떠나야 했다. 초도항은 철조망에 포위된 채 군부대의 통제를 받고 있고, 밤 8시부터 새벽 3시 30분까지는 모든 출입이 금지된다. 그래서였다. 이 작고 예쁜 항에 사람이 귀했던 것은. 8시 이후로 개미 한 마리 얼씬 못하는 곳에 상점이나 민가가 들어설 리가 없었다.
경계병이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던 곳은 초도항과 멀지 않은 ‘금구도’다. 거북을 닮아 일명 ‘거북섬’으로 불리는 금구도는 고구려 장수왕의 시신을 안장했다는 출처불명의 설이 전해지고 있다. 역시 바닷바람의 위력은 치맛바람에 대적할 만큼 매서웠다. 초도항에 잠시 머문 동안 온몸은 꽁꽁 얼어붙어, 조금만 더 늦게 찾았다면 해풍에 말린 ‘양미리’ 신세가 될 뻔했으니 말이다

히터를 틀자 금세 차 안이 따듯해진다. 몸을 녹이며 ‘대진항’과 ‘거진항’을 마저 돌았다. 사실 대진항과 거진항은 다음날 아침 어민들의 풋풋한 삶의 현장을 엿볼 계획이었지만 등대를 비롯해 밤이 아니면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있어 욕심을 낸 것이다. 여기서 잠깐. 초도항의 소박함(?)에 실망했을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정보 하나를 알려주겠다. 화진포해수욕장 뒤쪽부터 초도항을 통과하는 해안도로는 숨은 드라이브 코스. 물안개와 도로까지 날아오르는 파도가 노르웨이의 ‘아틀란틱 로드’ 못지않은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화진포에서 거진항 방파제 뒤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역시 ‘낭만’의 절정이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바다와 도로를 가르는 철조망이다. 기자 역시 335i와 함께 해안도로를 마음껏 달렸다. 파란색 335i가 거친 파도를 배경으로 달리는 모습은 이곳 사람들에게 흔치않은 구경거리가 됐다.

어민들의 풋풋한 삶의 현장, 대진항~거진항
인근 펜션에서 잠을 청하고 새벽같이 눈을 떴다. 전날 노을이 시원찮았으니 해돋이라도 제대로 감상해야 했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전날 좀 찍어둔 대진항 방파제에 도착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5시 30분 정도면 볼 수 있다는 일출이 깜깜 무소식이다(초도항의 그 군인들이 분명히 그렇게 알려줬다). 지나가는 노인에게 물어보니 아침 7시나 돼야 해가 뜬단다. 정말이지 당장 군부대로 쳐들어가고 싶었다. 전날의 아픈(?) 기억까지 겹쳐 슬슬 약이 오르려는데 항구 쪽에 종소리가 울린다. 그러고 보니 그새 고깃배들이 늘었다. 밤 사이 낚은 고기를 싣고 새벽녘에 도착한 배들이다.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 바로 항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종소리는 경매인들이 낸 것이다. 어부가 포구에 닻줄을 내리자 중간상인들이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며 흥정을 시작한다. 가끔 TV에서나 본 것을 실제로 보니 별것이(?) 다 신기하다. 사진 찍을 틈도 없이 낙찰이 끝났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생선 팔아먹은 격. 알다시피 고깃배의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은 등대다. 대진항에는 왼쪽 항구를 알려주는 붉은 등대와 오른쪽 항을 알려주는 흰색 등대가 마주하고 있다. 기자처럼 바지런(?)을 떨면 6시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등대지기 노인도 볼 수 있다. 아침부터 너무 부산스러웠는지 몸살 기운에 머리가 멍멍하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거진항은 고깃배가 드나드는 규모로는 동해 최대인 곳이다. 그래서인지 바다의 짠내가 유독 강하게 코를 찌른다. 갑판 청소를 끝낸 몇몇 어부들이 배까지 끌어 올린 비닐 바지를 툭툭 털며 인근 선술집으로 들어간다. 아녀자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그물을 손질하거나 생선을 그물에서 부지런히 걷어내고 있다. 그 생선 더미가 눈에 띈다.

“도루묵! 말짱 도루묵 할 때 그 도루묵. 한 바가지에 만 원.”
동행한 사진기자의 눈빛이 번쩍인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넉넉함을 만날쏘냐. 당장에라도 한 바가지 사서 소금 팍팍 뿌려 구워, 술 한 잔 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1박 2일.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아쉬운 대로 거진항 최고의 볼거리로 향했다. 바로 등대를 향해 걷는 방파제 길. 거진항에는 대진항과 마찬가지로 2개의 등대가 있다. 흰색 등대가 있는 방파제는 오른쪽은 백사장이고 왼쪽은 항구다. 빨간 등대를 세운 방파제 길은 길이가 약 500m로, 멋모르고 걸었다간 다리가 아파 후회하기 십상이다(초입 부분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으므로 길이를 가늠할 수 없다). 차를 타고 들어오려면 곳곳에 보이지 않는 턱을 조심해야 한다. 거진항 수협 건물로 올라가면 항 전체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색다른 항구의 모습에 ‘와~!’ 소리를 냈다가도 예측 못한 갈매기 배설물 공격에 ‘윽~!’ 소리가 난다. 혹 가려거든 비닐을 쓰거나 레자 소재의 옷을 입길 권한다. 언제나 위기에서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산 중턱 마을(거진항 뒤쪽에 있다)에 오르면 거진항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명당이 천지에 널렸다. 물론 갈매기의 공격(?)도 없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왠지 모르게 아쉬움만 남는다. 1박 2일의 여행이 주는 부족함이다. 시간이 되면 미항(美港)으로 소문난 ‘가진항’도 들르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일출은 날씨 탓에 구경도 못했다. ‘물회’ 맛도 못 봤다. 자고로 여행의 즐거움은 ‘눈으로 반, 입으로 반’인 것을……. 진부령을 넘는 길에 잠시 주유소에 들렀다. 생각해보니 1박 2일 동안 335i도 고생이 많았다. 욕심 많고 줏대(?) 없는 기자들을 태우고 꾸불텅한 길을, 그것도 험한 바닷길을 그야말로 쉬지 않고 달려주었으니 말이다. 다시 시동을 걸자 이놈은 끄떡없다는 듯 으르렁거린다.

찾아가는 길
서울을 기점으로 설악산으로 향하는 44번 국도를 따라 양평, 홍천, 인제, 원통을 지나면 한계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좌회전, 46번 국도를 따라 달리면 백담사 입구를 지나 용대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좌회전해 진부령을 넘는다. 진부령을 넘으면 7번 국도와 만나는 간성에 이르고, 간성을 지나면 화진포 이정표가 가장 먼저 나온다.

우리식당
황태구이의 값은 지방 인심치고는 다소 비쌌지만(8,000원)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맛있다. 주문을 하면 그때야 양념하고 구이에 들어가기 때문에 요리가 나올 때까지 최소 10~15분은 기다려야 한다. 맛도 맛이지만 양도 많아서 먹다가 모자라는 일은 없다. 함께 나오는 황태 해장국 역시 진미. 뽀얀 국물맛은 오히려 사골국물보다 한 수 위다. 사실 황태구이보다 황태 해장국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화진포해수욕장 입구에 있다.
문의: 우리식당 (055)682-0042

BMW 335i
누군가 BMW 335i에 대해 묻는다면, “땅을 훑는 듯이 달리고, 도로를 찢는 듯 튀어나간다”고 말하겠다. 335i의 운동성은 고속에서도 흐트러짐이 없고, 달리기는 7번 국도의 어떤 차보다 빨랐다. 335i는 한때 혁신적인 디자인이라고 평가받았던 5세대 330i를 베이스로 트윈 터보를 단 엔진과 M스포츠 패키지를 둘렀다. 330i와 디테일을 비교했을 때는 큰 차이가 없지만, BMW 대표 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 직렬 6기통 실키식스 엔진을 바탕으로 트윈터보를 얹어 24년 만에 터보차저 엔진의 부활을 알린 기념비적인 차다. 운전석 시트 포지션이 일반 세단보다 깊고, 서스펜션 세팅도 단단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차의 초점이 안락하고 편한 주행보다는 빠른 달리기 성능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335i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 원하는 목적지까지 빨리 갈 수 있다. 또한 음질 좋은 오디오 시스템과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갖춘 i드라이브가 있어 차에 있는 동안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
우연히 발견한 신안리 오프로드는 지난 5월부터 시작한 오프로드 투어 코스 중에서 가장 달리기 어려웠다. 돌길, 진흙길, 구덩이, 수풀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경사도 가파른 곳이 많다. 9월 단풍이 우거질 즈음이나 추석연휴에 전북 진안으로 차를 몰아 보면 좋을 듯하다

먼저 ‘오프로드 투어’ 페이지를 열심히 정독하는 독자들에게 고해성사부터 해야겠다. 이달의 오프로드 투어는 지난 6월에 취재한 코스다. 7월호에 실린 백운동계곡 오프로드의 취재를 마치고 철수하던 중 우연히 발견해 들어섰다가 그냥 지나치기 아까워 카메라에 담아 왔다. 여름에 다시 한번 오리라 마음먹고 있었건만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연일 뿌리는 비 때문에 아쉽게도 기억을 더듬어내는 방법밖에는 도리가 없었으니 독자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우연히 발견한 신암리 오프로드는 참으로 재미있는 코스였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에 있는 임도로 수목을 관리하기 위해 다져놓은 길이지만, 몇몇 곳은 ‘차가 지난 지 1년도 더 되었겠다’싶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돌길, 진흙길, 구덩이, 자갈길, 수풀길까지 각종 오프로드 코스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노면이 적당히 거칠고 좁아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 그만큼 오프로딩의 재미는 큰 코스다.

가을이 기대되는 알토란같은 오프로드
백운동계곡 오프로딩을 마치고 숙식을 위해 가까운 장수군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높은 산을 굽이굽이 끼고 도는 742번 도로를 타고 가다 왼쪽으로 알차게 생긴 임도를 하나 발견했다. 저 멀리 산꼭대기에 보이는 송신탑까지 이어지는 임도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지프 커맨더를 들이댔다.
하지만 초입부터 달리기가 쉽지 않았다. 아스팔트와 비포장이 만나는 부분에는 꽤 깊은 구덩이가 패여 있어 고개를 창 밖으로 내밀고 건너야 했고 구덩이를 건너자마자 크고 작은 돌들이 무수히 많아 진행은 더디기만 했다.
그렇게 2km 정도를 오르니 시멘트 포장길이 나왔다
여기서 끝나는가 싶었는데, 시멘트 길은 산과 산을 잇는 백운교를 떠받치기 위해 지반을 다져놓은 것으로 300m 정도 지나자 다시 오프로드가 이어졌다.
시멘트 길이 끝나는 곳부터는 길이 훨씬 편했다. 바닥에 깔린 돌들은 아기 주먹보다 작았고 경사도 밋밋했다. 그렇게 느긋한 마음으로 한참을 달리니 이 길의 정상인 듯한 넓은 분지에 닿았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정상의 해발은 753m. 임도 초입에서 산 정상의 송신탑까지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송신탑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신암리 오프로드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아주 어려웠다. 오르막길의 바닥은 배수가 빠른 자갈이었지만, 내리막길은 흙이 대부분으로 약간이라도 패인 곳에서는 여지없이 진흙구덩이가 도사리고 있었다. 로 기어를 물리고 어기적거리기를 몇 차례 거듭한 끝에 커맨더는 깊은 진흙구덩이를 지날 수 있었다.
내리막에서 2km 되는 지점은 그야말로 밀림이라는 단어가 꼭 맞아떨어질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었다. 차가 다닌 지 1년은 족히 지났을 법하게 온간 잡풀이 우거져 있어 바닥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길도 좁아 사이드 미러를 접고 내려와야 했다. 길을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차에서 내려 걷기를 몇 번씩 반복하며 그렇게 신암리 오프로드를 내려왔다.
우연히 발견한 신암리 오프로드는 지난 5월호부터 연재를 시작한 ‘오프로드 투어’코스 중에서 가장 어려우면서 가장 재미있는 길이었다.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쿵덕쿵’ 길도 있고, 정면에 하늘이 보일 정도로 가파른 언덕도 있다. 잡목이 우거진 숲도 만날 수 있으니 가을 단풍철 찾아볼 만한 오프로드 코스로도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
청태산 임도는 경사가 급하지 않고, 노면도 평탄해 드라이브 코스로 좋다. 다소 밋밋한 오프로드가 될 수도 있지만 자연과 계절을 즐기고 싶다면 25km나 되는 청태산 임도 만한 곳도 없다. 11월 1일부터 겨울까지 출입을 통제하니 10월이 청태산 오프로드 드라이빙의 적기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 무더위도 한풀 꺾여 아침, 저녁으로는 꽤나 쌀쌀한 바람이 스친다. 하늘도 깊고 그윽한 파랑으로 농익어 가고 있다.
몸에 열이 많은 태음인 체질의 기자는 매년 가을을 손꼽아 기다린다. 여름에는 입맛도 없어져 기력이 쇠하니 정말 힘들다. 오존층의 파괴로 지구가 점점 뜨거워진다고 하니 해가 갈수록 여름이 길어지고 있어 안타깝다. 대한민국이 점점 더워지고 있으니 이러다가 종로에 바나나가 열리고, 갑자기 스콜이 쏟아지는 열대성 기후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다행이 올해도 사계절 중 가장 아름다운 가을(난 그렇게 생각한다)이 찾아왔고, 말이 살찌듯 기자의 대퇴부도 약간씩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기분도 좋다. 많은 사람들은 '가을 탄다'며 우울하고 외롭다고 하지만, 기자에게 가을은 왕성한 식욕만큼이나 의욕이 넘치는 계절이다. 이러한 가을을 맞아 소풍을 가는 기분으로 길을 나섰다. 파랗고 투명한 가을하늘과 가을냄새 물씬 풍기는 사진들을 담아 오고 싶었다.

4시간의 여정, 그리고 가을 찾기
여름이 길어졌기 때문에 9월 중순부터 단풍을 담아내는 것은 힘들다. 그래도 남한에서 가을이 가장 빨리 찾아오는 강원도로 오프로드 코스를 정하고, 높은 지형을 찾아 지도를 뒤적였다. 강원도에 높은 산들이 많긴 하지만, 차가 오를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한참을 뒤적이다 평창과 횡성을 가로지르는 임도 하나를 찾아냈다. 높은 곳이 해발 1,000m를 넘고 스키장까지 끼고 돌아 왠지 추운 기운이 감돌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지난 9월 10일 지프 그랜드 체로키를 끌고 평창으로 향했다. 서울을 벗어나면서 하늘은 더욱더 푸른빛을 뿜어냈고 더욱이 전날 많은 비가 내린 터라 하늘은 며칠사이 가장 맑고 쾌청했다. 그랜드 체로키는 가을바람 만큼이나 시원스럽게 내달렸고, 취재팀은 생각보다 일찍 오프로드 초입에 닿았다
코스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현대성우리조트’까지 내비게이션을 맞추고 간 후, 리조트를 지나 420번 도로에서 2.5km 정도 가면 왼쪽으로 예쁘장한 임도가 보인다. 초입에는 입간판이 없으므로 속도를 줄이고 유심히 살펴야 한다.
초입에서 약 300m 오르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들어서야 한다. 바리케이드가 있지만 열려 있다. 다만 11월 1일부터 산불예방을 위해 입산이 통제되니 지금이 아니면 봄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리케이드를 지나 임도에 들어서자 코스모스들이 산들거리며 취재팀을 반긴다. 바람결에 하늘하늘거리는 것이 살갑기 그지없다. 그래서 코스모스를 ‘살살이꽃’이라 부르는가 보다. 코스모스의 환영을 받으며 가을하늘에 닿을 것처럼 산을 올랐다.
청태산 임도는 전반적으로 도시형 SUV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을 만큼 쉽고 편하다. 경사도 밋밋하고, 어려운 돌길이나 진흙길도 없다. 어쩌면 심심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청태산 임도의 큰 매력은 코스의 난이도가 아니라 25km나 되는 길이다. 느긋한 마음으로 계절과 자연을 즐기고 싶다면 이만한 곳도 없지 싶다.
해발 1,000m에 오르자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그와 비슷한 녀석을 만났다. 길 한가운데 서서 이방인을 경계하듯 바라보다가 수풀 속으로 도망치듯 달아났다. 쉽게 만나기 힘든 노루(또는 고라니)의 등장에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왠지 가을소풍에서 보물이라도 찾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청태산에 노루는 있어도 10월호를 울긋불긋하게 장식할 가을은 없었다. 가을은 아직까지 여름의 기세에 눌려 내려오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도 노루의 출현과 25km나 되는 청태산 임도는 가을추억의 창고에 넣어 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볼 수 있을 것 같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