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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는 SUV, 과연 어디에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 것일까? 찾아보면 알 것이리라. 

 

 

SUV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꽤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목적만을 이루기 위해서 제작되었던 SUV는 이제 그 독특함과 함께 스타일을 결합하게 되었고 전 세계적인 인기와 함께 성공을 거두고 있다.

스포츠카로 유명한 페라리까지 SUV(그들은 절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지만 말이다) 제작에 뛰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그 역사를 조금이나마 훑어보는 시간이다.

디포 핵

역마차에서 전쟁용 병기까지

화물을 적재하는 능력을 중심으로 찾아보자면, 1920년대에 등장한 ‘디포 핵(Depot Hack)’이 SUV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장거리 여행은 기차로 이루어졌고 대부분의 승객들이 거대한 짐을 갖고 내렸는데, 일반 자동차로는 역에서 숙소까지 이들을 운송할 수 없었다.

이에 착안해 차대와 엔진은 그대로 두고 운송에 적합하도록 차체만 별도로 제작해 얹은 모델이 등장했는데, 이것이 디포 핵이다. 훗날 ‘스테이션 왜건(Station Wagon)’과 ‘서버번(Suburban)’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쉐보레는 미국 방위군 요원을 운반하기 위한 차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서버번의 조상이다.

윌리스 오버랜드

주행 능력을 중심으로 한다면 2차 세계대전 무대에 등장한 ‘윌리스 오버랜드(Willys Overland)’의 프로토타입 지프를 빼놓을 수 없다. 사륜구동과 내구성 및 거친 지형에서 병력을 수송할 수 있는 견고함을 갖췄던 이 모델은 70만 대 이상 생산되었고, ‘그 동안 생산된 비 전투 장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라는 이야기까지 생겼다. 이후의 역사는 지프 브랜드로 이어진다.

그리고 1950~60년대가 오면서 SUV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기존의 프레임 보디에서 모노코크 방식으로 자동차 제작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디자인도 변경된다. 당시 베이비 붐 세대들에게는 자동차의 화물 운송 능력도 중요했지만, 그와 동시에 고성능도 추구되었다.

그러한 모던 SUV에 가까운 모델이 1960년대에 등장한 지프 왜고니어(Jeep Wagoneer)인데, 첫 번째 럭셔리 SUV이기도 하다. 독립식 서스펜션, 파워 스티어링, 자동변속기 등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던 기술을 적용했다.

지프 왜고니어

80년대를 지나 황금기로

1970년대에는 오일 쇼크로 인해 연료비가 상승하고 배출가스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SUV가 잠시 힘을 못 쓰고 있었다. 그러나 80년대를 거쳐 90년대가 되면서 미국이 경제를 주도하기 시작했고, 세계 경제가 덩달아 좋아지면서 오늘날 인식하고 있는 SUV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일반 승용차와의 충돌 시 안전 문제도 부각되었는데, 이를 해결한 것이 포드 익스커션(Excursion)이다. 전면 하단 프레임에 블록 빔을 설치해 안전을 확보했다.

포드 익스커션

SUV는 넓은 실내, 높은 의자, 그리고 트레일러를 견인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해 여성 운전자들에게 인기를 얻었으며, 미국에서는 미니밴의 판매량을 앞질렀다. 그리고 200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승용차용 모노코크 차체를 사용하는 SUV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부분은 ‘크로스오버’라고 불렀는데, 일반도로를 이용하기에 큰 불편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게다가 파워트레인 기술이 발전하며 연비도 높아졌고, 이제는 하이브리드와 전기 SUV도 등장하는 시대이다.

아우디 E트론

SUV의 역사를 잘 살펴보면, 고객이 차량 구매 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넓은 공간과 오프로드 주행 능력, 높은 최저지상고와 견인능력이 중요했기에 그렇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SUV는 공간과 편안함, 기술 및 외형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있으며, 마치 스포츠카와 미니밴을 합친 것 같은 형태로 다듬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SUV는 또 어떻게 변할 것인지,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 같다.

글 | 유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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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전문 잡지 <모터매거진>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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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전세계 자동차 산업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로 자동차의 대중화를 의미하는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실현시킨 국가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역사가 더 긴 유럽은 자동차가 유산 계급을 위한 사치품의 성격에 가까웠던 반면, 미국의 자동차는 '자동차왕' 헨리 포드(Henry Ford)의 '모델 T'가 태어난 1908년부터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럽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땅덩어리를 가진 미국에서 자동차는 마차를 대체하는 사치품이 아닌, '생필품'으로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갔다.

자동차의 대중화가 가장 빠르게 시작된 미국의 대중은 오히려 유럽보다도 자동차와 오랫동안 함께 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의 자동차 문화는 줄곧 자동차를 사용하는 대중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배경 하에 미국 특유의 교통 환경이 맞물리면서 다른 지역들과 비교했을 때 지역색이 굉장히 짙은 자동차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 가장 미국적인 자동차로 손꼽히는 카테고리는 픽업트럭, 머슬카, 그리고 SUV를 들 수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전 세계에 알려진 가장 미국적인 자동차 분류를 간단히 살펴 보자.

픽업트럭
픽업트럭은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가장 미국적인 세그먼트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픽업트럭은 최초로 대중화된 자동차인 포드 모델 T의 변형에서 출발했다. 1913년, 오하이오 주 소재의 갤리온 전금속 차체 회사(Galion Allsteel Body Company)라는 곳에서 모델 T의 뒷좌석을 걷어 내고 그곳에 적재함을 올린 개조 차량을 선보였는데, 이것이 미국에서 최초의 픽업트럭으로 여겨진다. 픽업(Pickup)이라는 명칭은 1910년대에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 스튜드베이커(Studebaker)에서 가장 먼저 사용했다. 스튜드베이커가 사용한 명칭은 'pick'과 'up' 사이에 하이픈이 있었던 'Pick-up'이라는 표기였지만 후대에 들어 하이픈이 사라진 'pickup'이라는 용례가 정착되게 된다.

픽업트럭은 '승용차와 상용차의 중간 지점'이라는, 이중적이고도 애매한 포지셔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애매함이 미국에서는 '범용성'으로 통하면서 픽업트럭은 대히트를 쳤다. 특히 전미 각지의 농장주들을 비롯하여 소규모 수송력을 필요로 하는 각종 산업현장에서 환영 받았다. 또한 승용차에 비해 저렴한 가격 역시 픽업트럭 시장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픽업트럭의 눈부신 성장은 미국 내 상용차 시장에도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기준에서)적당한 크기와 적재량, 승용차와 상용차의 중간 격에 해당하는 특유의 포지션과 우수한 견인능력에서 나오는 탁월한 범용성으로 현재 다른 국가에서 통용되고 있는 소형 상용차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미국의 픽업트럭 시장은 미국 자동차 업계를 지탱하는 힘줄이다. 미국 자동차 업계가 승용차 시장을 해외 제조사들에게 대거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한 이유는 도무지 줄어 들 기미가 안 보이는 픽업트럭 시장 때문이다. 가령 미국내 가장 많은 픽업트럭을 판매하고 있는 포드의 경우, 아예 자사 매출의 절반이 F-시리즈 픽업트럭에서 나온다고 공언할 정도다. 물론, 토요타를 위시한 일본계 제조사들은 이 시장마저 가져오고자 아예 미국 현지에 공장을 차려 미국식 픽업트럭을 개발 및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픽업트럭 시장에서는 미국계 제조사들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픽업트럭은 이른 바 '풀-사이즈'급이라고 불리는, 적재중량 1,500파운드(약 680kg)급의 픽업트럭이다. 이들 픽업트럭은 미국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체급이기는 하지만 사양에 따라 길이가 6미터를 넘나들고 차폭은 2미터를 가볍게 넘기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운용이 다소 어려운 측면에 있다. 근래에는 픽업트럭의 붐과 함께 국내에서도 미국에서 건너 온 픽업트럭이 판매되고 있으며, 한국지엠에서는 올 8월에 중형 픽업트럭인 콜로라도를 정식으로 선보인 바 있다.

머슬카
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헐리우드 영화 등의 매체에서 단골 출연하는 머슬카. 아메리칸 머슬카는 그야말로 유럽식 스포츠카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미국식'의 고성능 자동차다. 정확히는 유럽식 스포츠카와는 성능을 추구하는 관점과 방향성이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머슬카는 유럽식 스포츠카와는 그 태생부터가 다르다. 유럽식 스포츠카는 과거부터 유산 계급의 장난감으로 출발했지만 머슬카는 미국의 중산층 내지는 서민층의 문화에서 출발했다. 아메리칸 머슬의 역사는 1950년대 '핫 로드(Hot Rod)'가 중흥하기 시작한 시절, 더 멀게는 1930년대 금주령 시절부터 시작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머슬카의 성능 향상 방정식은 유럽산 스포츠카의 그것과는 다르다. 빠른 가속성능과 최고속도 도달 능력에 중점을 두는 아메리칸 머슬카들은 5.0리터 이상의 대배기량을 자랑하는 V8 엔진을 주력으로 사용했다. 출력이 모자라면 실린더 보어나 스트로크를 늘려 배기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출력을 높였다. 이것조차 모자라다 싶으면 슈퍼차저를 얹는 등의 방법으로 출력을 높여 댔다. 그리고 기본적인 차량의 베이스 자체가 장거리 주행에 알맞은 일반적인 미국의 중대형급 승용차를 바탕으로 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머슬카는 유럽식 스포츠카의 작고 날렵한 차체에 비하면 매우 크고 넉넉한 차체 및 섀시를 지니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유럽식 스포츠카에 비해 가격이 매우 저렴하여 접근성이 매우 높았다. 대중으로부터 시작된 자동차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머슬카는 오직 직진 성능만 강력할 뿐, 핸들링 등 다른 성능은 등한시하는 차라는 인식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유럽식 스포츠카를 잣대로 아메리칸 머슬카를 판단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아메리칸 머슬카와 유럽식 스포츠카는 서로가 추구하는 고성능의 방향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성능 향상을 위해 그램 단위로 무게를 줄이는 등,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유럽식 스포츠카와는 접근법부터가 다를 수 밖에 없다. 

SUV
오늘날 전세계의 자동차 산업을 주름잡고 있는 SUV. 그 SUV의 기원은 바로 미국이다. SUV는 잘 알려진 대로,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ports Utility Vehicle)의 약자다. 여기서 말하는 '스포츠'란, 고성능 자동차를 의미하는 '스포츠카'의 그것과 맥락이 다르다. SUV의 스포츠는, 각종 레저 및 아웃도어 활동을 이른다. 즉, SUV란 처음부터 레저활동을 위한 다목적 차량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SUV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는 전간기(戰間期)인 1935년도에 등장했다. 쉐보레가 출시한 서버번 캐리올(Suburban Carryall)이 바로 그것이다. 쉐보레 서버번 캐리올은 세계 최초의 SUV임과 동시에 지프와 함께 미국을 SUV의 종주국으로 만든 기념비적인 모델이다. 서버번 캐리올은 오늘날 미국식 중형~대형 SUV에 통용되고 있는 3열 8인승 좌석 구조를 구현하고 있었으며, 2도어이기는 하지만 뛰어난 실용성으로 미국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1940년대 후반부터 민간에 보급되기 시작한 민수용 지프(CJ)를 통해, 사륜구동 시스템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픽업트럭을 기반으로 출발한 SUV는 '사륜구동 기능과 넓은 적재공간을 갖춘 다목적차'로 그 성격이 변화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자동차 제조사나 미디어 등지에서 말하고 있는 SUV의 개념은 발상지인 미국에서 말하는 SUV와 개념이 다르다. 오늘날 자동차 제조사 상당수는 승용 세단과 설계 기반을 공유하여 만들어지고 있는 도심형 소프트로더를 SUV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SUV의 발상지인 미국에서는 이러한 차종을 '크로스오버 유틸리티 차량(Crossover Utility Vehicle, 이하 CUV)', 혹은 '크로스오버 SUV'라는 별도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보수적으로 접근한다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SUV'로 판매되고 있는 차종 중 기아 모하비 더 마스터와 쌍용 G4 렉스턴을 제외하면 모두 이 분류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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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최고로 평가받던 재규어 스포츠카

지금은 SUV도 생산하고 있지만 재규어는 전통적으로 스포츠카와 대형 세단을 만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재규어 자동차라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먼저 떠올린다. 곡면 위주로 이루어진 디자인은 지금 봐도 매우 아름답다.

특히 재규어 스포츠카 중 E-Type은 재규어를 널리 알린 걸작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클래식 스포츠카로 손꼽힌다. 이 점을 인정받아 지금도 높은 가격에 중고거래되고 있다. 이외에도 재규어에는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진 스포츠카를 여러 종 남겼다.


재규어가 남긴 역대급 스포츠카 5종

E-Type 재규어의 걸작

1961년에 출시되어 1975년까지 판매된 스포츠카인 E-Type은 재규어의 역대 모델 중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E-Type의 가장 큰 특징은 곡면 위주로 된 아름다운 디자인이며 출시한 지 58년 된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클래식 스포츠카로 평가받고 있다. 페라리 창립자였던 엔초 페라리도 E-Type을 극찬했다.

곡면으로 된 디자인 덕분에 공기저항 계수가 낮았으며 제로백 7초, 최고 속도는 240km/h로 당시로서 매우 빠른 속도를 냈다. 이외에 모노코크 보디, 디스크 브레이크, 랙 앤 피니언 스티어링 등 첨단 기술을 도입했다. 또한 비슷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던 페라리나 애스턴마틴, 벤츠의 절반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 인기가 높은 편이였다.

E-Type 시리즈 2

E-Type은 두 번의 부분변경을 거쳐 시리즈 3까지 생산되었다. 시리즈 1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E-Type의 형태로 초기에는 3.8리터 엔진을 적용했으나 이후 4.2리터 엔진으로 교체했다. 또한 처음에는 2인승 모델만 생산하다가 1966년부터 2+2인승 모델이 추가되었다.

1968년에는 시리즈 2로 페이스리프트 되었는데 미국의 디자인 관련 법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헤드라이트 유리 커버가 사라졌으며 후방 범퍼의 위치를 조절, 전면 범퍼 아래에는 더 큰 방향지시등을, 후면에는 태일 램프의 크기를 키우고 위치를 아래쪽으로 내렸다. 엔진 성능은 265마력에서 246마력으로 낮아졌다.

위 : E-Type 시리즈 3, 아래 : Lightweight E-Type

1971년에는 시리즈 3으로 페이스리프트 되었다. 시리즈 3에서는 재규어가 새로 개발한 5.3리터 12기통 엔진을 적용해 272마력으로 출력을 높였으며 브레이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고 파워 스티어링이 도입되었다. 이외에도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이 약간 변경되었다.

시리즈 1~3 외에도 Lightweight라는 특별한 모델이 존재했다. 레이서들에게 E-Type이 레이싱카로서의 가능성이 높다고 호평받자 E-Type을 경량화한 Lightweight 모델을 12대 한정 생산되었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으며 내부 인테리어 등 무게를 최대한 줄였다고 한다. 

재규어의 역사를 시작한 SS1 재규어의 시작을 알린 모델

재규어의 시작은 오토바이광이었던 윌리엄 라이온즈와 윌리엄 윔슬리가 스왈로우 사이드카 컴퍼니라는 회사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오토바이를 위한 사이드카를 생산하다가 시험적으로 오스틴 사의 세븐을 기반으로 SS1이라는 차를 제작해 런던 모터쇼에 출품한 이후로부터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SS1은 당시에도 럭셔리카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었던 벤틀리와 유사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가격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해 대중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SS 재규어 100

SS1의 성공으로 윌리엄 라이온즈는 자동차 사업에 더욱 집중하려고 했으나 공동 창업주였던 윌리엄 윔슬리와 사이가 틀어져서 결별하고 만다. 윌리엄 라이온즈는 다른 회사에서 유능한 인재를 데려와 신모델 개발을 계속했고 1935년, 2.5리터 엔진을 적용한 SS 재규어를 출시했고 이듬해 100mph을 돌파한 SS 재규어 100을 출시한다. 무게는 1,150kg으로 가벼운 편이였다.

1938년 재규어 SS 재규어 100은 3.5리터 엔진으로 교체해 125마력까지 높였으며 1939년까지 생산되고 단종되었다. 이후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스윌로우 사이드카 컴퍼니는 SS 재규어 100에서 이름을 따 재규어로 사명을 변경한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XJ-S XJ을 기반으로 만든 GT 스포츠카

대형 세단인 XJ을 기반으로 나온 XJ-S은 1975년부터 1996년까지 20년 넘게 생산된 장수 모델이다. XJ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승차감이 비교적 편한 편이다.

또한 XJ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스포츠카 치고 차체가 매우 긴 것이 특징이며 5.3리터 12기통 엔진을 탑재해 0-60mph 7.6초, 최고 속도는 230km/h에 달했다. 

1981년에는 시리즈 2로 페이스리프트 되면서 연비를 높인 새로운 12기통 엔진을 적용했다. 스위스 엔지니어 마이클 메이가 설계한 파이어볼 연소실을 통해 295마력으로 출력을 높였다. XJ-S 시리즈 2는 실버스톤에서 열린 RAC 레이싱에서 1,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986년에는 3.6리터 모델과 함께 컨버터블이 출시되었다. 지붕 중앙만 탈착 가능한 타르가 형태였으며 뒷좌석을 제거해 쿠페와는 달리 2인승 모델로 출시했다. 하지만 타르가 모델이 인기가 없자 1988년, 완전히 오픈되는 풀 컨버터블 모델로 대체해 인기를 끌어올렸다.

포드가 재규어를 인수한 이후 1991년, XJ-S는 시리즈 3으로 페이스리프트 되었다. 이때 중간의 하이픈을 제거해 이름을 XJS로 변경했다. 리어 사이드 윈도가 확대되었으며 엔진은 4.2리터 엔진과 6.0리터 엔진으로 교체되었다. 변속기도 함께 변경되었으며 컨버터블 모델에는 다시 뒷좌석을 추가해 4인승이 되었다.

1995년에는 재규어 60주년을 기념해 다이아몬드 휠, 재규어 엠보싱 시트, 우드 핸들 등 특별 사양을 적용한 특별 모델을 생산했으며 1996년, 후속 모델 XK8 출시로 인해 단종되었다.

 

XJ220 포르쉐와 페라리에 대항하다

포르쉐와 페라리가 각각 959와 F40으로 한창 경쟁하고 있을 때, 재규어도 슈퍼카 경쟁에 출사표를 던졌다. 1992년에 출시된 XJ220은 최고 속도 220마일(354km/h)을 목표로 하였으며 개발 초기에는 12기통 엔진과 4륜 구동, 시저 도어를 채택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2기통 엔진의 큰 크기와 무거운 중량 때문에 설계에 큰 지장을 초래했고 당시 재규어는 포드에 인수될 정도로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 편이였다. 이러한 이유로 양산형 모델에는 6기통 엔진과 후륜구동, 일반 도어를 적용했다.

XJ220은 재규어답게 곡선을 이용한 화려하고 날렵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어 처음 공개된 후 1,500명 이상이 구매의사를 표시했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성능도 우수해 최고 속도 220mph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이에 근접한 212mph(342km/h)을 기록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으며 뉘르부르크링 기록도 7분 46초로 매우 빠른 기록을 보유했다.

훌륭한 성능으로 슈퍼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차였지만 2년 후, 맥라렌의 역작 F1이 출시되면서 점점 사람들에게 잊힌 비운의 슈퍼카가 되었다. 원래 350대만 한정 생산하기로 했으나 275대만 생산되고 단종되었다.

XK 시리즈의 시작, XK120

재규어 XK 시리즈 재규어의 산증인

XK 시리즈는 1948년부터 처음 나온 역사가 매우 깊은 스포츠카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 민수용 세단 모델을 개발해 1948년 런던 모터쇼에 선보이려고 했으나 예상보다 개발이 늦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놓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윌리엄 라이언즈는 런던 모터쇼를 위해 대안을 내놓게 되는데 개발 중이던 마크 5의 프레임 섀시 길이를 줄여 XK120을 출품하게 된다.

XK120의 이름은 새로 개발한 엔진 이름이 XK 엔진이어서 XK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최고 속도 120mph을 발휘한다고 해서 뒤에 120이라는 숫자가 붙었다. XK 엔진은 3.4리터 6기통 엔진이었으며 162마력을 발휘했다.

1948년에 출품된 XK120은 아름다운 스타일링으로 인기를 크게 끌어내는데 성공했고 다른 제조사들이 앞다퉈 XK120을 벤치마킹할 정도로 유명세를 크게 치렀다. 또한 가격도 동일한 성능을 발휘하는 다른 자동차보다 저렴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120mph라는 최고 속도에 의문을 표했다. 당시 120mph라는 속도는 꿈의 속도로 불렸는데 당시 조그마한 회사였던 재규어의 기계적 신뢰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국 윌리엄 라이온즈는 XK120을 가지고 기자 앞에서 성능 시연을 해 우수한 성능을 증명해 재규어의 이름을 더욱 알리게 되었다.

이후 1954년에는 XK140, 1957년에 XK150을 출시해 성능을 더욱 높였다. 후속 모델이 출시되면서 디자인이 약간씩 변경되었고 엔진을 개선해 출력을 점점 높였다. 1961년 XK150이 단종되고 E-Type가 출시되었지만 북미 시장에서는 XKE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면서 XK라는 이름을 계속 이어갔다.

E-Type 단종 이후 XJ-S가 재규어 2도어 라인업을 담당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나 XJS가 노후화되면서 새로운 모델의 필요성을 느끼고 1996년 XK8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흔히 XK 1시리즈로 불리는 모델이며 4.0리터 엔진과 4.2리터 엔진 중 선택할 수 있었으며 5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되었다.

2006년에는 XK 2세대 모델이 출시되었다. 이안 칼럼이 디자인을 맡았고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은 E-Type에서 영감을 얻었다. 플랫폼은 XJ와 공유하지만 클래식했던 XJ와는 달리 XK는 상당히 세련된 디자인으로 이목을 끌었다. 2009년 페이스리프트 되면서 5.0리터 엔진이 추가되었고 2011년 2차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XKR-S가 추가되었다.

2013년 F-Type이 출시되고 1년가량 XK랑 병행 판매되다가 2014년 XK가 단종되었다. 그러나 몇 년 이내 재규어는 XK를 부활시키겠다고 밝혔다. F-Type의 플랫폼을 공유하며 크기를 키우고, 편의 장비를 대거 탑재한 중량급 럭셔리 4인승 모델로 출시한다고 밝혔다.

E-Type의 명맥을 잇는 F-Type 스포츠카

현재 재규어에서 판매되고 있는 F-Type는 E 다음 알파벳이 F라는 점과 E-Type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외관 디자인을 들어 E-Type의 명맥을 잇는 스포츠카로 인정받고 있다.

재규어 특유의 날렵한 외관과 무드램프가 들어간 고급스러운 실내 디자인이 대중들에게 큰 호평을 받아 2013년 출시되자마자 최고로 아름다운 자동차로 꼽혔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F-Type은 2.0리터 가솔린 엔진, 3.0리터 가솔린 슈퍼차저 엔진, 5.0리터 가솔린 슈퍼차저 엔진 3가지 라인업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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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현대자동차와 함께 현대자동차그룹을 구성하는 일원이 된 지 상당한 세월이 지났지만 과거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와는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던 자동차 기업이었다. 1944년 '경성정공'으로부터 시작해 기아산업 등의 시절을 거치는 동안, 기아자동차는 이륜차로부터 시작해 승용과 상용 부문을 넘나들며 다양한 자동차들을 개발해 냈다.

물론 우리나라의 여느 자동차 제조사와 마찬가지로, 기아도 자동차 관련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에는 몇몇의 '스승'을 거쳐갔다. 그 중 하나는 오늘날에도 전세계에 이륜차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혼다기연공업(이하 혼다)'이었다. 기아는 삼천리자전거를 세우며 자체적으로 자전거를 생산함은 물론, 혼다와의 제휴를 통해 이륜차도 생산했다. 기아 이륜차 사업부의 후신이 오늘날의 대림자동차다. 그리고 기아는 1960년대 들어 토요공업(現 마쓰다주식회사)를 또 다른 스승으로 맞아, 본격적으로 자동차 사업을 전개해 나갔다.

기아자동차가 처음 만든 자동차는 마쓰다가 생산하고 있었던 삼륜트럭이었다. 그렇다면, 기아자동차가 처음으로 만든 '사륜자동차'는 무엇이었을까? 마쓰다 파밀리아를 기반으로 개발한 '브리사'를 생각하시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브리사는 '기아자동차 최초의 승용차'다. 기아자동차가 처음으로 반든 사륜자동차는 승용차가 아닌, 화물차, '복사(Boxer)'였다.

기아자동차가 처음으로 만든 사륜자동차

기아산업의 기아마스타 삼륜차 시리즈는 마쓰다 K360 기반의 적재중량 300kg급 소형 모델과 후기에 출시된 500kg급의 T-600, 그리고 1.5톤의 적재중량을 갖는 T-1500과 2톤급에 달하는 T-2000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들보다 더 높은 적재중량을 갖는, 적재중량 4~4.5톤급의 중형급 화물차로 내놓은 차가 바로 복사다.

이 차는 마쓰다가 1968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3.5~4.5톤급 중형 트럭, 복사(Boxer)를 라이센스 생산한 것이다. 차명인 복사(Boxer)는 권투선수가 아닌, 사역견으로 유명한 독일의 견종에서 가져 온 것이다. 일하는 자동차인 상용차에 어울리는 작명이라고 할 수 있다.

기아마스타 복사는 1971년도에 적재중량 4톤급의 모델이 최초 출시되었다. 기아마스타 복사는 '4톤 신세대를 리-드하는 기아마스타 복사'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광고했다. 1세대 복사의 외관은 전형적인 당대의 캡-오버형 화물차의 모습 그대로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면, 헤드램프 상부에 위치한 두 개의 창을 들 수 있다. 이는 전면의 사각지대를 확인하기 위한 부위다. 또한 코너 유리를 적용해 넓은 전측방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외에도 전륜 휠 너트 가장자리에는 틀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휠 볼트와 너트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며, 운전자에 따라서 종종 간이 스텝과도 같은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적재함의 경우, 당시 기준으로 다소 낮은 높이인 데다 후면과 좌우 양쪽의 플랩을 모두 펼칠 수 있는 현대적인 삼면 개폐식 적재함을 채택한 덕분에 상/하차 조업의 편의성이 높았다. 또한 ㄷ자형 단면의 이중구조 프레임을 기반으로 했으며, 후륜에 8중 이상의 판스프링을 적용해 수직 내하중성을 높였다. 이뿐만 아니라 틸팅캡(Tilting Cab)을 적용하여 유지보수의 편의성 역시 높았다. 실내는 화물트럭에 주로 적용되는 휴식용 간이침대를 과감히 제거하고 등받이를 완전히 뒤로 젖힐 수 있는 구조의 좌석을 적용했다.

기아마스타 복사는 총배기량 3.8리터(3,783cc)의 직렬 6기통 디젤 엔진을 탑재했다. 이 엔진은 110마력의 최고출력을 낼 수 있었으며, 수동 5단 변속기와 짝을 이뤘다. 당시 기준으로 9.1km/l의 연비를 자랑했다. 1973년도부터는 115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4.0리터(4,052cc)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4.5톤 복사를 추가 출시되며 라인업이 넓어졌다.

기아마스타 복사는 1971년도부터 소하리공장에서 생산되기 시작했다가 1976년, 기아가 아시아자동차를 자회사로 편입시키면서 아시아자동차의 광주공장에서 위탁생산되었다. 기아 복사는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기아자동차의 주력 중형 화물차로 꾸준히 판매를 이어나갔다. 원 제작자인 마쓰다가 1980년에 복사를 단종시켜버린 것과는 달리, 기아의 1세대 복사는 꾸준한 개선작업을 거쳐 1990년대까지도 생산되었다. 심지어 2세대에 해당하는 '와이드 복사'가 출시된 이후에도 한동안 병행생산되었다. 기아 복사는 1993년, 배기가스 규제 및 경쟁력 약화 등을 이유로 신형의 4.5톤급 화물차 '라이노'와 4톤급 '와이드 복사'에 자리를 넘겨주고 최종적으로 단종을 맞았다.

기아마스타 복사는 국군의 기동장비로서 채용되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국군은 기존에 미국에서 공여 받아 보유하고 있었던 트럭 등 상당 수의 기동장비들이 노후화되고 있었고 예비군 병력은 늘어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노후화된 차량들을 퇴역시키는 한 편, 퇴역한 차량들의 빈 자리를 메울 새로운 차량이 필요하게 되었다. 군이 새로운 차량을 요구하게 되면서 기아자동차는 복사를 기반으로 군의 요구 사항에 맞는 개량한 트럭을 군에 제안하였다. 기아가 제안한 군용 복사 트럭은 험지 및 임도 주행이 잦은 군의 요구에 따라 지상고를 높이는 한 편, 사륜구동을 기본으로 적용하는 등의 개선 사항이 적용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군용 복사 트럭은 'K300'이라는 제식명을 부여 받고 국군에서 사용되었다. K300은 민수용 트럭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차량이기는 하지만, 최초의 국산 군용 차량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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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는 것과
사라지는 것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에서 하나의 거대한 스마트 기기로 변화하고 있다. 운전 도중 심심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안마 기능을 통해 피로를 풀어주고, AI 기술이 점점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맛집을 찾아달라고 명령하면 해당 지역에 있는 맛집 리스트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새로운 것이 생긴다면 사라지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필수였었던 옵션들이 지금은 추억을 회상하는 물건이 되어버린 것이 많다. 과거 자동차에는 필수품이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물건들 7개를 모아보았다.

카세트테이프/CD
음악 감상 필수품

옛날에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카세트테이프가 필수였다. 이 때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음악 테이프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며 당시에는 음악을 듣고 싶었다면 음반점이 아닌 고속도로 휴게소를 가라는 명언이 있었을 정도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카세트테이프 대신 CD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에 따라 CD로 음악을 듣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에 따라 자동차 내에도 카세트테이프 대신 CD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음반은 CD로 구입해서 듣는 것보다 스마트폰에 파일을 내려받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한다. 자동차 내부도 CD 투입구를 점차 제거해나가고 있으며 USB 메모리를 활용하거나, 블루투스, AUX 등을 이용해 스마트폰과 연결해서 음악을 듣는다.

 

카세트테이프를 이용해서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카팩이라는 물건도 기억할 것이다. 카팩은 음악 테이프에 MP3 플레이어 등을 연결할 수 있는 선이 부착된 물건이다. 요즘에는 이것도 시가잭을 이용한 무선 카팩으로 변화해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

길게 뻗은 안테나
자동차에 빠질 수 없는 포인트

옛날 자동차 끝에서 기다랗게 올라오던 자동차 안테나를 기억하는가? 라디오를 청취할 때 작동하는 안테나는 자동차에서 빠질 수 없었던 포인트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왜나하면 안테나는 고급 자동차에 적용되던 옵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시대가 지나면서 안테나 줄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파손이 잦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요즘에는 상어 지느러미처럼 생긴 샤크 안테나 혹은 아예 자동차 유리에 내장한다. 이에 따라 요즘에 올드 카 이외에는 길게 뻗은 안테나를 보기 힘들어졌다.

수동식 창문
창문을 열려면 운동이 필수

옛날 자동차는 창문을 열기 위해 일명 닭 다리라고 불리는 레버를 돌려 여닫았다. 물론 당시에도 전동 윈도는 있었으나 고급 사양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동차는 수동식이었다. 레버를 돌려 창문을 열거나 닫다 보면 어느 순간 땀으로 범벅이었던 자신을 볼 수 있게 된다.

 

요즘에는 전동 윈도가 기본으로 적용되어 버튼 조작만으로 편하게 창문을 여닫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손으로 돌려서 창문을 여닫는 것은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전동 윈도 또한 점점 발전했다. 버튼을 계속 눌러야 하는 방식에서 버튼을 한 번만 눌러 여닫는 파워 윈도, 신체 부위 끼임을 감지하면 다시 문을 열어주는 세이프티 윈도로 발전했다.


시가잭/재떨이
차내 흡연이 당연했던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옛날에는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렇다 보니 차 안에는 시가잭과 재떨이가 필수였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던 시외버스에도 재떨이가 존재했었다.

 

시대가 지날수록 건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점점 높아져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풍경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재떨이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시가잭은 전자기기의 전원을 공급하는 용도로 변화했다. 그러다 시가잭은 점점 USB로 변화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수동 도어록
문이 잘 잠겼나...

옛날에는 차 안에서 문을 잠그려면 수동 도어록을 이용해 문을 잠갔다. 또한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보니 뒤에 타고 있는 아이가 호기심에 잠금장치를 해제 후 도어를 여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요즘은 리모컨 키가 대중화되면서 이러한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아직 남아있는 일부 자동차도 있지만 이는 문을 잠그는 용도보다는 잘 잠겼는지 확인하는 용도에 가깝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앱을 이용해 차를 제어할 수 있게 되면서 미래에는 리모컨 키도 추억의 물건이 될 수도 있다.

유자 등 과일류
먹지 마세요, 차에 양보하세요

옛날에는 과일을 올려두는 경우가 많았었다. 주차된 차를 돌아보면 여러 가지 과일이 차 안에 비치되어 있는 모습이 많았는데 주로 유자가 대부분이었다. 유자를 말려서 차 안에 비치해두면 얼마 후 차 안에 달콤한 유자향이 퍼지게 된다.

 

요즘에는 차 내에 과일을 비치하는 경우를 거의 볼 수 없다. 시중에 여러 가지 방향제가 시판되었고 내부에 뿌리거나 에어컨 송풍구에 달아 해결한다.

전국 지도
운전 도중 수시로 펼쳐보던 것

예전에는 자동차 내부에 전국 지도가 꼭 하나씩 있었다.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길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이정표 아니면 지도뿐이었기 때문에 운전하다가 수시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지도를 펼쳐 방향을 확인하곤 했다.

 

시대가 지나면서 내비게이션이 보급되면서 차 안에 있던 지도는 자취를 감췄다. 검색 한 번이면 찾아가는 방법과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며 GPS와 연동해 막히는 길이 있다면 우회해서 알려줘 편리해졌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요즘은 음성 인식으로 목적지를 입력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손으로 하나하나 타이핑하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단 한마디로 목적지까지 빠른 길을 안내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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