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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을 총망라해서 기술혁신 아이콘으로 부상한 자동차는 많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같은 플래그십 모델이 대표적이다. AMG와 M이 내놓은 다양한 고성능 모델도 폭발적인 성능을 앞세워 자동차 마니아가 열광하는 퍼포먼스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디자인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스타일링 아이콘은 많지 않다. 더는 생산하지 않는 폭스바겐 비틀이나 BMW 그룹에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미니, 포르쉐 911 정도가 있을 뿐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 모델을 잇는 차세대 스타일링 아이콘으로 레인지로버 이보크를 꼽을만하다. 독특한 디자인 하나로 2008 북미모터쇼를 뜨겁게 달군 콘셉트카 LRX의 모습을 거의 실현한 양산 모델이다. 매력적인 디자인에 브랜드 특유의 고급스러움까지 더한 이보크는 인기를 끌었다. 출시 후 지금까지 전 세계 각종 어워드에서 상패 217개를 휩쓸었고, 127개국으로 팔려나갔다.
콤팩트 럭셔리 SUV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이보크가 더 강렬한 디자인으로 돌아왔다. 직접 마주한 신형 이보크는 전체적인 생김새와 비율이 1세대 이보크를 충실하게 계승했다. 두툼한 몸통과 납작한 지붕, 날렵한 눈매와 커다란 바퀴 등 아이코닉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고, 랜드로버의 최신 디자인 언어로 깔끔하게 손봤다. 레인지로버 식구다운 세련미가 더 짙어졌다. 풍기는 아우라는 위급 벨라와 비슷하다.
가느다란 앞뒤 LED 램프와 전면 그릴은 특히나 벨라 판박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보크 쪽이 더 슬림하지만, 멀리서 보면 이 두 가지 요소만으로 이보크와 벨라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시승차(퍼스트 에디션)에는 매트릭스 헤드램프를 적용해 특히 더 고급스럽다. 보석처럼 빛나는 LED 광원 20개가 하나하나 따로 움직인다.
보닛·범퍼·펜더에 넣은 구릿빛 디테일 역시 이런 고급스러움에 한몫 한다. 바지춤을 바짝 올려 입은 듯 한껏 위로 추켜올린 범퍼는 오프로더로서 손색없는 전천후 주행성을 잘 드러낸다.
볼륨감 넘치는 근육질 몸매와 낮고 늘씬하게 빠진 루프라인은 가장 큰 디자인 특징이다. 남성미와 여성미가 교차하는 오묘한 감각에 중독된 듯 자꾸만 시선이 간다. 이보크 이전 랜드로버 모델 라인업은 박스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유려한 디자인으로 꾸민 콤팩트 SUV를 내놓는 일은 랜드로버 입장에서 다소 위험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콘셉트에 대한 반응은 대박을 예감하기 충분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보크는 단숨에 브랜드 최고 패셔니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잠금 해제하면 매끄러운 차체 표면에 감쪽같이 숨어있던 도어핸들이 살며시 튀어나와 탑승자를 맞이한다. 역시 벨라에게서 가져온 요소다. 작지만 강렬한 인상이 하나둘 모여서 모델의 품격을 높인다. 묵직한 도어를 열고 실내로 들어서면 가죽 냄새가 코끝을 맴돌고 화려한 인테리어가 두 눈을 현혹한다. 친환경을 추구하느라 천장을 비롯한 내장재 일부에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했는데, 우려와는 달리 저렴해 보이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고급감이 감돌아 스웨이드인가 싶었다. 피부가 닿는 곳은 대부분 부드러운 가죽으로 감싸서 이보크가 엄연히 레인지로버임을 강조한다.
실내 공간은 생각보다 작지 않다. 신형 이보크는 1세대보다 휠베이스를 21mm 늘였다. 덕분에 2열 레그룸이 11mm 더 넉넉하다. 뒷자리에 성인남성이 앉고도 무릎 앞에 주먹 2개 이상 들어갈 정도로 여유로운 공간이다. 2열 시트는 6:4 폴딩에서 4:2:4 폴딩으로 개선했다. 적재공간은 기본 591L고, 2열 시트를 모두 접으면 1383L까지 커진다. 수납공간도 26L나 늘었다. 앞문 도어 포켓에는 이제 1.5L 물병도 거뜬히 넣을 수 있다. 센터 콘솔에는 태블릿 PC도 쏙 들어간다.
시동을 걸면 위아래로 나눈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가 랜드로버 로고를 띄우면서 깨어난다. 위쪽 디스플레이는 운전자 눈높이에 맞게 기울기를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 시승한 모델은 주력 트림이 될 D180이다.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43.9㎏·m을 발휘하는 인제니움 시리즈 직렬 4기통 2.0L 디젤엔진을 품었다. 굳이 신경 쓰지 않으면 디젤엔진인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다.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는 디젤엔진이 내뱉는 소음을 잘 차단했다. 실내로 유입하는 소음과 진동이 적으니 프리미엄 자동차 감성이 더욱 물씬 풍긴다.
탁 트인 시야는 SUV의 장점 중 하나다. 이보크는 높은 시트 포지션 덕에 경쟁모델보다 시야가 한층 더 시원하다. 스티어링휠 너머에는 선명한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이 놓였다. 입맛대로 보기 좋게 구성할 수 있다. 기본적인 주행정보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만 봐도 충분하다. 센터페시아 하단 디스플레이는 보기에는 깔끔하고 고급스럽지만, 주행 중에 조작하려면 시선 이동이 많아서 불편하다. 불필요한 시선 이동 없이 손끝으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물리 버튼이 훨씬 더 직관적이다. 거의 모든 기능을 터치로 제어하도록 하면 보지 않고는 조작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서는 가속 페달로 가져간 발에 힘을 더해봤다. 촘촘히 쪼갠 9단 변속기는 부드럽게 다음 기어를 물고 천천히 속도를 높인다. 꽤 가파른 코너에서도 아스팔트를 네 발로 강력하게 움켜쥐고 듬직하게 돌아나간다. 조향 반응은 딱 알맞다.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다. 다만 서스펜션은 좀 아쉽다. 레인지로버 보그나 벨라만큼 요철을 부드럽게 다스리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큰돈 안 들이고 승차감을 높이고 싶은 구매자라면 커다란 휠은 포기하기를 권하고 싶다.
오프로드 주행성은 백 번 칭찬해도 부족하지 않다. 2세대 이보크는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 2를 탑재했다. 자동으로 놓으면 차가 알아서 바퀴가 닿는 표면에 맞게 네 바퀴에 토크를 황금비율로 분배한다. 원한다면 자갈길·모래·진흙을 비롯해 7가지로 나눈 주행모드를 선택할 수도 있다. 자갈길에서 이보크는 곧게 달릴 때나, 코너링을 할 때나 아스팔트를 달리듯 흐트러짐 없이 움직여서 대단히 놀라웠다. 기회가 된다면 600mm 도강 능력도 시험해보고 싶다.
이보크는 매력적인 외모만으로도 충분히 지갑을 열만한 차다. 그러나 2세대는 겉모습보다 꽉찬 내면이 더 매력적인 차다. 유로앤캡 충돌 테스트 별 5개의 비결은 13% 더 단단한 새로운 섀시다. 어떤 길도 걱정 없는 탁월한 주행 능력과 레인지로버다운 화려한 실내공간까지 생각하면 구매 이유는 차고 넘친다. 다소 비싼 가격표를 달고 있기는 하지만, 뛰어난 실용성을 생각하면 후한 점수를 줄 만하다.
글 박지웅 사진 이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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