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궁사극치(窮奢極侈)의 GT, 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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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는 진정한 풍요로움을 가진 GT카다

 

직업 특성상 빠르고 강한 차를 많이 타봤다. 정신이 혼미할 만큼 빠르게 달리는 차도 있었고, 코너를 비정상적으로 빨리 도는 모델도 있었다. 물론 최고속도가 일상 영역을 몇 배로 초월하는 녀석도 있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모델은 애스턴마틴의 GT 세단인 라피드. 느린 속도에서 헐겁지 않고 초고속 영역에서는 기가 막힌 안정감을 선사했다. 특히 묵직하지만 나긋나긋한 주행 질감은 현실과 동떨어진 평온함을 전했다. ‘이게 바로 진정한 GT구나!’라는 새로운 세계의 각성을 선물했다. 그리고 고성능 12기통 엔진의 진가를 몸소 느끼게 해준 아주 고마운 녀석이다.

DBS 슈퍼레제라가 기대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DB11은 애스턴마틴을 대표하는 DB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따라서 이전에 라피드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묵직하지만 특유의 자연스러운 고속주행 질감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기회다. 둘째, DBS 슈퍼레제라는 그 DB11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애스턴마틴 GT 쿠페의 끝판왕이다.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DBS 슈퍼레제라는 그 이름 자체가 자신의 특별함을 잘 설명한다. DBS는 자신이 DB 시리즈, 아니 애스턴마틴 전체 라인업에서 특별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그 핵심은 더욱 강력한 엔진, 본격적인 에어로다이내믹 설계, 그리고 사치스러울 정도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등이다.

 

 

600마력대였던 DB11의 V12 트윈 터보 엔진은 DBS에서 700마력 이상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더 놀라운 건 토크다. 이미 DB11에서 70kg·m 수준으로 강력했던 토크가 DBS에서는 91.7kg·m로 오른 것. 그것도 1800rpm부터 5000rpm까지 꾸준하게 발휘해 언제든지 발목 까딱 한 번으로 스타십이 워프하는 듯한 가속을 맛볼 수 있다. 강력한 토크를 받아내기 위해 DB11에 사용됐던 8HP75 75계열 ZF 8단 자동변속기가 DSB에서는 고토크 대응형인 8HP95 모델로 교체됐다.

 

울버린 손등에서 나올 법한 날카로운 휠 아치 블레이드.

 

 

DBS의 외관은 곳곳에서 DS11보다 와일드한 느낌을 준다. 보다 적극적인 공기역학적 설계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트렁크 리드의 탄소섬유 스포일러와 그 아래의 에어로블레이드 II이다. 쿼터 글라스 끝부분에 있는 에어인렛으로 흘러든 공기는 리어 스포일러 아래의 슬릿을 통해 배출된다. DB11에서 특허와 함께 처음 공개된 에어로블레이드 개념은 DBS에서 두 배 이상 확대됐다. 차체 뒷면을 흐르는 공기가 소용돌이치지 않고 저항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리어 스포일러 아래로 공기가 빠른 속도로 배출된다. 그리고 그 공기의 흐름을 통해 DBS 슈퍼레제라는 최고속도에서 180kg의 다운포스를 얻는다.

슈퍼레제라(Superleggera)는 초경량이라는 뜻이다. 이미 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을 아낌없이 사용했던 DB11의 구조에 더해 DBS 슈퍼레제라는 보디 패널과 크램셸 보닛, 데크 리드, 스플리터, 디퓨저 등 더 많은 부품에 탄소섬유를 썼다. 덕분에 DB11보다 80kg가량 가볍다.

 

 

DBS 슈퍼레제라의 문을 열자 진한 가죽의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이렇게 천연 가죽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차가 얼마나 남았을까? 이제는 독일의 품에 안긴 롤스로이스나 벤틀리에서도 이 정도의 진한 가죽 향기를 기대하지 못한다. 진짜 부자가 되는 기분을 향기 하나로 즐긴다는 것은 색다른 쾌감이다. DBS 슈퍼레제라가 GT 쿠페라는 사실은 답답하지 않은 실내공간에서 드러난다. 두 사람이 넉넉한 공간을 즐길 수 있고 마치 헬멧을 쓴 듯한 느낌의 스포츠카와는 달리 머리 주변이 시원하고 시야도 좁지 않다.

 

 

12기통 엔진은 시동을 걸 때부터 다르다. ‘킹킹킹’거리는 4기통이나 6기통과는 완전히 다른 ‘위이잉~’ 소리와 함께 엔진이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우르릉’하는 폭발음을 내뿜으며 엔진의 활력을 돋운다.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의 12기통 엔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짧은 스트로크를 통해 사나운 회전 질감을 전한다. 가속페달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엔진 회전수는 이 녀석이 보통이 아님을 나타낸다.

 

 

DBS의 잠재력을 꺼내기 위해 스티어링휠 왼쪽의 서스펜션 조절 버튼과 오른쪽의 파워트레인 모드 버튼을 이용한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의 서스펜션은 코일오버 서스펜션에서 느끼던 레이싱 감각을 그대로 재현하고 파워트레인은 725마력짜리 엔진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배기음으로 먼저 전한다. 서스펜션을 컴포트 모드에 둔 채 파워트레인을 스포츠 모드에 놓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급가속 시 마치 앞바퀴가 뜨는 기분으로 희미한 접지력에 놀라게 된다. 파워 보트처럼 앞이 들리고 뒤가 가라앉는다. 725마력은 절대 장난삼아 경험할 대상이 아니다. 차급에 맞지 않는 송풍구 디자인이나 어깨 부분을 잘 받쳐주지 못하는 시트 등받이 등 사소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DBS 슈퍼레제라는 진정한 풍요로움을 가진 GT카라고 할 수 있다.글_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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