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자동차역사' 카테고리의 글 목록 (3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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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회사는 신차를 준비하며 성공적인 판매 실적을 올려 주길 바란다. 하지만 처참한 판매량으로 일찍이 단종되는 모델이 있는가 하면 역사에 기록될 명차가 되기도 한다. 이 중에는 자동차 회사의 운명을 결정지어준 모델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 시작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등장부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유명 모델의 시작과 현재를 모았다.

기아 스포티지

세계 최초의 도심형 SUV로 1993년 등장했다. 당초 포드와 공동 개발을 진행했지만 결렬됐으며, 기아 자체적으로 독특한 디자인의 프레임을 설계해 스포티지를 완성했다. 1991년 도쿄 모터쇼에 콘셉트카 등장 당시 기아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였음에도 포드는 물론 토요타와 혼다 등에 큰 충격을 안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94년 토요타가 RAV4를, 1995 혼다가 CR-V를 내놓으며 콤팩트 SUV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현재 스포티지는 4세대에 해당하며, 5세대 모델 발표를 앞두고 있다. 5세대 스포티지는 일반 모델과 롱휠베이스 모델로 구분될 예정이며, 국내 사양은 롱휠베이스 모델이 판매될 예정이다. 크기를 키워 르노삼성 QM6와 비슷한 사이즈를 갖게 되면서 공간 활용성도 높을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파격적인 모습도 예고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SL

르망 24시, 카레라 파나메리카나 등 혹독한 레이싱에서 우승한 벤츠의 레이싱카 300SL은 우승 경력보다 특유의 디자인으로 인해 더욱 주목받는다. 1954년 당시 200마력이 넘는 높은 출력을 발휘했고, 이 힘을 감당하기 위해 차체 강성을 높이다 보니 일반적인 도어 구조로는 사람이 타고 내리기 힘들어 걸윙도어 구조가 탄생한 이야기도 유명하다. 명차로 꼽히는 300SL의 ‘SL’ 이름은 독일어로 초경량을 뜻하는 ‘Super Leicht’에서 따왔다.

현재 벤츠의 다양한 모델이 존재하지만 SL 만큼은 시간이 흘러도 단종되지 않고 세대를 거쳐가며 발전 중이다. 앞으로 등장할 7세대 SL은 벤츠가 아닌 AMG에서 개발을 주도해 보다 스포티하면서 역동적인 주행이 가능하도록 개발되고 있다. 새로운 차체 구조는 무게가 270kg에 불과할 정도로 가볍다.

미니

미니는 1959년 제2차 중동전쟁 이후 고유가를 타개하기 위한 극복 방안에서 탄생했다. 브랜드의 창시자 알렉 이시고니스는 작은 차체와 넓은 실내 구현을 목표로 전륜구동 방식에 가로 배치 직렬 엔진과 여기에 맞춘 서스펜션 시스템을 도입했다. 오스틴 세븐(Austin Seven), 모리스 미니-마이너(Morris Mini-Minor) 등 여러 이름이 있었지만 과거나 현재나 ‘미니’라는 이름 하나로 모든 설명이 됐을 정도로 시대의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현재 미니는 BMW 가족의 일원으로 보다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며 끊임없이 성장 중이다. 미니로부터 얻은 전륜구동 노하우가 BMW의 다양한 모델에 확대 적용되기도 했다. 과거의 디자인을 유지하는 모습과 미니 특유의 주행감각,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앞세운 문화 등으로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2019년에는 1천만 번째 미니가 탄생하기도 했다.

쉐보레 서버번

쉐보레의 기함급 풀-사이즈 SUV 서버번은 단일 모델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모델이다. 세계 최초의 다인승 MPV 모델이자 왜건, 그리고 SUV의 개념을 만든 모델이다. 1934년 등장 이후 현재 12세대에 걸쳐 발전해 왔다. 본래 초창기에는 캐리얼 서버번(Carryall Suburban)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으나 곧 서버번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됐다.

현재의 서버번은 GM 모델 중에서도 가장 큰 모델로 통한다. 동일한 플랫폼으로 만들어지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 GMC 유콘도 사이즈를 늘려야 서버번과 동일 크기를 가질 정도. 이들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ESV, 유콘 XL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 실버라도 1500 픽업트럭을 기초로 하지만 후륜의 일체형 차축과 판스프링을 제거하고 멀티링크 서스펜션과 코일 스프링을 장착해 고급 승용차 느낌을 내도록 했다. 엔진은 3.0리터 디젤을 시작으로 V8 5.3리터 가솔린과 V8 6.2리터 가솔린을 사용하며, 10단 변속기와 매칭된다.

쉐보레 카마로

포드 머스탱의 등장은 충격적이었고, 젊은 소비자들을 통해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는 경쟁사 GM에게 큰 충격을 줬던 사건으로 기록된다. GM도 빠르게 포니카 개발을 시작했고, 머스탱이 등장한지 2년 후 1966년에 카마로를 내놓게 된다. 이는 현재 기준으로도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신차를 내놓는 것에 해당한다. 머스탱과 함께 카마로도 큰 인기를 끌며 연간 20만 대 이상 판매되며 포니카 시장을 넓히는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의 카마로도 각지고 넓은 차체 디자인을 통해 포니카 혈통을 이어간다. 하지만 성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졌는데, 카마로 SS는 1억 원대 독일 스포츠카와 동등한 성능을 발휘하면서 가격은 절반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카마로 ZL1 1LE 모델은 650마력의 힘과 트랙 주행을 위한 경량화 및 서스펜션과 타이어 조합으로 서킷에서 슈퍼카급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쉐보레 콜벳

미국차가 힘만 세고 무식하기만 한 것이 아닌 ‘슈퍼카’로써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델 콜벳은 1953년 등장했다. 현재의 콜벳과는 다르게 그 시작은 평범한 컨버터블부터였다. 150마력을 발휘하는 6기통 엔진만 존재했으며, 코너링 성능 자체도 그렇게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세대를 지나 3세대 모델부터 고성능 스포츠카로써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콜벳은 미국을 대표하는 슈퍼카다. 8세대 모델로 변경되면서 엔진이 운전석 뒤에 위치하는 미드십 구조로 변경됐으며, 기본형 모델도 V8 6.2리터 엔진을 사용해 490마력을 발휘한다. 향후 슈퍼차저가 추가된 Z06 버전은 약 750~800마력을 발휘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전기모터가 추가된 최고 성능 모델은 조라(Zora)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며 1천 마력 전후의 막강한 성능을 뿜어낼 예정이다.

포드 F-시리즈

3시리즈 하면 BMW를 떠올리고 S-클래스 하면 메르세데스-벤츠를 떠올리는 것처럼 F-시리즈는 별도로 ‘포드’라는 제조사명을 언급하지 않아도 전 세계 사람들이 이해하는 유명 모델이다. 무려 44년 동안 판매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을 정도로 남다른 인기를 끌고 있다. F 시리즈는 1948년 첫 등장 당시 적재 중량에 따라 F-1부터 F-8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됐다. 이러한 명명법이 현재는 F-150부터 F-750으로 변경돼 사용되고 있다.

가장 최근의 F-150은 내연기관 모델과 전기 모델로 구분된다. 이중 F-150 라이트닝(F-150 Lightning)이라는 이름의 전기 픽업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약 97km/h)까지 4.4초 만에 도달할 정도로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스티어링 휠을 잡지 않고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핸즈프리 크루즈 컨트롤 기능도 탑재된다.

폭스바겐 골프

멕시코 만에서 부는 강한 바람인 걸프 스트림에서 따온 골프는 현재의 폭스바겐이 있을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비틀의 후속 모델이기도 한 골프는 1974년 출시 직후 유럽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다양한 파생모델을 내놓는다. 특히 1976년 등장한 골프 GTI는 ‘핫 해치(Hot Hatch)’라는 이름의 장르를 만들 정도로 자동차 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세했다.

현재의 골프는 첨단 기술까지 겸비한 해치백 역할을 한다. 가솔린, 디젤,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사용하며, 고성능 모델인 골프 R은 315마력과 42.9kgf·m의 토크를 4개 바퀴로 전달한다. 골프 R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7초 만에 도달할 수 있다. 최고 속도는 시속 250km/h에서 제한된다. 골프는 2019년 3월 3천5백만 대 이상이 생산되며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폭스바겐 트랜스포터

독특하고 귀여운 디자인으로 현재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폭스바겐의 트랜스포터. 1950년 폭스바겐이 2번째 신차로 내놓은 모델이며, 당시에는 타입 2(Type 2)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참고로 타입 1은 딱정벌레차 비틀(Beetle) 이었다. 트랜스포터는 엔진을 차량 후면에 배치하고 나머지를 탑승객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작은 차체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많은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트랜스포터는 현재 6세대까지 발전했다. 첫 등장 당시 귀여운 외관은 이제 볼 수 없지만 보다 안전하고 힘도 넉넉한 다목적 차량이 됐다. 현재 트랜스포는 9인승 미니밴, 6인승 밴, 패널밴 등 다양한 용도에 맞춰 판매 중이다. 1세대 이후 2020년 기준 전 세계 1300만 대 이상 생산됐다.

포드 머스탱

폴리머스 바라쿠다(Plymouth Baracuda)가 포니카를 탄생시킨 주요 모델이지만 포니카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모델은 포드 머스탱이다. 기존에 있던 차체와 엔진 등 많은 부품을 공유했지만 멋지고 잘 달렸으며 가격도 저렴했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무엇을 원했는지 정확히 꿰뚫어본 것. 1964년 등장 후 2세대 모델이 등장하기 전까지 100만 대 이상이 팔렸을 정도로 매우 큰 인기를 끌었다.

현재의 머스탱은 대중적인 2도어 스포츠카부터 760마력의 힘으로 서킷을 질주하는 쉘비 GT500까지 다양한 라인업이 존재한다. 독특한 부분은 ‘머스탱’이 한 모델이 아닌 브랜드로 독립된 것. 그 첫 시작이 머스탱 마하-E(Mustang Mach-E)다. 머스탱은 2018년 8월 1천만 대 생산 기록을 넘었다.

포르쉐 911

현재까지도 포르쉐의 중심 모델 역할을 하는 911은 1964년 등장했다. 원래 901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려 했지만 푸조와 상표권 문제로 인해 911로 바꿨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356 후속 모델로 등장한 911은 4명이 탑승할 수 있는 고성능 스포츠카를 표방했으며, 6기통 수평대향 엔진을 후륜축 뒤에 장착한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현재의 911은 초기 911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여전히 뒷좌석 시트를 갖추고 있으며, 엔진은 후륜축 뒤에 자리한다. 하지만 차체 크기를 키우고 엔진을 조금씩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섀시 설계의 최적화를 통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빠르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고성능 스포츠카로 발전해가고 있다.

피아트 500

피아트를 상징하는 500은 1936년 등장했다. 쉐보레 서버번의 원래 이름이 캐리얼 서버번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500의 원래 이름은 토폴리노(Topolino) 500 이었다. 토폴리노는 미키마우스를 이탈리아어로 표현한 것이다. 초창기 모델은 569cc 엔진을 사용해 약 13마력 정도를 발휘했다. 차체 무게도 550kg 수준에 불과해 최고 시속 85km까지 달릴 수 있었다. 이후 1957년 등장한 신형(누오바, Nuova) 500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귀여운 모습을 가진 모델이다.

현재의 500은 내연기관 모델은 물론 전기차로도 출시돼 유럽에서 판매 중이다. 트림에 따라 23.8kWh, 42kWh 용량의 배터리로 구분되며, 모터 출력과 주행거리도 각각 다르게 설정됐다. 레벨 2 수준의 운전자 보조 기능도 탑재되는 등 기능성도 갖췄다.

토요타 코롤라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자동차로 꼽히는 토요타 코롤라. 40초에 한대씩 팔리고 있을 정도로 자동차 시장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1966년 출시 당시 코롤라는 1.0리터 엔진이 주를 이룰 있을 때 1.1리터와 1.2리터 엔진을 사용해 보다 넉넉한 힘을 바탕으로 편안한 주행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세대를 바꿔가며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켰으며, 판매 국가에 맞춰 디자인과 사양 등을 달리한 현지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기도 했다.

현재의 코롤라는 세단, 해치백, 왜건 등 다양한 모델이 전 세계에 판매 중이다.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친환경성도 강조한다. 토요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코롤라도 브랜드화를 시켜 코롤라 SUV를 공개하기도 했다. 코롤라는 현재 약 4천4백만 대 이상이 판매됐다.

혼다 시빅

1972년 등장해 코롤라보다 늦게 시장에 진출한 시빅은 세계시장에서 잊히는 듯했지만 1973년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작고 효율적인 자동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서서히 인기가 높아졌다. 여기에 자동차 생산금지법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미국의 머스키법 배출가스 규제를 CVCC 엔진으로 유일하게 통과하면서 순식간에 미국에서 사랑받는 모델로 성장했다.

현재의 시빅은 11세대로 진화했다.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고 사람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데 초점을 맞췄다. 새로운 엔진과 개선된 CVT 변속기를 통해 성능과 연비도 높였으며, 새로운 차체 구조 덕분에 보다 견고한 구조 강성을 갖게 됐다. 시빅은 현재까지 약 2천4백만 대가 생산됐다.

현대 쏘나타

현대차의 중형 세단 스텔라의 고급 버전으로 1985년 첫 등장했다. 당시 이름은 ‘소나타’. 당시로는 큰 배기량인 2.0리터 엔진과 크루즈 컨트롤, 전동시트, 파워 스티어링 휠 등 고급 사양을 갖췄었다. ‘소나 타는 차’라는 놀림을 피하기 위해 출시 후 1년 만에 쏘나타로 바꾸기도 했다. 수출 전략형으로 개발한 2세대 쏘나타가 국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현재까지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현재의 쏘나타는 가족용 세단이지만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여기에 버튼식 변속기, 스마트폰 기반 디지털키, 원격 주차 보조 등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첨단 기능을 갖추고 있다. ‘택시’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택시 전용 모델을 출시하지 않기도 했다. 290마력을 발휘하는 N 라인을 추가하는 등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현대 아반떼

1990년 엘란트라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현대차의 신모델은 소형차와 중형차 중간에 위치하는 새로운 등급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다. 특히 현대차가 디자인 의뢰가 아닌 자체적으로 디자인해 완성한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포르쉐 911을 따라잡는 TV 광고도 잘 알려졌다. 이후부터 출시되는 모델은 아반떼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현재 7세대까지 발전했다.

현재의 아반떼는 젊은 디자인, 완성도 높은 주행감각, 효율성이 강조된 연비, 각종 편의 및 안전장비를 갖춰 국내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타 브랜드는 SUV에 집중하며 준중형 세단을 등한시한 반면 현대차는 아반떼에 많은 신경을 쓴 것을 인정받아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되기도 했다.

오토뷰 | 김선웅 기자 (startmotor@autoview.co.kr) 

자동차의 모든 것! 오토뷰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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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첫 차라는 자부심, 시대를 초월한 품질로 이어졌다

 

신기하다. 현대 EF 쏘나타와 대우 매그너스, 그리고 기아 옵티마는 오늘날 도로 위에서 자취를 감췄다. 삼성 SM5(출시 초기엔 브랜드명에 ‘르노’가 붙지 않았다)는 다르다. 여전히 말끔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킨다. 심지어 그 시절 국산차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뒷바퀴 펜더 부식도 전혀 없다. 어찌하여 흐르는 세월 속에 SM5의 시계만 멈춰있단 말인가.

마음가짐이 달랐던 까닭이다. 이 차는 삼성그룹의 오랜 염원이 낳은 첫차다. 1985년부터 시작한 삼성의 자동차 업계 진출의 꿈은 여러 차례 좌절을 반복했다. 하지만 1992년, 결국 정부로부터 사업 진출 허가를 받았다. 마침내 1995년 삼성자동차가 출범했다.

어렵게 일궈낸 기회였다. 세상의 기대도 컸다. 국내 굴지의 그룹이었기에 첫 작품일지라도 결코 미숙할 수 없었다. 답은 해외 기술이다. 삼성자동차는 메르세데스-벤츠·폭스바겐·토요타·혼다·닛산 등 여러 자동차 제조사와 접촉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시 자금 흐름이 위태로웠던 닛산과 기술제휴를 맺었다.

SM5를 살펴보는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아낌없는 투자가 이어졌다. 최신 설비를 가득 담은 자동차 공장을 부산 신호공단에 세웠다. 품질 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인다. 이미 완성된 닛산 차를 들여오고도 시험주행차를 120대 제작해, 충돌 시험을 20여 회 거쳤다. 2100억원에 달하는 연구개발비를 쏟아부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이 남긴 말 속에 그 의지가 담겨 있다. “차 한 대만 고장 나더라도 전 직원이 깜짝 놀랄 정도여야 합니다. 삼성자동차는 품질 불량을 부정보다 더 엄격한 죄악으로 규정해야 합니다.”

4기통 SM520. SM5 판매 대부분을 차지한 주력 모델이다

1998년 3월, 삼성의 첫차 SM5는 그렇게 탄생했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출시 한 달 전, 대한민국 자동차의 새로운 문화를 열겠다며 ‘대고객 선언문’을 발표했다. 출시 후엔 파워트레인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신차로 차를 바꿔주는 교환 제도를 실시했고, 당시 2년 · 3만km를 품질 보증했던 업계 평균을 뒤집고 3년 · 6만km 보증을 약속했다.

닛산의 기술, 삼성의 명성, 그리고 파격적인 보증 서비스가 어우러져 SM5는 ‘대박’났다. 1998년 11개 일간지 선정 히트 상품으로 이름을 올렸을 뿐 아니라, 1998년 6월부터 9월까지 쏘나타를 누르고 4개월 연속 중형 세단 판매 1위를 기록한다. 이후 외환위기를 맞아 삼성자동차가 휘청이며 판매가 주춤했지만 르노삼성자동차로 다시 출범한 뒤 2001년 누적 10만대, 2002년 누적 20만대, 2003년 누적 30만대를 판매하며 연이은 성공 신화를 쓴다. SM5는 삼성자동차의 성공적인 첫 발자국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삼성의 처음이자 마지막 자동차 SM5를 다시 만났다. 참 수수하다. 1998년 첫 등장 때도 그랬지만, 지금 다시 봐도 말끔한 분위기다. 교과서처럼 단정한 1990년대 앞바퀴굴림 중형 세단 비율과 휘황찬란한 ‘에지’하나 없는 부드러운 굴곡에 긴장감이라곤 전혀 없다. 보기 편한 이유이자,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비결이다.

준대형 세단 시장을 겨냥한 고급 세단답게 후드톱 엠블럼과 세로 줄무늬 넣은 크롬 그릴을 달았다

 

SM525V는 범퍼에 뒤 번호판을 붙여 차별화를 꾀했다 / 시승차는 2002년식이지만 2004년식 휠을 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우리가 알던 SM5보단 화사하다. 시승차는 2002년식 SM525V. 당시 시작 가격 기준 2485만원(오늘날 화폐가치 기준 가치가 3700만원에 달한다)을 호가하던 최상위 모델이다. 보닛 위에 삼성 엠블럼을 자랑스럽게 올렸고, 크롬 그릴이 번쩍인다. 쏘나타가 아닌 현대 그랜저 XG와 경쟁하던 고급 세단이다.

온갖 편의장비를 가득 담은 실내

‘딸깍’ 1990년대 차답게 가볍지만 기계적 느낌 물씬 풍기는 문짝을 열어 운전석에 앉았다. 눈높이가 높다. 늘씬한 옆 태에서 볼 수 있듯이 보닛이 납작 깔려 운전자 시야에 훤히 들어온다. 실내공간은 좁다. 팔 뻗으면 동반석 문짝 손잡이까지 열 수 있을 듯하다. 차체 너비로 자동차세를 매기는 일본차 뿌리의 흔적이다. 실제 제원상 너비도 1785mm(동시대 그랜저 XG 너비는 1825mm다)에 불과하다.

 

하이비전 계기판 / 뒷좌석 암레스트 리모컨 / 뒷좌석 공기청정기

그 좁은 공간에 삼성의 욕심은 가득 찼다. 손 닿는 곳곳이 푹신하다. 고개를 돌리면 기대치도 않은 편의장비가 눈에 들어온다. 시동만 걸어도 환한 조명을 비추는 하이비전 계기판부터 시작해, 스티어링휠 뒤편에 볼록 튀어나온 핸즈프리 마이크까지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더없이 호사스럽다. 앞좌석은 물론 뒷좌석까지 열선을 깔았으며, 뒷좌석 팔걸이엔 그랜저 XG 처럼 인포테인먼트 리모컨도 달아놨다. 심지어 뒤 유리창 아래엔 전용 공기청정기도 달렸다. 그 시절 삼성그룹 임원들이 만족스럽게 탔겠군!

세계 10대 엔진에 14번 이름을 올린 명기 VQ 엔진

차 키를 힘껏 돌려 엔진을 깨웠다. 역시 V6다. 처음엔 엔진회전수가 치솟는 듯하더니 금방 잔잔하게 진동이 가라앉는다. 23만km를 주행한 자동차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럽고 조용하다. 불현듯 “10만km 달린 차의 엔진 소리가 거의 새 차 소리와 같다면 믿으시겠습니까?”라던 SM5 인쇄 광고 문구가 떠올랐다.

V6 엔진의 중후한 회전질감 때문에 으레 묵직한 주행감각을 기대했건만, 반대다. 움직임은 가볍다. 아니, 아주 팡팡 튀어 나간다. SM5를 조율한 삼성 직원들은 이 차가 더욱 강력해 보이길 원했던 모양이다. 가속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스로틀을 활짝 열어 출력을 쏟아낸다. 부드럽게 출발하려면 가속 페달을 살살 달래며 밟아야 할 수준이다.

전반적인 주행감각도 매한가지다. 가벼운 옛날 차답게 노면 충격에 가볍게 흔들리고 스티어링휠 역시 ‘휙휙’ 돌아간다. 좋게 말하면 작은 차처럼 경쾌하고, 나쁘게 말하면 묵직한 맛이 부족하다. 큰 충격을 꿀꺽 삼키지만 자잘한 진동을 끊임없이 전하는 낭창낭창한 서스펜션 탓에 움직임이 조금 경박하다. 뒤쪽에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붙였던 동시대 경쟁자와 달리 토션빔 구조를 발전시킨 QT 서스펜션을 썼던 탓일까.

가벼운 차체에 맞물린 V6 2.5L 자연흡기 엔진. 예상대로 가속 페달을 밟으면 약 6000rpm까지 회전하는 속시원한 6기통 소리를 흩뿌린다. 덕분에 체감 가속도 더 매콤하다. SM525V는 최고출력 173마력, 최대토크 22.5kg·m 성능으로 1445kg 덩치를 내몬다. 시속 100km까지 가속 시간은 대략 10초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며, 제원상 최고속도는 시속 207km다.

다만 고속에서 소음은 다소 들이친다. 이는 SM5가 현역이던 시절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던 문제다. 그 시절 자동차답게 변속기가 4단에 그치는 만큼 시속 100km로 항속할 때 엔진 회전수도 다소 높다. 2200rpm을 유지한다. 그만큼 힘은 팔팔하지만, 소음이나 효율은 좋을 리 없다.

차주에 따르면 그간 누적 연비는 대략 1L에 8.5km다. 고속으로 항속 주행할 땐 1L에 10km를 조금 넘기며, 도심을 주행할 땐 1L에 5km 까지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먹성 좋은 V6 엔진과 동력 손실 큰 4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린 만큼 실제 효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물론 20년 차로 접어든 차령도 무시할 순 없다.

르노삼성 SM525V. 명불허전이다. 당시 신가교 도장 공법을 활용한 페인트는 여전히 반짝거리며, 아연도금 강판에 부식은 없었다. 세계 10대 엔진에 14번 이름을 올린 명기 VQ 엔진과 아이신 4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한 파워트레인 역시 쌩쌩하다. 20년, 23만km를 달려온 SM5의 시간은 여전히 2002년에 머물러 있었다.

 

SM5에 얽힌 시시콜콜 이야기

 

품질로 BMW를 이겼다

1997년, 아직 출시도 하지 않은 SM5가 미국 공인 자동차 테스트 기관 AMCI의 평가를 받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1개 평가 항목 중 8개 항목 1위를 거머쥐었다. 독일 명차 BMW 528i는 물론,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구가하던 혼다 어코드와 토요타 캠리까지 넘어섰다. 품질의 왕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쉬운 길이 있었다. 삼성자동차는 1994년 닛산이 폐쇄한 공장의 조립 라인을 그대로 들여오며 손쉽게 공장을 지어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은 구식 공장 설비로 첫 발걸음을 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닛산 조립 라인 도입을 백지화하고 1995년 부산에 새 공장을 지어 올린다.

삼성이 만든 처음이자 마지막 자동차

SM5는 1995년 출범한 삼성자동차가 만든 첫차. 그러나 최신 공장과 SM5에 들어간 고급 부품이 발목을 잡고, 외환위기까지 겹치며 1999년 6월 삼성자동차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1998년 신차 출시 후 1년 만에 삼성자동차의 역사는 끝났다. 그 뒤는 2000년 출범하는 르노삼성자동차가 잇는다.

 윤지수

사진 이영석, 르노삼성자동차

자동차 전문 매체 <탑기어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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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한 성능도, 뒷바퀴 굴리는 묘미도 없지만 상관없다. 이 차는 '베이비 페라리'란 별명이 아깝지 않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스포츠카가 나오는구나.’ 가슴이 뛰었다. V6 엔진 얹은 국산 스포츠카라니, 최고시속 222km로 달릴 수 있다니! TV 티저 광고 속 투스카니는 어린 자동차 마니아의 가슴을 두드리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2001년 9월, 마침내 투스카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가슴이 차디차게 식어버렸다. 바보처럼 큼직한 눈망울(헤드램프)이 한없이 순해 보였으니까. 빠르면 뭐 해? 어항 속에서 뻐끔거리게 생겼는데.

 

아이러니다. 가장 못생겨 보이던 초대 모델이 지금은 가장 예뻐 보인다

그러나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멍청한 표정이 보면 볼수록 정이 갔다. 개성도 또렷했다. 세계 시장에 내놓기에 부끄럽지 않았다. 현대차의 노림수다. 투스카니 개발 프로젝트 ‘GK’를 첫 가동하던 1999년 6월, 현대차는 미쓰비시 그늘을 벗어나 독자 개발에 열 올리고 있었다. 플랫폼부터 직접 만든 EF 쏘나타, 그랜저 XG, 그리고 아반떼 XD를 연달아 내놨다. 투스카니는 그런 현대차의 행보를 널릴 알릴 임무를 띤 스포츠카다. 요즘 말로 ‘헤일로카’다. 조금 붕어 같아 보이긴 해도 투스카니 만의 스타일로 빚어냈다.

성공이었다. 뻐끔거리는 얼굴은 쿠페 스타일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외모뿐만은 아니다. 작은 차체에 올린 V6 2.7L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 조합은 스포츠카라고 부르기에 손색없는 성능을 뽐냈다. 괜히 영국 <탑기어> TV쇼에서 투스카니를 ‘베이비 페라리’라고 불렀겠는가. 우리나라에선 스포츠카 문화를 꽃피웠고, 해외에선 저렴한 ‘펀카’로 인기를 끌며 현대차 이미지를 견인했다. 2008년 단종까지 국내외 누적 판매고는 29만6882대. 이중 91.1%가 모두 해외 판매다. 투스카니는 헤일로카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투스카니 전용 엠블럼을 달고 스포츠카다운 디테일을 기교를 담았다

어느덧 등장 후 20년이 지난 오늘날, 이제는 올드카로 변모한 투스카니를 직접 마주했다. 세월이 무색하다. 높이 133cm에 불과한 차체는 여전히 날렵하다. 길쭉한 보닛과 아찔하게 누운 쿠페 윤곽까지. 세월이 지나도 스포츠카는 스포츠카다. 눈으로만 보면 현대 벨로스터 N보다 훨씬 빨라 보인다. 국산차 최초로 17인치 휠을 달았던 그때는 얼마나 강렬했을까.

 

무게가 단 7.5kg에 불과한 17인치 단조 휠 / 보닛 안쪽이 파란색이다. 놀랍게도 출고 색깔은 은색이라고

시승차는 2001년식 초기형 투스카니 엘리사 수동. 음? 그때 그 모양이 아니라고? 맞다. 이 차는 20년 동안 무려 13번 주인을 바꾸며 수많은 개조를 거쳤다. 앞모습은 2004년 첫 부분변경 거쳤을 때의 모습, 뒷모습은 2006년 두 번째 부분변경 때의 모습이다. 색깔도 그렇다. 트렁크 안쪽은 은색인데, 엔진룸 안쪽은 파란색이고, 바깥엔 흰색 페인트를 둘렀다. 젊은이들의 스포츠카로 달려온 20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었다. 그래도 중기형에 들어간 17인치 경량 단조 휠까지 신은 모습을 보니 주인들의 애정을 듬뿍 받은 모양이다. 무게가 단 7.5kg에 불과한 무척 귀한 휠이다.

 

높이가 납작한 운전석 / 레카로 시트로 유명한 카이퍼와 협업으로 만들었다는 버킷시트

‘진짜 낮네!’ 운전석에 앉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스티어링휠 잡고 앉은 자세는 시트 높이가 낮고 보닛도 저만치 뻗어 있어 뒷바퀴굴림 본격 스포츠카 부럽지 않다. 엉덩이와 허리를 바짝 죄는 버킷 시트와 깃발처럼 문짝에 뿌리내린 사이드미러 역시 마찬가지. 레카로 시트로 유명한 카이퍼와 협업으로 만들었다는 버킷시트는 모양도, 착좌감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배기 튜닝을 해놓아 소리가 저음으로 웅웅거린다

시동을 걸자, V6 엔진이 우렁차게 기지개를 켠다. 투스카니 2.7L 델타 엔진 배기음은 원래 좋기로 유명했는데, 시승차는 배기 튜닝을 해놓아 소리가 더 웅장하다. 낮은 rpm에서 저음으로 ‘웅웅’거리니, 괜히 감성 마력이 차오른다. 개인적으론 6기통 엔진의 시원한 음색을 들려주는 순정 배기 소리가 더 낫지만.

1단 기어를 집어넣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딴딴하다. 역시 튜닝 때문이다. 원래 투스카니 엘리사는 장거리 여행이 가능한 GT 성격이 짙었다. 시승차는 독일 튜닝 업체 ‘아이박’의 다운스프링과 순정 댐퍼(독일 삭스와 함께 개발한 댐퍼다)를 조합했다. 덕분에 순정보다 하체가 잔뜩 긴장을 머금었다. 마치 경주차처럼 노면 충격을 고스란히 전한다. 스티어링휠 잡은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간다.

 

변속기를 조작하는 감각이 구형 SLR 카메라 셔터처럼 기계적이고 예스럽다

변속기도 그렇다. 옛날 트럭 변속기처럼 움직임에 무거운 저항이 걸리는데, 레버 이동 거리는 또 짧다. 진짜 경주차 변속기 같다. 클러치를 힘껏 눌러 묵직한 시프트레버를 철컥철컥 옮기는 감각이 구형 SLR 카메라 셔터처럼 기계적이고 예스럽다. 참고로 오늘날 닛산 자회사로 변모한 일본 아이치기기공업에서 납품받은 변속기다.

 

빠르다. 사실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1.3t 덩치에 최고출력 175마력은 충분하다. 더욱이 빠른 가속에 집중해 기어비를 촘촘히 나눈 변속기까지 맞물려 가속이 제법 매콤하다. 자연흡기 6기통 엔진의 고회전 소리가 귀를 파고들기 시작하면 기분만큼은 이미 고성능 스포츠카다. 투스카니는 제원상 시속 100km까지 8.5초 만에 가속하고, 최고시속 220km로 달릴 수 있다.

예상외로 고속 안정감도 좋다. 그럴만하다. 투스카니 개발팀은 당시 ‘차체 강성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보기에만 좋았던 티뷰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였다. 아반떼 XD 플랫폼을 밑바탕 삼았지만, 우물 정(井) 모양 서브프레임과 스트럿바(서스펜션 마운트 사이를 잇는 뼈대)를 더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인 결과, 비틀림 강성이 2만3942Nm/deg에 달한다. 최신 신차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치다. 아니, 괜히 베이비 페라리가 아니라니깐.

코너에서도 마찬가지다. 납작한 무게 중심과 단단한 튜닝 스프링, 탄탄한 차체 강성이 어우러져 든든하게 쏠림을 억제하며 코너를 돌아나간다.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타이어를 달고 출고했던 처음엔 얼마나 빠르게 달릴 수 있었을까. 잠깐, 너무 좋은 얘기만 했나? 튜닝 스프링 승차감은 아주 아주 별로였다. 노면 소음도 시끄럽다. 누군가 이 차로 장거리를 달리라고 한다면 차라리 버스를 타겠다. GT는 무슨.

 

현대 투스카니. 갑자기 구하기도 어려운 6기통 투스카니를 시승한 이유는 별것 없다. 그리워서다. 저렴한 가격에 운전 재미와 스포츠카 감각을 만끽할 수 있는 차. 투스카니 후속이라 불리는 벨로스터 N은 엄청나게 빠르고 재밌지만, 그래도 핫해치다. 정통 스포츠카를 표방했던 투스카니만의 맛과 V6 엔진 감성은 어디에도 없다. 직접 타보니 더더욱 그렇다. 다시 한번 이토록 저렴한 스포츠카가 나온다면 꼭 사고 말 테다. 나만 그런가?

 윤지수

사진 이영석

 


투스카니에 얽힌 시시콜콜 이야기

 

뉘르부르크링 24시에서 올린 쾌거

때는 바야흐로 2007년 6월, 뉘르부르크링 24시 레이스에 투스카니가 참전했다. 느려터진 투스카니가 얼마나 빨랐겠냐고 놀라지 마시라 총 99바퀴를 달려 SP 4-5 클래스(2000cc 이상 3000cc 이하) 2위, 전체 클래스 13위를 기록했다. 랩타임 최고기록은 9분 51초 367이다.

 

값비싼 재료를 섞었다

오디오 시스템이 놀랍다. 미국 하만카돈 트래픽 프로 헤드 유닛과 JBL 스피커를 조합했다. 포르쉐 911에 들어가던 바로 그 유닛이다! 그뿐인가?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타이어, 독일 삭스와 협업한 전용 서스펜션, 대응 토크가 높은 아이치기기공업제 변속기가 달렸다.

 

헛바람 뺐어요

투스카니는 처음 나왔을 때 언론은 ‘디자인이 단순하다’고 평했다. 전작이었던 티뷰론이 우락부락 근육질이었던 까닭이다. 왜 이토록 말끔한 스타일로 빚었을까? 투스카니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티뷰론은 브랜드 첫 스포츠카라 시각적 허풍이 있었다. 투스카니는 그런 허세를 모두 없앴다.”

자동차 전문 매체 <탑기어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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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슈퍼카를 드림카로 꿈꾸게 된다. 슈퍼카는 제조사가 가진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만들어지는 그야말로 '궁극의 자동차'라고 할 수 있다. 슈퍼카는 단순히 잘 달리게 만드는 기술력 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전통과 미래를 함께 담아 만들어지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히다.

자동차 히스토리갤러리 이동

\특히 20세기 말은 전 세계 슈퍼카 경쟁이 한창 불꽃을 튀기던 시기였다. 이 당시 만들어진 자동차들은 궁극의 기술력과 독특한 미학, 그리고 21세기의 슈퍼카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을 막강한 성능으로 무장했으며, 지금도 자동차의 역사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20세기를 빛낸, 최고의 슈퍼카들을 모았다.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는 람보르기니 최초로 320km/h의 벽을 돌파한 슈퍼카다. 이 차는 1960년대 미우라로부터 시작해 1980년대의 쿤타치의 뒤를 잇는, 람보르기니 슈퍼카 5대(代) 중 3대째에 해당하는 모델로서 등장한 1990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카로 통했다.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는 비스커스 커플링 방식의 상시사륜구동 방식과 미드십 후륜구동 방식의 두 가지 구동 방식 중 하나를 사용하며, 550마력의 강력한  6.0리터 V12 엔진에 5단 수동변속기를 사용한다.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h까지 3.8초 이내에 도달하는 성능을 내며, 뛰어난 성능과 람보르기니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한 고유의 외관 디자인 등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가수 서태지氏의 차로 알려지기도 했다.

포르쉐 959
포르쉐가 만들어 낸 희대의 괴물, '959'는 WRC(World Rally Championship)의 대표적인 흑역사로 일컬어지는 '그룹B'에 출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룹B는 지나치게 느슨한 규정으로 인해 안전사고가 잇달아 발생, 결국 WRC의 흑역사로 막을 내리고 말았지만, 이로 인해 불세출의 슈퍼카들이 줄줄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 중 최강으로 일컬어졌던 차가 바로 포르쉐 959다. 포르쉐 959는 198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등장한 '그룹B 스터디(Group B Study)'라는 이름의 컨셉트카를 통해 그 윤곽을 드러냈다. 이 차는 기본적인 설계는 포르쉐 911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지만 그 내용물은 기존의 911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들로 한가득 채워 놓았다.

959는 당시 포르쉐가 투입할 수 있었던 최신예 기술들이 아낌 없이 투입되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상시사륜구동 시스템이다. 다판 클러치 구조의 센터 디퍼렌셜을 적용하여 전/후륜에 각각 구동력을 일정 수준 편향 배분할 수 있도록 설계한 이 사륜구동 시스템은 959의 막강한 성능을 뒷받침했으며, 오늘날 포르쉐의 우수한 사륜구동 시스템 설계 경험의 훌륭한 밑바탕이 되었다. 심장은 2.8리터 배기량의 수평대향 6기통 엔진으로, 상기했듯이 시퀀셜 방식의 트윈터보차저를 탑재, 2.8리터의 배기량으로 450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을 낼 수 있었으며, 실린더 블록은 공랭식, 헤드는 수랭식으로 설계하여 냉각효율을 살렸다.

페라리 F40
페라리 F40은 그룹 B에 출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페라리 288GTO의 후계자이자, 일생을 모터스포츠에 투신한 페라리의 창업주 엔초 페라리(Enzo Ferrari)의 유작이다. 1987년 등장한 페라리 F40은 페라리의 창사 4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슈퍼카로, 페라리 역사 상 최고의 슈퍼카로 항상 거론되며, 괴물같은 퍼포먼스를 자랑하던 포르쉐 959를 눌렀다고 평가되는, 페라리 역사에 가히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페라리 F40은 288GTO에 사용했던 티포 120(Tipo 120) 엔진을 개량한 티포 120A 엔진을 탑재했다. 이 엔진은 478마력/7,000rpm의 최고출력과 58.8kg.m/4,0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그리고 여기에 288GTO와 마찬가지로, 308/328의 섀시를 토대로 차체구조를 설계하여, 가볍고 빠른 발놀림을 가진, 진정한 의미의 스포츠카를 구현해냈다. 페라리 F40은 단 4초 안에 0-100km/h 가속을 해치울 수 있었고, 최고속도는 포르쉐 959보다 빠른 322km/h를 기록했다.

재규어 XJ220
오늘날 재규어는 세단 차종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재규어의 역사 속에는 당대 최고수준의 성능을 자랑한 스포츠카들이 있었다. 재규어자동차는 그들이 재규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절부터 '아름다운 고성능'을 추구해 왔다. 재규어는 유려한 스타일과 우수한 성능을 갖춘 스포츠카였던 'XK' 시리즈, 르망을 호령한 C-타입과 D-타입의 피를 이어 받은 세기의 걸작 E-타입, 그리고 1990년대의 다크호스 'XJ220'이 있다.

재규어 XJ220은 1990년대에 XK120의 정신을 되살린 수퍼카로 기획되었다. 차명은 'XK120'에서 비롯된 작명법을 따른 것으로, 무려 220mph(약 354km/h)의 속도를 목표로 했다. 이는 당시를 주릅 잡았던 페라리 F40과 포르쉐 959보다 빠른 속도였다. 엔진은 초기에는 530마력의 6.2리터 V12 엔진과 상시 4륜구동계를 실으려 했으나, 차체 및 환경 문제에 발목이 잡혀, 3.5리터 V6 터보 엔진을 사용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새로이 적용한 엔진이 제원 상 출력과 토크 수치가 당초 계획했던 6.2리터 V12 엔진에 비해 조금 더 높았는데도 불구하고, 원래 목표인 220mph 도달에는 실패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같은 시기, 세계에서 가장 빨랐던 '386km/h'의 최고속도를 자랑한, '멕라렌 F1'이 등장하면서 XJ220은 수퍼카 시장에서 별 다른 이목을 끌지 못했다.

맥라렌 F1
양산차 최초의 400km/h의 벽을 돌파한 부가티 베이론의 등장 이전까지, 세계 슈퍼카의 '지존'으로 통하는 차는 페라리도 아니요, 람보르기니도 아닌, 영국 맥라렌(McLaren)의 '맥라렌 F1'이었다. 맥라렌 F1은 등장 당시 371km/h의 최고속도로 자동차 시장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으며, 이른 바 '20세기 최고의 슈퍼카'에 등극했다. 맥라렌 F1은 오늘날 맥라렌 오토모티브의 기원을 이룬다.

맥라렌 F1은 '경주용 자동차를 일반도로로 옮긴다'는 발상으로 개발되었다. 따라서 경주용 자동차에 준하는 섀시 설계와 더불어, 운전석의 구조 또한, 경주용 자동차와 같이 중앙에 배치하고 그 양쪽에 보조석을 1개씩 배치한 1+2 좌석구조가 특징이다. 여기에 BMW M디비전에서 공급한 627마력/7,400rpm의 6.0리터 S70 V12엔진으로 무장, 막강한 성능을 자랑했다. 맥라렌 F1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내는 자연흡배기 양산차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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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F40의 등장 이후로 매 10년 주기로 출시되는 페라리의 하이퍼카 시리즈는 전 세계의 자동차 애호가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으로 통하고 있다.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성장해 온 페라리의 정수만을 모아서 만들어진 이 차들은 시선을 사로잡는 이탈리안 디자인과 당대 최고의 성능으로 페라리를 꿈의 자동차로 만들어 나갔다.

페라리의 정수와 최신 기술력을 응집한 하이퍼카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인 1980년대, 세계 랠리 선수권 대회(World Rally Championship, 이하 WRC)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당시 페라리는 포뮬러 1, 르망 24시 등의 굵직한 로드 레이스들 뿐만 아니라 랠리 판에도 발을 들이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당시 페라리는 WRC의 신설 클래스인 '그룹 B'에 참가하고자 했다. 그룹B는 1982년도부터 시험적으로 운영되다가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그룹 B는 공차중량 1톤 미만의 차체에 500마력의 최고출력 제한, 그리고 당대  톱 클래스에 해당하는 그룹4의 절반에 불과한, 단 200대의 연간 생산 대수로 호몰로게이션을 취득할 수 있는 파격적인 규정을 내걸었다. 여기에 공차중량 1톤 미만만 충족한다면,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개조가 가능했다.

당시 WRC 주최측은 그룹 B의 더욱 느슨한 규정을 통해 더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연출하고 더 많은 제조사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했다. 하지만 WRC의 그룹 B는 WRC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들춰내고 싶지 않은, 이른 바 '흑역사'로 남아 있다. 그룹 B에 참가하는 경주차들은 WRC의 비좁은 코스를 달리기에 지나치게 크고 강력하여 "빠른 코너에서는 눈의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고 할 정도로 당시의 레이서들은 그룹 B를 악몽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1986년, 두 차례의 참혹한 인명사고를 겪고 난 이후, 그룹 B는 결국 폐지 수순을 밟기에 이른다. 

이렇게 WRC판에서 벌어진 '광기'의 상징으로 남은 그룹 B지만, 그룹 B로 인해 만들어진 자동차들은 지금도 엄청난 가치를 인정 받고 있으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페라리 하이퍼카 역사의 스타트를 끊은 차가 바로 '288GTO'다. 

288GTO
페라리 288GTO는 1984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 등장한 페라리의 슈퍼카다. 288GTO는 동사의 미드십 스포츠카인 308GTB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본 바탕이 되는 308 GTB와는 상당한 부분을 재설계했다. 리어 미드십 레이아웃은 그대로 유지했으나 휠베이스를 늘리고, 차폭을 넓혔으며, 차체도 다소 길어졌다. 비포장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려나가야만 하는 랠리의 주행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또한, 괴물 같은 스펙을 자랑하던 그룹B의 경쟁자들과 경쟁하기 위해, 2.8리터의 V8 터보 엔진을 탑재하고 있었다. 400마력/7,000rpm의 최고출력과 50.5kg.m/3,800rpm에 달하는 최대토크를 뿜어내는 이 엔진과 1,160kg에 불과한 몸무게를 가진 288GTO는 0-100klm/h 가속을 단 5초 안에 끝낼 수 있다. 여기에 페라리 로드카 최초로 최고속도 300km/h의 벽을 돌파하면서 페라리 하이퍼카의 역사를 시작했다.

F40
288GTO의 뒤를 이은 차는 페라리의 창업주이자, 일생을 모터스포츠에 투신한 엔초 페라리(Enzo Ferrari)의 유작, F40이다. 1987년 등장한 페라리 F40은 페라리의 창사 4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슈퍼카로, 페라리 역사 상 최고의 슈퍼카로 항상 거론되며, 괴물같은 퍼포먼스를 자랑하던 포르쉐 959를 눌렀다고 평가되는, 페라리 역사에 가히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페라리 F40은 288GTO에 사용했던 티포 120(Tipo 120) 엔진을 개량한 티포 120A 엔진을 탑재했다. 이 엔진은 478마력/7,000rpm의 최고출력과 58.8kg.m/4,0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그리고 여기에 288GTO와 마찬가지로, 308/328의 섀시를 토대로 차체구조를 설계하여, 가볍고 빠른 발놀림을 가진, 진정한 의미의 스포츠카를 구현해냈다. 페라리 F40은 단 4초 안에 0-100km/h 가속을 해치울 수 있었고, 최고속도는 포르쉐 959보다 빠른 322km/h를 기록했다.

F50
1995년, 페라리 F40의 뒤를 이은 F50은 당시 물경 391km/h의 최고속도를 기록한 '괴물' 하이퍼카, '맥라렌 F1'을 이기기 위해 만들어진 차다. 이 차에는 페라리가 그동안 F1 등,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쌓아 올린 경험과 기술력을 총동원되었으며, 여러모로 페라리의 로드카 역사에서 새로운 시도가 많이 나타나는 모델이다.

페라리 F50은 심장부터 달랐다. 페라리의 F1 경주차에 사용된 3.5리터 V12엔진을 기반으로 한 엔진을 적용한 것이다. 물론 수명 확보를 위해 배기량은 4.7리터로 올리는 한 편, 최고 회전수를 8,500rpm으로 줄이는 등의 개량을 거친 이 엔진은 520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을 자랑했다. 게다가 과급 엔진도 아닌, 자연흡기 엔진으로 배기량 1리터 당 100마력을 훌쩍 상회하는 초고출력 엔진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최고속도는 325km/h에 그쳐, 맥라렌 F1과의 속도경쟁에서는 밀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F50은 카본 모노코크 차체구조 등, 현대적인 하이퍼카의 방법론을 이루는 신기술들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모델이다.

엔초 페라리
F50의 뒤를 이어 나타난 페라리 최강의 하이퍼카는 바로, 창업주의 이름을 딴 엔초 페라리다.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개발된 이 놀라운 슈퍼카에는 F50과 마찬가지로, F1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신기술들을 대거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F1 경주차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관 디자인, 버터플라이 도어 등과 같은 외관적 특징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또한 엔초 페라리는 그동안의 페라리 로드카들 중에서 전자장비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도 특징이다.

엔초 페라리의 심장은 660마력의 최고출력을 자랑하는 V12 6.0리터 엔진이다. F50과 마찬가지로 자연흡기만으로 배기량 1리터 당 110마력의 출력을 내는 고성능 엔진이다. 여기에 F1 무대에서 습득한 에어로 다이내믹스와 카본파이버 차체, 가변식 리어스포일러 등과 같은 첨단 장비를 통해 F50의 두배에 달하는 다운포스를 생성 가능하여 완벽에 가까운 조종성을 갖춘 슈퍼카로서 평가 받는다. 엔초 페라리는 등장한 지 20년이 다 돼가는 오늘날에도 F40과 함께, 페라리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슈퍼카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라 페라리
엔초 페라리의 뒤를 잇는 모델로 태어난 라페라리는 페라리 슈퍼카 계보가 본격적인 '하이퍼카'로 넘어가는 이정표를 제공했다. FF와 F12에 사용되었던 V12 6.3리터 엔진을 극한으로 끌어내어 800마력의 힘을 낸다. 엔진 출력만 봐도 라페라리는 대단한 모델이다. 그러나 F1 기술을 집약한 엔초 페라리의 후속 모델답게 특별한 요소가 있다.

라페라리에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적용된다. 전기 모터의 힘을 받아 라페라리는 시스템 합산 출력이 1000마력에 가까운 963마력을 낸다. 최고시속은 350km를 상회하며 하이-커스(HY-KERS) 시스템을 더했다. KERS (Kinetic Energy Recovery Systems)란 운동에너지를 저장하였다가 힘이 필요한 시점에 추가 가속 에너지를 사용하는 장치로, F1 경주차에 적용된 기술이다. 현재까지 라페라리는 총 500대가 만들어졌으며, 본래는 499대까지 만들기로 했지만, 2016년도에 발생한 이탈리아 중부지역의 지진 피해를 돕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1대를 더 제작했다. 아울러 페라리 창사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픈톱 모델인 아페르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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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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