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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19 1990~현재의 명차들
1960년대 F1 참가를 통해 쌓은 혼다의 기술력은 25년 뒤 일본의 첫 정통 스포츠카 NSX로 빛을 발했다. 자동차 개발의 귀재 밥 러츠와 디자이너 톰 게일이 만들어낸 다지 바이퍼는 시보레 코베트를 앞지르는 카리스마로 명성을 높였다. 아부스와 ASF 등 90년대 초의 실험을 거쳐 94년 등장한 아우디 A8은 알루미늄 프레임을 양산차에 쓴 기념비적인 차다

혼다 NSX (1990~현재)
Honda NSX
혼다를 얘기할 때는 ‘기술’과 ‘혼다 소이치로’를 빼놓을 수 없다. 대규모 메이커가 아닌 혼다가 오늘날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주요 자동차 메이커로 자리잡은 원동력은 기술을 중요시했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의 집념과 그의 뜻을 정확하게 실현해낸 뛰어난 기술력이라 할 수 있다.

모터사이클 메이커로 인기를 얻고 1962년 자동차 생산에 뛰어든 혼다는 도쿄 모터쇼에 내놓은 S500과 경스포츠카 S360 외에 제대로 된 양산차조차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F1에 도전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결정이었지만 혼다 소이치로 회장의 고집과 엔지니어들의 도전정신은 64년 독일 그랑프리 출전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 첫해 3번의 레이스에서 모두 리타이어한 혼다는 이듬해 최종전인 멕시코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다음해인 66년에도 한 차례 우승을 거머쥐면서 F1의 강자로 떠오른다. 하지만 68년 테스트 주행 도중 프랑스인 드라이버 조 슐레세르가 숨지는 사고를 겪은 뒤 F1 참가 중단을 선언한다.

이후 혼다는 F1에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72년 7월 스테디셀러 시빅을 선보였고 76년에는 브랜드 이미지를 한 단계 끌어올린 어코드를 내놓았다. 시빅이 데뷔한 70년대 초, 브라밤 팀의 F2 미캐닉으로 활동하던 가와모토 노부히코가 혼다 기술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성능 스포츠카 개발을 위한 포석이었다.

혼다의 목표는 세계 최고의 GT카를 뛰어넘는 성능에 최고의 스타일링을 갖춘 스포츠카였다. 개발을 시작한 지 6년 반이 지나면서 혼다의 첫 정통 스포츠카 NSX(New Sports Experimental)의 밑그림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혼다 엔지니어들은 당시 GT카에 일반적으로 쓰이던 V8이나 V12 엔진 대신 가벼운 V6 3.0X VTEC 280마력 엔진을 미드십에 얹고 알루미늄 차체로 무게를 줄였다. 혼다의 기술이 고스란히 담긴 일본 최초의 본격 스포츠카 NSX는 89년 미국 시카고 오토쇼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키트 주행을 거쳐 섀시를 보강하고 일본 스즈카 서키트에서 F1 명드라이버 아이르톤 세나가 시험주행을 마친 NSX는 개발의 주역 가와모토가 혼다 사장에 취임한 90년 여름 시판에 들어갔다. 최고시속 270km, 0→시속 100km 가속 5.9초의 성능은 페라리 348이나 포르쉐 911 카레라 2 수준이었지만 승용차 감각과 F1 기술을 접목한 덕분에 운전이 훨씬 쉬웠다. 트랜스미션은 수동 5단과 자동 4단. 이후 혼다는 92년 11월 한정생산 모델인 NSX-R을 선보였고 지난해 도쿄모터쇼에서는 헤드램프 디자인을 바꾸는 등 7년만에 마이너 체인지를 거친 NSX-R을 발표해 다시 한번 눈길을 모았다.

다지 바이퍼 8.0 V10 RT (1992~현재)
Dodge Viper 8.0 V10 RT

미국 양산 스포츠카의 시발점은 1950년대 중반 태어난 시보레 코베트라 할 수 있다. 코베트는 미국인들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스포츠카였지만 끝없이 쏟아지는 미국인들의 사랑을 감당하느라 그만 진화가 느린 차가 되어버렸다. 코베트는 80년대 말을 지나면서 비로소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코베트 ZR-1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스포츠카였고 미국 2세대 스포츠카 붐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ZR-1을 뛰어넘는 새로운 미국 스포츠카가 등장한 것도 이 즈음이다.

88년 당시 크라이슬러 회장 리 아이아코카는 회사를 다시 세우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미니밴과 정통 세단의 판매에 열을 올리는 한편 새로운 모델의 개발에 몰두했다. 하지만 새 모델의 개발에는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려 3년의 세월이 지루하게 지나갔다. 공백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 차가 필요했다. 당시 크라이슬러 사장 밥 러츠와 디자인 담당 부사장 톰 게일은 이 프로젝트 개발의 적임자였다. 유럽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유럽 스포츠카 감각을 익힌 밥 러츠와 미국에서만 일했던 톰 게일의 만남은 가장 미국적이면서도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스포츠카 탄생의 청신호였다.

개발팀은 우선 대형 픽업에 쓰기 위해 개발 중이던 V10 8.0X 엔진을 새로운 핫로드에 쓰기로 결정했다. 개발 과정에서 영감을 주었던 쉘비 코브라의 별명을 따 차 이름을 바이퍼(Viper, 독사)로 정했다. 바이퍼 프로토타입이 89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처음 공개되었을 때까지도 크라이슬러는 이 차의 양산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터쇼 기간에 바이퍼를 본 수많은 사람들이 양산을 원했고 이에 따라 크라이슬러는 생산채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30명으로 구성되었던 바이퍼 개발팀은 85명으로 보강되었다. 또 당시 크라이슬러 산하에 있던 람보르기니 기술진은 무게 325kg의 경합금 엔진을 만들어 바이퍼에 얹었다. 프로토타입 발표 3년 뒤, 밥 러츠 사장은 바이퍼 양산 1호차를 직접 몰고 나타났다.

바이퍼는 최고출력 400마력, 최대토크 62.2kg·m의 엄청난 엔진을 얹고 폭 2m에 가까운 거구로 최고시속 265km, 0→시속 100km 가속 4.5초의 놀라운 성능을 자랑했다. 도어 아래쪽 겉으로 드러나 있어 화상의 위험이 있는 사이드 머플러 커버와 안쪽에만 달려있는 도어 손잡이, 옷가방을 넣기도 비좁은 트렁크룸 등 불편한 점이 수두룩했지만 전형적인 미국 ‘이그조틱카’의 멋을 지닌 바이퍼는 모든 단점을 매력으로 만들어버렸다. 20세기 최고의 명차 100대에 바이퍼가 포함된 이유는 ‘카리스마’ 단 한 가지였다.

아우디 A8 (1994~현재)
Audi A8

1991년 도쿄 모터쇼는 6주 먼저 열렸던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대부분의 주요 모델들이 공개되는 바람에 ‘재탕 모터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아우디는 재미없는 모터쇼가 될 뻔한 도쿄 모터쇼의 주인공이 될 새 모델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터쇼 개막과 동시에 예고도 없이 등장한 이 차는 바로 보디 전체를 알루미늄으로 만든 수퍼카 아부스였다. 앞뒤를 구별할 수 없는 파격적인 스타일에 공기저항계수 0.29의 유선형 디자인도 놀라웠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도장하지 않은 채 반짝이는 알루미늄 보디였다. 차체 무게 1천250kg에 불과한 아부스는 4WD 방식과 프로콘텐 시스템 등 아우디 독자 기술의 결정체였다. 프로콘텐 시스템은 아우디가 86년 인기모델 아우디 80을 통해 처음 선보였던 첨단 안전장치로, 정면충돌 때 엔진이 밀려들어오면 스티어링 휠은 대시보드 쪽으로 밀착되고 안전벨트는 조여져 운전자의 가슴을 보호한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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