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자동차여행' 카테고리의 글 목록 (3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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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미는 생활에 활력을 준다. 이번 주말에는 활력을 찾아 떠나보자. 그 곳에 근사한 볼거리까지 기다린다면 무엇을 더 바라랴.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는 조선백자의 산실로 유명하다. 영조-정조-순조-헌종-철종-고종 대에 이르는 약 130년간 아름답고 부드러운 우윳빛 백색(乳白色) 백자를 제작했던 유서깊은 곳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분원리하면‘붕어찜마을’로 통할 만큼 분원리의 붕어찜이 유명해졌다.

그‘언제부터인가’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에 팔당댐이 들어선 직후인 1970년대 중반이다. 댐 건설 후 주변에 낚시꾼들이 모여들자 이들을 상대로 식당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영숙(68) 씨도 그들 틈에 끼어 라면 따위를 끓여주던 작은 간이식당을 열었다.

당시 팔당호 주변에서 잡히던 물고기들은 잉어, 메기, 뱀장어, 모래무지, 빠가사리 등이 많았다. 대부분 식당에서는 이를 이용한 매운탕이나 구이를 선보였다. 대접받는 매운탕 재료였던 잉어나 쏘가리와 달리, 다른 물고기를 잡다 함께 그물에 걸린 붕어는 천덕꾸러기였다. 붕어가 그냥 버려지거나 가축의 먹이로 쓰이는 걸 본 이영숙 씨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셨던 붕어찜을 떠올렸다.

그런데 막상 요리를 해보니 붕어 특유의 냄새와 비린내를 좀체 없앨 수 없었다. 서울의 요리학원과 남산도서관을 찾아다니기 수 차례, 마침내 붕어 특유의 냄새와 비린내를 없애고 맛을 낼 수 있는 붕어찜요리를 만들어냈다. 큼직하게 썬 무와 시래기를 깔고 고추장, 후추, 구기자, 들깨 등을 넣어 만든 양념장에 고아낸 붕어찜은 특유의 감칠맛으로 강태공들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이후 분원리 일대는 붕어찜을 내놓는 식당이 하나둘 늘어났고, 이제는 40여 곳이 넘는 식당들이 모여 ‘붕어찜마을’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어느 집을 찾아가도 맛깔난 붕어찜을 맛볼 수 있는 까닭은 인근 지역에서 잡은 참붕어를 사용하고 있는 점이 한 몫한다. 살아있는 싱싱한 붕어에다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분원리만의 맛깔나고 토속적인 맛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마을의 원조격인 분원붕어찜(구 강촌매운탕 : 031-767-9055)은 지금도 이영숙 씨가 주방을 지키며 30년 전통의 깊은 손맛을 자랑한다. 직접 담근 동치미와 짠지, 달랑무, 고추장떡 등이 밑반찬으로 나온다. 붕어찜은 비위가 약하고 입맛이 없을 때 좋고, 붓기를 가라앉히고 당뇨병, 오랜 기침에 효과가 있는 건강식이다.

남한강변을 따라 분원리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낭만적인 로맨틱가도다. 그림처럼 펼쳐지는 팔당호반을 끼고 달리면 안개에 덮인 우내섬이 환상적이다. ‘소내섬’으로 불리는 우내섬은 팔당댐이 들어서기 전 서울 밖에서 가장 큰 우시장이 섰던 자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겹겹이 주름 접은 물살이 호반 위를 수놓고, 비밀스런 안개가 소내섬을 둘러싸고 속살거리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이 곳에선 잃어버린 옛사랑을 만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가는 요령
중부고속도로 광주(경안)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45번 국도를 타고 양평 방향으로 향한다. 도마리 3거리에서 우회전해 88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광동교를 건너 3거리에서 왼쪽길로 접어든다. 퇴촌하수처리장이 있는 4거리에서 분원마을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약 4km 가면 분원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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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에 모두가 한숨이다. 답답한 현실을 잠시 비켜나 경기도 여주로 가보자. 그 곳에는 조선시대 최고 성군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이 잠든 영릉이 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가르며 능역을 거닐면 지혜로운 성군의 가르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수도권 지역에 첫눈이 내리는 등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날에도 영릉에는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수능을 끝낸 학생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몰려 왔고, 50명이 넘는 장년층도 가이드의 인솔로 조용히 움직였다. 대부분의 관광지가 겨울이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것과 달리, 이 곳은 삼삼오오 계절에 상관없이 꾸준히 찾는다.

한글 창제를 비롯해 위대한 업적을 수없이 남겨 우리나라 역대 군왕 중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만큼 세종이 잠든 영릉은 조선 왕릉 중 가장 넓고 잘 정비됐다. 드넓은 잔디밭과 울창한 소나무숲, 산책로, 연못 등이 자리잡은 능역은 여느 공원 못지 않다. 또 세종대왕의 업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세종전이 자리하고 있고, 그 주변으로 세종 때 발명한 과학기구들이 전시돼 있다.

세종에 대한 기록은 그 동안 수많은 책과 영상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왔다. 얼마 전 막을 내린 KBS 대하사극 <대왕세종>을 통해서도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군 성군의 모습을 그려냈다. 여기서 세종 역을 맡았던 탤런트 김상경이 한 인터뷰에서 “세종대왕은 종합병원 수준의 많은 병을 앓으면서도 백성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신 분이었다. 세종대왕은 사람이 아닌 신처럼 보였다”며 “세종은 지난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고, 앞으로 더욱 발굴하고 발전시켜야 할 미래다”라고 말했다. 그의 지적처럼 세종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도 우리 민족의 구심점임에 틀림없다.

영릉(英陵)은 조선 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낸 능으로 손꼽힌다. 능역의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신도를 따라 정자각에 이르게 된다. 정자각의 동쪽에는 수복방과 비각, 서쪽에는 수라간이 있다. 봉분 둘레에는 12면으로 꾸민 돌난간을 돌렸으며, 난간석을 받치고 있는 동자석주에 한자로 12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했다. 세종대왕과 왕비 소헌왕후를 합장한 능인 까닭에 2개의 혼유석과 장명등을 놓고, 좌우에 망주석을 세웠다. 봉분 능침 주변에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를 서로 엇바꿔 좌우로 각각 두 쌍씩 여덟 마리를 밖을 향해 능을 수호하는 형상으로 배치하고 있다. 봉분의 동·서·북 3방향에 곡담을 둘렀다.

이 능은 원래 서울 강남구 내곡동 헌릉 서쪽에 있었으나 1649년 이 곳으로 옮겼다.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유물전시관인 세종전은 1977년 건립됐다. 세종전에는 세종대왕의 어진과, 당시에 발명해 사용한 과학기구, 악기류와 세종대에 간행한 책들이 함께 진열돼 있다.

*맛집
이천에서 장호원 방향으로 가는 국도 3호변에 있는 황토방(031-883-5935)은 전통 한정식집이다. 소문난 여주쌀로 지은 쌀밥에 30여 가지 밑반찬을 곁들인 한정식은 깔끔한 맛이 돋보인다. 시원한 동치미에 숯불로 구운 돼지구이가 소문났다.

*가는 요령
영동고속도로 이천이나 여주 인터체인지에서 국도 42번이나 37번을 따라 접근하면 영릉으로 이어진다. 이정표가 잘 돼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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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이라 포구에 사람들이 붐빈다. 특히 주말이면 수도권의 이름난 포구에는 몰려든 차들로 주변 길이 온통 마비될 정도다. 간만에 젓갈 한 번 사보려다 짜증만 곰삭여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포구인 대명포구(김포시 대곶면 대명리)는 소래포구나 연안부두처럼 인파들에 치이지 않아 우선 마음이 편하다. 대명항을 알리는, 닻이 장식된 아치를 통과해 진입로로 들어서면 벌써 바다냄새가 물씬 풍긴다. 햇볕에 말리기 위해 노견으로 널어 놓은 노란색 그물망은, 두리번거리는 낯선 이의 마음을 금방 포획해버리고 만다.

강화해협을 가운데 두고 강화도와 마주보고 있는 대명포구는 한때 ‘겨울바다 7선’에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와 재래식 포구풍경을 보여주던 곳이었다. 아쉽게도 ‘곳이었다’라는 과거형을 쓸 수밖에 없는 건, 올해 개장한 현대식 수산물직판장이 대명포구의 풍경을 확실히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무릇, 낡은 건 새 것에 밀려나기 마련이라지만, 낡은 것이 품고 있던 고유의 숨결마저 사라지는 건 왠지 아쉽고 허전하다.

그렇다고 대명포구의 풍경이 영 아닌 건 아니다. 여전히 그 곳에는 갯마을의 활기 넘치고 비릿한 서정이 자리하고 있다. 물때에 맞춰 나갔던 고깃배가 뱃고동을 울리며 돌아오면 포구는 단연 활기를 띤다. 갓잡아올려 펄쩍펄쩍 뛰는 생선들이 내려지고, 장화를 신고 철벅거리며 주변으로 몰려드는 시장사람들과, 그들을 구경하려는 외지인들까지 가세해 포구는 시장바닥처럼 시끌벅적하다.

잡아온 생선들을 어판장으로 넘기고 주차된 차들마냥 포구에 묶여 있는 배들을 보면 왠지 지쳐 보이고 쓸쓸하다. 뱃전을 기웃거리는 갈매기들을 외면한 채 드러누운 배들이 곤한 잠에 빠지면 포구를 벗어나 어판장으로 향한다.

넓은 어판장 안은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상점이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진다. 만성호, 쌍용호, 강화호…. 자기 배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내건 상점들은 여러 종류의 젓갈과 생선들을 좌판에 내놓고 손님들을 부른다. 선주와 어부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니만큼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싸다. 소쿠리에 가득 담긴 물좋은 해산물이 1만원 아니면 5,000원이다. 젓갈은 더 싸다. 보통 가정집에서 몇 년치 김장을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의 새우젓이 1만원이다. 이웃과 모여온 주부들이 꼴뚜기, 곤쟁이, 밴댕이, 황석어젓을 종류별로 하나씩 사서 나눈다. 현명한 쇼핑이다.

어판장을 나서면 상가 음식점이 출출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출출하지 않은들 그 곳을 어찌 그냥 빠져나갈 수 있으랴. 회, 무침, 탕, 구이, 튀김, 샤브샤브 등 각종 요리법을 총동원한 해산물 요리 종합선물세트장이 발목을 움켜잡는다. 얼큰한 해물탕으로 뱃속을 채울 때, 때마침 노을이라도 진다면 감히 장담한다. 황진이를 물리친 서화담일지라도 술잔을 높이 들고 “여기, 처음처럼 한 병 더”를 외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가는 요령
서울에서 공항동 4거리나 행주대교 남쪽 올림픽대로가 끝나는 인터체인지에서 강화 방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48번을 탄다. 혹은 올림픽대로 끝에서 우회도로인 지방도 352번(제방도로)을 이용한다. 강북에서는 강변북로와 자유로를 타고 가다가 김포대교를 건너면 쉽게 48번 국도를 만난다. 김포시내 누산리에서 좌회전하면 올림픽대로와 연결되는 352번 도로와 만난다. 이 길을 따라 강화 초지대교 방면 또는 대곶 방면으로 계속 달리면 초지대교 초입, 대명포구 진입로가 나온다. 진입로를 따라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면 대명포구 주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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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 잠긴 가을을 한 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에 위치한 산정(山井)호수는 ‘산 속의 우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방이 높은 산봉우리에 둘러싸여 있다. 산봉우리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울 때면 호수면에 그려진 한 폭의 산수화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이 맘 때의 산정호수는 억새꽃 출렁이는 추색 짙은 가을산 그림자가 호수에 일렁인다. 호수에 잠긴 가을이 바로 그 곳에 있다.

산정호수는 1925년 골짜기를 막아서 만든 저수지이지만 인공적으로 쌓은 저수지라기보다 저절로 생긴 천연호수와 같다. 푸른 기가 돌만큼 맑고 깊은 수심과, 8만여평에 이르는 드넓은 호수면적이 인공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게 한다. 산정호수는 남북으로 길게 드러누워 있으며, 아래쪽에 천연암벽을 이용해 제방을 쌓았다. 호수 동쪽에는 물가를 따라 산책로가 이어지고, 북쪽은 소나무가 울창하다.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돼 포천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잡은 이 곳은 1996년 8월 수영장, 볼링장, 온천, 사우나 시설을 갖춘 한화콘도가 들어서면서 4계절 관광지로 더욱 명성을 얻게 됐다.

산정호수를 둘러싼 산들은, 궁예가 망국의 슬픔으로 통곡해 산천을 울렸다는 전실이 서린 명성산을 비롯해 삼각봉, 사향산, 관음산, 망무봉 등이 있다. 특히 명성산은 억새꽃으로 유명하다. 정상 부근 능선에 끝없이 펼쳐지는 은빛 억새꽃밭은 말문을 막는 황홀한 장관이다. 전국에서 몰려 온 관광객이 은빛 능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데, 그 모습이 또한 색다른 볼거리이기도 하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 온 등산객들의 발길이 멈추는 곳은 명성산 기슭에 자리잡은 자인사라는 작은 절이다. 눈길을 끄는 절집은 아니나 절 마당에 자리한 턱없이 큰 석불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이 곳의 맛 좋기로 소문난 약수가 등산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산정호수 나들이길에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명소는 2006년 문을 연 생태식물원인 평강식물원이다. 산정호수 옆 우물목이라는 마을에 위치한 평강식물원은 동네이름에서 알 수 있듯 물이 많이 나는 골짜기 안에 있다. 18만평의 드넓은 공간에 4,500여종의 다양한 식물의 생태를 볼 수 있는 이 곳은 1998년부터 암석원, 고층습지, 수련원, 습지원 등 각종 식물들이 서식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해 왔다. 동양 최대 규모의 고산식물 전시원인 암석원을 비롯해 자연생태를 복원한 습지원, 50여 종의 연꽃을 볼 수 있는 연못정원, 자연형 계류를 이용한 이끼원, 사철 푸르름을 뽐내는 잔디광장 등 12개의 주제로 구성된 종합식물원이다.

*맛집
포천으로 가는 길목 곳곳에는 소문난 별미가 기다리고 있어 더욱 나들이가 즐겁다. 47번 국도의 내촌 - 베어스타운 사이 기장교 옆에 있는 곰터먹촌의 김치말이국수(031-534-0732)는 오래 전부터 소문난 맛집. 광릉수목원 입구에 자리한 동이손만두(031-541-6870)는 주인이 직접 만드는 손만두집으로 향토적인 분위기와 그에 걸맞는 음식맛이 자랑이다. 소흘읍 고모리에 위치한 한정식 전문점 시골밥상(031-543-2070)은 생선구이정식으로 유명하다. 노릇노릇 구운 생선과 함께 나오는 밑반찬이 12가지가 넘는다. 뭐니뭐니해도 포천에 왔으면 이동갈비를 맛봐야겠다고 생각한다면 47번 국도를 따라 일동면과 이동면, 백운계곡 입구까지 이어지는 이동갈비촌을 찾아가면 된다.

*가는 요령
동부간선도로가 가까운 경우 의정부 방향으로 진입하고, 장흥이 가깝다면 동두천 방향에서 들어가는 게 빠르다. 의정부에서 국도 43번을 타고 포천, 철원 방향으로 향하다가 성동 3거리에서 직진해 운천 제1교차로 - 문암 3거리에서 우회전한다. 한화콘도를 지나면 산정호수 매표소. 여기를 거쳐 오른쪽으로는 명성산,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평강식물원이다. 혹은 성동 3거리에서 우회전하거나 국도 47번을 타고 수입교차로에서 산정호수·명성산 방향으로 접어든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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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배낭을 꾸리게 만든다. 바람부는 대로 발길을 재촉하다 문득 멈춰서게 되는 곳. 그 곳은 아무래도 영광보다 아픔이 묻어나는, 슬픔의 역사가 배어 있는 곳이다.

인천은 우리 근대사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다. 우리 근대사는 일제 강점기 식민통치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역사다. 식민지 수탈의 근거지가 됐던 항구도시 인천에는 골목골목 아직도 근대의 시간이 숨쉬고 있다.

맥아더 동상으로 유명한 인천 송학동의 자유공원. 이 공원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 옆에는 이국풍의 흰 건물이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잡는다. 인천항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이 곳에 자리한 이 근대식 건축물은 옛 ‘제물포구락부’다(구락부(俱樂部)는 영어 클럽(club)을 일본식 발음으로 표기한 것). 19세기말 인천항을 통해 물밀 듯이 밀려들던 서구 열강의 외교관과 무역상들의 사교장이었다.

1876년 일본에 의해 강압적으로 체결된 강화도조약으로 쇄국의 빗장이 풀리면서 우리의 근대역사는 시작된다. 1883년 개항을 맞은 인천에는 새 시장을 개척하려는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을 위한 사교클럽으로 1901년 6월 문을 연 제물포구락부에는 러시아·미국·영국·일본·청국·독일·네덜란드 등 11개국 100여 명의 제물포 거주 외국인들이 드나들며 저녁마다 화려한 파티를 열곤 했다. 한 마디로 남의 나라 땅에 힘으로 밀고 들어와 조계지(租界·치외법권이 허용되는 외국인 거주지)를 그어가며 조선진출과 주권침략의 음모를 다진 그들만의 축제를 벌였던 것이다.

이들과 함께 유입된 각 나라의 문물은 인천의 근대문화를 형성했고, 인천은 세계 각국의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가 됐다. 지금도 남아 있는 그 때의 건축물들은 다문화가 공존했던 당시 인천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1914년 인천에 설치된 각국의 조계가 철폐되면서 조계에 머무르던 외국인들도 속속 귀국했다. 이와 함께 외국인들의 사교무대였던 제물포구락부는 일본제국 재향군인회 인천연합회에 이관돼 ‘정방각(精芳閣)’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됐고, 그 후 1934년에는 일본부인회, 광복 후에는 미군장교클럽, 6·25 전쟁중에는 인민군 대대본부 등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근대사의 영욕을 대변했다. 이후 시의회·교육청·문화원·박물관 등으로 쓰이던 이 건축물은 2007년 6월부터 역사체험을 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박물관’으로 변모했다.

높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고풍스런 분위기를 주는 검은색 마룻바닥, 홀 한쪽에 마련된 바 등 옛 제물포구락부 실내에 들어서면 당시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각국의 언어가 소란스럽게 오가고, 경쾌한 무도곡과 낭자한 웃음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오는 듯하다. 그 때문인지 전시된 소장품을 바라보는 마음은 신기함보다 씁쓸함이다.

실내에 설치된 50인치 PDP TV를 통해 당시의 기록영상물 등을 보며 가상역사 체험도 할 수 있다. 개관시간은 매주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료는 없다. 032-765-0261

옛 제물포구락부에서 나와 중구청쪽으로 내려오면 근대건축물탐방거리로 이어진다. 일본 조계지였던 구역이다. 일본 제일은행 지점은 후기 르네상스풍의 작은 돔을 올려 꾸민 외양이 독특하다. 모래, 자갈, 석회를 제외한 나머지 건축재료를 일본에서 가져와 만들었다. 일본 58은행은 발코니와 지붕창을 갖춰 프랑스 분위기가 짙은 건물이다. 광복 이후 조흥은행이 인천지점으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중구요식업조합 건물로 쓰이고 있다. 송학동에서 만석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세운 화강석과 벽돌을 혼용한 아치형의 홍예문은 1906년 일본 공병대가 각국 지계와 측후소쪽으로 진출을 꾀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 밖에 답동성당, 인천우체국,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 등의 근대 건축물은 100여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가슴 아린 그 시간 속으로 나그네를 이끈다.

*맛집
차이나타운을 찾으면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 전통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신포재래시장엔 1930년부터 ‘닭전’으로 이름날 만큼 닭강정으로 유명한 먹자골목이 있다. 화평동으로 가면 냉면골목이 기다린다. 이 곳에 가면 세 번 놀란다고 한다. 냉면집이 많은 데서 한 번 놀라고, 어마어마하게 큰 냉면그릇에 놀라고, 계산하고 나올 때 싼 값(3,500원)에 놀란다는 것이다. 일명 세숫대야 냉면으로 잘 알려진 화평동 냉면골목은 동구 화평동 화평철교에서 인천극장쪽으로 언덕길을 가다 보면 보인다.

*가는 요령
경인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 종점(인천항)에서 월미도 방향으로 약 15분 거리에 차이나타운이 위치하고 있다. 경인고속도로 끝 지점에서 직진해 인하대병원 → 정석빌딩 → 우회전 → 옹진군청 → 삼익아파트 앞에서 유턴 → 인천경찰청 → 차이나타운&자유공원광장&제물포구락부 등. 이 곳에서는 차를 한 곳에 주차해 놓고 도보관광을 하는 게 좋다.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국철(1호선) 인천행을 타고 인천역에서 내려 도보 1분 거리.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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