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체부 :: '자동차여행' 카테고리의 글 목록 (4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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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군의 선운사는 봄날 동백으로 유명한 절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시인들이 선운사의 동백을 노래해 절 자체보다 동백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선운사의 가을단풍을 본 사람들은 동백보다 더 아름다운 게 선운사의 가을단풍이라고 감히 장담한다. 선운사 진입로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는 단풍숲은 도솔암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계곡을 따라 도솔암까지 이어지는 2.3km의 산길은 형형색색의 단풍숲이 황홀하게 펼쳐지며, 계곡마다 이 절정의 단풍숲을 사진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들로 붐비는 게 또 다른 구경거리기도 하다.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리는 도솔산(일명 선운산) 북쪽에 자리한 선운사의 가을풍경도 이 맘 때는 한 폭의 그림이다. 눈길 주는 곳마다 가을색이 출렁인다. 주렁주렁 붉은 알전구를 매단 듯한 늙은 감나무는 절집 지붕 위로 금방 내려앉을 듯하다.

선운사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설은 진흥왕(재위기간 540∼576년)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는데, 이 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해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이 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여서 신라의 왕이 이 곳에 사찰을 창건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시대적ㆍ지리적 상황으로 볼 때 검단선사의 창건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단스님의 창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설화가 전해 오고 있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해, 이를 신기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됐다. 그래서 이 자리에 절을 세우니 바로 선운사다. 검단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하여 절 이름을 선운(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한 때 89개 암자에 3,000여 승려가 수도하는 대찰이었다고 하나 정유재란을 거치며 파괴되고, 이후 수재로 무너진 걸 여러 차례 중건해 오늘에 이른다. 현재는 본사와 도솔암, 참당암, 동운암, 석상암만이 남아 있다. 경내에는 보물(제290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을 비롯해 팔상전, 산신각, 영산전, 관음전, 명부전, 만세루 등이 있다. 대웅보전은 조선 성종 3년(1472)에 중건해 임진왜란 때 전소됐다가 광해군 5년(1613)에 다시 지은 것으로, 미술사적으로 조선 후기의 뛰어난 건축기술과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불교예술에 관심있는 이라면 대웅전 안의 삼존불과 삼존불상 뒤의 후불벽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선운사에 모셔진 금동보살좌상(보물 제279호)은 영험함으로 일찍이 소문나 있다. 일제 강점기에 도난당했다가 불상을 손에 넣은 소유자가 꿈 속에 지장보살의 계시를 받고 결국 2년만에 선운사에 반환한 것이다.

선운사 단풍나들이는 10월말을 시작으로 11월중순 절정을 이룬다. 동백보다 더 아름다운 선운사 단풍을 이번 가을 놓치지 말고 구경하시길.

*맛집
'고창의 맛'하면 풍천장어와 복분자를 첫손꼽을 만큼 유명하다. 선운사 입구 3거리에는 60년대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풍천장어집이 즐비하다. 연기식당(063-562-1537), 신덕식당(063-562-1533), 유신식당(063-562-1566) 등을 위시해 대를 이어 손맛을 자랑하는 맛집들이 자리한다. 이들 음식점은 장어장을 만드는 비법에서 남다르다. 장어를 고아 뽑아낸 기본 육수에 고추장과 갖은 양념을 하고 몇 시간 푹 재어둔다. 이후 초벌구이를 한 다음 간이 배도록 하고 재벌구이로 다시 구워 내놓는다.

*가는 요령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사 인터체인지에서 빠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혹은 호남고속도로 정주 인터체인지 - 부안 방면 국도 22번 - 흥덕 3거리 - 법성포 방면으로 3km 달리면 왼쪽으로 선운산 도립공원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해 1.5km 들어가면 선운사 주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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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한 국화 향기에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전북 고창에서는 제4회 고창국화축제가 열린다. 10월 22일부터 11월 23일까지 한 달간 열리는 이번 축제는 ‘세계최대 30만평 300억 송이 하늘열린 고창국화’란 주제로 국화를 땅에 직접 심어 경관농업화한 축제이다. 이곳에서는 또 제18회 국무총리배 전국 국화 경진대회도 동시에 개최되고 있어 더욱 볼거리가 다양하다.

이맘때면 전국 곳곳에서 국화꽃 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이곳 고창군의 국화축제는 그 어느 곳보다 문학향기 그윽한 꽃잔치이다. 이곳은 <국화 옆에서>로 유명한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자, 시인이 영면한 곳이기 때문이다. 수백 억 송이의 국화꽃을 피운 것도 시인의 무덤가에 만들어졌던 노란 국화 밭에서 시작되었다.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마을 건너편 야트막한 산언덕에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묘역이 있다. 안현 마을이라고, 기러기 날아가는 모양새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곳에는 시인과 그 아내의 묘가 나란히 있다. 2000년 10월 10일, 60년 이상을 함께 산 아내 방옥숙이 먼저 세상을 뜬 뒤 미당 역시 그해 12월 24일 아내의 뒤를 따라갔다.

미당 사후, 그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들이 시인의 무덤가에 꽃밭을 만들었는데, 미당의 대표시 <국화 옆에서>에 나오는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의 그 노란 국화꽃을 묘역 전체에 심었던 것이다. 2004년에 약 5천 평 규모로 시작한 꽃밭은 2005년에 10배가량 넓어지게 되었고, 점차 고창 전역 여기저기에도 많은 국화꽃이 심어져 고창군 일대가 국화꽃향기로 뒤덮였다. 죽은 시인의 문학적 업적이 수백 억 송이 국화꽃을 피운 것이다.

방장산 자락 아래 30만평 들판에 펼쳐지는 300억 송이의 국화꽃 향연은 말 그대로 꽃세상 꽃천지가 따로 없다. 끝없이 펼쳐지는 노란색 국화꽃 무리가 아찔한 꽃멀미를 부르기도 한다. 국화축제가 열리는 행사장 중앙에는 국화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광개토대왕비만한 돌에 <국화 옆에서> 시를 새겨 문학축제로 승화시키고 있다. 전북 화훼 자연연구소에서 출품하는 국화신품종 전시회도 국화동호인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행사 기간 동안 국화누님선발대회, 국화꽃따기대회, 시낭송회, 사연담은 신청곡 들려주기, 예쁜 사진 찍기 대회, 국화꽃 목걸이 만들기, 꽃마차체험, 국화차시음, 세발자전거타기, 굴렁쇠 굴리기, 널뛰기 등 다양한 체험과 대회들이 준비되어있다.

국화축제가 열리는 행사장은 선운산과 내장산, 백양사 등의 단풍 명소들과 모두 30분 이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일석이조의 가을 나들이를 계획할 수 있다.
선운산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미당시문학관에는 11월 1~3일, (재)미당시문학관, 중앙일보, 동국대, 한국문인협회 공동 주최로 미당시문학제가 열린다. 미당시문학제에서는 중앙일보사가 뽑은 올해의 최고의 시인에게 미당시문학상을 수상하게 되고 한국문인협회대표자 대회(11.2~3), 전국 백일장대회, 미당 학술세미나 등 행사가 진행된다.

미당시문학관은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자 영면지인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읍 선운리 마을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이곳에도 지금 국화 향기가 어느 때보다 더 진한 향을 내뿜고 있다.

*맛집
고창의 맛은 뭐니뭐니 해도 풍천장어. 대를 이은 손맛을 자랑하는 이름난 장어 전문집은 선운사 입구에 모여 있다. 연기식당(063-562-1537), 신덕식당(063-562-1533), 유신식당(063-562-1566) 등. 고창읍에서 선운사 가는 길인 운곡댐 근처에 있는 인천장가든(063-564-8643)은 민물새우탕이 전문. 고창읍 기능대학교 맞은편에 위치한 오산식당(063-562-9595)은 싸고 맛있는 굴비백반으로 입소문 난 곳.


*가는 요령
서해안고속도로 고창 IC를 나와 고창읍내로 들어간다. 석정온천 가는 길로 접어들면 국화축제 행사장 이정표를 따라 움직인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IC에서도 10분 내외 거리이다. 미당시문학관은 부안면 소재지를 지나 용산저수지를 왼쪽으로 끼고서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고갯길(질마재)을 넘어서면 멀리 줄포만과 시문학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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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는 관악산이 있어 구의 이름이 관악구로 정해졌을 만큼 관악산의 위용이 두드러진다. 서울시민이라면 주말 나들이로 누구나 한 번쯤 올라봤을 관악산(629m)은 규모는 크지 않으나 거친 암봉과 깊은 골짜기가 어우러져 험한 산세를 보인다. 그래서 예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으로 손꼽혔다. 서울의 남쪽 경계를 휘두르고 과천 청계산으로 뻗어 내려간 관악산 줄기는 수원 광교산에 닿아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관악산은 원래 화산(火山)이라 하여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화기(火氣)를 끄기 위해 경복궁 앞에 해태를 만들어 세우고, 산의 중턱에 물동이를 묻었다고 한다. 또 풍수지리학적으로 관악산의 기가 너무 세 이를 막기 위해 지금은 불타버린 서울 숭례문의 현판을 세로로 만들게 했다고 한다.

관악산을 오르는 일반적인 등산코스는 관악산 등산로입구 - 연주암(2.8km) - 연주대(3.2km)로 이어지는 코스와, 과천시청(후문)에서 출발해 과천향교 - 연주암 - 연주대 - 팔봉능선 - 삼성산 - 안양유원지로 이어지는 코스가 있다.

연주암은 관악산의 모든 등산로가 집결하는 곳이다. 부지런히 산을 올라온 등산객들이 연주암 툇마루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신발끈을 조인다. 사실 연주암과 연주대는 명절이나 계절이 바뀔 때 TV 영상화면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라 처음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도 낯익은 곳이다.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자리잡고 있는 연주암은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봉의 연주대 남쪽 지점에 있다. 원래는 신라 문무왕 17년(677년) 의상대사가 이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관악사를 건립할 때 함께 세운 것으로, 의상대라 불렀다고 한다.

관악사와 의상대는 연주암과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 내력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하나는 조선 개국 후 고려에 대한 연민을 간직한 사람들이 이 곳에 들러 개성을 바라보며 고려의 충신열사와 망해버린 왕조를 연모했다고 해 연주대라 불렀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조선 태종의 첫 번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두 번째 왕자인 효령대군이 왕위계승에서 밀린 뒤 방랑하다가 이 곳에 올라 왕위에 대한 미련과 동경의 심정을 담아 왕궁을 바라봤다 해 연주대라고 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연주대의 주변 경관이 워낙 뛰어난 절경인데다 한눈에 멀리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여서 붙여진 전설이다.

연주암에서 등산로를 따라 20분 정도 오르면 연주대 정상에 닿는다. 관악산을 대표하는 절경인 연주대에선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과천시의 서울대공원과 경마장도 잡힐 듯 눈 앞에 펼쳐진다. 등산객들은 이 곳에서 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막걸리를 놓치지 않는다. 한 대접에 균일가 3,000원. 안주는 큰 상에 뷔페식으로 차려 놓고 골라 먹게 한다. 멸치, 마늘쫑, 김치, 양파 등. 이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매주 관악산을 오른다는 단골도 있다.

과천향교도 관악산 나들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과천쪽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과천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창건됐으나 터가 좋지 않아 등과유생이 없다는 이유로 숙종 16년(1690)에 현재 위치로 이전ㆍ개축됐다. 한 때 시흥군에 포함돼 시흥향교로 불리다가 1966년 성균관의 승인에 의해 과천향교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과천향교는 전학후묘의 배치로 유생들이 공부하는 명륜당이 앞쪽에 있고, 공자를 비롯한 25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 뒤쪽에 있다. 봄ㆍ가을에 석전대제를,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삭망례를 지낸다.

봄날에는 벚꽃과 철쭉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암봉과 어우러진 단풍이 절경인 관악산. 가을이 얼마큼 와 있는 지 궁금하다면 관악산으로 떠나라. 눈부신 가을이 그 곳에 있다.

*맛집
황토로 건축한 2층집인 보리촌(02-3679-5533)은 그 분위기에 걸맞는 보리밥이 대표 음식이다. 옛날 춘궁기 보릿고개 시절을 연상케 하는 촌보리밥이 소문났다. 과천에서 인덕원 방면에 있다. 토정(02-502-1374)은 관공서 근처에 맛있는 집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곳. 과천전화국 앞 먹자빌딩 2층에 자리한 토정은 전북 진안 출신 사장이 그 곳의 무공해 재료들을 가져다 무공해 음식을 선보인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취나물, 고사리, 제비쑥 등 여러 산채나물이 담백하고 고소하다.

*가는 요령
서울에서는 신림 4거리, 봉천 4거리에서 서울대학교 정문 방향으로 이동하면 관악산 관문이 나온다. 과천쪽 등산로에서 출발하려면 지하철 4호선 과천역 7번 출구로 나가면 등산로로 이어진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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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고도 부여로 가보자. 부여시내는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가까운 거리에 많은 문화유적지가 자리하고 있어 짧은 시간, 큰 감동을 얻을 수 있다. 부여의 일반적인 관광 코스는 부소산성-궁남지-정림사지-국립부여박물관-백제왕릉원이다.

부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시내 북쪽에 있는 부소산성이다. 백제의 마지막을 지켰던 부소산성에는 그 유명한 낙화암과 고란사를 비롯해 백제의 세 충신을 모신 삼충사, 사자루, 반월루, 영일루, 군창지 등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와 사연이 깃든 유적지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부소산성 정문인 사비문을 지나 조금 걸어 올라가면 삼충사를 만난다. 백제말 삼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진 사당으로, 백제문화제 때 제향을 올리고 세분의 숭고한 구국충절을 기리는 곳이다. 부소산성 답사는 정문인 사비문(매표소)을 지나 삼충사 - 영일루 - 군창지(또는 태자골 숲속 길) - 반월루 - 궁녀사 - 사자루 - 낙화암(백화정) - 고란사 - (유람선) - 구드래공원으로 이어진다.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백제 무왕 35년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연못인 궁남지에는 지난여름 만발했던 연꽃이 이제 연밥을 매달고 있다.

정림사지는 백제시대 대표적인 절터로, 백제가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길 때 왕궁, 관청 등과 함께 도성이 건설되었는데 이 즈음인 6세기에 사찰도 함께 창건된 걸로 보고 있다. 백제 멸망 당시 화재로 인해 이 절도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텅 빈 절터에 백제 때 세워진 5층석탑(국보 제9호)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보물 제108호)만이 남아 있었으나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절 앞의 연못이 정비되고, 정림사지박물관이 건립되었다.

정림사지 5층석탑에는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가 새겨놓아 한때 ‘평제탑’ 이라 불리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나 이는 탑이 건립된 훨씬 뒤의 일로 밝혀져 누명을 벗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찬란한 백제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백제전문박물관이다. 제1전시실~제3전시실, 박만식교수기증실과 야외유물전시장이 있으며, 문화체험을 위한 체험교실이 마련되어있다. 박물관 뜰에는 뛰어난 백제문화의 결정으로 손꼽히는 백제금동대향로 모형이 눈길을 끈다.

백제 무령왕릉 발굴이후 금세기 최고의 발견이라 하는 백제금동대향로는 하마터면 땅속에서 영원히 묻혀 있을 뻔했다. 1993년 능산리 고분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 공사를 하던 중 물웅덩이에서 발견된 것이다. 1300여년의 깊은 잠을 깨고 완벽한 모습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금동대향로는 경이적인 걸작으로 손꼽힌다.

능산리 고분군은 해발 121m의 능산리 산의 남사면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고분은 전열 3기 후열 3기, 그리고 맨 뒤 제일 높은 곳에서 1기가 더 발견되어, 지금은 모두 7기로 이루어진 고분군이다. 최근 고분군의 서쪽 200m 거리에서 능사(陵寺)터가 발굴되었고 그곳에서 출토 된 백제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의 출토는 능산리 고분군이 왕실묘지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주었다.

*맛집
구드래 나루터에 위치한 나루터식당(041-835-3155)은 부여의 맛을 대표하는 터주대감격. 30년 넘는 전통과 노하우의 장어구이는 부여를 대표하는 맛이다. 부소산성 정문 맞은편에 위치한 백제의집(041-834-1212)은 연밥 전문 식당. 연잎에 싸인 영양찰밥, 연잎으로 만든 냉면, 연잎 장아찌, 연꽃차 등을 맛볼 수 있다.

*가는 요령
경부고속도로 - 천안논산고속도로 정안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백제큰길(공주경유)을 따라 가면 부여에 이른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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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시는 역사가 숨쉬는 도시다. 고구려 유적의 보고인 아차산을 비롯해 조선 왕조 500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동구릉이 있다.

동구릉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부터 제24대 헌종의 경릉에 이르기까지 9릉 17위의 왕과 왕후 능이다. 그 아홉 능을 하나하나 손꼽아가며 둘러보면 마치 <조선왕조실록>을 펼쳐 보는 듯한, 흥망성쇠를 거듭한 한 왕조의 부침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우거진 숲과 잘 단장된 능역, 능역을 가로지르며 개울물이 흐르고 산새들 울음소리가 깊은 숲을 방불케 하는 동구릉은 구리시민에게는 더없이 좋은 쉼터이기도 하다.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과 달리 그들의 모습은 여유있고 한가롭다. 유모차를 끌며 산책하는 젊은 부부의 모습에서나, 커플 운동복을 입고 느릿느릿 걷는 노부부의 모습은 동구릉에 잠든 그 역사의 부침을 잠시 잊게 한다.

동구릉에서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곳은 역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이다. 산책로를 따라가면 먼저 수릉과 현릉을 만나는데, 그 곳의 말끔하게 손질된 봉분과 달리 건원릉 앞에 서면 깜짝 놀란다. 마치 돌보지 않은 무덤처럼 봉분에 잡초가 무성해서다. 알고 보면 그 것은 잡초가 아니라 억새이고, 건원릉에 억새풀이 무성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조선 건국이라는 대업을 이룩했으나 피비린내나는 왕자의 난을 지켜본 태조는 한양을 떠나 고향인 함흥으로 돌아갔다. 방원(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문안을 위해 함흥의 태조에게 차사를 보냈으나 그 때마다 돌아오지 않았다. ‘심부름을 보냈는데 감감무소식인 사람’을 일컬어 ‘함흥차사’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옴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야사에 따르면 태종이 차사를 보낼 때마다 태종에게 몹시 화가 난 이성계가 이를 모조리 죽였다고 하는데, 어쨌든 이는 태종과 태조의 갈등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세상을 뜨기 전 태조는 자신의 고향인 함흥땅에 묻히기를 원했으나 아들 태종은 그 말을 거역하고 이 곳을 태조의 능지로 잡았다. 대신 고향땅의 흙과 풀 아래 잠들고 싶어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고향에서 가져온 흙과 억새로 봉분을 덮었다고 한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봉분의 억새풀을 바라보고 있자니 저 곳에 잠든 태조는 아들의 이런 배려를 기특하다 여겼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억새가 무성한 건원릉을 뒤로 하고 나서면 조선 최장수 왕이자 최고 재위 기록을 남겼던 21대 영조와 정순왕후의 원릉(元陵)이 걸음을 잡는다. 영조(1694~1776)는 52년간 왕위에 있었고, 83세까지 장수한 왕이다. 오래 왕위에 있었던 만큼 탕평책과 균역법, 현재 복원중인 청계천 준설 등 치적도 많지만, 무수리였던 숙빈 최 씨의 소생이라는 탄생부터 시작해 경종 독살설에 휘말리며 왕위에 올라 사도세자의 죽음까지 드라마틱한 사건을 많이 남겼다. 영조와 나란히 잠들어 있는 계비 정순왕후(1745~1805) 또한 15세에 영조의 계비로 들어와 사도세자의 죽음에 한 몫했고 조선을 떠들썩하게 만들며 피바람을 몰고 왔던 왕비다.

동구릉에서 가장 깊은 안쪽에 자리잡은 왕릉은 14대 선조(1552∼1608)와 그의 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목릉(穆陵)이다.

이 밖에 현릉(顯陵 : 5대 문종과 그의 비 현덕왕후), 휘릉(徽陵 :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숭릉(崇陵 : 18대 현종과 그의 비 명성왕후), 혜릉(惠陵 : 20대 경종의 비 단의왕후), 수릉(綏陵 : 23대 순조의 세자인 추존왕 익종과 그의 비 신정왕후), 경릉(景陵 : 24대 헌종과 그의 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 등이 자리해 모두 9릉 17위가 모셔져 있다.

동구릉은 조선왕조 전 시기에 걸쳐 조성됐는데, 동구릉이라고 부른 건 수릉이 아홉 번째 조성되던 1855년(철종 6년) 이후의 일이며, 그 이전에는 동오릉, 동칠릉이라 불렀다.

*맛집
동구릉 주변에 여러 맛집이 있다. 왕릉 주변에 가면 유독 갈비집이 많은데, 이 곳도 소풍갈비(031-563-6208)가 눈에 띈다. 동구릉 능역을 흘러내려온 물줄기가 만든 개울물이 식당 앞을 흐른다. 숯불을 이용한 소, 돼지갈비와 갈비탕을 선보인다. 깔끔한 밑반찬이 입맛을 돋운다.

*가는 요령
중부고속도로 구리 IC로 구리시에 진입, 북쪽 인창동으로 빠져나간다. 서울에서는 서울외곽순환도로 구리 IC에서 빠져 퇴계원 방향 43번 국도를 타고 500m 가면 동구릉주차장이다. 혹은 내부순환 - 북부간선도로 - 구리시에서 퇴계원 방향 43번 국도를 타고 500m 가면 된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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