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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가 갑자기 섰다면 다시 출발할 때까지 여유 있게 기다린다. 덩치가 큰 버스는 코너를 돌 때 다른 차선을 침범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나란히 달리지 말고 먼저 보내는 것이 안전하다. 오토바이와의 사고를 예방하려면 사각지대를 확인하는 습관을 갖자

‘방어운전’이란 한마디로 ‘위험에 대비하는 운전’이다. 물론 초보운전자가 베테랑 운전자처럼 방어운전에 익숙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요령만 알아둔다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안전운전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 이번호에는 버스나 택시 등의 차종별 방어운전을 알아본다.

택시 뒤를 따라갈 때는 충분한 안전거리 확보
달리던 택시가 갑자기 바깥 차로로 빠지거나, 끼어들기를 하는 것을 흔히 경험할 수 있다. 손님을 태우는 택시의 특성상 이해는 가지만, 깜박이도 켜지 않은 상황에서는 무척 당황스럽다. 간혹 이런 끼어들기를 막고자 앞차와의 거리를 좁히는 운전자들이 있는데, 이는 대단히 위험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앞차와의 거리를 좁히기보다 차간거리를 넉넉히 확보해야 위험한 상황에 대처할 시간을 벌 수 있다. 택시는 손님을 태우거나 내려주기 위해 갑자기 급정거하는 일이 잦다. 때문에 바깥 차로에서 택시 뒤를 따라갈 때는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급정거를 하더라도 신속하게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도록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자. 갑자기 택시가 섰다면 무리해서 다른 차선으로 끼어들어 추월하지 말고, 앞차가 다시 출발할 때까지 여유 있게 기다린다. 그것이 다른 차들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접촉사고의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다.
버스전용차선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지만, 출퇴근 시간처럼 도로가 막힐 때는 이도 무용지물이다. 불법으로 주정차한 차들을 피하고자, 혹은 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며 달리는 버스가 적지 않다. 때문에 도로에서는 버스와 나란히 달리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
버스는 덩치가 크고 차폭이 넓어 코너를 돌 때 다른 차선을 침범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편도 2차선에서는 장애물 때문에라도 갑자기 1차선으로 차선을 바꿀 수 있다. 이럴 때는 속도를 조금 줄여 버스를 먼저 보낸 후 달리는 것이 안전하다.
트럭이나 중장비 차 등은 커다란 덩치 자체가 부담을 주는데다, 앞쪽 도로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 위험하다. 특히 제동등에 불이 안 들어오는 트럭도 많아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노면의 작은 돌 등이 튀어 차에 상처를 입거나, 트럭의 화물이 떨어져 큰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 때문에 트럭 등의 뒤에서 달리기보다는 가급적 다른 차선을 이용하는 것이 좋고, 차선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안전거리를 충분히 넓히는 것이 안전하다.
차선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오토바이는 운전자에게 위협적이고 신경 쓰이는 존재다. 최근에는 퀵서비스나 스쿠터 매니아들이 많아지면서 그만큼 오토바이 사고율도 높아졌다. 하지만 이런 오토바이를 탓하기 전에 사고위험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동차 운전자가 더욱 조심하고 배려해야 한다. 오토바이 뒤에서 달릴 때는 충분한 안전거리를 두고, 오토바이가 균형을 잃고 넘어질 수 있는 빗길이나 눈길 등에서는 특히 주의한다. 오토바이는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 나오거나, 길이 정체되면 차들 사이로 빠져 나간다. 이때 옆차선에 차가 없는 것만 확인하고 차선를 바꾸거나 갑작스레 차 문을 열면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니, 항상 사각지대를 확인하는 습관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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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의 횡단보도와 교차로에서는 신호가 바뀌어도 한 템포 늦게 출발하는 것이 좋다.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바꿀 때는 사각지대에 다른 차가 있을 수 있다는 가정 아래 미리 방향지시등을 켜고 천천히 차선을 옮기는 것이 안전하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도로는 자동차로 넘쳐난다. 차가 붐비는 만큼 다른 차나 보행자와 부딪힐 확률이 높기 때문에 방어운전이 필요하다. 국도와 고속도로는 시내처럼 번잡하진 않지만 차가 속도를 내서 달려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더욱 방어운전이 필요하다.

항상 최악의 사태를 미리 떠올리는 것이 안전
운전자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씩 횡단보도 앞에서 차를 세웠다가 출발시키곤 한다. 정지 신호에 따라 차를 세웠을 때 옆 차선에 버스나 대형 화물차가 나란히 서 있다면 시야가 좁아져 맨 앞쪽에 자신의 차가 있어도 횡단보도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이 경우 앞쪽의 신호등만 쳐다보고 있다가 파란불이 켜져 차를 출발시킨다면 옆에 선 대형차 앞으로 보행자가 갑자기 나타나 부딪칠 수 있다. 이때는 시야를 가렸던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차를 출발시키는 것이 안전하다. 사거리 교차로에서도 이와 같이 한 템포 늦게 출발하면 노란 신호등을 보고도 무모하게 교차로를 통과하려는 차와 충돌하는 위험을 막을 수 있다. 고작해야 1~2초 늦게 출발하는 것을 못 참고 뒤쪽에서 클랙슨을 울리는 일부 운전자 때문에 신경이 쓰일 때도 있겠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의 안전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출발이 느린 만큼 액셀 페달을 꾹 밟아 신속하게 교차로를 빠져나가는 배려가 필요하다.


국도를 달릴 때 버스나 화물차가 이유 없이 정차해 있다면 무조건 속도를 줄이자. 다른 차나 장애물에 의해 시야가 가려져 운전자의 눈으로 앞쪽 도로사정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대로 달리는 것은 눈 먼 장님이 차를 모는 것처럼 위험한 행동이다. 고속도로에서는 1차로에서 너무 뒤쳐져 달리면 다른 차가 지나는 데 방해가 되므로 2차로에서 달리는 것이 좋다. 차선을 바꿀 때 룸미러와 사이드미러로 살필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는 상대차를 발견하지 못해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바꾸기 전에는 미리 방향지시등을 켜고 몸을 돌려 옆으로 지나가는 차가 없는지 확인한 뒤 천천히 차선을 바꾼다. 이렇게 하면 다른 차들이 피하거나 속도를 늦출 시간을 벌 수 있어 안전하다. 또한 고속도로에서 옆 차선의 차와 나란히 달리는 일은 없도록 한다. 다른 차선의 차와 나란히 달리면 돌발 상황에서 피할 수 있는 대피공간을 만들 수 없어 위험하다.


시내나 국도, 고속도로 등 모든 도로에서 안전하게 달리려면 자신이 어떤 차선을 이용해야 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무턱대고 1차로를 달리면 좌회전 차선이나 유턴 차선을 갑자기 만나 당황할 수 있다. 교통표지판을 잘 살펴 좁아지고 넓어지는 도로사정과 교차로, 합류점 등을 파악하고 자신이 달려야 할 차로를 찾아 미리 차선을 바꾸면 전반적인 교통흐름에 맞게 달릴 수 있다. 간혹 도로 위에서 운전자끼리 신경전을 벌이는 일을 볼 수 있다. 잠깐의 실수나 운전부주의로 무리하게 끼어들어 뒤차에 불편을 주었다면 손을 들거나 비상등을 3~4번 깜박여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자. 꼭대기를 넘어간 차들이 보이지 않는 언덕길은 넘자마자 차들이 밀리거나 좌회전을 하려고 정차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충분히 속도를 낮추어 달리는 것이 안전하다.


이처럼 방어운전은 상황을 예측하는 능력을 지녀야 구사할 수 있는 운전기술이다. 보행자나 상대방 운전자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이에 대비해 차를 조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꼭 명심할 것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선을 바꿀 리 없어’, ‘설마 길을 건너려고’ 등의 안일한 생각은 버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차의 조작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긴장감과 여유를 함께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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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동차 기술의 발전은 80년대 수출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기술개발투자의 확대에 이어 90년대 독자엔진 개발을 통한 국제화단계로 접어든다. 자동변속기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대우 로얄 살롱부터이고, 중형차에 V6 엔진이 얹힌 것은 기아 크레도스Ⅱ가 처음이다. 터보 엔진은 현대 스쿠프, 알루미늄 엔진은 EF 쏘나타가 최초이다. 승용차에 ABS 브레이크가 처음 쓰인 것은 대우가 89년 대형차 임페리얼을 내놓으면서다

한국의 자동차산업 발전을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50여 년 전에 출발한 국내 자동차산업 기반이 취약하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다. 주요 자동차 생산대국들은 100여 년 전부터 시작되는 나름대로의 기반이 있었으나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6·25 이후에 자동차 수요가 늘어나 미군이 놓고 간 지프형 차를 개조해 자동차를 생산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한국 자동차 기술의 발전은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경성정공, 하동환자동차제작소 등이 설립되기 시작한 1960년 이전까지의 태동단계와 근대적 조립라인을 갖추고 외국부품을 KD(Knock Down) 상태로 수입해 차를 조립하면서 부품의 국산화율을 높여가는 60~70년대의 단순조립 단계 그리고 70년대 중반부터 고유모델차의 개발에 성공해 양산이 시작되면서 기술수준을 높여나가는 고유모델 개발 및 양산단계이다.

1979년 정부는 자동차산업을 10대 전략사업의 하나로 지정해 자동차를 수입대체산업에서 탈피하고 주요 수출산업의 하나로 성장시키고자 노력했으며, 이때 이루어진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80년대 자동차산업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국제경쟁력 향상으로 수출이 급격히 늘고, 경쟁력을 갖는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한 기술개발투자의 확대와 1990년대의 독자엔진 및 변속기의 개발을 통한 수출산업화 및 국제화단계이다. 80년대 이후 이루어진 국산차의 주요 기술 발전 변천사를 살펴본다.

자동변속기(AT)의 보급

80년대 이전까지 승용차에서 자동변속기(AT)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반조립 상태로 도입된 외제 승용차에서였으며 이후 본격적으로 국산 대형차에 쓰이게 된 시기는 80년 대우 로얄 살롱부터이다. 소형차에는 대우 맵시부터 얹기 시작했다. 오펠 카데트에 뿌리를 둔 이스즈 차를 베이스로 한 제미니는 82년 맵시로 이름을 바꾸며 1.3, 1.5ℓ 엔진을 얹고 자동 3단 트랜스미션을 얹었다. 킥다운 기능이 있어 당시에는 진일보한 기술이었다.

현대자동차는 99년부터 앞바퀴굴림 자동 4단 변속기를 독자적으로 생산하지만 RV와 상용차에 쓰이는 뒷바퀴굴림 자동변속기는 올해 2월에 들어서야 현대 계열사인 현대 파워텍이 일본 자트코사 및 미쓰비시와 기술제휴를 맺어 국산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각 메이커마다 국산화율을 높여가고 있지만 일부 차에는 귀에 익은 일본 아이신이나 독일 ZF제 자동변속기가 그대로 도입되어 쓰이고 있다.

자동 5단 트랜스미션은 벤츠제 게이트식 5단 AT를 도입해 얹은 쌍용 체어맨이 처음이다
5단 AT는 종전의 4단 AT에 비해 연비 약 9%, 발진가속 및 추월가속성능 약 6% 향상과 실내 유입소음도 1데시벨(db)감의 개선효과가 있다.

또한 2001년부터 현대 그랜저 XG에 얹은 자동 5단 H-매틱은 다이내믹한 운전성 확보를 위해 수동변속기(MT) 감각의 매뉴얼 조작이 가능한 듀얼 게이트 스포츠 모드 기능이 국내 처음으로 쓰였다.

그밖에 수동과 자동의 장점을 결합한 세미 오토는 98년 대우 마티즈에 처음 소개되었지만 시판 4개월만에 전량 리콜 되는 등 품질에 많은 결함이 나타나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이후 무단변속기 역시 마티즈에 의해 소개되었는데 보다 진화된 형태인 E3 CVT를 채택하였다. E3 CVT는 AT 차의 편의성과 수동변속기에 비해 6~10% 향상된 뛰어난 연비가 장점이다. AT와 금속벨트식 CVT는 유압공급을 위한 오일펌프(습식)가 필요해 기계적 손실이 큰 반면 E3 CVT는 유압공급을 위한 오일펌프가 필요 없어 기계적 손실은 적어지고 연비에 유리하게 된다. 그리고 전자식 인공지능을 이용, 자동으로 최적의 기어비를 연산, 변속 동력손실을 발휘할 수 있다.

엔진 기술의 발전

6기통 엔진의 등장
직렬 4기통이 주류를 이루던 자동차시장에 고급차의 상징인 6기통 엔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67년 수랭식 직렬 6기통 2.0ℓ 105마력 엔진을 얹고 나온 신진 크라운이 국내에 소개된 첫 6기통 엔진 차이며 최고시속 150km를 자랑하는 당시 최고급 승용차였다. 이후 현대는 78년에 새한 뉴 레코드가 독점하고 있던 고급차시장에 독일 포드사와 기술제휴로 20M을 내놓으면서 V6 엔진이 등장했고, 그라나다가 그 뒤를 이어갔다. 고급차의 상징이었던 V6가 중형차로는 국내 처음으로 기아 크레도스Ⅱ에 얹히며 대중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직렬 6기통 엔진이 다시 등장한 것은 89년 임페리얼부터이며 현재 매그너스에도 쓰이는 등 대우차에 주로 쓰였다. 대우차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내놓은 ‘직렬 6기통 횡치(橫置)엔진’인 ‘L6 엔진’은 국내 엔진기술의 또 다른 진보로 평가되고 있다. 95년부터 7년여 동안 510억 원을 들여 개발에 성공한 L6엔진은 그동안 엔진 크기 문제로 가로놓기가 어려웠던 ‘직렬 6기통 종치 엔진’의 단점을 극복, 컴팩트하게 설계해 중형차 엔진으로는 세계 최초로 가로놓기에 성공함으로써 앞바퀴굴림 채택이 가능해졌다. 또한 호주 홀덴사에서 수입하던 2.0 이상 중형차 엔진의 도입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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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F1 참가를 통해 쌓은 혼다의 기술력은 25년 뒤 일본의 첫 정통 스포츠카 NSX로 빛을 발했다. 자동차 개발의 귀재 밥 러츠와 디자이너 톰 게일이 만들어낸 다지 바이퍼는 시보레 코베트를 앞지르는 카리스마로 명성을 높였다. 아부스와 ASF 등 90년대 초의 실험을 거쳐 94년 등장한 아우디 A8은 알루미늄 프레임을 양산차에 쓴 기념비적인 차다

혼다 NSX (1990~현재)
Honda NSX
혼다를 얘기할 때는 ‘기술’과 ‘혼다 소이치로’를 빼놓을 수 없다. 대규모 메이커가 아닌 혼다가 오늘날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주요 자동차 메이커로 자리잡은 원동력은 기술을 중요시했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의 집념과 그의 뜻을 정확하게 실현해낸 뛰어난 기술력이라 할 수 있다.

모터사이클 메이커로 인기를 얻고 1962년 자동차 생산에 뛰어든 혼다는 도쿄 모터쇼에 내놓은 S500과 경스포츠카 S360 외에 제대로 된 양산차조차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F1에 도전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결정이었지만 혼다 소이치로 회장의 고집과 엔지니어들의 도전정신은 64년 독일 그랑프리 출전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 첫해 3번의 레이스에서 모두 리타이어한 혼다는 이듬해 최종전인 멕시코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다음해인 66년에도 한 차례 우승을 거머쥐면서 F1의 강자로 떠오른다. 하지만 68년 테스트 주행 도중 프랑스인 드라이버 조 슐레세르가 숨지는 사고를 겪은 뒤 F1 참가 중단을 선언한다.

이후 혼다는 F1에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72년 7월 스테디셀러 시빅을 선보였고 76년에는 브랜드 이미지를 한 단계 끌어올린 어코드를 내놓았다. 시빅이 데뷔한 70년대 초, 브라밤 팀의 F2 미캐닉으로 활동하던 가와모토 노부히코가 혼다 기술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성능 스포츠카 개발을 위한 포석이었다.

혼다의 목표는 세계 최고의 GT카를 뛰어넘는 성능에 최고의 스타일링을 갖춘 스포츠카였다. 개발을 시작한 지 6년 반이 지나면서 혼다의 첫 정통 스포츠카 NSX(New Sports Experimental)의 밑그림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혼다 엔지니어들은 당시 GT카에 일반적으로 쓰이던 V8이나 V12 엔진 대신 가벼운 V6 3.0X VTEC 280마력 엔진을 미드십에 얹고 알루미늄 차체로 무게를 줄였다. 혼다의 기술이 고스란히 담긴 일본 최초의 본격 스포츠카 NSX는 89년 미국 시카고 오토쇼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키트 주행을 거쳐 섀시를 보강하고 일본 스즈카 서키트에서 F1 명드라이버 아이르톤 세나가 시험주행을 마친 NSX는 개발의 주역 가와모토가 혼다 사장에 취임한 90년 여름 시판에 들어갔다. 최고시속 270km, 0→시속 100km 가속 5.9초의 성능은 페라리 348이나 포르쉐 911 카레라 2 수준이었지만 승용차 감각과 F1 기술을 접목한 덕분에 운전이 훨씬 쉬웠다. 트랜스미션은 수동 5단과 자동 4단. 이후 혼다는 92년 11월 한정생산 모델인 NSX-R을 선보였고 지난해 도쿄모터쇼에서는 헤드램프 디자인을 바꾸는 등 7년만에 마이너 체인지를 거친 NSX-R을 발표해 다시 한번 눈길을 모았다.

다지 바이퍼 8.0 V10 RT (1992~현재)
Dodge Viper 8.0 V10 RT

미국 양산 스포츠카의 시발점은 1950년대 중반 태어난 시보레 코베트라 할 수 있다. 코베트는 미국인들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스포츠카였지만 끝없이 쏟아지는 미국인들의 사랑을 감당하느라 그만 진화가 느린 차가 되어버렸다. 코베트는 80년대 말을 지나면서 비로소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코베트 ZR-1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스포츠카였고 미국 2세대 스포츠카 붐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ZR-1을 뛰어넘는 새로운 미국 스포츠카가 등장한 것도 이 즈음이다.

88년 당시 크라이슬러 회장 리 아이아코카는 회사를 다시 세우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미니밴과 정통 세단의 판매에 열을 올리는 한편 새로운 모델의 개발에 몰두했다. 하지만 새 모델의 개발에는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려 3년의 세월이 지루하게 지나갔다. 공백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 차가 필요했다. 당시 크라이슬러 사장 밥 러츠와 디자인 담당 부사장 톰 게일은 이 프로젝트 개발의 적임자였다. 유럽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유럽 스포츠카 감각을 익힌 밥 러츠와 미국에서만 일했던 톰 게일의 만남은 가장 미국적이면서도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스포츠카 탄생의 청신호였다.

개발팀은 우선 대형 픽업에 쓰기 위해 개발 중이던 V10 8.0X 엔진을 새로운 핫로드에 쓰기로 결정했다. 개발 과정에서 영감을 주었던 쉘비 코브라의 별명을 따 차 이름을 바이퍼(Viper, 독사)로 정했다. 바이퍼 프로토타입이 89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처음 공개되었을 때까지도 크라이슬러는 이 차의 양산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터쇼 기간에 바이퍼를 본 수많은 사람들이 양산을 원했고 이에 따라 크라이슬러는 생산채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30명으로 구성되었던 바이퍼 개발팀은 85명으로 보강되었다. 또 당시 크라이슬러 산하에 있던 람보르기니 기술진은 무게 325kg의 경합금 엔진을 만들어 바이퍼에 얹었다. 프로토타입 발표 3년 뒤, 밥 러츠 사장은 바이퍼 양산 1호차를 직접 몰고 나타났다.

바이퍼는 최고출력 400마력, 최대토크 62.2kg·m의 엄청난 엔진을 얹고 폭 2m에 가까운 거구로 최고시속 265km, 0→시속 100km 가속 4.5초의 놀라운 성능을 자랑했다. 도어 아래쪽 겉으로 드러나 있어 화상의 위험이 있는 사이드 머플러 커버와 안쪽에만 달려있는 도어 손잡이, 옷가방을 넣기도 비좁은 트렁크룸 등 불편한 점이 수두룩했지만 전형적인 미국 ‘이그조틱카’의 멋을 지닌 바이퍼는 모든 단점을 매력으로 만들어버렸다. 20세기 최고의 명차 100대에 바이퍼가 포함된 이유는 ‘카리스마’ 단 한 가지였다.

아우디 A8 (1994~현재)
Audi A8

1991년 도쿄 모터쇼는 6주 먼저 열렸던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대부분의 주요 모델들이 공개되는 바람에 ‘재탕 모터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아우디는 재미없는 모터쇼가 될 뻔한 도쿄 모터쇼의 주인공이 될 새 모델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터쇼 개막과 동시에 예고도 없이 등장한 이 차는 바로 보디 전체를 알루미늄으로 만든 수퍼카 아부스였다. 앞뒤를 구별할 수 없는 파격적인 스타일에 공기저항계수 0.29의 유선형 디자인도 놀라웠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도장하지 않은 채 반짝이는 알루미늄 보디였다. 차체 무게 1천250kg에 불과한 아부스는 4WD 방식과 프로콘텐 시스템 등 아우디 독자 기술의 결정체였다. 프로콘텐 시스템은 아우디가 86년 인기모델 아우디 80을 통해 처음 선보였던 첨단 안전장치로, 정면충돌 때 엔진이 밀려들어오면 스티어링 휠은 대시보드 쪽으로 밀착되고 안전벨트는 조여져 운전자의 가슴을 보호한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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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띠를 매지 않은 상태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자기신체사고’ 보험금을 보상받을 때, 운전석 및 동반석 탑승자는 보험금의 20%, 뒷좌석 탑승자는 10%가 깎인다

‘안전띠는 생명띠’라는 표어가 말해주듯, 안전띠를 매면 교통사고가 나도 생명을 구하거나 부상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큰 사고가 아님에도 안전띠를 매지 않아 다치는 경우(특히 얼굴과 무릎)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어떤 운전자는 안전띠를 매고 있으면 차가 언덕 밑으로 굴러 떨어질 때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근거 없는 얘기라고 설명한다. 차가 굴러 떨어질 때는 차 안 승객이 여러 번의 충격을 받고, 의식을 잃기 쉽다. 도로교통법규에도 안전띠를 매도록 의무화되어 있는 만큼,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띠는 그만큼 중요하다. 아무리 짧은 거리를 가더라도 운전자는 물론 동승자 모두 안전띠를 매야 한다.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보험금 보상을 받을 때도 손해다. ‘자기신체사고’ 보험금의 경우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운전석 및 동반석 탑승자는 보험금의 20%, 그리고 뒷좌석 탑승자는 10%가 깎인다. ‘자기신체사고’ 보험은 쉽게 말해 차주와 그 가족(부모, 배우자, 자녀), 그리고 운전자와 그 가족이 인사사고를 당했을 때 보상받는 보험이다.
‘무보험차 상해’ 사고 때도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보험금을 다 받지 못한다. ‘무보험차 상해’ 보험이란 무보험차(뺑소니차나 자동차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차, 혹은 가입했더라도 그 계약이 실효된 차 등)에 의해 사망하거나 다쳤을 때 보상받을 수 있는 보험이다
이 보험에 가입한 운전자나 가족이 무보험차에 사고를 당했을 때는 가입한 ‘무보험차 상해’ 보험으로 보상받는다. 이때 보험금은 ‘대인배상’ 보험금 지급기준에 따라 산출된다. 안전띠를 매지 않아 사고(손해)가 났거나 그 손해(부상)가 커졌을 때는 그 비율만큼 보험 보상금이 깎이게 되는데, 이를 ‘과실상계’라 한다. 안전띠를 매지 않은 과실상계율은 보통 10~20%다.

이렇듯 ‘대인배상’에는 당연히 과실상계가 적용된다. ‘자기신체사고’나 ‘무보험차 상해’처럼 자기가 가입한 보험으로 보상받는 사람도 과실상계를 적용받지만, 가해자의 자동차보험으로 보상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고가 나면 가해자가 가입한 자동차보험회사의 보상직원은 피해자가 안전띠를 맸는지 철저히 조사한다. 차에 안전띠가 달려 있지 않아 매지 못했다면 물론 예외로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차주가 파손된 안전띠를 보수하지 않았다든지 등의 잘못(과실)이 있다면, 보험회사에서 차주를 상대로 그만큼 구상할 수 있으니, 차의 안전띠를 항상 살피고 관리해야 한다. 안전띠를 매지 않는 과실상계는 고속도로는 물론 일반도로를 포함한 모든 도로에 적용되며, 시내 및 시외 도로를 가리지 않는다.
Posted by 따뜻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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